세계일보 칼럼- 문자로 보는 세상 28- 숨 쉬는 한지, 한 너머 한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8숨 쉬는 한지, 한 너머 한 우리의 종이를 가리키는 ‘한지(韓紙)’라는 말은 해방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나 은 물론 어느 고전에도 그 용례가 보이지 않는다. 서양에서 들어오거나 서양식으로 만든 양지(洋紙) 사용이 일반화되자, 주객이 전도되어 양지를 가리켜 종이라 부르고, 우리의 종이는 ‘한(韓)’ 자를 앞에 붙여 ‘한지(韓紙)’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한지뿐만이 아니라 ‘한복’, ‘한옥’, ‘한방’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만든 종이를 당지(唐紙)라 했으니, 조선에서 만든 종이란 뜻으로 ‘조지(朝紙)’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조선 시대 승정원에서 결정된 사항을 기록 반포하던 관보를 가리키는 말이다.한글 창제 이후 ‘종이’를 가리키는 말로 ‘됴희, 됴ᄒᆡ, 조회, 조희, 죠희, 죠ᄒᆡ, 죵ᄒᆡ’ 등이 있다. 종이의 어원은 학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풀이하고 있지만, 종이는 펼치는 순간 밝고 깨끗하게 느껴지고, 일상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므로, ‘깨끗하다’는 뜻의 고어 ‘조타’와, ‘요긴하다’는 뜻의 ‘종요롭다’와 관계가 깊은 말로 생각한다. 그리고 종이의 주원료가 닥나무 껍질이므로 ‘닥나무 저(楮)’ 자의 발음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한국(韓國)’은 물론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준말이다. 한편, 조선 고종 34년(1897)에 새로 정한 우리나라의 국호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준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일제 강점기 1919년에 선언한 ‘3·1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을 잠시 살펴보자.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에서 왜 ‘대한의 독립국임과 대한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고 하지 않았을까? 대한이 아니면 한국이라 했어도 좋았을 텐데. 다행히 3·1운동 직후, 이러한 운동을 진행하려면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상하이에 수립한 정부는 ‘조선임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문자에서 찾은 재미는, 한국의 ‘한(韓)’과 조선의 ‘조(朝)’, 두 글자에 공통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발음이 서로 다르듯이 문자학적인 출발은 서로 달랐으나 지금은 놀랍게도 두 글자의 왼쪽부분을 똑같이 쓰고 있다. 초원 위로 태양이 솟는 모양으로 ‘해 뜨는 나라’를 상징하고 있다. 환인, 환웅, 단군, 해부루, 해모수, 박혁거세, 알영, 김수로, 허황옥, 김알지, 박달, 배달 등이 모두 ‘해’와 관련된 말이다. 동이족(東夷族)이 만들었다고 보는 갑골문에서, ‘조(朝)’ 자는 풀밭(艸) 위에 ‘뜨는 해(日)’와 ‘지는 달(月)’이 동시에 나타난 모습이니 아침의 상황이다. ‘일찍 조(早)’ 자 역시 해가 떠오르는 모습으로 발음도 ‘조(朝)’와 같다. 그런데 ‘한(韓)’ 자는 아쉽게도 갑골문에서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금문(金文)에는 나타난다. 한(韓)은 ‘간(幹), 한(翰), 간(干), 한(汗), 칸’ 등과 음과 뜻이 통하는 글자이다. 우리 역사에서 ‘한(韓)’ 자는 삼한(三韓)시대부터 쓰였는데, ‘크다(大), 많다(多)’라는 뜻의 형용사 ‘하다’에서 왔다고 본다. ‘한(韓)’은 또한 ‘하늘, 하나, 함께’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즉 한자 한(韓)은 순우리말 ‘하다’의 관형사형, ‘한’의 음차로 본다. 따라서 한국(韓國)이라 하면 ‘큰 나라, 하나뿐인 나라, 함께 사는 나라’의 뜻이, 한옥(韓屋)이라 하면 ‘큰 집, 하나뿐인 집, 함께 사는 집’이란 뜻이 있다. 붓의 전신은 ‘정’이나 ‘칼’이고, 종이의 전신은 ‘갑골(甲骨)’이나 ‘죽간’, ‘비단’이나 ‘바위’ 등이었다. 오랫동안 기록은 붓과 종이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인쇄술의 발달로 활자가 붓을 대신하게 되었다. 물론 인쇄시대에도 붓과 더불어 만년필, 연필, 볼펜 등의 다양한 필기구가 공존했고 지금도 힘들게나마 버티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나 모바일 시대의 붓은 무엇인가? ‘키보드’나 ‘키패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입력 장치의 하나로 커서를 움직이는 ‘마우스’ 역시 붓의 대용품이라 해야 한다.그럼 컴퓨터 시대의 ‘종이’는 무엇일까? 데이터나 명령을 컴퓨터 내부에 기억하고 있는 장치라는 개념에서는 ‘메모리’가 아닐까? 화면으로 보여주는 ‘모니터’는 한 장의 펼친 종이로 봐야 할 것이다. ‘먹’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진부호(二進符號)인 ‘0’과 ‘1’이 아닐까? 먹의 여러 조합으로 다양한 서체가 나타나듯이 컴퓨터는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벼루’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벼루가 없으면 먹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컴퓨터에서는 프로그램의 명령을 분석, 해독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해 주는 장치 곧, ‘CPU’가 벼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서체’는 ‘폰트(font)’로 규정된다.
2016.10.27
제2회 한중의원공무원서예전
2015년, 제1회 한중의원공무원서예전에 이어2016년, 제2회 한중의원공무원서예전(第2回 韓中議員公務員書藝展)에 초대받아작품을 준비해 보았다.대만 금산(金山)에서 세계적인 포교활동을 하시다가 입적하신성엄법사(聖嚴法師)의 게송을 전서와 예서를 섞어쓴 전예서(篆隸書)의 독특한 서체로 써 보았다.
2016.10.25
KBS 캘리그라피 준비
4차산업혁명시대 - 우리의 생존전략 1편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2편 - 국민경제를 이모작하라 3편 패널토론 -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 푹 빠져 있던 나에게 KBS로부터 연락이 왔다.특집방송 캘리그라피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10월 15일 2016년도 한중일 추계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필자가 발표한 논문 제목도'제4차 산업혁명과 문자권력의 추이'가 아니었던가. 인연이란 생각의 힘에서 글을 통해 전해지나 보다.고것 참. * 나머지 내용은 바 메뉴 '실용서예'에 있습니다.
2016.10.24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7- 자연을 닮은 한옥 이야기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7자연을 닮은 한옥 이야기자연(自然)은 인간의 힘을 받지 않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인간은 환경보호 또는 자연보호라는 이름으로 친자연적인 행위를 하는 것처럼 떠들어 왔지만, 지나고 보면 문명화 또는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반(反)자연적인 행위만 자행해 왔다. 인지(人智)의 발달로 인간 생활은 더 풍부하고 편리해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 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 피폐하고 잔인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표방한 개인주의는 점차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마침내 인간소외 현상을 낳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어쩌면 인류는 더 가난해지고 더 불편해져야 인성(人性)을 회복하고 더불어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문화(文化)란 말 안에 ‘될 화(化)’ 자가 들어있는 걸 보면, 문화는 변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변화의 속성에 따라 우리의 전통문화는 우리의 현대문화로 바뀌어야 정상인데, 공교롭게도 서양문화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는 늘 입어오던 우리 옷을, 부르던 대로 ‘옷’이라 하지 못하고 ‘한복’이라 불러야 하고, 우리가 짓고 살아오던 우리 집을 그냥 ‘집’이라 하지 못하고 ‘한옥’이라 불러야 하는, 거꾸로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전통문화는 손님이 되고, 손님이 가져온 서양문화가 주인이 되어 버렸다.솔직히 ‘전통문화’라 하면 시대 감각이 뒤떨어져서 보호해야 할 문화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기능과 편리 위주의 서양식 건물 대신에, 다소 불편한 전통한옥 건설을 고집하는 곳이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자연을 닮은 순수 한옥마을, ‘정와(靖窩)’가 바로 그곳이다. ‘정와’라는 마을 이름은 ‘편안할 정(靖)’ 자와 ‘보금자리 와(窩)’ 자를 써서 ‘편안한 보금자리’ 정도의 겸손한 의미를 담고 있다.