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신년휘호 및 연하장
웅계일창천하백(雄鷄一唱天下白) 수탉이 한번 노래 부르니 천하가 날이 샌다.정유(丁酉) 원조(元朝) 도정(塗丁) 권상호(權相浩) 세배(歲拜) 군계보희(群鷄報喜) 여러 마리의 닭이 기쁜 소식을 알린다.정유(丁酉) 원단(元旦) 권상호(權相浩) 배(拜) 계명동방(鷄鳴東邦) 닭이 동방, 곧 우리나라에서 운다.정유(丁酉) 원단(元旦) 도정(塗丁) 계명동국(鷄鳴東國) 닭이 우리나라에서 운다.정유(丁酉) 원단(元旦) 도정(塗丁) 계명천지(鷄鳴天地) 닭이 천지에서 울다.정유(丁酉) 원단(元旦) 도정(塗丁)
2016.12.24
성탄절(聖誕節)에 생각하는 외교(外交)와 내치(內治)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6성탄절(聖誕節)에 생각하는 외교(外交)와 내치(內治) 메리 크리스마스, 코리아! 올해엔 특별히 조국에 안부를 여쭙고 싶다. 조국이 자연적으로는 지진과 태풍 등의 상처를 크게 입었고, 인간적으로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라는 해괴망측한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이 부른 탄핵 정국에 맞이하는 성탄은 ‘성스러운 탄핵’의 준말처럼 다가온다. 온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기분으로 연말연시를 맞이하고 있지만, 마침 크리스마스이브가 토요일이고 성탄절과 신정이 나란히 일요일이니, 아직 꺼지지 않은 애국의 촛불로 희망의 새해를 준비하자.대한민국의 아픔을 하늘도 아는지, 대설(大雪)도 지난 동지(冬至)에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찬비가 밤새도록 한반도를 적시고 있다.“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장 21절 말씀이다. 죄와 절망과 실의로 가득한 이 땅에 탄핵 심판과 개헌이 진중하게 잘 이루어져 복된 나라에 선비다운 대통령이 임하기를 기도해 본다. “거짓말이라곤 모르는 정직한 소통의 대통령,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정감이 가는 대통령, 부끄러운 일에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미 넘치는 대통령, 정의롭고 공평한 호혜의 대통령, 연습으로 굳어진 미소가 아니라 가끔은 함박웃음을 선사할 줄 아는 유머 대통령, 무엇보다 민심(民心)을 천심(天心)으로 아는 대통령이 이 땅에 임하소서... 그러나 소수 집권에 의한 권위주의적 대통령이여, 고집불통의 꽉 막힌 대통령이여, 이젠 안녕!”성탄(聖誕)이라고 할 때의 ‘태어날 탄(誕)’ 자는 탄생(誕生), 탄신(誕辰)에서 보듯이 성인이나 귀인이 태어남을 높여서 이르는 말이다. 의미가 확대되어 ‘문명의 탄생’ ‘새로운 정권의 탄생’에서처럼 사람이 아닌 제도나 조직 등의 출현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탄(誕) 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글자 안에는 ‘끌 연(延)’ 자가 들어있다. 연(延)은 갑골문에서 ‘천천히 걸어가다’ 또는 ‘멀리 가다’의 뜻이었다. 소전에 와서는 연장(延長)처럼 ‘시간이나 길이를 길게 늘이다’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탄(誕)’의 뜻은 ‘말을 길게 늘어놓다’에서 ‘말씀이 오래 전해지는 성인의 탄생’의 의미로 확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은 탄(誕) 자의 탄생 배경과 상통한다. 마치 창세기를 읽는 듯한 분위기인데, 삼위 가운데 한 분인 예수가 ‘말씀’으로 하나님을 선포하러 온 것이다.탄핵(彈劾)이라고 할 때의 ‘탄알 탄(彈)’ 자의 갑골문은 활시위에 돌멩이 하나가 놓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새총의 원조가 탄(彈) 자라는 생각이 든다. 소전에 오면 돌멩이 하나가 ‘홑 단(單)’ 자처럼 복잡하게 바뀌어 지금의 탄(彈) 자로 완성된다. ‘싸움 전(戰)’를 보면 단(單)은 사냥도구에서 전쟁 도구로 발전한다. 현악기의 줄을 퉁기는 것을 탄현(彈絃), 갓의 먼지를 떠는 것을 탄관(彈冠)이라 하는 걸 보면, 탄(彈)이 ‘퉁기다’의 의미까지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내년은 정유년(丁酉年) 닭띠 해로,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 경제와 같은 국내 문제는 물론 북핵과 사드 배치 등으로 야기된 외교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대만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마찰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근심으로 남아있다. 사드를 둘러싼 작금의 형국을 보면 마치 고려 말의 친원파와 친명파 사이의 갈등처럼 비화할 조짐이 보인다. 그러면 소위 망징패조(亡徵敗兆)가 드는 것이다.구한말로 지칭되는, 조선 말기로부터 대한제국 때까지 청(淸)과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어느 나라에 줄을 댈 것이냐’라는 고민도 지금의 국론 분열 상황과 비슷하다. 해방 직후 유행했던 참요(讖謠)가 있다. 미국이라 믿지 말고 소련이라 속지 마소 일본 사람 일어난다 조선 사람 조심하소.이처럼 미래에 일어날 징후를 암시하는 민간 노래를 참요라 한다. 이를테면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을 암시한 '계림요(鷄林謠)', 조선의 건국을 암시한 '목자요(木子謠)' 등이 참요에 해당한다. 이 노래는 언어유희 속에서도 시대 상황과 국제 정세를 절묘하게 읽어 내고 있다. 주변 강대국을 항상 조심하라는 뜻이렷다. 아니나 다를까 광복 직후 우리 민족은 신탁 통치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결국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1945년 12월 미·영·소 삼국의 외상이 모스크바 삼상회의(Moskva 三相會議)에서 내린 결정으로 일어난 찬탁·반탁 논쟁은 한국인들에게 극심한 좌우 대립을 불러일으켰고, 끝내는 미국과 소련을 양축으로 한 냉전의 심화와 함께 민족분단의 불행한 결말로 남았다. 남북으로 갈라진 지금은 남북 갈등만큼이나 남남 갈등의 뿌리도 깊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좋다.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달라서 갑론을박으로 토론하며 며칠 밤을 새워도 좋다. 4당이 아니라 8당 체제라도 좋다. 당론이 사분오열해도 괜찮다. 다만 끝장 토론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면 더는 시비하지 말고 결정된 국론을 모두가 따라야 한다. 이스라엘 도서관처럼 시끌벅적한, 토론 국회는 오히려 자랑스럽다. 문제는 한번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외교적 사안에 대해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하여야 한다. 이는 국가신뢰도 문제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혈맹 관계, 중국과의 경제적 정서적 우의 관계, 일본과의 피할 수 없는 애증 관계 등을 깨끗하게 인정해야 한다. 현실 수용이 외교의 출발점이다. 수용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하고 난상토론을 거친 뒤에 조심스레 외교를 펼쳐도 늦지 않다. 외교의 뿌리가 깊은 생각이라면 외교의 열매는 국론의 통일이다. ‘외교(外交)’라고 할 때의 ‘바깥 외(外)’ 자에는, 뜨는 달의 모습인 ‘저녁 석(夕)’ 자가 들어있다. 이는 ‘외교란 밤길을 걷듯이 조심하라’라는 뜻이렷다. 또 ‘점 복(卜)’ 자가 들어있음은 ‘외교상 합의의 어려움’을 시사하고 있다. 얼마나 어려우면 점괘를 봐야 할까. 외교의 ‘사귈 교(交)’ 자는 ‘다리를 꼬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남에게 잘 드러나는 팔 대신에 책상 밑에 숨겨진 다리로 은밀한 외교를 펼치라는 뜻으로 본다. 1992년 8월,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중국과의 깜짝 수교는 사전에 충분한 물밑 접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외교와는 반대로 내치(內治)는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세월호 침몰과 같은 내치는 조속히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 배치 문제, 독도 영유권 분쟁이나 위안부 합의 등과 같이 외교적 이해가 부딪히는 사안은 좀 더 여유롭고 신중하게 대응했어야 옳았다.외교는 빨리 가기보다는 정확한 방향이 중요하다. 외교에서 신중 외에 가장 확실한 대응 전략은 우리 스스로 힘을 기르는 일이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자칫 외교 혼란이나 외교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대통령이 손을 뗀 지금이 외교관으로서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줄 수 있는 ‘소신 외교’ 적기가 아닐까.
