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숙명 그리고 행운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15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보다’라는 동사는 사전에 의하면 그 의미가 스무 가지가 넘는다. “나는 산을 본다.”에서 ‘보다(看, see)’라는 서술어는 주어 이외에 하나의 필수 성분을 더 요구하기 때문에 문법에서 ‘두 자리 서술어’라고 한다. 여기에서 주어가 ‘나’라고 할 때, 목적어는 내 눈으로 보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보는 대상은 동서남북, 전후좌우처럼 방향에 따라 원근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보다’를 포함하고 있는 서술어로는 ‘돌보다, 맞보다, 엿보다, 떠보다, 밉보다, 얕보다, 흉보다, 바라보다, 쳐다보다, 내다보다, 둘러보다, 가려보다, 가로보다, 노려보다, 쏘아보다, 칩떠보다, 훔쳐보다, 째려보다, 돌아보다, 돌이켜보다, 거들떠보다’ 등에서 보듯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자어도 있다. ‘목도하다, 관찰하다, 관람하다, 관망하다, 조망하다, 열람하다, 시찰하다, 전망하다’ 등은 물론 ‘좌고우면(左顧右眄)’ 또는 ‘좌우고면(左右顧眄)’도 있으니 이는 이쪽저쪽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앞뒤를 재고 망설임을 이르는 말이다.가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며 생각에 젖곤 한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위치다. 왜 눈이 입보다 위에 있을까? 이는 아마 많이 보고 적게 말하라는 뜻일 거야. 두 눈은 앞으로 붙어있지만 두 귀는 왜 양옆으로 붙어있을까? 두 눈으로는 옆도 뒤도 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며 가라는 뜻이고, 두 귀로는 양쪽의 서로 다른 의견을 균형 있게 들으라는 의미일 것이다.며칠 전 한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일어난 5중 추돌사고의 끔찍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사고 순간을 보는 순간 이른바 멘붕이 일어날 정도였다. 장래가 만 리 같은 20대 여성 4명이 소리도 못 지르고 죽어갔을 것을 생각하니 순간 어지럼증이 난다. 빠르게 달리던 관광버스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앞에 있던 승용차를 그대로 들이받는 장면으로 버스에 깔린 승용차들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관광버스 운전사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앞만 보고 달렸으면 사고는 없었을 텐데... 본의는 절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사고결과는 관광버스 기사가 살해(殺害)를 저지르고만 꼴이다. 살해는 남에게 끼치는 해 중에 가장 큰 해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기 때문이다.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것에 대한 관점은 예와 지금이 사뭇 다르다. 안연편에서 공자는 제자 안연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실천 조목으로 사물(四勿)을 제시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규제로 보기 쉬운데 따지고 보면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예만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예(禮)의 해석은 인(仁)의 실천 방법으로 보기도 하고, 사람이 본래 지녀야 할 예의와 법도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극기복례란 곧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와 법도를 따르는 마음을 회복하자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 공자의 사물(四勿)에 대하여 송(宋)나라 정이(程頤)는 사물잠(四勿箴)이란 잠언(箴言)을 지었다. 사물잠 중의 처음에 나오는 시잠(視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마음은 본래 형체가 없이 텅 비어 있는 것으로 사물을 마주함에 그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아 보존하는 요령이 있으니 보는 것이 법도가 된다. 물욕이 눈앞을 가리면 마음은 그리고 옮겨가니, 이것을 밖에서 통제하여 안에 있는 마음자리를 편안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예(자연의 섭리)를 따르면 오래도록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시잠의 내용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진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마디 붙이자면, 1분짜리 시잠을 읽지 않아 예가 아닌 것을 보고 물욕을 통제하지 못해 68년 검찰 역사상 현직 검사장의 첫 구속 사례를 남긴 진경준 검사장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옛날에는 ‘예(禮)만 보라’고 했는데, 오늘날은 봐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집안에서는 TV와 컴퓨터를 봐야 하고, 밖에서는 교통 신호등을 비롯한 무수한 경계선을 봐야 한다. 게다가 손안의 작은 스마트폰까지 수시로 살펴봐야 하니 현대인의 눈은 참으로 바쁘고 피곤하다. 이러하니 많은 현대인은 안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옛 그림에서 소나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며 독서를 하거나, 술에 취한 채 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즈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불법 운전 또는 음주 운전에 해당하겠지만, 나귀는 사이드미러도 핸들도 없는 미래형 차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옛날에는 천지인(天地人)을 보라고 가르쳤지만, 지금은 교육도 종교도 돈만 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선조는 ‘천문(天文), 지문(地文), 인문(人文)’의 가치를 중시하고 하늘, 자연, 인간은 공존해야 할 것으로 보았지만, 오늘날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는 지배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1등만을 미덕으로 생각하게 되고, 세상은 1등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과 갈등의 장으로 바뀌었다. 