붓글씨를 즐기는 필자는 가끔 현판이나 상량문 등의 부탁을 받곤 하는데, 지난 4월에는 인천국제공항 제2청사 상량문을, 6월에는 이곳 ‘정와’ 한옥마을의 상량문을 쓴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 사이 세미나장 또는 공연장으로 사용될 가장 큰 건물, ‘관효당(觀曉堂)’이 완공되고 현판 글씨도 쓰게 되었다. 서각은 김용복 작가가 맡았다.상량(上樑)이란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일을 말한다. 마룻대에는 이 건물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축복받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적는데, 이를 상량문(上樑文)이라 한다.건물의 문루에 가로 붙이는 현판(懸板)은 그 집의 얼굴로서, 그 집의 성격까지 일러준다. 그래서 현판 글씨는 멀리서도 잘 보이게 쓰는 것이 상례이고, 드나드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를 기울여 써야 한다. 현판 글씨는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이해 주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 쓰면 오가는 이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현판 글씨는 반드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사람의 기운을 모아 붓을 잡아야 하며, 글자는 무거우면서도 어둡지 않게, 아름다우면서도 넘치지 않게 써야 한다. 이처럼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쓰는 붓글씨를 필자의 경우 ‘라이브 서예’라 명명했다. ‘관효당(觀曉堂)’은 ‘볼 관(觀)’, ‘새벽 효(曉)’ 자를 써서, 북한산의 ‘원효봉(元曉峰)을 바라보는 집’, ‘첫새벽을 맞이하는 집’이란 뜻이다. 원효봉이란 명칭은 본래 원효봉 아래에 있는 원효암에서 유래한 것이고, 원효암은 신라 시대 원효(元曉)대사가 수도하였던 토굴이었다. 그리고 원효대사는 원효라는 법명 그대로 이 땅에 불교의 새벽을 연 승려였다. 관조(觀照), 관심(觀心)이라고 할 때의 ‘관(觀)’은 조용히 대상의 본질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관(雚)’ 자는 자전에는 ‘황새’로 풀이하고 있으나, 글자의 모양을 보면 머리 위에 댕기깃을 달고 있는 새처럼 보인다. ‘새벽 효(曉)’는 세상이 밝아오기 전의 처음 빛을 말한다. 우리말 ‘새벽’은 동쪽을 뜻하는 ‘새’와 밝아온다는 뜻의 ‘밝’이 합쳐져서 된 말로 보인다. 새벽의 고어는 ‘새박’, ‘새배’ 등이 있는데, 의미가 서로 통하는 ‘열 벽(闢)’의 영향을 받아 지금처럼 ‘새벽’으로 된 것 같다. 새벽은 ‘동트기’라고도 한다.그리고 한옥(韓屋), 양옥(洋屋)이라 할 때의 ‘집 옥(屋)’은 ‘곤한 몸[尸]을 이끌고 돌아와[至] 쉬는 집’을, 사당(祠堂), 명당(明堂)이라 할 때의 ‘집 당(堂)’은 ‘신을 숭상[尙]하는 언덕[土] 위의 집’으로 당집을 뜻한다. 4만6천 평의 대지 위에 별채를 제외한 전통한옥 50채, 현대한옥 22채, 초가집 35채, 너와집 5채 등 모두 112채의 한옥마을이 건설될 예정인바,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때론 열정을 지나 무모한 작업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촌장은 인생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부모로부터 받은 ‘우리 것’에 대한 아련한 추억에서 생의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2008년에 시작된 공사는 2018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해마다 빛축제, 음악회 등의 문화행사와 함께 부분 개장을 하였다. 게다가 테라피(therapy) 효능의 구절초 한증막, 피톤치드 가득한 잣나무 둘레길 등도 개설되어 그야말로 천년한옥 글로벌 관광단지로 발돋움할 것이 기대된다.순수한옥은 흙, 나무, 돌로만 지어진다. 시멘트나 화공 약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창호지도 따지고 보면 나무로 만든 것이다. 한옥은 목재가 가장 큰 관건인데,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한 울진, 삼척의 금강송을 사용했다. 금강송은 영하 20도와 영상 30도의 해풍을 견뎌낸 소나무로 송진(松津) 함량이 많아 압축 강도와 휨 강도가 매우 뛰어나다. 입동에서 입춘 사이에 취목하여 적어도 5년 이상의 건조 기간이 필요하다니, 한옥 건축도 서예처럼 슬로우 아트란 생각이 든다. 황토와 숯 그리고 짚으로 만든 숨 쉬는 벽돌,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소성한 노당기와를 사용하였다니 천연 한옥의 신화가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는 듯하다. 그리고 한옥은 목재의 모양에 따라 집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설계사무소에서 미리 설계할 수 없다. 그래서 한옥은 시작부터 자연을 닮을 수밖에 없다. 다소곳한 초가처럼 극구 자신의 이름을 사양하는 촌장은 지난날 조상들의 주거공간이 하나씩 훼손되어 가는 현장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필생의 사업(Lebenswerk)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한옥마을 건설을 버킷리스트(Bucket list) 1번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순수한옥을 후손들한테 영원히 남기고 싶어 예술적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예술을 창조했다. 그에게는 자연을 닮은 한옥을 짓는 일이 예술 창조였다. 천 년 후에도 기억될 정와의 얼굴은 아무래도 대목수 송덕영, 송덕남 형제 그리고 와공 최정국 씨라 생각한다. 그들의 손길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김필영 시인은 관효당 개관기념 헌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살아가는 일이, 집 한 채 짓는 일이라면 멋진 한옥 한 채 지어 살고 싶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와집 용마루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쳐 기도하고, 초가지붕은 처마를 드리워 대지를 감싸고 있다. 천지를 지키는 한옥은 그래서 우주와 하나가 된다. 그 따뜻한 가슴에 가족을 품고서...
2016.10.20
월간해인 2016. 11월호. 권두언 - 신심자재(身心自在)
신심자재(身心自在) 古德云(고덕운)덕이 높으신 옛 스님께서 말씀하셨다.竹影掃階塵不動(죽영소계진부동)대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조차 일지 않고月輪穿沼水無痕(월륜천소수무흔)둥근 달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구나. 吾儒云(오유운)우리 유학자 스승께서 말씀하셨다.水流任急境常靜(수류임급경상정)물의 흐름이 급할지언정 주변은 항상 고요하고 花落雖頻意自閑(화락수빈의자한)꽃이 자주 떨어져도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구나. 人常持此意(인상지차의)사람이 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以應事接物(이응사접물)일에 응하고 사물을 접한다면身心何等自在(신심하등자재)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이 글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절대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셀 수 있는 돈은 돈다운 돈이 아님을, 이름을 붙일 수 지위는 지위다운 지위가 아님을 비유로 보여주고 있다.이는 에 나오는 글귀로 신심자재(身心自在)가 키워드이다. ‘신심의 절대 자유’를, ‘몸과 마음에 거리낌이 없음’을, ‘일체의 속박이나 장애 없이 몸은 편안하고 마음은 뜻 가는 대로 버려둠’을 노래한 것이다. 인위(人爲)가 아닌 자연(自然), 투쟁(鬪爭)이 아닌 화평(和平)을 읊기 위해, ‘대와 먼지, 달과 연못, 물과 환경, 꽃과 마음’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두 쌍의 대구(對句)가 모두 ‘움직임 가운데 어떠한 고요함이 있다’는 뜻의 ‘동중정(動中靜)’을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동중정(動中靜)’은 ‘정중동(靜中動)’이라 해도 무관하다.산을 오름에, 정상에서 한 키만 부족해도 한쪽밖에 보이지 않는다. 낮은 산봉우리일지라도 그 정상에 올라야 사방(四方)은 물론 또 다른 정상을 볼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 덕행이 높은 옛 승려를 고덕(古德)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고덕이 유가(儒家)의 선비를 시로써 만났지만, ‘신심자재(身心自在)’의 깨달음으로 서로 통하고 있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쓰는 일’과 ‘둥근 달빛이 연못의 물을 뚫는 일’, ‘물의 흐름이 급함’과 ‘꽃이 자주 떨어지는 일’은 ‘동(動)’이다. ‘쓸어도 먼지 일어나지 않음’과 ‘뚫어도 흔적 없음’, ‘경계의 고요함’과 ‘마음의 한가로움’은 ‘정(靜)’이다.유유자적(悠悠自適)도 있고 유유자재(悠悠自在)도 있다. 소요자적(逍遥自適)도 있고 소요자재(逍遥自在)도 있다. 아무런 구속을 당하지 않고 마음껏 즐기며 나아가는 ‘자적(自適)’은 동(動)의 극치이고, 원래 있었고 저절로 있던 그 자리 ‘자재(自在)’는 정(靜)의 극치이다.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달을 보든 손가락을 보든 아무런 시비가 되지 않는다.