2016.12.22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5- 대한민국의 겨울나기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5대한민국의 겨울나기 병신년 달력도 마지막 잎새처럼 한 장만 달랑 매달려 있다. 전 국민이 그토록 믿고 의지해 왔던 대통령에 대한 불신(不信)의 그늘이 길게 드리우고 있어, 더욱 답답하고 서글픈 겨울을 보내고 있다. 모두가 북방의 겨울나무처럼 실낱같은 한 줄기 햇살에도 발돋움하며,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 내 곁에 그림자가 붙어있음은 살아있다는 증거인 줄 알기에 오늘도 칼바람에 몸을 맡기고 우두커니 서 있다. 내리는 눈마저 냉정함을 잃고 땅에서 쉴 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잔바람에 정처 없이 휩쓸려 다닌다. 그나마 한눈판 사이 광화문광장의 눈은 눈물로 증발하고 말았다. 눈:물인가, 눈물인가?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초래한 탄핵 정국 속에, 어딜 가나 행인들의 표정은 대숲을 스치는 겨울바람처럼 차갑고 우울하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찾은 송년회(送年會)는 저 혼자 미리 와서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다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처럼 시종일관 굳은 표정에 웃어야 할 대목에서도 웃음 근육은 이미 굳어 있었다. 정녕코 병신년은 ‘망년(亡年)’인가?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은 나이를 잊고,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고자 하는 좋은 뜻에서 ‘잊을 망(忘)’ 자를 쓴다. 우리는 이에 ‘잊을 망(忘)’ 자 대신에, 애써 ‘바랄 망(望)’ 자 ‘망년회(望年會)’라 고쳐 부르며 비전과 희망을 나누는 자리로 만들곤 한다. 지난밤엔 지우(知友)들과 오늘 저녁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한 송년회 자리가 있었다. 송년회에서의 유일한 희망은 그나마 건배사였다.올해는 북한의 잦은 미사일 발사로 ‘미사일/발사’ 건배사가 인기를 끌었다. 촛불집회에 맞불집회가 있듯이, 북의 미사일 발사에 남의 미사일 대응이었다. ‘미- 미래를 위해, 사- 사랑을 위해, 일- 일을 위해, 미사일!’이라고 선창하면, 다 같이 ‘발사!’라고 후창을 했다.풀이를 달리하는 건배사도 있었다. 가장 전통적 건배사는 ‘위하여’인데, 오늘은 이를 새롭게 풀이하여 ‘위- 위기를 만나도, 하- 하하 웃으며, 여- 여유롭게 살자!’ 또는 ‘위- 위기는 기회다. 하- 하면 된다. 여-여러분과 함께라면!’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나갔다. ‘비행기’ 건배사도 인상적이었다. ‘비- 비전을 갖고, 행- 행동하면, 기- 기적이 일어난다’라는 의미로, ‘썩소’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밝소’ 분위기로 바꿔주었다.이 글을 쓰는 동안 강원도에는 대설특보가 중북부에는 한파 주의보가 내려졌다. 양양의 눈 소식을 사진으로 보내온 친구도 있었다. 필자가 한시(漢詩)를 좋아하다가 보니 한시 작가로부터 가끔 시의적절한 한시를 카톡으로 받기도 한다. 현암 선생이 보낸 한시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다. 배경음악으로는 이수인 작곡, 김재호 작시의 ‘고향의 노래’를 선택했다. ‘고향길 눈 속에선 꽃 등불이 타겠네~ 고향 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조선 후기 문신인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 선생의 시 ‘그냥 써 보네’(漫成) 2수 중 첫수이다.어떤 일 닥쳐선 지난 일 부끄럽고올해엔 지난해가 후회스럽다오.뜬금없이 갈림길 위에 서 있자니세월은 얼마나 더 옮겨 갈는지.(卽事羞前事 今年悔往年 無端岐路上 歲月幾推遷)지금 이 시를 읽으면 몇몇 사람이 연상된다. 제발 부끄러움과 후회스러움을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생각하고 또 고쳐 생각해 보지만 지난 일은 부끄럽고 지난해는 후회투성이이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하고 괜스레 서성이다가, 하릴없이 세월만 또 흘려보낸 건 아닌지...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 선생의 시 ‘눈 내리는 밤 홀로 앉아’(雪夜獨坐)이다. 부서진 집 찬바람 스며들고 빈 뜨락엔 흰 눈만 쌓인다오. 근심하는 마음은 등잔불과 함께 이 밤사 모두 재가 된다오. (破屋凄風入 空庭白雪堆 愁心與燈火 此夜共成灰)무너져 가는 집에 스며드는 찬바람과 빈 뜰에 쌓이는 하얀 눈.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 오버랩되어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한다. 우리의 수심은 저 촛불과 함께 이 밤에 모두 재가 되는 건 아닌지...계절을 가리키는 말 속에는 계절의 순환 원리가 담겨있어 신비롭다. 볼 게 많은 봄, 열매 맺는 여름, 가꾼 곡식 거두어 가둬 두는 가을, 겨우 살아가는 힘겨운 겨울. 지금은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대설(大雪)을 지나 동지(冬至)를 향하고 있다. 순간 심기일전하여 묘법자연(妙法自然)이란 말을 붓으로 써 본다. 불교에서 오묘하고 신기한 법문을 일러 묘법(妙法)이라 한다. 묘법자연은 평소 생각지 못한 기묘한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얻었을 때 이르는 말이다. 원래 계절을 뜻하는 한자로는 ‘봄 춘(春)’과 ‘가을 추(秋)’가 전부였다. ‘여름 하(夏)’는 ‘키 크고 건장한 사람이 두 손을 양 허리에 얹고 있는 모습’에서, ‘겨울 동(冬)’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지붕의 양 끝을 꽁꽁 묶어 놓은 모습’에서 비롯했다. 동(冬) 자의 점 두 개는 ‘얼음’의 상형으로 겨울을 분명히 밝히기 위하여 소전(小篆)에 와서 덧붙인 것이다. 겨울을 뜻하는 한자는 ‘겨울 동(冬)’이다. ‘동’이란 발음이 중요하다. 겨울에 얼어 죽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움직이다’의 뜻에 해당하는 한자도 ‘움직일 동(動)’이다. 추우면 발을 ‘동동’ 구른다. ‘얼다’는 뜻의 한자는 동파(凍破)·냉동(冷凍)이라 할 때의 ‘얼 동(凍)’ 자로 역시 발음이 같다. 동절(冬節)이면 ‘동무’ 만나 ‘동동주’를 나누고 싶다. 취하면 시원한 ‘동치미’로 속을 달래면 그것뿐. 날씨가 추우면 원시인은 ‘동굴 동(洞)’ 자 ‘동굴(洞窟)’ 속으로 들어가고, 현대인은 ‘마을 동(洞)’ 자 본동(本洞)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보니 마을의 원조는 동굴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얼음에 해당하는 한자는 ‘얼음 빙(氷)’이다. 얼음 위에서는 누구나 썰매나 스케이트로 얼음을 지치며 ‘빙빙’ 돈다. 눈에 해당하는 한자는 ‘눈 설(雪)’이다. 눈 위에서는 사람이든 차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설설’ 기게 마련이다. 눈 내리는 겨울밤, 가마솥에서 소죽이 ‘설설’ 끓고 나면, 온돌방 아랫목도 ‘설설’ 끓기 시작한다. 온 가족은 ‘한마음’ 되어 부챗살처럼 이불 속으로 발을 쑥 들이민다. 온종일 고단하게 일하신 부모님은 금세 잠이 들지만, 조무래기들은 서로 밀치며 한참 동안 이불 속에서 소곤거리며 장난치다가 오줌 누고 잠을 자도, 또 오줌을 싸곤 했다.첫눈 내리는 날, 눈부신 미소에 반해 첫눈에 들었던 그가 꿈속에 나타났다. 반가움도 잠시, TV는 밤늦도록 잠들지 않고 청문회 중계방송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라꼴이 황소 얼음판 걷듯 하니 영 불안하다. 더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긴 겨울을 어떻게 나나?