2016.10.14
말과 글 그리고 서예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6말과 글 그리고 서예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에서 열리고 있는 ‘해군사관학교 기탁도서전’에 다녀왔다. 규장각의 ‘규(奎)’는 이십팔수(二十八宿) 중의 하나로 글이나 문장을 주관하는 별의 이름이며, ‘규장(奎章)’은 임금이 쓴 글이나 글씨를 의미한다. 따라서 ‘규장각(奎章閣)’은 ‘국왕이나 황제의 친필 글씨를 보관한 건물’이라는 뜻이 된다. 숙종 때부터 규장각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에 창덕궁에 규장각을 세우고 관리를 두면서 학술연구기관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의 도서들이 규장각으로 통합되었으며, 경성제국대학에서 관리하다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규장각 소장 도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기록된 , 및 왕실 행사 보고서인 각종 의궤(儀軌)를 소장하고 있다. 책마다 가장 중요한 자리에 경성제국대학교 도장이 찍혀있어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지만, 빛나고 매끄러운 한지 위에 쓰인 글씨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금방 쓴 것처럼 살아서 돋아날 것만 같았다.인간 발명의 최고 작품은 아마 ‘글’일 것이다. 글씨, 특히 한지에 붓으로 쓴 글씨는 불변성과 영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단 입 밖에 나오는 즉시 자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어느 때 어떻게 의미가 왜곡되어 전해질지도 모를 말을 오랫동안 보존하고자 만든 발명품이 바로 글이다. 바로 이 글을 매체로 필묵을 이용하여 종이 위에 점과 획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바로 서예이다.흔히 말하기는 쉬워도 글쓰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쉬우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고, 어려우면 회피하기에 십상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아껴가며 말하고, 글쓰기는 어렵지만 되도록 많이 써야 한다. 모든 성공한 CEO들은 한결같이 적는 일에 골똘했다고 한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신(新)적자생존론’이 여기에서 탄생한다. 분명한 언어유희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성공한 CEO는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능했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모두 서예를 즐겼던 분들이다. 바쁜 와중에도 서예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림은 물론, 시간을 초월하여 외부와의 큰 소통을 꾀한 분들이다. 이처럼 붓을 통한 소통을 ‘필통(筆通)’이라 하는데, ‘필(feel)이 통(通)해야 필통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말과 글은 공기나 물과 같다. 살기 위해서는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셔야 하듯이, 피할 수 없는 말과 글이라면 맑고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평생 사용할 말과 글이라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아무도 말과 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말을 못하면 언어 장애인으로, 글을 모르면 문맹자로 취급된다. 말과 글을 모르면 서로 간에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사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으므로 미개인으로 낙인찍힌다. 미개인은 언제나 문명인의 부림을 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으로부터 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익히고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의 계절 이 가을에 말글의 바다인 도서관에 풍덩 빠져 보는 건 어떨까. 미국의 작가이자 최초 페미니스트였던 마가렛 풀러(Margaret Fuller, 1810 - 1850)는 ‘오늘의 리더가 내일의 리더(Today a reader, tomorrow a leader)’, 곧 오늘 책을 읽는 사람이 내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reader’와 ‘leader’라는 발음의 유사성이 재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말’은 ‘맛있게’ 하고, ‘글’은 ‘멋있게’ 써야 한다. 맛있는 말은 명곡과 같고, 멋있는 글은 명화와 같다. 말에 맛이 없으면 귀가 더러워지고, 글에 멋이 없으면 눈이 피곤해진다. 멋있는 글을 예술적 견지에서 서예라고 한다. 일찍이 서예는 작가가 공감하고 있는 시대 정서를 문자를 통하여 즉시 표현한 첨단 예술이었다. 그 덕분에 지난 시절 서예는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높은 지위에서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또 시대 정서를 이끌어 왔다. 다시 말해 서예를 하는 사람은 선택받은 지도자로서 문자권력이란 높은 지위를 누리며 문학과 역사는 물론, 철학과 정치 등의 흐름을 정확히 대변하고자 노력해 왔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생전에 “예술품의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직하고 똑똑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까닭에 있다”라고 하면서 예술품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서예가는 붓대 같은 굳은 의지로 자신을 지키고, 붓털 같은 부드러운 감성으로 오감을 열어놓고 시대를 읽어왔다. 서예가는 현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붓끝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지킴이요 시대의 대변자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역사적으로 뛰어난 서예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들이 살아가던 당대의 키워드와 현실 인식이 붓길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서예가로서 문학과 역사는 물론 종교와 철학, 생활과 윤리에까지 관심을 두고 붓으로 써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를 정확히 읽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당대의 리더였기 때문으로 본다. 체화된 삶을 살아온 서예가는 역사적으로 문자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트렌드 리더의 역할도 충실히 해 왔다. 안타깝게도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이란 전대미문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인문학은 팽개치고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만을 부각해 왔다. 그리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순수한 경제 정의는 사라지고 배금주의(拜金主義)의 끝없는 절정을 향하여 지금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21세기에 들어와서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SNS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온라인 세계가 펼쳐지면서 오프라인 세계는 시들기 시작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남은 온라인 세계에 탐닉하고, 오프라인 세계에 대해서는 무심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청정제 역할을 해야 할 종교는 희석되고, 세칭 자본주의교만이 돈을 교주로 믿고 따르며, 돈으로 모든 것의 서열을 매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인류는 직업군과 실업군, 부유층과 빈곤층이라는 두 부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키보드(keyboard)나 키패드(keypad)를 얻는 대신에 붓이나 펜을 잃어버렸고, 컴퓨터를 얻는 대신에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쉽게도 첨단예술의 지위에 있던 서예는 전통예술 속으로 밀려나 물리적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 기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고 소설을 쓰며,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마주하며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모두가 긴장하고 있다. 금세기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시대가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과연 인간은 유토피아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산업이 발달하는 와중에도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핵폭탄을 드러내놓고 만드는 게 인간이 아닌가.밤이 깊고도 길어지고 있다. 이 가을에 책 속의 진리의 샘물을 마시며, 한 번쯤 잊었던 느림의 예술 서예를 즐겨봄 직하지 않은가. 규장각의 그 많은 글씨가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머리를 스친다.
2016.10.13
제4차 산업혁명과 문자권력의 추이 - 2016년도 한중일 추계국제학술세미나
제4차 산업혁명과 문자권력의 추이Ⅰ. 들어가며서예는 장르 특성상 작가의 정서적 등가물로서, 작가가 공감하고 있는 시대 정서를 문자를 통하여 즉시 표현해 낼 수 있는 첨단 예술이었다. 그 덕분에 지난 시절 서예는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높은 지위에서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또 시대 정서를 이끌어 왔다. 다시 말해 서예를 하는 사람은 선택받은 지도자로서 문자권력이란 높은 지위를 누리며 문학과 역사는 물론, 철학과 정치 등의 시대사조를 정확히 대변하려고 노력해 왔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생전에 “예술품의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직하고 똑똑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까닭에 있다” 간송 탄생 110주년 기념전 ‘온고지신(溫故知新)’ - 현대작가, 간송을 기리다, 간송문화전 제7부에 해당, DDP, 2016라고 하면서 예술품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서예가는 붓대 같은 굳은 의지로 자신을 지키고, 붓털 같은 부드러운 감성으로 오감을 열어놓고 시대를 읽어왔다. 서예가는 현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붓끝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지킴이요 시대의 대변자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역사적으로 뛰어난 서예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들이 살아가던 당대의 키워드와 현실인식이 붓길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서예가로서 문학과 역사는 물론 종교와 철학, 생활과 윤리에까지 관심을 두고 붓으로 써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를 정확히 읽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당대의 리더였기 때문으로 본다. 체화된 삶을 살아온 서예가는 역사적으로 문자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트렌드 리더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 왔다.안타깝게도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이란 전대미문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인문학은 팽개치고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만을 부각해 왔다. 그리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순수한 경제 정의는 사라지고 배금주의(拜金主義)의 끝없는 절정을 향하여 지금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21세기에 들어와서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SNS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온라인 세계가 펼쳐지면서 오프라인 세계는 시들기 시작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온라인 세계에 탐닉하고, 오프라인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청정제 역할을 해야 할 종교는 희석되고, 세칭 자본주의교만이 돈을 교주로 믿고 따르며, 돈으로 모든 것의 서열을 매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인류는 직업군과 실업군, 부유층과 빈곤층이라는 두 부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키보드(keyboard)나 키패드(keypad)를 얻는 대신에 붓이나 펜을 잃어버렸고, 컴퓨터를 얻는 대신에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쉽게도 첨단예술의 지위에 있던 서예는 전통예술 속으로 밀려나 물리적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 기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지금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마주하며 살고 있다. 금세기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시대가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다보스포럼)은 독립적 국제기구로서 저명한 기업인ㆍ경제학자ㆍ저널리스트ㆍ정치인 등이 모여 세계 경제에 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국제민간회의이다. 독립적 비영리재단 형태로 운영되며,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다. ‘세계경제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영향력이 있는 유엔 비정부 자문기구로 성장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나 서방선진 7개국(G7) 회담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1938~ )은 그의 저술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서문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성격에 대해 이르기를 ‘오늘날 우리는 삶과 일, 인간관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혁명의 문 앞에 서 있다. 그 규모와 범위 그리고 복잡성(complexity)을 미루어 볼 때, 제4차 산업혁명은 과거 인류가 겪었던 그 무엇과도 다르다.’ 위의 책, p.10라고 선언했다. 논자는 20C 후반부와 21C 전반부를 살아가는 서예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예계 현실을 위기로 진단하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 고민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제4차 산업혁명의 격랑 속에 던져질 서예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서예의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보고자 한다. 주어진 도전을 운명을 지나 숙명이라 믿고, 21세기 서예의 비전과 야망을 꿈꾸며, 서예 경영과 서예 마케팅 등에 대하여서도 덤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Ⅱ. 말과 글우선 여기에서는 ‘말’과 ‘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하는데 그 까닭은 말과 글은 생각의 씨앗으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작업이 예술 활동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말과 글 중에서, 특히 ‘글’에 ‘씨’ 자를 붙인 ‘글씨’라고 하는 것이 곧, ‘서예’이기 때문이다. 말을 음성언어, 글을 문자언어라고도 하지만 여기서는 친근하게 ‘말’과 ‘글’, 더러는 ‘말씨’와 ‘글씨’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과 ‘짓’ 두 가지밖에 없다. 말과 짓을 대개 언행(言行)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말한 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성실한 실천이 요구됨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부터 인물을 뽑을 때 잣대가 되었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네 가지 항목이 있다. 이 중에 ‘말[言]’과 ‘글[書]’ 곧, 말씨와 글씨가 들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의 말과 글을 듣고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말과 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말과 글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말은 목구멍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음성 기호의 집합이고, 글은 말을 적는 문자 기호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음성은 시간의 함수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라지고 말지만, 글은 공간의 함수로 시간이 흘러도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도 서로 다르다. 서예는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말 속에 말이 있고 글 속에 글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고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니라는 뜻과 함께 말글 안에는 무궁무진한 뜻이 담겨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인간은 말을 먼저 발명하고 글은 나중에 만들어 냈다. 그리고 처음 마주하는 사물을 일컫고, 겪은 일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사회적인 약속으로서 말과 글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러한 말의 일회성· 소멸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자유롭고 직관적인 그림 그리기로 표현했겠지만, 나중에는 고도의 음성 상징 기호인 글자를 발명하여, 더 간편하게 정보를 보존하거나 보다 정확하게 그 뜻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발명의 최고 작품은 아마 ‘글’일 것이다. 글, 특히 붓으로 쓰인 글은 불변성과 영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단 입 밖에 나오는 즉시 자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어느 때 어떻게 의미가 왜곡되어 전해질지도 모를 말을 오랫동안 보존하고자 만든 발명품이 바로 글이다. 바로 이 글을 매체로 필묵을 이용하여 종이 위에 점과 획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서예이다. 급기야 글로 쓰기조차 귀찮아서 녹음기와 음성 인식기까지 만들어 낸 걸 보면 인간의 창조적 본능에는 끝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흔히 말하기는 쉬워도 글쓰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쉬우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고, 어려우면 회피하기에 십상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아껴가며 말하고, 글쓰기는 어렵지만 되도록 많이 쓰라’는 격언이 있다. 특히 서예 활동은 쓰기 위한 준비나 서사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런데 모든 성공한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적는 일에 골똘했다고 한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신(新)적자생존론’이 여기에서 탄생한다.성공한 CEO는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능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모두 서예를 즐겼던 분들이다. 이 두 회장은 모두 바쁜 와중에도 서예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림은 물론, 시간을 초월하여 외부와의 큰 소통을 꾀한 분들이다. 이처럼 붓을 통한 소통을 ‘필통(筆通,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라 하는데, 언어유희로 보면 ‘필(feel)이 통(通)하여야 필통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말과 글은 공기나 물과 같다. 공기나 물은 흔하지만, 오염되면 누구나 금세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셔야 하듯이, 피할 수 없는 말과 글이라면 맑고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평생 사용할 말과 글이라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따금 말글의 바다인 도서관에 풍덩 빠져 보는 건 어떨까. 도서관은 영혼의 수영장이다.그리고 ‘말’은 ‘맛있게’ 하고, ‘글’은 ‘멋있게’ 써야 한다. 맛있는 말은 명곡과 같고, 멋있는 글은 명화와 같다. 말에 맛이 없으면 귀가 더러워지고, 글에 멋이 없으면 눈이 피곤해진다.인간이라면 아무도 말과 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을 못하면 언어 장애인으로, 글을 모르면 문맹자로 취급된다. 말과 글을 모르면 서로 간에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사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으므로 미개인으로 낙인찍힌다. 미개인은 언제나 문명인의 부림을 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으로부터 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익히고 책을 읽어야 한다. 한편 글은 민주주의와 상관관계(相關關係)가 높다. 글을 모르면 전제주의(專制主義)나 독재주의(獨裁主義)에 빠지게 되고, 온 국민이 글을 잘 사용하여 문맹자가 없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는 따지고 보면 글이 준 선물이라 하겠다. Ⅲ. 문자권력의 추이와 문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기고,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 앞말은 노자(老子)의 말이고, 뒷말은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배운 말이다.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명예와 이익을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편이자 절대 권력을 차지하는 지름길이었다. 때로는 권력을 잡은 자가 새로운 문자를 만들면서까지 문자를 무기로 글 모르는 백성 위에 군림하거나 이민족까지 지배하기도 하였다. 문자는 왕조 창업을 합리화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으니, 글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에너지를 ‘문자권력(文字權力)’이라 이름 붙여본다.‘글’ 또는 ‘문자(文字)’라는 말은 때로 ‘학문’ 또는 ‘학식’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는데, ‘글깨나 배웠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겠나?’라고 할 때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공자 앞에 문자 쓰네’라고 할 때의 ‘문자’는 어려운 문구를 많이 쓰며 유식한 채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역사시대 이래 지금까지 문자를 익히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권력의 구심점에 있었다. 문자를 터득하고 붓을 잡는다는 것은 곧 권력을 잡는 일이었다. 문자 속에는 무지갯빛 부귀영화가 약속되어 있으므로, 서예 용구를 일러 문방사보(文房四寶)라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중국 북송(北宋)의 제3대 진종황제(眞宗皇帝, 968~1022)는 그가 쓴 ‘권학문(勸學文)’에서 문자권력의 내막을 온전히 실토하고 있다.집안을 부유케 하려고 좋은 밭을 사지 말라글 속에 저절로 천종의 봉록이 들어있느니라. 편안히 살려고 높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글 속에 절로 황금으로 지어진 집이 들어있단다.문을 나섬에 따르는 자가 없다고 아쉬워 말라글 속에는 수레와 말들이 무더기로 넘쳐난다.장가감에 좋은 중매가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라글 속에 얼굴이 옥처럼 어여쁜 여자가 있느니라.사나이로서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육경(六經)을 부지런히 창 앞에서 읽을지어다. 富家不用買良田 書中自有千鍾粟 安居不用架高堂 書中自有黃金屋 出門莫恨無人隨 書中車馬多如簇 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男兒欲遂平生志 六經勤向窓前讀.글을 익혀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만 하면, 돈과 명예는 물론 예쁜 아내까지도 한꺼번에 굴러들어온다는 글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글공부지만 예전에는 소수의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열려있던 글 길이었다. 일본인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문자는 특권층만의 것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신비감마저 든다.’ ,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고경문 역, 페이퍼로드, 2012, p.78라고 했다. 이 말은 문자와 특권층 간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결국 문자의 절대적 가치는 특권층이 사용하기 때문에 돋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문자는 발명 이래 양반이나 귀족만을 위한 것으로서, 요즈음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문자는 소수의 집권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문자의 부정적 측면이다. 글을 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그들의 법(法)을 만들고 또 법이라는 명목 아래, 글 모르는 사람들을 마구 부려먹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머리라면 글을 모르는 사람은 손발이었다. 너스레를 떤다면 ‘문맹자(文盲者)는 문명자(文明者)의 수족(手足)’ 역할을 해야만 빌붙어 살 수 있었다는 말씀이다. 문자를 모르면 상놈, 제 이름도 못 쓰면 쌍놈이었다. 이런 사람은 세종대왕으로부터도 ‘어리석은 백성(愚民)’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러고 보니 욕 중에 상욕은 ‘무식한 놈’이렷다.최초의 서예가는 문자를 만들기도 하고 또 활용할 방법도 찾아냈다. 그들은 뾰족한 돌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정이나 칼로써 돌 위에 글자를 새기기도 했는데 이 튼실한 기록방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자권력을 누리는 집단이 탄생하였다.다음 시기 이들은 먹을 발명하고, 거북의 배 뼈나 소의 어깨뼈 등에 글자를 새기거나 쓰기도 하면서 제의와 사냥 등에 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갑골문은 제사와 수렵을 맡은 부족장이나 제왕의 문자권력이었다. 백성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고, 또 알아서도 안 되는 금기의 글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름 그대로의 순수한 우민정책(愚民政策)이라 할 수 있겠다. 퇴폐 문화를 눈감아주고 도박을 통한 사행심을 조장하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오늘날의 우민정책과는 다르다.문자권력자들은 마침내 붓을 발명하고 1988년 1월 경남 창원시 다호리에서, 초기 철기 시대의 나무널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다섯 점의 붓이 출토되었다. 붓대는 나무를 깎아 만들었고, 양 끝에 붓털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이 붓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토된 것으로 기원전 2세기경에 이미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되며, 나아가 우리의 역사 시대의 시작까지 끌어 올려주는 근거 자료가 된다. 죽간(竹簡)과 목간(木簡) 또는 비단을 만들어 그들의 생각과 느낌은 물론 사상까지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문자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그들은 ‘서예 정신’을 깨닫고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종이’란 문명의 터전을 발명하여 서예를 고도의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 문자를 통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그들은, 시대를 갈마들면서도 거침없이 그들만의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형태의 서체를 만들어 가며 그들의 역사를 펼쳐나갔다.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승상인 이사(李斯)를 시켜 새로운 글자 소전(小篆)을 만들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며 권력을 휘둘렀고,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정복하고 나서 파스파라는 티베트 승려를 시켜 이른바 ‘파스파문자’라는 몽골문자를 만들어 지배하였으며,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몽골문자를 개량한 ‘만주문자’를 만들어 문자권력을 펼쳐나갔다.한반도에서의 문자권력의 본격적 출발은 삼국시대부터이다. 이때부터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이두(吏讀)는 아전들의 문자권력이었다. 신라에서는 향찰(鄕札)이 초기 문자권력으로 나타났으나 통일 이후는 한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려 광종 때(958년)부터 갑오개혁 때(1894년)까지 실시해 온 과거제도 시기는 한문이 절대적 문자권력이었다. 