2016.12.15
좌선(坐禪)
좌선(坐禪) 2016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2017 정유년(丁酉年)이 밝아온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나라 안팎이 너무나 소란스러웠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좌불안석(坐不安席)하며 좌절(挫折)의 한 해를 보냈다. 마음은 바쁘고 몸은 피곤한 한 해했다. 나라 밖의 일은 그만두고라도 나라 안의 일을 돌이켜 보면 국정농단과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과 사드 배치 문제, 규모 5.8의 지진, 멈춰선 조선소, 한진해운 물류대란, 삼성 갤럭시노트7 리콜, AI 조류인플루엔자 등 그 아픔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어디서 무엇부터 수습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연말이다.삶이 고(苦)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중락(苦中樂) 낙중고(樂中苦)’가 아니던가. 이런 때일수록 우선 ‘좌선(坐禪)’을 통한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한다. 마음 수행의 장소는 문제 되지 않는다. 선방이 아니라도 좋다. 거실이면 어떻고 지하철 안이면 어떠하랴. 내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밝고 고요할 때 비로소 세상의 잘잘못을 비춰볼 수 있다. 마음이 하나의 경지에 머물며 흐트러짐이 없을 때를 일러 ‘선정(禪定)에 들었다’ 한다. 좌선의 시작은 번뇌이지만, 좌선의 끝은 황홀한 기쁨이다. 진리의 참된 이치를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을 법열(法悅)이라 한다. 좌선(坐禪)을 전서체로 써 보았다. ‘앉을 좌(坐)’ 자는 ‘두 사람이 땅 위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에서 비롯했다. 평상(平床)은 물론 안석(案席)이나 의자(椅子)도 없이 맨땅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흙 토(土)’ 자의 가운데 획을 길게 높이 올림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면벽참선(面壁參禪)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어쩌면 현실의 나와 내면의 나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좌선 선(禪, Zen)’ 자는 ‘매미 선(蟬)’ 자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싸움 전(戰)’ 자 속의 ‘단(單)’은 무기의 상형이지만, ‘좌선 선(禪)’ 자 속의 ‘단(單)’은 매미의 상형으로 본다. 매미는 여러 해 동안 깜깜한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아오다가 밖에 나와 날개가 돋은 후 단지 일주일 정도만 살다가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다. 나무에 붙어 애절하게 노래하는 매미의 모습은 면벽 정진하는 선사를 닮았다. 새해의 키워드는 아마도 ‘대선(大選)’이 되리라 본다. 정직하게 오직 나라만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참된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위대한 ‘선택(選擇)’을 신중히 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종교는 중생의 마음이 되고, 언론은 중생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 국운(國運)과 정치(政治)의 잘잘못은 종교적 판단력과 언론적 정직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이 나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진지하고도 간절한 ‘좌선(坐禪)’으로 새해를 맞이하자. 정밀하게 참선(參禪)하다가 정유년 새해 계명성(鷄鳴聲)을 듣도록 하자. 2017년은 ‘좌선의 해’로 이름 붙여 보면 어떨까. 수월 권상호
2016.12.14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4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4언성에서 함성으로, 촛불에서 횃불로대한민국은 작지만 큰 나라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가운데 여섯 차례나 토요일마다 단일 집회에 참여한 인파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에 사상 최대 인파인 170만 명 정도가 모였단다. 전국적으로는 232만 명이 광장에 쏟아져 나왔음에도 큰 사고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이를 보고 많은 외신이 한국 국민의 성숙한 민주 시민의식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니, 내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도 느껴진다.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언성(言聲)’은 ‘함성(喊聲)’을 이루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촛불’은 ‘횃불’을 더하여 파도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우주의 씨앗인 소리와 빛의 축제장이었다.우리말 ‘소리’는 그 의미의 폭이 대단히 넓지만, 크게 보면 자연의 소리와 동물의 소리 및 인간의 소리로 나눌 수 있다.자연의 소리로 ‘바람 소리’ ‘나팔 소리’ 등과 같이 ‘진동에 의한 소리’가 있는가 하면, 동물의 소리로 ‘황소 울음소리’ ‘산비둘기 소리’ ‘귀뚜라미 소리’와 같은 ‘금수나 곤충의 소리’도 있다. 사람의 소리도 다양한데, ‘떠드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와 같이 의미 없는 ‘목소리’도 있고, ‘근거 없는 소리’ ‘누구에 대한 이상한 소리’와 같은 ‘소문’의 소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답답한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와 같은 ‘주장’의 소리도 있고, ‘판소리’에서처럼 ‘창(唱)’과 같은 소리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무서운 소리는 ‘국민의 소리’ ‘백성의 소리’와 같은 ‘여론의 소리’라 할 수 있다.여론으로도 통하지 않을 때는 언성(言聲)이 올라가고, 마지막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으니 그것은 함성(喊聲)이다. 함성이란 여럿이 함께 지르는 고함을 뜻한다. ‘소리 함(喊)’을 보면 ‘입 구(口)’에 ‘모두 함(咸)’으로 모든 입이 모여서 함성을 이룬다는 뜻이다.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함성의 힘이다. 그리고 ‘소리 성(聲)’ 자에는 ‘귀 이(耳)’ 자가 붙어있다. 소리는 상대방이 귀로 들을 때 의미가 있다. 과학적으로도 소리에 굴절이 있어 낮말은 새가 잘 듣고, 밤말은 쥐가 잘 듣는단다. 벽을 치면 대들보가 울리고,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울게 마련인데, 어찌하여 청와대는 불청(不聽)인가. 달걀로 바위 치기요 물풍선으로 송곳 치기니 답답한 심사로다.예부터 소리를 가장 잘 듣는 사람을 일러 성인(聖人)이라 했다. ‘성인 성(聖)’ 자의 구성 요소를 보면 듣고 남의 말을 듣고, 자기 뜻을 말하는 데에는 오뚝한[壬] 인물이 아닌가. 공자는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육십이순(六十耳順)’이라 하지 않았는가.소리로도 안 될 때는 어찌할 것인가? 다음 수단은 ‘빛’이다. 초기에는 ‘촛불’로 시작하되, 촛불로도 안 되면 홧김에 ‘횃불’이 등장하니 조심할 일이다. 횃불은 화마(火魔)를 데리고 다니므로 민의(民意)의 마지막 표현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홰’라는 말에는 막대의 의미가 있다. 닭장 속에는 닭이 올라앉는 ‘홰’가 있고, 방안에는 옷을 거는 ‘횃대’가 있다. 그렇다면 횃불은 막대에 붙인 불이다. 불이 꺼져도 무기가 될 수 있다. 조심할 일. 촛불이든 횃불이든 이 땅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과 같은 어둠의 정치를 밝히는 일이니 갈채를 보낸다. 함성이라 해서 정의의 좋은 함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할 때의 함성은 좋은 함성으로, 선수에게 기운을 주고 전체 분위기도 띄운다. 하지만,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약한 상대를 위협하는 ‘왕따 함성’이나,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약소국에 겁주는 강대국의 ‘내 맘대로 함성’은 근절되어야 한다.‘소리’의 어근 ‘솔’과, ‘사뢰다’의 어근 ‘살’, 그리고 ‘말씀’의 ‘씀’ 등은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소라의 껍데기로 만든 옛 군악기 ‘나각(螺角)’을 만드는 걸 보면, ‘소라’도 소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음(音)과 성(聲)이고,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은 청(聽)과 문(聞)이다. ‘소리 음(音)’은 원래 ‘말씀 언(言)’과 같이 입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뜻하는 글자로 두 글자 간에 구별이 없었다. 그러다가 진(秦) 나라 소전(小篆)에 와서는 ‘언(言)’은 ‘말(speak)’의 뜻으로, 언(言) 자에 한 획을 더한 ‘음(音)’은 ‘소리(sound, music)’의 뜻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음(音) 자를 바탕으로 하여 ‘뜻 의(意)’, ‘억 억(億)’ 자 등이 만들어지는데, 의(意)는 ‘마음의 소리’로, 억(億)은 ‘사람의 뜻은 매우 많다’는 데에서 착안한 점이 재미있다.‘소리 성(聲)’의 갑골문은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석경[声, chime stone]’이라는 악기와 ‘귀[耳]’를 합한 형태로 석경 소리를 듣는 모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위의 글자에 ‘방망이 수(殳)’와 ‘입 구(口)’를 더한 형태인데, 이는 손[又]에 나무망치[几]를 들고 석경을 치며 입[口]으로 노래하는 모양이다. 이후 소전에 오면 구(口) 자를 뺀 나머지 형태인 지금의 성(聲) 자가 완성된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석경 모양의 ‘소리 성(声)’으로 쓰고 있다.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2차 청문회(聽聞會)가 열렸다. 청문회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여 그 내막을 듣는 모임이다. 듣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른 시일 내에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국격을 드높여야 한다. ‘들을 청(聽)’의 갑골문은 ‘귀 이(耳)’ 옆에 ‘입 구(口)’ 자가 하나 또는 둘이 붙어있는 형태로 볼 때, ‘여러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나타난 금문에서는 ‘귀 이(耳)’ 밑에 ‘흙더미 위에 우뚝 선 사람’의 상형인 ‘우뚝 설 임(壬)’에, ‘열 십(十)’ ‘입 구(口)’ 등의 글자가 추가되었으니, 이는 ‘높은 곳에 서서 열 사람의 말, 곧 여론을 적극적으로 듣는다’라는 뜻으로 구체화하였다. 소전에 와서야 ‘입 구(口)’가 사라지고 대신에 ‘덕 덕(悳)’ 자가 붙어서 지금의 청(聽) 자와 비슷한 형태로 되었다. 덕(悳) 자는 직(直)과 심(心)을 합한 글자로 ‘바른 눈과 마음’의 뜻에서 출발한다. 결국 청(聽)은 ‘바른 안목과 바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라는 뜻을 지닌 다소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은 ‘청명(聽命)’에서처럼 ‘받아들이다’의 뜻과 ‘청정(聽政)’에서처럼 ‘정사를 듣고 처리하다’ 곧 ‘다스리다’ 등의 뜻으로 의미 확장이 이루어졌다.‘들을 문(聞)’의 갑골문 형태는 생뚱맞게도 한 사람이 두 손을 모으고 꿇어앉아 뭔가 듣고 있는 형태이다. ‘듣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귀를 크게 그려 놓았었다. 그런데 소전에 와서는 ‘귀 이(耳)’만 그대로 두고, ‘문 문(門)’ 자를 얹은 지금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로써 /문/이라는 발음도 살리고,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라는 의미도 살리게 된다. 청문(聽聞)에서 청(聽, listen)과 문(聞, hear)의 의미 차이는 영어로 이해하면 쉽게 구별이 된다.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데, 함성과 횃불 집회를 위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 ‘위기’는 ‘위대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노자가 듣기에는 그 정도 함성이야 개울물 속의 물고기 꼬리 치는 소리 정도로 여길는지도 모른다. 그는 ‘대음희성(大音希聲)’ 곧, ‘큰 음은 소리가 희미하다’라고 했다. 빛으로 나가면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춘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복음 8장 17절의 말씀이다.