선조(先祖)의 간찰(簡札)은 한결같이 초서로 쓰여 하인은 눈 뜨고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초서는 작가의 성정을 마음껏 풀어주는 서예술의 꽃이기도 하지만 문자권력자들 간의 비표이자 문자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요즘도 법률·의학·행정 등의 전문용어를 쉽게 고쳐 쓰자는 여론이 일어나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절대 곧이듣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득권자들이 이미 문자권력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전문 직업인일수록 문자권력을 심하게 부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의 약방문(藥方文) 내용을 환자가 알면 약효가 떨어지고, 부적(符籍)은 쓴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읽어내면 영험함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종대왕만은 문자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세종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는 문자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세종에게 있어 문자는 권위의 상징이나 권력의 방편이 아니라 실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호혜(互惠)의 도구였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들에게 문자권력을 나눠주기 위한 창의적 발상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문자를 권력의 수단으로 보아 온 최만리에게 훈민정음 창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로 인한 문자권력의 누수를 염려한 그의 반대 상소는 당연한 처사로 여겨진다. 이때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세종대왕의 뛰어난 기지가 나타난다. 신하들의 반대 정황을 간파한 세종은 창제 작업을 홀로 비밀리에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차대한 사건을 필자는 ‘문자권력 나눔을 위한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라 이름 붙여 본다. 만약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 위한 공식적인 어전회의라도 개최했더라면, 시작하기도 전에 엄청난 난관에 부딪혔을 게 분명하다. 반대파의 많은 대신이 벌떼처럼 일어나 중국의 힘까지 빌려 가며 세종을 압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자권력의 기득권자 처지에서 보면, 그때까지의 과거(科擧) 시험이 줄곧 한문(漢文)으로 치러져 왔었고, 그 이후로도 한글 아닌 한문으로 과거가 치러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한동안 시끄럽다가 곧 조용해진 걸 보면 어쩌면 세종과 최만리 사이에 양해각서(諒解覺書)가 암암리 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관리를 뽑을 때 실시했던 과거 시험을 중국에서는 수나라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9년(958)에 처음 시행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만약 원 세조가 ‘파스파문자’로, 청 태조가 ‘만주문자’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면 각 문자의 위상이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중국의 지성이자 의 저자 루쉰(魯迅, 1881~1936)은 ‘어려운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 (漢字不亡 中國必亡)’라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만약 이때,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루쉰을 만나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눴더라면, 어쩌면 모든 중국인은 지금쯤 어려운 한자 대신에 쉬운 한글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대왕은 백성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창제한다고 말했다. 세종대왕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그들만의 문자권력을 어떻게 해서든 백성에서 나눠주어, 백성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후 훈민정음은 언문(諺文), 반절(反切), 암클, 국문(國文)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훈민정음은 창제 이후 어느 관리 하나 사용을 권장한 일이 없음에도, 그 놀라운 수월성 덕분에 신분을 초월하여 사용 범위가 급속히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현전하는 각종 언해류나 문학 작품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사설시조를 보면 지배층에 대한 백성의 비판 의식도 함께 싹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훈민정음은 위기 때마다 민의를 결집하는 수단이 되었고, 나아가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한글은 ‘학문과 지식의 평등’ , ‘玉鴛再合奇綠」 硏究’, 편집부,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1999, p.219 을 가져오고, 한류(韓流)의 중심에 우뚝 서서, 인류가 꿈꾸던 최고의 알파벳, 세계 속의 으뜸 문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3년 주시경 선생이 어린이 잡지 에 글을 쓰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한글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 권력에 의한 문자 창조’ , ‘한국의 현실과 민족운세론’, 양승태, 2006, p.28이었고 우리말에 꼭 들어맞는 우리 문자라는 점에서 한글은 위대함을 넘어 ‘세계 문화사의 기적’ 위의 책, p.28을 이루게 되었다.세종대왕은 ‘백성이 있으므로 나라가 존재하며, 나라가 있으므로 군주가 존재한다.’라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바탕으로 백성 사랑을 실천한 군주였다. 그 애민사업의 대표적 업적이 한글 창제였다. 세종대왕의 일관된 신념은 문자권력을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백성의 지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민치(民治)도 잘된다고 믿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지구 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언어 간에도 위상이 존재한다. 한글을 얕게 보고, 한자를 높게 보는 경향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논자는 이를 언어 사대주의로 본다. 해방 이후에는 영어가 이 땅에 들어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명색이 교수라면 칠판에 어려운 한자나 영어 단어 몇 개라도 써야 품위가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세월이 흘러 20C 후반이 되자, 특권층만이 사용하던 문자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번연(蕃衍)과 함께 이제 전 인류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로 일반화했다. 더구나 PC가 보편화되었을 즈음에는 컴퓨터의 붓이라 할 수 있는 키보드를 누구나 두 손으로 두들겼다. 미래 어느 날 전 인류가 내 손안에 스마트폰을 잡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문자 대기권이 형성되어 지구를 아름답게 감싸리라 믿는다. 혹시 그때도 악랄한 독재자의 우민정책으로 오존층에 구멍이 생길까 봐 걱정은 되지만. 이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속의 문자권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출세의 기회,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노력만 있으면 문자권력을 잡을 수 있다.글의 힘을 극대화 시켜주는 서예용구는 시대마다 그 종류를 달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붓의 전신은 돌을 쪼아 다듬거나 글자를 새기는 ‘정’이나 ‘칼’이었고, 종이의 전신은 ‘갑골(甲骨)’이나 ‘죽간’, 또는 ‘바위’였다.이후 오랫동안 붓과 종이가 대세였는데, 인쇄술의 발달로 활자가 붓을 대신하게 되었다. 물론 인쇄시대에도 붓과 더불어 만년필, 연필, 볼펜 등의 다양한 필기구가 공존하고 했고 지금도 힘들게나마 버티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나 모바일 시대 컴퓨터가 상용되면서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PC 시대나 모바일 시대, 컴퓨터 시대나 정보화 시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마윈은 지난 20년간 지속해 온 정보통신 기술 곧, IT(information technology) 시대가 저물고, 앞으로 30년간은 데이터 기술 곧, DT(Data Technology) 시대가 도래한다고 했다. 의 붓은 무엇인가? ‘키보드’나 ‘키패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키보드와 더불어 입력 장치의 하나로 커서(cursor)를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마우스(mouse)’ 역시 붓의 대용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그럼 컴퓨터 시대의 ‘종이’는 무엇일까? 데이터나 명령을 컴퓨터 내부에 기억하고 있는 장치라는 개념에서는 메모리(memory)라 해야 할 것이고, 화면으로 출력하는 장치인 ‘모니터(monitor)’는 한 장의 펼친 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먹’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진부호(二進符號)인 ‘0’과 ‘1’이 아닐까? 먹의 여러 조합으로 다양한 서체가 나타나듯이 컴퓨터는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벼루’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벼루가 없으면 먹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컴퓨터에서는 프로그램의 명령을 분석, 해독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해 주는 장치 CPU가 벼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문방사우가 서로 유기적 관계에 있듯이, 컴퓨터의 여러 장치도 복잡한 듯하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서, 예서 등과 같은 다양한 ‘서체’는 물론 ‘폰트(font)’로 규정된다. 문방사보(文房四寶)를 우리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 부르며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기도 했었다. 모바일 시대를 맞이하면서 오늘날의 문방사보는 스마트폰 안에 압축되어 더 얇고 가볍고 똑똑해져서 문방(文房)을 떠나 내 발이 닿는 곳이면 산속이든 밤길이든 어디서든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름도 바꾸어 수처사보(隨處四寶) 또는 자재사우(自在四友)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빅 데이터(Big Data)와 소통이 대세인 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줄임말로, 온라인상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세상으로 급격하게 바뀌자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인간의 지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슬로우 아트인 서예의 입지가 약화하는 건 당연하다. 초서로 아무리 빨리 쓰더라도 엄지족이 쏟아내는 정보의 양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정보의 내용도 달라졌다. 문자에서 이미지로, 이미지에서 동영상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IT의 발달은 문자의 시대에서 이미지 시대로, 이미지 시대에서 유튜브 시대로의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 독서 형태도 손 글씨에서 활자로, 활자에서 만화로, 이제는 영상 매체로 독서하는 시대가 되었다. 임진왜란을 책으로 덤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튜브나 컴퓨터에서 영상을 찾아 대신한다. 더러는 며칠간 읽어야 할 소설을 한 편의 영화로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 이제는 실용적 소통의 도구로서 서예에 접근한다면 무리다. 서예의 실용적 목적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예술적 측면으로만 접근해야 한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가 서예의 실용성을 어느 정도 대신한다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역부족이다. 이쯤 하여 서예의 실용성은 아예 컴퓨터 폰트에게 넘겨주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돈이 되니까 미련이 남지만. 그래, 서예는 실용이 아니라 예술이다. 서예의 예술적 접근이란 측면에서 보면 ‘서(書)’에 ‘예(藝)’ 자를 붙인 우리의 ‘서예(書藝)’라는 용어 선택은 중국의 ‘서법(書法)’이나 일본의 ‘서도(書道)’에 비하면 탁월한 판단이자, 미래지향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 교실 벽에 걸려 있던 붓글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서예 작품이나 그림이 걸려 있던 가정의 벽 자리는 TV 모니터가 차지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다른 한쪽의 벽은 데스크톱컴퓨터가 지키고 있다. 미혼 여성들이 혼수품의 하나로 여기고 배우던 붓글씨와 자수는 이제 눈을 닦고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상장이나 졸업장은 늘어났지만, 프린터로 쭉쭉 뽑으면 되고,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물론 조상의 상석(床石) 글씨마저 붓글씨 대신에 컴퓨터 폰트가 대신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신주(神主)인 지방(紙榜)도 사진이 대신하고, 군부대의 차드 글씨는 물론 모든 세미나, 워크숍, 학술 발표대회 등에도 빔프로젝터(beam projector, 투영기)를 이용한 파워포인트(PPT) 자료나 동영상이 대신하고 있다.말과 글에 대하여 앞서 논의했지만, 지금까지는 글이 절대 언어권력이었다. 그러나 녹음기는 물론 음성인식기나 동영상이 상용화된 지금은 입으로 쓰는 글씨이라 할 수 있는 ‘말’도 몸으로 쓰는 글씨라 할 수 있는 ‘행동’도 매우 조심스럽다. 그래도 글은 영원히 남는다. 입으로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구화(口禍)’를 입게 되지만, 붓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필화(筆禍)’를 입게 된다. 조심할 일이다.Ⅳ. 제4차 산업혁명과 서예 위상예술은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미적(美的) 작품을 지어내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서예도 예술의 한 장르로서 미적 생활의 밑거름이 되는 활동이다.그리고 세상의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고, 예술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다. 