2016.12.08
정론(正論)과 사론(邪論)을 변론(辯論)함 - 정론(正論)과 사론(邪論)을 변론(辯論)함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3정론(正論)과 사론(邪論)을 변론(辯論)함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 9개월 동안 상식 이하의 통치를 보고도,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최측근은 물론 여당까지도 충간한 사람이 없이 모두 부역자로 비판받고 있다. 이에 더하여 받아 적기에만 능숙했던 청와대 출입 기자를 비롯한 언론에 대한 비판 여론도 일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은 ‘언론(言論)’을 통하여 생각하는 힘을 길러보고자 한다. 무언가 논(論)하며 놀 줄 아는 민족은 ‘철학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을 논하고 학문을 논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시국을 논하고 시비를 논하며 촛불을 밝히기도 한다. 더러는 사건의 진위와 인물의 자질을 논하며 논쟁(論爭)을 벌이고, 책임을 논할 때는 논란(論難)이 끊이지 않는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은 일에 대한 공과와 업적의 우열을 논한 뒤에 치러진다. 찬반 의견은 토론(討論)하고,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토의(討議)해야 한다. 논술(論述)을 잘하려면 논제(論題)를 분명히 파악해야 하는 등 ‘논(論)’을 논함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의논(議論)이 맞으면 격려 댓글이 따르지만, 악성 댓글 게시자의 악플은 경계가 없으니 조심할 일이다.‘논(論)하다’라고 할 때의 ‘논할 논(論)’ 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언론(言論)’ ‘여론(輿論)’ ‘논의(論議)’ ‘정론(正論)’ 등과 같이 그 용례가 많아서 ‘논(論)’ 자에 대하여 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언론’은 ‘여론’을 잘 수렴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정론’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식으로 엮어보면 쉽게 접근할 수도 있다.‘논할 논(論)’ 자는 ‘말씀 언(言)’과 ‘둥글 륜(侖)’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씀 언(言)’은 원래 칼이나 도끼와 같은 ‘날붙이’나 죄인을 다스리는 ‘형구’를 뜻하는 ‘신(辛)’이, ‘입[口]’ 위에 있는 섬뜩한 모습이었다. 이는 언론이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둥글 륜(侖)’ 자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 죽간(竹簡) 여러 개를 끈으로 묶어서 둥글게 말아놓은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책(冊)의 원조이다. 윤(侖) 자 안에 책(冊) 자가 보인다. 방안에서 죽간을 책으로 묶는 모습이 ‘엮을 편(編)’이고, 한 묶음이 완성되면 ‘책 편(篇)’이 된다. 이처럼 말이 책으로 남기 때문에 언론이 여론을 조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사실과 진실은 분명코 하나뿐일 터인데, 인간이 이전투구로 난상토론(爛商討論)을 벌이면 벌일수록 사실과 허위는 더 뒤범벅되고, 진실과 거짓은 더 헷갈려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왜 그럴까. 논하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거짓을 뜻하는 한자로 ‘거짓 가(假)’와 ‘거짓 위(僞)’가 있는데, 두 글자에는 공통으로 ‘사람 인(人)’ 자가 들어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가.빈부갈등, 남녀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 여야갈등, 보혁갈등, 이념갈등, 남북갈등, 국가갈등 등에서 보듯이 우리는 칡[葛]과 등나무[藤] 숲에서 살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고는 했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이다. 24시간 내내 쏟아져 나오는 종편방송의 시사 토론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쪽이 진짜이고 어느 쪽이 가짜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런 걸 두고 ‘맨붕’이라 하나 보다. 언론의 역할은 갈등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숲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언론은 인간이 갈등의 숲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따뜻한 가이드 역할도 해야 한다.우리말 ‘가짜’는 한자어 ‘가자(假者)’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가게[店]’의 본딧말은 ‘가가(假家)’이고, ‘어림짐작’을 뜻하는 한자어는 ‘가량(假量)’이다. 그렇다면 ‘진짜’라는 말은 ‘眞者(진자)’에서 온 말이 아닐까. 진(眞)과 가(假)를 언론에서 신중하고 분명하게 가려줘야 백성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다. 옥(玉)과 석(石)의 구분은 광부의 몫이지만 진(眞)과 가(假)의 구분은 언론의 몫이다. 언론의 진가(眞價)는 진가(眞假) 구분에서 빛난다. 언론의 사명은 ‘불편부당(不偏不黨) 정론직필(正論直筆)’이다. 공평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음이 불편이고, 공정하여 무리를 짓지 않음이 부당이다. 사론(邪論)을 정론(正論)인 것처럼, 사론(私論)을 공론(公論)인 것처럼 보도하면, 그 나라는 허공에 띄운 풍선과 같이 찢어지고, 민중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 언론은 과연 어떤가. 혹시 나쁜 정치의 도우미는 아닌가 고민해 봐야 한다.언론인에게 ‘무관의 제왕’이나 ‘사회의 목탁’이란 말을 그냥 붙여준 게 아니다. 언론인의 역할이 제왕만큼 막중하므로, 언론인은 국민의 사고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칭송하는 말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고 비난하는 등의,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마디로 대선 이후 언론을 무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난 7월 말부터 지금까지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차기 정부의 주요 인선 내용이나 정책 운용 방침은 트위터를 통해 발표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언론의 불공정성에 대한 대통령의 외면 사례이다. 다행히 지난달 국내에서는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3대 학회 소속의 언론·방송학자 484명이 ‘언론을 바로 세워야 나라가 산다’는 기치를 내걸고 자성(自省)과 촉구의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언론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자로서 ‘언론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향후 박근혜 정부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과 정치권의 언론법 개정을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의 주된 임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민주적 여론형성에 앞장서는 일이다. 따라서 진실을 밝히고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임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는커녕 권력과 공모(共謀)하거나 권력을 호위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런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이 아니라 사론곡필(邪論曲筆)이다.‘역사는 사실(fact)’ ‘문학은 진실(truth)’ ‘언론은 현실(reality)’이다.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현실(現實)’은 ‘지금의 실제 상황’을 뜻한다. 이로 볼 때 진실은 사실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자체로도 거짓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진실이라는 말은 사실상 존재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런데 언론의 현실은 앞의 사실과 진실은 물론, 현실의 반대인 가공, 진실의 반대인 허구까지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크고 무거우므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신속’ ‘정확’이 요구된다. 중·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을 보면,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강자의 기록’이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역사를 가장 욕보이는 말은 ‘역사는 쓰인 거짓, 신화는 쓰이지 않은 진실’이라는 말이다. 설화문학의 하나인 신화의 위치에서 보면, 신화는 말로 전해 내려온 구비문학이므로 상당한 존재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역사의 처지에서 보면 분명한 모욕이다. 이는 마치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을 설명하지만,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까지 설명한다’는 말과 비슷한 논법이다. 신화와 예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려고 역사와 과학의 가치를 슬쩍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언론(言論)은 언품(言品)을 지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를 걸어가며, ‘정의의 힘’이 승리하는 현실을 보도해야 한다. 국정농단의 매서운 계절이 다가온다. 날씨야 추워 봐라, 우리에겐 촛불이 있다. 민주정치의 봄날도 멀지 않으리.