산업혁명과 예술 사이에는 거리가 멀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 중간에 사람을 놓고 보면 교집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이든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예술이든 모두 사람이 사람의 알찬 삶과 행복을 위해 개척해 온 것이다. 산업과 예술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는 것을 홍성욱 방식으로 얘기하면 “산업과 예술은 서로 다른 창이 아니라 겹창이다. 산업과 예술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EBS, 인문학 특강- 홍성욱 교수의 ‘과학, 인문과 예술을 만나다’ 1부, 과학, 인문학, 예술은 세상을 인식하는 겹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산업은 상상의 현실화이고 예술은 상상의 형상화에 의한 결과물이란 점에서도 산업과 예술은 동행 관계 내지는 이체동심(異體同心)으로 볼 수 있다.필통에 꽂힌 붓을 보면 꺼지지 않는 촛불로 보이고, 붓걸이에 걸린 붓을 보면 발사를 앞둔 미사일로 보인다. 따라서 붓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자 외계에 대한 무한한 도전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예술 활동의 씨앗은 상상에서 나온다. 문학이나 회화는 물론 서예에서도 상상력(想像力)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의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예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근대화, 현대화 속에 서예가 할 수 있는 일은 특별히 없었다.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 서예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더욱 좁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안에는 예술이라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인간은 유토피아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산업이 발달하는 와중에도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핵폭탄을 드러내놓고 만드는 게 인간이 아닌가.여기서는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하여 서예의 패러다임을 새로 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를 해 보면서 제4차 산업혁명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적 활동을 산업활동이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여기에는 물적 재화의 생산과 더불어 서비스의 생산까지도 포함한다. 산업을 1차, 2차, 3차 산업으로 분류하는 방법은 영국의 경제학자 클라크(Colin Grant Clark, 1905~1989)식 분류이다. 제1차 산업은 농업, 임업, 수산업 등과 같이 토지와 바다 등의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얻거나 생산하는 산업으로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제2차 산업은 제조업, 건설업, 경공업, 중공업 등과 같이 제1차 산업에서 얻은 생산물이나 천연자원을 가공하여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에너지 등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제3차 산업은 상업, 금융, 보험, 관광서비스업 등과 같이 1, 2차 산업에서 생산된 물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거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이다.이러한 산업에도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사에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해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을 산업혁명이라고 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직물공업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온 것은 1차 산업혁명이다. 증기기관이 물러서고 전력이 대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면서 대량생산 시스템의 발달을 가져온 것은 제2차 산업혁명이다. 그리고 정보통신기술과 전자공학을 활용한 정보화가 가져온 거대한 흐름은 제3차 산업혁명이다. 현재 일상화된 인터넷과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혁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도화된 자동화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혁명은 우리 사회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른바 정보와 지식이 돈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이다.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은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현재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산업혁명을 제4차 산업혁명으로 명명하면서 촉발되었다. 이 말은 아직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단어로 정보, 의료, 교육 등의 지식 집약적 산업을 두루 아우르는 용어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Industry) 4.0’, 미국의 ‘산업 인터넷’, 중국의 ‘제조(制造) 2025’ 등 이미 주요 선진국은 국가 전략을 수립해 이 혁명에 대비해 왔다. 3차 산업혁명 시대가 IT 발달이 가져온 자동화, 지식정보화사회였다면, 4차 산업혁명은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 기술)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가져올 초고도 지능정보사회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의 4대1 패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문명을 창조한 인간이 그 문명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의 일면이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 구도 속에 기계의 학습 능력을 알게 되었고, 몰려올 일자리 지형의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다만 한 가지 믿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머리로는 이겼지만, 그놈은 기쁨의 표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컸지만 2, 3차 산업혁명 때에도 인류는 이에 잘 적응해 왔듯이, 제4차 산업혁명도 지혜롭게 잘 돌파해 나가리라 믿는다. 결국, 이번 제4차 산업혁명으로의 진화 역시 또 한 차례의 인간 도전이자 기회의 장이 될 것으로 전망해 본다.그런데 문제는 소수에 의한 부의 축적으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화하리라는 전망이다. 무직자가 늘어나고 유직자가 줄어듦에 따라, 작업 시간을 나누어 맡거나 아니면 새로운 분배방식을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밀어닥칠 많은 숙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방법과 사회적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래 예측은 물론 맞을 수도 있고, 때로는 빗나갈 수도 있다. 특히 사회 변화 예측에 있어 앨빈 토플러는 자동차 속도에 견주어 기업의 변화를 100마일로 보았을 때, 가정은 60마일, 정부 조직은 25마일, 학교는 10마일, 법률은 1마일의 속도로 변화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테면 학교는 결코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되겠다. 과연 정부와 학교, 법률은 기업을 따라갈 수 없는가. 바야흐로 온 인류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긴박한 시점에 와 있다. 학교가 훌륭할 때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는 법인데, 우리는 기초과학과 관련한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으니 학교 속도가 10마일은커녕 5마일도 안 되나 보다. 김진숙은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들의 적성과 흥미가 고려된 ‘선택적 교육과정’이 확대되어야 하고,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IT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교육의 효율성’을 꾀해야 하며,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을 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현실 분석과 함께 바람직한 미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2016년 7월호, ‘제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역할’ 김진숙(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위원), p.104-113 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얘기로 돌아와 보면, 교육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서예 교육은 가장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본다. 서예는 시간 효율성, 지식 효율성도 뒤떨어진다. 아직도 3년 동안 점만 찍었다느니, 수십 년간 ‘한 일(一)자’만 썼다느니, 해서 법첩인 만 수백 번 썼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비율적 학습만을 고집해 왔다는 얘기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로봇,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CS) 등과 함께 융합기술(融合技術)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예 발전을 위한 융합서예(融合書藝)는 어떤 식이 되어야 할까.에서는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네 가지 질문이란 곧,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은 무엇인가?’,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제4차 산업혁명이 공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이다. 위의 내용 중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부분은 셋째와 넷째 부분이다. 셋째 질문에 대답으로,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력’이 서예계에는 어떻게 미칠지, 넷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서예가 공익을 위해 활용할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큰 사안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문제점을 공유하고 가벼운 대안만 제시해 보기로 하고,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작업은 두고두고 여러 서예가의 손을 빌려야 할 것으로 본다.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이 ‘경제’, ‘기업’, ‘국가와 세계’, ‘사회’, ‘개인’ 등에 미칠 영향을 예견하고 있다.첫째, 저성장 시대, 고령화 사회의 도래이다. 이는 서예인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되리라 본다. ‘노령화에 따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동시에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는 늘어나게 되어, 고령화는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p.59라고 진단하고 있다. 다가올 초고령화 사회에서의 최고의 대안은 서예라고 본다. 서예는 우선 비용이 그다지 들지 않고, 정신 운동과 육체적 활동이 적절히 예술 활동으로서 건강하게 오랫동안 능동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서예는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의 진정한 블루오션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익한 점을 이해시키고 또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기존의 소극적이고 겸손한 자세로는 안 된다. 시의적절한 기술적 홍보 활동과 사회적 국가적 정책도 요구된다. 둘째, 노동력의 위기 문제이다. 과학기술이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은 상존해 왔다. 자동화에 따른 고위험 직업군으로는 텔레마케터(원거리 판매자), 세무 대리인, 보험 조정인, 스포츠 심판 등을, 직업군으로는 사회복지사, 안무가, 내·외과 의사, HR(Human Relation) 매니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서예는 마지막의 HR 매니저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슈밥은 광범위한 기술적 실업이 우리에게 노동을 절약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동시간의 절약과 축소는 여가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붓을 잡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가 활동의 메뉴 또한 매우 다양하므로 서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각보다는 좁다. 게다가 서예 학습은 복고적인 답습 활동인 데다가 너무 어려워, 기초 수련에만도 여러 해가 소요된다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서예는 쉽고 재미있으며, 교양적이고 사교적이라는 것과 시능비(기간 대 능률비)와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도 뛰어나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깨우쳐 주어야 한다. 셋째, 제4차 산업과 성(性) 격차의 문제이다. ‘컴퓨터, 수학, 공학 분야는 아직도 남성 노동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전문화된 기술적 능력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어남에 따라 남녀 성비 불균형의 격차는 더욱 악화할 것이다. 하지만 기계가 채울 수 없는 부분 곧, 가령 공감과 연민과 같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역할 수요는 늘어날 것’ 앞의 책, p.79. 저자는 심리학자, 치료사, 코치, 이벤트 플래너, 간호사 및 의학, 보건 분야에서는 여성이 훨씬 우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으로 보고 있다. 이를테면 ‘도끼질은 남성, 뜨개질은 여성’과 같이, 작업 영역에 따라 남녀 성 격차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서예야말로 남녀 성에 따른 격차가 전혀 없는 영역이다. 서예 용구 자체가 붓과 먹은 양(陽)이고 종이와 벼루는 음(陰)인 것처럼 절묘한 음양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쓰는 과정에서도 장단(長短)·대소(大小), 지속(遲速)·완급(緩急), 소밀(疏密)·농담(濃淡) 등과 같은 음양지교(陰陽之交)의 과정이기 때문에 남녀는 물론 노소(老少)까지도 앎의 보람과 즐김의 기쁨을 주는 영역이다. 따라서 물론 직업인으로서 서예가가 되는 것도 남녀 격차가 없고 서예 치료사 분야도 열려 있다.넷째, 파괴적 혁신과 기업의 문제이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다. ‘S&P 500 지수’ S&P 500 지수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Standard and Poors(S&P)이 작성한 주가 지수이다. 편입 기업의 평균 수명이 60년에서 18년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창립 6년 만에 연 수익 10억 달러를 기록했고, 구글은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고작 5년이 걸렸다.’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p.86는 사례를 들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파괴적 혁신 속도나 발전의 가속화 현상을 받아들이기도 예측하기도 어렵다. 가수와 연예인들의 인기 등락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굴곡은 심해지고 기간은 짧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은근하고 지속적인 예술이었던 서예도 예외일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과거의 묵수(墨守)가 아니라 파괴적 혁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이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조형어법으로 도전하고,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진지하게 연구하고 한다. 다섯째, 디지털 시대란 모든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되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생활하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시대를 말한다. ‘손으로 직접 한다.’라는 말은 옛날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살아간다는 뜻도 되겠다. 서예인의 가장 약점일 수 있는 디지털, 이제는 이를 피할 수 없다. 서예계는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양질의 많은 데이터를 공급하여 소비자가 간접적이나마 서예를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서예도 일차적으로는 아날로그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작품제작, 전시, 홍보 등은 디지털화해야 한다. ‘고객이 점차 디지털 경제의 중심’ 앞의 책, p.90에 있다. 아날로그 서예이지만 디지털에 의한 정보 관리가 없으면 사장되고 만다. 여섯째, ‘빅 데이터와 협력을 통한 혁신’ 앞의 책, p.94~98 문제다. 물론 이 책에서는 기업의 경우를 말하고 있지만, 서예계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나 전문가의 이론적 지식이라도 빅 데이터 정보를 당할 수 없다. 아무리 두뇌가 뛰어난 사람도 내 손안의 작은 스마트폰의 두뇌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지식 전문가의 사회적 가치는 추락하고 있고, 이러한 지식은 인공지능(AI) 기반의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계산하면 로봇에게 판판이 깨진다. 그가 따라 할 수 없는 느낌, 표정, 감성 등이 묻어나는 예술가로 살아야 한다. 빅 데이터 시대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빅 데이터를 피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활용하고, 인간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협력하며 어울려 살아야 한다.일곱째, 제4차 산업혁명이 정부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더 잘 통치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 앞의 책, p.113라는 사실이다. 이런 정부를 전자정부(E-governance)라 하는데, 전자정부는 투명성 및 책임성이 향상되어, 전반적인 업무 능력과 국민과의 관계가 개선하리라는 전망이다. 우리의 경우 김영란 법 이후 전개될 전자정부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면, 각종 서예 단체도 전자서예 단체란 믿음으로 더욱 투명하고 진실하게 다가오리라 믿는다. 잡음이 많던 각종 공모전도 완전 공개된 전자공모전의 성격을 띠면서 투명성을 한껏 드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온라인 전시회는 이미 가능해졌지만 아르바이트생 없이 24시간 문을 열어놓을 수 있으며, 작가가 잠자는 동안에도 불특정 다수에게 작품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있다.여덟째, 클러스터(cluster) 앞의 책, p.127란 상호 연구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 대학, 연구소 따위를 모아 놓은 지역을 의미한다. 서예라는 이름으로 기업, 대학, 연구소의 부름을 받을 수 있을까? 초대받지 못했다면 왜 그런지, 원인을 분석해 보고 클러스터의 일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메세나(Mecenat)는 기업이 문화예술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 매일경제용어사전 참조을 일컫는다. 메세나는 본래 로마시대 문화 예술인을 후원하는 사람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 후 1966년 미국 록펠러의 건의로 메세나 운동은 각국으로 확산되어 25개국에서 32개의 메세나 협의회가 조직되었다. 한국에서는 1994년 발족, 현재 185개 기업이 운동에 참여 중이라는데, 서예는 메세나 도움을 받고 있는가. 못 받는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 실천이 앞서야 하고, 투명한 정보 공유가 뒤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아홉째, 디지털 기술도 문화와 예술도 국경이 없다. 디지털 혁명으로 정보·지식의 공유에도 국경이 없다. 서예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방법은 없을까. 국경이 없다면 당연히 담도 없어야 한다. 우선 하나의 건물로 영화관, 체육관, 소셜 센터,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도시 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시장도 세미나장, 커피숍, 음악 감상실 등을 효율적으로 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하면 비용은 절감하고, 녹지 공간은 늘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의 상승까지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소유에서 공유로’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카셰어링(car-sharing, 차량공유)처럼 서실도 책도 공유해야 할 시점이다. 고도의 사고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서예는 절대 블루오션이다. 우리는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대신에 여러 기기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정보의 풍요를 얻는 대신에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지나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서예가에게 귀감이 되는 말을 영국에서 태어난 인도 여행작가 피코 아이어(Pico Iyer, 1957~ )가 자신의 책에 남겼다. “가속화의 시대에서는 느리게 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집중을 방해하는 일이 많아진 시대에서 집중하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것은 없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큼 시급한 일도 없다.” 앞의 책, p.164라고. 슬로우 아트 서예를 하는 사람에게는 고무적인 명언이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이상의 다양한 변화 이외에도 드론, 자율무기, 우주의 군사화, 웨어러블 기기, 재생가능에너지, 나노기술, 생화학 무기, 소셜 미디어의 활용 등 많은 변화가 몰려올 것으로 예견된다. 하지만 이들 영역과 서예와의 관련성은 크게 없어 보인다. 만약 있다면 이후로 미루기로 한다.Ⅴ. 희망 서예를 위한 제언역사시대 이래 문자권력의 정상에 서서 보람과 긍지로 살아왔던 서예가의 길이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와서 문자가 보편화, 일반화되면서 서예는 더는 자랑거리도 보람도 되지 못했다. 더구나 금세기에 나타난 제4차 산업혁명을 보면서 서예 자체에 대한 존폐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서예학원에 학생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학에 서예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서예로는 밥 먹고 살기가 힘들다며 푸념을 털어놓는다. 분명 서예는 5천년 동안 검증된 예술인데. 그래도 나를 지켜주고 키워준 붓인데,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리하여 그 해법을 찾고자 서예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보기 위해 발칙하고 다소 생뚱맞은 논제를 붙이고 며칠 밤을 새워보았다. 결국,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지만.지금까지 글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를 ‘문자권력’이라 이름 붙이고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서예가로서 대응 전략도 고심해 보았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여기에 대안으로 제시해 본다.첫째, 서예는 장수의 비결이다. 서예가 건강과 힐링은 물론 장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예술활동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역대 대표적인 서예가 각각 24명을 선정하고, 그들의 평균 연령을 조사해 본 바로는 한국은 78세, 중국은 80세에 다다랐다. 계간 ‘서예와 장수’, 권상호, 2013 겨울호. 통일신라의 김생(金生) 81?, 고려의 탄연(坦然) 90, 이암(李嵒) 68, 조선 전기의 양사언(楊士彦) 68, 한호(韓濩) 63, 조선 후기의 허목(許穆) 88, 송준길(宋浚吉) 67, 송시열(宋時烈) 83, 이광사(李匡師) 73, 강세황(姜世晃) 79, 신위(申緯) 77, 이삼만(李三晩) 76, 김정희(金正喜) 71, 조광진(曺匡振) 69, 권돈인(權敦仁) 77, 이하응(李昰應) 79, 서병오(徐丙五) 74, 황욱(黃旭) 96, 손재형(孫在馨) 79, 김기승(金基昇) 91, 유희강(柳熙綱) 66, 김충현(金忠顯) 86, 정주상(鄭周相) 87, 김응현(金膺顯) 80세 등으로의 한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서예가 평균 수명을 계산해 보니, 77.8세로 나타난다. 중국 서예가들에 대한 수명은 후한(後漢)의 채옹(蔡邕) 60, 중국 진(晉)의 왕희지(王羲之) 59, 왕헌지(王獻之) 45, 구양순(歐陽詢) 85, 우세남(虞世南) 82, 안진경(顔眞卿) 77, 유공권(柳公權) 88세, 송4대가로 채양(蔡襄) 56, 미불(米芾) 57, 소식(蘇軾) 65, 황정견(黃庭堅) 61, 원 4대가로 황공망(黃公望) 86, 오진(吳鎭) 75, 예찬(倪璨) , 왕몽(王蒙) 78, 명의 심주(沈周) 83, 문징명(文徵明) 90, 청의 주답(朱䐛) 80, 석도(石濤) 80, 정섭(鄭燮) 73, 근대 중국의 오창석(吳昌碩) 84, 제백석(齊白石) 95, 당대의 서동(舒同)과 계공(啓功) 94세로, 이상 24인의 평균수명은 79.7세이다.중국 CCTV 채널4 토크쇼에 왕웨촨(王岳川) 왕웨촨(王岳川), 베이징대학(北京大学) 중문계(中文系) 교수이 출연하여 고승(高僧)의 평균 수명은 66세, 역대 황제의 평균 수명은 39.2세이지만 고대 저명한 서예가의 평균 수명은 78.9세(우리식으로는 79.9세)임을 밝힌 바 있다.둘째,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하는 스마트 서예가가 되자. 서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은 스승이다. 스마트폰은 자전(字典)이
2016.10.06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5- 문자권력 나눔을 위한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5문자권력 나눔을 위한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기고,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 앞말은 노자(老子)의 말이고, 뒷말은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배운 말이다.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명예와 이익을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편이자 절대 권력을 차지하는 지름길이었다. 때로는 권력을 잡은 자가 새로운 문자를 만들면서까지 문자를 무기로 글 모르는 백성 위에 군림하거나 이민족까지 지배하기도 하였다. 문자는 왕조 창업을 합리화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으니, 글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에너지를 ‘문자권력(文字權力)’이라 이름 붙여본다.‘글’ 또는 ‘문자(文字)’라는 말은 때로 ‘학문’ 또는 ‘학식’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는데, ‘글깨나 배웠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겠나?’라고 할 때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공자 앞에 문자 쓰네’라고 할 때의 ‘문자’는 어려운 문구를 많이 쓰며 유식한 채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역사시대 이래 지금까지 문자를 익히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권력의 구심점에 있었다. 문자를 터득하고 붓을 잡는다는 것은 곧 권력을 잡는 일이었다. 문자 속에는 무지갯빛 부귀영화가 약속되어 있으므로, 서예 용구를 일러 문방사보(文房四寶)라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송나라 진종황제는 그가 쓴 ‘권학문(勸學文)’에서 문자권력의 내막을 온전히 실토하고 있다.집안을 부유케 하려고 좋은 밭을 사지 말라글 속에 저절로 천종의 봉록이 들어있느니라. 편안히 살려고 높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글 속에 절로 황금으로 지어진 집이 들어있단다.문을 나섬에 따르는 자가 없다고 아쉬워 말라글 속에는 수레와 말들이 무더기로 넘쳐난다.장가감에 좋은 중매가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라글 속에 얼굴이 옥처럼 어여쁜 여자가 있느니라.사나이로서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육경(六經)을 부지런히 창 앞에서 읽을지어다.글을 익혀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만 하면, 돈과 명예는 물론 예쁜 아내까지도 한꺼번에 굴러들어온다는 글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글공부지만 예전에는 소수의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열려있던 글 길이었다. 