2016.12.01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2- 부끄러움은 미덕이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2부끄러움은 미덕이다- 부끄럼을 모르는 대통령, 부끄러워 치를 떠는 국민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에도 부끄럼을 많이 타는 잔부끄럼쟁이 친구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에게 부담을 주거나 신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성질이나 느낌 또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를 ‘부끄럼성(-性)’이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인간이 아니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란 얘기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인간의 자격’이라 할 수 있는 ‘인격(人格)’을 갖추고 있는 인간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은 ‘인격의 완성’이다. 인간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 ‘부끄럼타기’이다. 부끄럼을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패자의 감정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성숙으로 가는 진솔한 인간의 미덕이다. 부끄럼이 남에게 때로는 겸연쩍고 열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부터는 공감을 얻어내고, 자신으로부터는 겸손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끄럼은 때로 소통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부끄러움을 피해의식과 열등감의 표출로 보고, 위장된 가식 행동으로 포장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대통령과 비선실세는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부정입학을 종용하여 정유라의 이화여대 ‘학사농단’을 만들어 내고, 손부끄러운 줄 모르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하여 53개 기업을 상대로 하여 총 774억 원의 출연을 강요하였다. 현직 대통령이 범죄 혐의 피의자로 검찰에 입건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나 부끄러워할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살펴보건대 부끄럼은 부숴버리고, 어떡하면 부러움을 살 수 있을까 하고 부산하게 기춘 대원군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자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은 찍어준 손이 부끄럽고, 믿은 마음 민망하여 촛불과 격문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최순실 국정농단’의 피의자로 전락한 박 대통령께 국민은 더 바랄 게 없다. 버티기는 그만하고 정권 퇴진 요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깨닫고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양심(良心)의 소리를 시원하게 쏟아주길 바라고 있다. 부끄러움에 치를 떠는 국민이 4차에 걸쳐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생업을 포기한 채 촛불집회를 펼친 이유는, 박 대통령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적시(摘示)를 듣고자 함이 아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박 대통령이 주도한 배경과 재정 모금 과정, 청와대 문건 180건 유출로 인한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 내용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참회의 고백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도덕적 의식 곧, 양심(良心)이란 것이 있다. 양심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자 최고의 선물이다. 양심만으로도 행복한 세상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양심은 딱 하나다. 국민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일이다. 그러면 자신의 기본적인 부끄럼이 오롯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말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나 마음’을 뜻한다. 부끄러움의 느낌이나 마음은 얼굴에 나타난다. 그래서 흔히 부끄러울 때, ‘얼굴이 붉어진다’라고 한다. ‘부끄러워하다’의 옛말은 ‘붓그리다’로, ‘붓’과 ‘그리다’의 합성어로 보인다. 옛말 ‘붓’은 ‘볼[頰]’이나 ‘얼굴[顔]’의 뜻으로 여겨지므로, ‘붓그리다’는 ‘(부끄러움을) 볼에 그리다’라는 뜻이 된다.‘볼’과 비슷한 말에 ‘뺨’이 있다. ‘뺨’은 ‘볼’보다 큰말로 뺨의 한복판이 ‘볼’이다. 그래서 볼에 키스하면 뺨 전체가 붉어진다.‘부끄러움’을 뜻하는 말로 ‘수치(羞恥)’가 있다. 맹자는 “수치심과 혐오감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라고 했다. 맹자는 또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한 네 가지 마음을 ‘사단(四端)’이라 규정하고, 이 사단은 사덕(四德)의 단서(端緖)가 된다고 보았다. 사단은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이른다. 이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수(羞)’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오(惡)’는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덕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수치(羞恥)는 ‘부끄러울 수(羞)’와 ‘부끄러울 치(恥)’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의 ‘수(羞)’ 자는 원래 ‘양 양(羊)’에, 손을 뜻하는 ‘축(丑)’ 자를 더한 글자로 ‘바치다’의 뜻이었다. 손가락을 펴고 있는 손은 ‘우(又)’이지만, 손가락으로 뭔가 움켜쥐고 있는 손은 ‘축(丑)’이다. 따라서 수(羞) 자의 본뜻은 ‘양고기를 바치다’였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의 예에서 보듯이, 수(羞) 자는 ‘맛있는 음식’의 뜻으로도 파생되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수(羞) 자가 ‘부끄러움’의 뜻으로 쓰이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아마 진수성찬으로 대접하면서도 ‘부끄럽다’고 말하는 우리의 전통 미덕에서 나온 뜻이 아닐까 한다.폐월수화(閉月羞花)란 성어가 있다.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여인의 얼굴과 맵시가 매우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의하면,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애인인 여희(麗姬)는 절세미인으로, 그녀를 보면 달은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기고, 꽃은 부끄러워했다고 전한다. ‘부끄러울 치(恥)’ 자는 처음부터 같은 뜻으로 쓰였다. 치(恥) 자를 만든 부족은 부끄러움이 얼굴보다 귀[耳]에 잘 나타난 듯하다. /치/라는 발음은 부끄러움과 상관이 있다. ‘다스릴 치(治)’하는 자는 ‘부끄러울 치(恥)’를 알아야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면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끄러움[恥]은 ‘가치[値]’ 있는 마음이다. 괴로울 정도로 부끄러움을 ‘참괴(慙愧)’라고 한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고[斬(벨 참)]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부끄러울 참(慙)’이고, 귀신(鬼神)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부끄러울 괴(愧)’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은 ‘수치’ 수준일까 ‘참괴’ 수준일까. 아니면 끝내 ‘뻔순이’일까. 부끄러움은 모르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는 위태한 국가이다. 오늘날은 부끄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사라져가는 부끄러움을 반드시 회복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인간은 부끄럼 속에서 자란다. 부끄럼 속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행복을 나누며 성장해 왔다. 이 땅에서 무릇 정치를 하거나,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돈이 들지 않아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이란 네 글자를 선물하고 싶다. 부끄러움이 있었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가 그립다. 라는 소설에서 한국 전쟁과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부끄러움을 일깨워주는 소설가 박완서가 그립다.
2016.11.24
월간 해인 1016. 12월호 - 靑山塵外相(청산진외상)
무제(無題) 靑山塵外相(청산진외상) 청산은 티끌을 벗어난 모습이요明月定中心(명월정중심) 명월은 선정 중의 마음이어라.山河天眼裏(산하천안리) 산하는 하늘의 눈 속에 들어있고 世界法身中(세계법신중) 세계는 법신 가운데 있도다.終日無忙事(종일무망사) 온종일 바쁜 일 없이 한가로우니焚香過一生(분향과일생) 향(香)이나 사르며 일생을 보낸다.聽鳥明聞性(청조명문성) 새소리 들으며 식견(聞)과 본성(性)을 밝히고看花悟色空(간화오색공) 꽃을 보며 색(色)과 공(空)을 깨우쳤다네. 내용은 조금씩 달리하지만, 양산 영취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 대광륜전(大光輪殿), 강화 정족산(鼎足山) 전등사(傳燈寺) 대조루(對潮樓), 김천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 무명전(無名殿)을 비롯한 여러 사찰 주련(柱聯)에 나오는 많이 사용되는 내용이다.전체적으로 1~4구의 ‘청산(靑山)’ ‘명월(明月)’ ‘산하(山河)’ ‘세계(世界)’ 등의 익숙한 시어들이 자연의 다양한 모습이라면, 5~8구의 ‘한가로움’ ‘분향(焚香)’ ‘새소리 듣기’ ‘꽃 보기’ 등은 수행자의 다양한 행적이라 할 수 있다.1구의 티끌은 사바세계를, 2구의 정(定)은 선정(禪定)을 뜻한다. 청산은 그 자체가 가람(伽藍)이고, 밝은 달은 참선으로 삼매경에 이름을 비유한 것이다. 세상 번뇌를 모두 끊고 마음을 가다듬어 정신을 집중하면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이를 것이고, 마침내 명월(明月)과 같은 진리(眞理)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3구의 天眼(천안)은 오안의 하나로 원근ㆍ전후ㆍ상하ㆍ주야와 관계없이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눈을 뜻한다. 현미경과 망원경으로도 따를 수 없으며, 시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눈이 천안이다. 따지고 보면 ‘육안(肉眼), 천안(天眼), 법안(法眼), 혜안(慧眼), 불안(佛眼)’의 5단계 중 2단계에 지나지 않는 천안이다. 4구의 法身(법신)은 불법을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의 몸을 뜻한다. 여기서는 천안의 밝음과 법신의 경계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5, 6구는 깨달은이의 모습이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서 모든 의혹과 번뇌를 버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오묘한 경지를 분향(焚香)으로 표출하고 있다. 제례에서의 향(香)은 조상신과의 교신을 위한 안테나와 같은 개념이나, 불교에서의 향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맑게 하므로 희생을 뜻하기도 하고, 해탈이나 공덕을 상징하기도 한다. 7, 8구는 청각과 시각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게송 구조 속에서 볼 때는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수도의 과정에 대한 비유이다. 어려운 시구는 7구의 문성(聞性)인데, 8구의 색(色)과 공(空)으로 볼 때, 문(聞)은 견문이나 식견을, 성(性)은 본성(本性)이나 성품(性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위의 게송은 세월을 두고 쌓여온 적층 문학(積層文學)의 형태로 보인다. 1, 2구는 숨어 살며 벼슬을 하지 않았던 명(明)나라 사감(史鑒)의, 3권에 처음 보이고, 3, 4구는 당(唐)나라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의 ‘하일과청룡사 알조선사(夏日過靑龍寺 謁操禪師)’라는 시에 보인다. 불교를 독실하게 믿으며 평생 선적 자연관을 노래하고 그림으로 나타낸 왕유는 ‘시불(詩佛)’이라 불린다.
2016.11.17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1- 신중한 선택(選擇)을 위한 주도면밀한 준비(準備)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1신중한 선택(選擇)을 위한 주도면밀한 준비(準備) 한 임금이 재위한 동안의 사적을 편년체로 기록한 것을 실록(實錄)이라 한다. 실록은 왕이 승하한 뒤, 실록청을 두고 시정기(時政記)를 거두어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시정기란 임금이 정무를 집행할 때에, 그와 관련된 내용 가운데 역사에 남을 만한 자료를 사관(史官)이 추려 적은 기록을 말한다.그런데 중에서 연산군(燕山君)과 광해군(光海君)은 실록(實錄)이라 하지 않고, 일기(日記)라는 명칭을 붙인다. 대개 왕이 죽으면 그 당시의 기록을 모아 실록을 편찬하고, 편찬을 맡은 임시관청을 ‘실록청’이라 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왕위의 이양이 아니라 폐위당한 왕의 기록은 특별히 ‘일기(日記)’라 하고, 편찬을 담당하던 관청을 ‘일기청’이라 했다. 조선왕조실록 가운데에는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등의 세 편의 일기가 있는데, 그때마다 일기 편찬을 위해 임시로 일기청을 설치했다. 정상적인 왕위 이양이 아니라 폐위에 의한 이양이었기 때문에 실록청이라 부르지 않고 일기청으로 불렀다. 만약 지금도 왕조시대라면 현 대통령의 업적 기록은 어디서 편찬하며 어떤 이름으로 불릴까. 7년(1501) 5월 6일 첫 조목(條目)에 영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의정 성준(成俊), 우의정 이극균(李克均)이 왕에게 아뢰는 내용이 나온다.“옛말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습니다. 백성이란 지극히 어리석지만 신령한 존재이니, 백성의 원망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사온데, 백성의 원망이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古云 民惟邦本 本固邦寧. 小民至愚而神 民怨不可不愼. 民之怨咨 未有甚於此時)위의 내용은 군인들에게 급료를 주지 않고 토목 일을 맡긴 것과 일에 완급을 주지 않고 혹독하게 일을 시킴에서 터져 나오는 백성의 원성을 주청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것과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대목은 지금과도 딱 들어맞는 내용이다. 또 하나, 왕은 언제나 백성의 원망의 목소리에 조심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목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금주의 가장 큰 목소리는 단연 ‘박근혜는 하야하라’와 ‘박근혜는 퇴진하라’였다. ‘대통령 방 빼’ ‘박근혜는 손 떼’ ‘국민이 주인이다’ ‘이게 나라입니까’와 같은 준엄한 원성이 전국 곳곳에서 파도처럼 몰아쳤다. 본인이 늘 주장하던 신의가 일순간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하였다. 신의가 없으면 정치든 개인이든 일어설 수 없다는 뜻이다.국가적 신뢰 상실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세대와 성별, 이념을 초월하여 지금도 경향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끓고 있다. 목소리로도 부족하여 한 손에는 촛불을 또 한 손에는 구호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소리는 귀로 듣고, 불빛은 눈으로 보았을 터인데도 박근혜 대통령의 벽창우 같은 고집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순자는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물은 배를 엎을 수도 있다”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라고 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라면 너무나 가벼운 배이다.고집이 욕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욕심이 없는 사람은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좋은 욕심은 많을수록 변화와 발전이 있겠지만, 나쁜 욕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공자는 에서 ‘군자가 지녀야 할 세 가지 경계’(君子有三戒)를 일러 주고 있다.“젊어서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는 혈기가 강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약하므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强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여담 같지만, 인생을 ‘BCD’로 풀이하는 우스개가 있다. B는 Birth(탄생), C는 Choice(선택), D는 Death(죽음)의 약자로 인간은 태어나서 ‘선택’(選擇)’만 하다가 죽는다는 얘기인데, 이 말은 삶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개그라 할 수 있다. 선택이 중요하다면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 만약 그 선택이 나랏일을 맡은 이의 선택이라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기도하는 자세로 널리 자문하여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소통의 대통령 몫이다.민주주의에서 선택(選擇)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대선, 총선의 ‘선거(選擧)’는 물론이고, 정유라의 경우처럼 국가 대표선수나 대학 입학생 ‘선발(選拔)’ 또한 공정을 잃어버리면 나라의 기강까지 흔들린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고를 선(選)’ 자는 ‘제물[巳]을 많이 선택해 놓고 제사 지내러 갈[辶] 사람을 여럿이서 함께[共] 뽑는다’는 의미이다. 선(選)은 선(善)한 결과를 위해 업무 경계의 선(線)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최선의 신중한 선택은 임기응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준비’가 요구된다. 준비 없이 당선만을 목적으로 인기몰이를 해오다가 막상 국정을 맡게 되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대통령 임기 5년은 인턴십 기간으로 미완과 실수의 연속이었다. 정치가도 국민도 모두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라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당장 현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도 국정 공백을 누가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준비(準備)라고 할 때의 ‘수평 준(準)’은 ‘물 수(氵)’와 ‘새매 준(隼)’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그러니까 물은 땅의 수평을, 새매는 하늘을 수평을 뜻하므로 준(準)은 절대적인 ‘수평’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보면 준(準) 자는 ‘사회 복지’의 방향과 ‘기회 균등’을 제시하고 있다.그리고 ‘갖출 비(備)’ 자는 사람이 화살집을 허리에 차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항상 먹을거리를 장만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으로 오늘날로 치면 ‘일자리 창출’이나 ‘식량 공급’이 최우선의 준비임을 깨우쳐주고 있다.그러니까 ‘준비’라는 말 속에는 위로는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으로부터 군·관·민·당·청 모두가 수평적 복지와 일자리 창출에 대하여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국정 공백과 국가 혼란 및 민심 동요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심각한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국민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빈틈없는 준비 없이는 신중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잘된 준비와 올바른 선택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나는·지금·여기서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물음이 아니라 감동으로 다가와야 한다. 작게는 나 자신을 위해, 크게는 훌륭한 대통령을 모시기 위해 언제나 근골이 아우성칠 정도로 준비된 국민이어야 한다. 다음 선거를 위해 준비된 사람만이 웃으며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수준은 국민 수준 이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불통은 준비되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지인의 주장을 빌려 준비된 글을 마친다.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봄날은 온다”