문자는 발명 이래 양반이나 귀족과 같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으로서, 요즈음처럼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소수의 집권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 문자를 악용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문자를 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그들의 법(法)을 만들고 또 법이라는 명목 아래, 글 모르는 사람들을 마구 부려먹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머리라면 글을 모르는 사람은 손발이었다. 너스레를 떤다면 ‘문맹자(文盲者)는 문명자(文明者)의 수족(手足)’ 역할을 해야만 빌붙어 살 수 있었다는 말씀이다. 문자를 모르면 상놈, 제 이름도 못 쓰면 쌍놈이었다. 이런 사람은 세종대왕으로부터도 ‘어리석은 백성(愚民)’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러고 보니 욕 중에 상욕은 ‘무식한 놈’이렷다.돌이켜 보면 갑골문은 제사와 수렵을 맡은 부족장이나 제왕의 문자권력이었다. 백성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고, 또 알아서도 안 되는 금기의 글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름 그대로의 순수한 우민정책(愚民政策)이라 할 수 있겠다. 퇴폐 문화를 눈감아주고 도박을 통한 사행심을 조장하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오늘날의 우민정책과는 다르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승상인 이사(李斯)를 시켜 새로운 글자 소전(小篆)을 만들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며 권력을 휘둘렀고,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정복하고 나서 파스파라는 티베트 승려를 시켜 이른바 ‘파스파문자’라는 몽골문자를 만들어 지배하였으며,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몽골문자를 개량한 ‘만주문자’를 만들어 문자권력을 펼쳤다.그러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는 문자권력 옹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문자권력을 나눠주기 위한 창의적 발상이었다. 따라서 문자권력의 누수를 염려한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당연한 처사로 여겨진다. 물론 중국의 눈치 보기도 다분히 개재(介在)했을 것이다. 이때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세종대왕의 가장 뛰어난 기지가 발현된다. 세종은 이러한 현실을 미리 간파하고 창제 작업을 ‘비밀리 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차대한 사건을 필자는 ‘문자권력 나눔을 위한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라 이름 붙여 본다. 만약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 위해 공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쳤더라면, 시작하기도 전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게 분명했을 것이다. 세종이 이 프로젝트를 자랑스럽게 대놓고 추진했더라면 많은 대신이 일어나 중국의 힘까지 빌려 가며 세종을 압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자권력의 기득권자 처지에서 보면, 그때까지의 과거(科擧) 시험은 줄곧 한문(漢文)으로 치러 왔고, 그 이후로도 한글 아닌 한문으로 과거가 치러질 것이 분명하므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세종과 최만리 사이에 양해각서(諒解覺書)가 암암리 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관리를 뽑을 때 실시했던 과거 시험을 중국에서는 수나라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9년(958)에 처음 시행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만약 원 세조가 ‘파스파문자’로, 청 태조가 ‘만주문자’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면 각 문자의 위상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중국의 지성이자 의 저자 루쉰(魯迅, 1881~1936)이 ‘어려운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 (漢字不亡 中國必亡)’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루쉰의 고민을 받아들여 어려운 한자 대신에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한글을 사용하자고 주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대왕은 백성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창제한다고 했다. 세종대왕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그들만의 문자권력을 어떻게 해서든 백성에서 나누어 주어서, 어리석은 백성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있으므로 나라가 존재하며, 나라가 있으므로 군주가 존재한다.’라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바탕으로 백성 사랑을 실천한 군주였다. 그 애민사업의 대표적 업적이 천고에 길이 빛날 훈민정음 창제였다. 세종대왕의 일관된 신념은 문자권력을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일이었고, 백성의 지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민치(民治)도 잘된다고 믿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지구 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2016.09.29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4- 청렴결백 대한민국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4청렴결백 대한민국9월 28일을 청렴일(淸廉日)이라 이름 붙이고 기념하면 어떨까. 역사적으로 이날이 대한민국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을 시행한 날,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접대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청렴의 출발일’로 기록되길 바람에서다. 9월 28일이 낯설지 않음은 1950년의 9월 28일은 서울 수복일, 이로부터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1920년 9월 28일은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날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도 서울 수복처럼 감격스럽고, 열사 순국처럼 숭고한 날로 자리매김하길 바랄 뿐이다.2012년 7월 30일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이 제안했던 법안이기에 세칭 김영란법으로 통하는 이 법이 시행됨으로써 온 국민은 진정으로 썩은 냄새 들썩이는 부패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부패하면 주변도 따라서 부패하게 되고, 부패한 악취는 아무리 감추어도 방귀처럼 들추어지기 마련이다. 이참에 온 국민은 발효는 환영해도 부패는 단호히 잘라내야 한다.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면목 없게도 조사대상 168개국에서 95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나 국제경쟁력에 견주어보면 한국은 부정부패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심한 나라로 지목받아 왔다.원래 선물(膳物)이란 남에게 인정의 표시로 주는 물건을 뜻하며, 착한 뜻의 선물(善物)이었다. 선(膳) 자는 ‘반찬’을 뜻으로, 이웃이 큰일로 밥을 많이 지으면 반찬이라도 준비해 간다는 다사로운 인정이 담겨 있었다. 우리말에 ‘손씻이’란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 이 말은 남의 수고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적은 물건이나마 준다는 뜻으로, 손씻이해야만 내 손이 부끄럽지 않다는 소박한 뜻에서 생긴 말이다. 한데,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탐욕은 늘어만 가고, 뭔가 기대를 하고 부탁하는 데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인간의 학명 가운데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인간을 뜻한다. 인간은 모든 일에 손을 써야 한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세상이라면 오죽 좋으련만, 손쓰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그래선지 손을 뜻하는 한자가 매우 많다. ‘손 수(手), 손톱 조(爪), 또 우(又), 마디 촌(寸)’ 등이 모두 손을 가리키는 글자들이다.‘금품 수수’라고 할 때의 ‘수수(授受)’라는 말은 물품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이다. 물물거래를 하던 시기에 생필품을 주고받으면서 생긴 말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줄 수(授)’ 자에는 손이 세 개, ‘받을 수(受)’ 자에는 손이 두 개 붙어있다. 세 개 주고 두 개 받는 일은 손해라는 계산이 나오니, 우선 주지를 말아야 한다. 또 금품을 비롯한 모든 수수는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手)와 발음이 같다.이왕 내친김에 /수/라는 발음의 글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이 아직 도구를 사용할 줄 몰랐을 때는 수(手)로 수(水)를 퍼마셨다. 장정들은 수(手)로 수(獸, 짐승)를 잡아오고, 아낙들은 수(手)로 수(穟, 이삭)를 베어왔다. 남편은 수(手)로 집안을 수호(守護)하고, 아내는 수(手)로 수(繡)를 예쁘게 놓으며 알콩달콩 아이 낳고 살아왔다. 오곡을 수(收, 거둠)하거나, 이웃에게 수(授, 나눠줌)하는 것도 수(手)의 몫이었다. 오늘날은 배나 비행기로 수출입(輸出入)을 하지만 옛날에는 수레로 했기 때문에 ‘나를 수(輸)’ 자에 수레가 붙어있다.정부를 수립(樹立)하거나, 국경을 수비(守備)하는 데에도 수(手)를 써야 한다. 범인을 수색(搜索)하는 일은 경찰의 몫이지만 평범한 범인(凡人)인지 죄를 지은 범인(犯人)인지를 밝혀내기 위한 수사(搜査) 또한 수(手)를 써야 한다. 죄를 지어 손을 쓸 수 없는 형편이 되면 죄수(罪囚)로 낙인찍힌다. 수모(受侮)를 당하면 부끄러움에 수(手)로 얼굴을 가리지만, 수치심(羞恥心)을 모르는 인간은 얼굴을 뻔뻔하게 들고 다닌다. 사단(四端)의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다. 옳지 못함은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은 미워하는 이 마음은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의(義)에서 우러나온다고 보았다. 여담 하나. 사람이 셋이 모이면 무리 중(衆, 众)이고, 손이 셋이 모이면 소매치기 수(掱)이다.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이상의 재주를 부리니 언제나 조심할 일이다.우리는 일상에서 수(手)로 수(數)를 헤아리면서 살아간다. 한 손가락이 다섯 개인 데에서 오지 선다형의 문제가, 두 손가락이 열 개인 데에서 10진법이 생겼다. 그리고 한 손으로 수를 헤아릴 때, 손가락을 닫으면 다섯이고 열면 열을 뜻한다.‘ㅎ’으로 시작하는 ‘하나’는 ‘하늘’이 ‘나’에게 준 수(數)이므로 절대로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름하여 애기애타(愛己愛他)라 했다. 남을 사랑한답시고 희생이란 이름으로 하나뿐인 나를 버리면,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없게 된다. 내가 살아야 상대방도 살고, 주변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살률 1위라는 국가적 모욕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ㄷ’으로 시작하는 ‘둘’은 ‘땅’의 수이다. 땅 위에 둥지를 틀고 두루두루 어울려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ㅅ’으로 시작하는 ‘셋’은 ‘세울’ 수 있는 완전한 수이다. 둘이 만나서 아이를 낳아야 집안이 설 수 있고,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의 좌표를 세워야, 인생이 잘 굴러갈 수 있다. 모든 것은 3요소를 갖춰야 온전하다. 우주를 천지인(天地人)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시간도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며 살고 있다. 빛의 3요소, 색의 3요소, 국가의 3요소 등 우리는 수없는 3요소를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동사 ‘서다’, ‘세우다’는 모두 ‘셋’에서 비롯했다.그럼 ‘넷’은 무슨 뜻인가. 바로 ‘너’에게 줄 수 있는 나눔과 베풂의 넉넉한 수이다. ‘다섯’이라면 모두 ‘다 설’ 수 있는 오달진 수가 된다. 이어지는 ‘여섯’에서 ‘열’까지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열리는 수 곧, 오픈 수이다. ‘여섯’에서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수가 ‘열’이 되면 완전히 열려서 나를 버리는 수가 된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장년까지는 다섯을 향하여 주먹을 쥐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죽음에 가까울수록 손가락을 하나씩 열게 되고, 임종의 순간엔 열 손가락을 온전히 열어 ‘열’을 헤아리는 순간 열반에 든다.‘일곱’은 손이 곱지만 ‘여덟’은 손이 덜 곱다. 죽기 직전의 ‘아홉’ 수는 ‘한 홉’을 가리키는 모양인데, 이는 연명할 수 있는 최소의 양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 인생의 전반부는 하나에서 다섯까지로 이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지만, 인생의 후반부는 여섯에서 열까지로 이는 여럿이 서로 나눔을 뜻한다. 요즈음 국회의 여·야 대치 정국을 보고 국민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의회에 회의가 드는 것은 웬일일까? 어머니 마음처럼 ‘모심(母心)으로 모십니다’라고 하며 지낼 수는 없는가? 열까지 헤아리며 오픈 마인드 곧, ‘열 심(心)’으로 일할 수 없을까? 의원들 간에도 수수방관(袖手傍觀)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수(手)를 써서 자신과 나라와 인류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른바 ‘W-W-W’의 길을 삼삼오오 모여서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세상의 기운이 대한민국, 대칸(干)민국으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한국을 핵(核)으로 지구촌의 눈이 한반도로 쏠리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신 로마로 보이고, 한국을 둘러싼 삼면의 바다가 동양의 지중해로 보이지 않는가. 할 일과 열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으니 어찌하려나.장수 비결 하나 제시하며 이 글도 종을 칠까 보다. 바라건대, 누구나 수(手)를 아끼지 말고 늘 비장의 새로운 수를 쓰며 살아야 한다. 씻고 닦고, 잡고 놓으며 살아야 수(壽)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2016.09.29
시흥시 출품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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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봉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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