2016.11.17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0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병신년 입동이 지났다. 겨울이 시작됐다. ‘최순실의 국정논단’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이자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야 3당은 국회의 총리 추천권을 넘기겠다는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공식 거부하고, 당 차원에서 ‘민중 총궐기 집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는 등 대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정국 혼란이 더할 전망이다. 또 예상 밖의 트럼프의 미 45대 대통령 당선으로 방위비 부담, FTA 재협상 등의 숱한 난제가 가시덤불로 다가오고 있다.지진과 태풍으로 인한 아픔은 벌써 옛이야기로 들린다. 이처럼 안으로는 전례 없는 악성 바이러스에 의한 감기몸살에 걸린 대한민국이, 밖으로는 눈보라 몰아치는 찬바람까지 맞으며 황량한 벌판을 걸어가는 형국이다. 일제 강점기 1940년 지에 발표된 이육사의 시 ‘절정’의 마지막 구절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지사적이고 남성적인 강렬한 언어로써 시인의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조국상실과 민족수난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현실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역설로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겨울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무지개가 보이는가. 굳고 딱딱한 계절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무지개가 그립다. 오늘은 희망의 대안을 ‘부드러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나무들은 내년 봄꽃을 피우기 위하여 가을에 부드러운 꽃눈을 미리 준비하고 겨울을 맞이한단다.‘부드러움’을 뜻하는 한자는 ‘부드러울 유(柔)’ 자이다. 글자 안에 딱딱한 ‘나무 목(木)’ 자가 있는데, 부드러움을 뜻하다니 수긍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위에는 날카로운 ‘창 모(矛)’ 자 있으니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냥 보기에는 기다란 나무막대 끝에 창이 달린 모습일 뿐이다.그러나 전서 ‘유(柔)’ 자를 곰곰이 살펴보면 ‘금방 돋아난 가늘고 긴 어린나무’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자에서 ‘가늘고 길다’라는 개념을 ‘털 모(毛)’ 자처럼 구부려서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면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따라서 ‘유(柔)’ 자 위의 ‘모(矛)’ 자는 ‘창처럼 뾰족이 돋아난 나무의 새순’을 뜻한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딱딱하지만, 그 끝은 부드럽다. 가지 끝은 보기에 따라서는 창끝처럼 뾰족하지만, 나무의 생장점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건 당연하리란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나무를 감고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의 모습으로 볼 수 도 있다. 좌우지간 부드러움이라는 촉감을 시각적인 문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이 대목에서 발음의 상징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모(矛)/라는 발음에는 ‘가늘고 길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털 모(毛)’, ‘창 모(矛)’가 그러하다. ‘사모(思慕)하다’의 ‘그리워할 모(慕)’ 자도 그리움의 특성상 가늘고 긴 이미지가 있다. 가장 강한 그리움은 역시 ‘어머니 모(母)―’라고 하면 지나친 발상일까. 그리움이 깊어지면 사진이나마 지니고 싶어지는데, 사진이 없던 옛날에는 얼굴 ‘모습’ 곧, ‘용모(容貌)’를 ‘모사(模寫)’하여 두고 보거나 몸에 지니고 다녔으리라. 해가 저물면 그리움은 더하게 되니, 여기서 온 글자가 ‘저물 모(暮)’이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술 한 잔 나눌 벗을 부르고자 ‘모색(摸索)’해 보지만, 찾아오는 이 없이 외로움에 ‘모가지’만 길어진다. 에라, 이 인생 에러로다. ‘모주(母酒)’ 한 사발 벌컥 들이키고 술기운에 잠에 든다. 다음에는 /유(柔)/ 자 발음의 상징성을 ‘유연(柔軟)’ 하게 살펴볼까나. 한 마디로 /유(류)/라는 발음 속에는 ‘부드러움’의 의미가 있다. 어린아이를 뜻하는 ‘유아(幼兒)’는 어른보다 더 부드럽다. 젖먹이를 뜻하는 유아(乳兒)’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빠는 ‘모유(母乳)’도 부드럽다. ‘흐를 류(流)’ 자는 본래 물이 흐르는 모습이 아니라 ‘태아가 양수와 함께 순조롭게 어머니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모습’이다. 거꾸로 선 ‘아들 자(子)’ 자를 보면 태아의 머리와 두 팔은 이미 빠져나왔고, 몸과 다리가 나오고 있으니, 영락없는 출산의 모습이다. 연료 중에는 에너지 공급원인 ‘석유(石油)’가, 나무 중에는 잔바람에도 몸을 맡기는 ‘양류(楊柳)’가 부드럽다. ‘교류(交流)’는 필요하지만 ‘표류(漂流)’는 위험천만이다. ‘화류계(花柳界)’에도 해어화(解語花)가 기다리고 있지만, ‘유들유들한’ 몸짓 속에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조심할 일이다. 다음은 ‘계선편(繼善篇)’에 나오는 문구다. 노자 가로되,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며,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했다. 까닭에 혀는 부드러워 보존될 수 있으나 이빨은 강하여 부러지는 것이다.(柔勝剛 弱勝强 故舌能存 齒剛則折也)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떡하면 더 강하고 굳셀 수 있는가’ 만을 생각하고 있다. 작은 분쟁에도 큰소리가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화에서는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떠벌린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도 큰 문제다. ‘들을 청(聽)’ 자와 ‘덕 덕(德)’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잘 듣는 자가 덕이 있는 사람이다. 차제 청와대(靑瓦臺) 명칭을 ‘청와대(聽蛙臺)’로 바꿔 쓰면 어떨까. ‘개구리들의 함성을 듣는 집’이란 뜻이다.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사과는 하면서도 국기문란 원인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음은 아직도 국민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가 보다. 국가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한 아줌마의 농단을 보고도 이를 견제하지 못한 모든 잘못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 앞에서 털끝 하나 숨김없이 실체를 털어놓고 권력에 대한 미련은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정치에도 부드러움[柔]과 흐름[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소통의 시대에 딱딱한 ‘고집불통(固執不通)의 대통령’으로 일관해 왔다. 이는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는 얘기이다. 함량 미달의 인사와 재계와의 결탁 등 전근대적인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임기마저 다 채울 수 있을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한(恨)민국’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염려된다. ‘대를 이은 대통령’,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거의 여왕’ 등의 아름다운 타이틀을 일순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말았으니, 본인의 말 대로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라는 말이 수긍은 간다. 하지만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자탄이기를 바랄 뿐이다. 야 3당도 여론에 편승하여 대통령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 통합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대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고 거친 것이 부드러운 것을 이긴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틀린 말이다. 강은 또 다른 강을 불러 투쟁을 낳거나, 인류에게 불안만 더해주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이 힘이 되는 것은 그 속에는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과 진정성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청와대도 여야도, 트럼프 대통령도 유승강(柔勝剛)의 지혜를 깨닫기 바란다.
2016.11.10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Trend of Written Language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rend of Written LanguageCalligrapher Sangho Kwon The reason why works of art are precious is because it shows us the flow and culture of time most honestly. Calligraphy was a cutting-edge art that expressed the emotions of time through characters. So, calligraphy has faced the reality of time and led emotions in the highest position of all art genres. Calligraphers have enjoyed ‘literary power’ and represented accurately the epoch of philosophy and politics as well as literature and history. In the twentieth century, humanity suffered a great war two times, something that has never been heard of Liberal arts has been abandoned and only the importance of science and technology has been emphasized in order to take advantage of power. Pure economic justice to rescue the people is disappearing and is still rushing toward the endless peak of mammonism. In the 21st century, the development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will lead to the SNS era, and as the online world unfolds, the offline world begins to wane.During this process, we lost the brush or pen to a keyboard or keypad and lost the power to think to a computer.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hich emerged as a new topic in this century, is approaching very rapidly. I am going to find a new way of calligraphy while worrying about the fate of calligraphy to be thrown in the terrible waves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Industry and art are like two wings of a bird : industry is the reality of an imaginary world and art is a result of the imagination. So, industry and art can be said to be in a relationship.Klaus Schwab predicts economical, corporate, national and international, social and personal impacts by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Then what is the best policy for the future of calligraphy?First, the age of low growth and an aging society is now approaching. This is a rather nice chance for calligraphers to work.Second, the labor crisis must come back. Due to the automation, high-risk jobs has increased. There are also popular jobs such as social workers, choreographers, physicians, surgeons, HR (Human Relation) managers, etc. Calligraphers should find their way in HR.Third, i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comes, we must be concerned with the gender gap between men and women. However, calligraphy is an area where there is no gender gap.Fourth, disruptive innovation in calligraphy is needed. We should sincerely study to look for fresh ideas and innovative molding methods. This is not in a return to the past, but in a future-oriented attitude. Fifth, like all arts, calligraphy is primarily analogical. However, production, exhibition, and publicity should be digitized.Sixth, we have to live as an artist whose feelings, expressions, and emotions can not be followed by robots. You need to make the most of big data, cooperate with human sensibility, and live with robots.Seventh, calligraphy should utilize digital technology. Various calligraphy organizations should operate more transparently and sincerely. For example, online exhibitions are emerging as an alternative.Eighth, calligraphers should also try to form clusters and participate in the Mecenat movement.Finally, calligraphy rooms should be shared like cars to create synergy.In the age of acceleration, there is nothing happier than going slow. Enjoying slow art calligraphy is another way to happiness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Calligraphy is also a key to long living. As a smart calligrapher who can utilize ICT, One should actively be an 'approaching calligrapher', enjoying live calligraphy. It also adds fun to calligraphy by expanding the area with group calligraphy, performance calligraphy, event calligraphy, outdoor calligraphy, music calligraphy, dance calligraphy, and English calligraphy. I hope that a new epoch will take place in the calligraphical art world in this ubiquitous era based on information and technology.
2016.11.05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9 - 음악에서 배우는 정치- 협연하는 마음으로 협치를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9음악에서 배우는 정치- 협연하는 마음으로 협치를이른바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10월이 시리게 지나갔다. 남은 11월과 12월은 일일[11]이 국정 시비[12]를 가리느라 온 나라가 들썩일 전망이다. ‘11’이란 글자가 주는 이미지는 가지 하나 없는 먹통 나무 두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다. 그 누구도 없이 쓸쓸하게 서 있는 고독한 두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순실의 시대는 상실의 시대였다. 국격은 낙엽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어찌할거나. 다들 자괴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단다. 기대가 절망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전락하면 그 절망과 미움은 평상심에서 오는 절망과 미움보다 훨씬 더 크다. 환부는 아무리 도려내도 흉터는 남을 터.2016년 4/4분기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비선실세(祕線實勢)의 국정농단(國政壟斷)’이 아닐까. 비선실세란 ‘비공식적으로 비밀리에 연결되어있는 실제 권력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국정농단의 뜻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필자도 무너졌다. ‘국정을 농락(籠絡)하고 청와대 문고리를 단속(團束)한다’는 뜻에서 ‘농단(籠團)’으로 쓰거나, 나랏일을 굿판으로 생각하고 장난을 쳤으니 ‘희롱할 롱(弄)’ 자에, 세상과 소통을 끊었으니 ‘끊을 단(斷)’ 자를 써서 ‘농단(弄斷)’으로 쓰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해답은 에 있었다. ‘언덕 롱(壟)’ 자가 들어간 ‘농단(壟斷)’으로 쓰며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의 뜻이었다. 비선실세가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 곧, ‘농단(壟斷)’에서 독수리처럼 국정을 내려다보며 전횡(專橫)을 했으니 그럴듯하다. 비밀(祕密)이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비밀에 숨어있는 비밀을 캐 보기로 한다. 비밀의 첫째 비밀은 ‘비(祕)’와 ‘밀(密)’ 두 글자에 공통으로 ‘반드시 필(必)’ 자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밀을 만들 때의 양자의 처지에서 보면 비밀은 서로가 ‘반드시 지키자’고 약속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비밀은 만들었다면 무덤까지 꼭 가지고 가야 한다. 비밀의 둘째 비밀은 ‘귀신 비(祕)’ 자에 있다. 비밀은 아무리 밀봉해도 귀신은 훤히 다 알고 있으므로 이 글자를 쓴다. 비밀은 둘 중의 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거나 배신을 하면 귀신같이 세상에 밝혀지고 만다. 귀신 곡할 노릇이지만.그래서 인간은 ‘귀신 비(祕)’ 자가 무서워 ‘향기로울 비(秘)’ 자로 슬쩍 바꾸어, 비밀(祕密)을 비밀(秘密)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먹을거리[禾] 앞에서는 비밀의 성을 쉽게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다. 결국, 비밀은 언젠가는 들통나고 만다는 얘기다.다음은 비선(祕線)의 ‘선(線)’의 비밀을 열어보고자 한다. 서예에서는 ‘선(線)’이라는 단어 대신에 ‘획(劃)’을 주로 사용한다. 선은 평면적이지만 획은 입체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선은 ‘금’, ‘줄’, ‘실’ 등의 의미로 부피가 없지만, 획은 두께와 부피가 있는 단어이다. 선은 직선, 곡선이라 할 때처럼 두 면의 경계를 뜻하지만 ‘획(劃)’은 글씨나 그림에서 붓이나 칼로 그은 선이나 점을 일컬으며, 자획(字劃)이라고도 한다. ‘획(劃)’ 자를 보면, 붓의 전신은 칼임을 알 수 있다. 칼로 글자나 그림을 새긴다는 뜻이 되겠다. ‘획을 긋다’라는 말은 어떤 범위나 시기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다는 뜻이다.결과적으로 선은 획보다 약하여 지워지거나 끊어지기 쉽다. 아무리 비선이라 하더라도 끝내는 노출되고 마침내 끊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정에서는 선으로는 안 된다. 더구나 비선은 죽음이다. 적어도 획 자를 사용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어버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획기적(劃期的)인 안을 기획(企劃)하여 건설적이 방향으로 계획(計劃)을 세워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숨은 힘, 비선실세의 실체가 드러나자 이 땅의 단풍도 화려한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빛을 잃고 사라져 간다. 단풍의 단심(丹心)이 촛불로 화신(化身)한 것인가. 촛불집회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때 이후 8년 만의 일이다.10월의 마지막 날, 서울엔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내렸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의 촛불’이 넘실거렸음에도 날씨는 더 차고 바람까지 거들었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날, 외로운 사람에게는 스팸 메일도 반갑더라는 시인 친구의 말이 떠올라, 그와 함께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을 찾았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1953~)의 현란한 지휘 아래 펼쳐지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Mariinsky Theatre Orchestra)의 관현악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빚어내는 피아노 협주곡을 듣기 위해서다. 무대가 어두워졌다 밝아오면 관객의 박수와 함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속속 자신의 자리에 들어와 앉는다. 수석 오보에 주자의 가이드에 따라 모든 악기의 튜닝이 이어지고, 잠시 태고의 침묵이 흐른다. 기다림의 절정의 때에 악장 게르기예프가 만장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등장한다. 게르기예프는 필자와 비슷한 나이에다 이른바 소갈머리는 없고 주변머리만 있는 두상도 닮아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1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 D 장조, 작품 25 ‘고전 교향곡(1917)’으로 문을 열었다. 피아노 없이도 명확한 선율을 유지하며 15분 정도 진행되는 작은 교향곡이었다. 드디어 게르기예프가 선택한 협연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순서이다. 연주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 작품 35’. 그는 원주 출신의 순수 국내파이지만 한국 피아노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드높이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즐겼던 그는 젊은 나이에 책을 펴낸 음악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강렬한 타건에 환상적인 테크닉, 다져진 몸에서 터져 나오는 충일한 감성을 담은 연주로 순식간에 모든 관객의 마음은 빠져들고 말았다. 2부에서도 역시 프로코피예프 작곡의 ‘로미오와 줄리엣(1935)’ 모음곡을 연주했는데, 사랑의 스토리를 관현악기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러시아다운 너른 감성이 묻어났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나 영국 출신의 네빌 마리너(Neville Marriner)와 같은 지휘자는 지휘봉을 사용하는데, 게르기예프는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기다란 열 손가락이 모두 지휘봉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로 평가받는 게르기예프의 몸 가락에서 붓 가락을 느끼는 순간 어느덧 정규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 박수가 이어지고 있었다.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수십 명의 연주자가 일사불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도 가끔은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당, 정, 청, 군, 관, 민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룰 방법은 없을까. 하기야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마저 대선을 앞두고 클린턴과 트럼프 간에 요란한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오케스트라 민주주의는 마음속의 이상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 평화, 인권, 기회, 선거 등의 아름다운 세상, 정녕 민주주의가 고장 난 걸까.일찍이 고운 최치원이 가야산에 칩거하면서 홍류동 계곡 물소리로 저물어 가는 신라의 잡음을 막은 뜻을 알 만하다. 세상의 소음을 잠시나마 음악으로 막아 보고자 했으나 국기 문란 사태에서 오는 국민의 울분과 원성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함성이 되었다.이런 난국에 하룻저녁의 음악 감상을 청복(聽福)으로 치부하면 욕먹겠지.
2016.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