멀리 바라보는 것은 인공위성이 대신하고 인간은 손안의 스마트폰만 살피는 근시안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동물로 전락한 인간은 사소한 일에도 잘 흥분하고 살인과 폭행을 게임처럼 즐기며 테러와 전쟁에 광분하고 있다.IS에 의한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더니, 프랑스 니스에서는 끔찍한 트럭 테러가 발생했다. 자고 일어나니 이번에는 터키의 군부 쿠데타 소식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흔들리더니, 정치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점차 우경화되는 추세다. 세계 경제는 불황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남중국해 분쟁으로 인한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과의 갈등은 미·중간의 갈등으로 심화하고 있다.우리는 어떤가. 성주군이 사드 배치 반대 집회로 벌집같이 요란하더니, 북한은 미사일 3발로 사드를 겨냥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지금 지구촌은 매우 불안하다. 뉴스 보기가 두렵다. 이런 때일수록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묵묵히 내 갈 길을 가야겠다. 봐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비교 대상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울기보다 내일을 바라보며 웃어야 한다. 지난 잘못을 뉘우치며 한숨지을 것이 아니라 밝은 앞날을 내다보며 희망을 품어야 한다.날이 샌다. TV를 켤까 말까. 뉴스 채널로 돌릴까 말까.
2016.07.14
화신(火神)의 빛과 수신(水神)의 비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13화신(火神)의 빛과 수신(水神)의 비 ‘빛’과 ‘비’는 하늘에서 내린다. 신(神)은 우주를 주재하는 초인간적·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은 어떤 징표로써 자신의 존재를 상징하고 있는데 화신은 빛으로써, 수신은 비로써 자신의 모습을 느끼게 하고 있다. ‘빛’과 ‘비’는 삼라만상이 잘 자라도록 돕기 때문에 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먹고살 수 없다. 그리하여 인간은 ‘빛’과 ‘비’에게 경배를 올리고 그 행위를 일러 ‘빌다’라고 한다. 여기에서 ‘빛, 비, 빌다’ 등은 같은 단어가족으로 그 어원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비는 행위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빌면 남의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배고플 때 흔히 이웃에 양식을 빌러 다니는 행위가 그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 필수적인 빛과 비를 우리는 공짜로 사용한다. 하지만 빛과 비는 결코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빛을 주관하는 해님과 비를 주관하는 용왕님께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둘째는 빈다는 것은 소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다. 복을 빌고, 성공을 비는 따위가 그것인데 항상 깨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는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며 사과하는 행위이다. 우리 속담에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라는 말이 있다. 잘못을 사과하고 진정으로 빌면 아무리 완고한 사람이라도 용서하게 마련이다. 폭폭 찌던 폭염 뒤에 며칠간 폭우가 이어졌다. 그것도 장맛비 중의 폭우다. 폭우 중에서도 집중호우를 물 폭탄이라 하는 걸 보면 현대인은 자연현상도 전쟁으로 볼 만큼 위기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 무더위에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자다가 이마에 잔 빗방울이 떨어져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바람이 세차게 불고 큰비가 내렸나 보다. TV를 켜자 IS 자살 폭탄 테러 소식이 흉흉하게 들려오고 남쪽에서는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다.불과 며칠 전만 해도 중부지방은 ‘마른장마’라 하더니, 알고 보니 마른장마가 아니라 말은 장마였다. 장마라는 말 자체가 여름철에 많은 비가 계속해서 내린다는 뜻이니 ‘마른’이라는 수식어는 애초 어법에 맞지 않다고 본다. 기상예보가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놓은 예비 단어인가. 마른장마가 맞는 말이라면 젖은장마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장마’의 ‘장’이 ‘길다[長]’의 뜻일 터이니, ‘마’는 아마 ‘여름의 마파람과 함께 내리는 비’라는 뜻이 아닐까. 뱃사람들은 남쪽을 ‘마’라 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마파람’이라 한다. 장마를 가리키는 말에 임우(霖雨), 음우(霪雨, 陰雨), 매우(梅雨), 장우(長雨), 구우(久雨) 등이 있는 걸 보면, 장마의 종류가 많기도 하다. 이는 장마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면서도 그때마다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임우는 숲까지 씻어주는 가뭄 끝의 장마이나, 음우는 어감으로 볼 때 피해가 큰 답답한 장마이다. 매우는 매실이 익을 무렵의 장마로 길지 않은 낭만적인 장마이나, 장우와 구우는 이름처럼 길고 지루한 장마로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장마이다.겨울의 삼한사온(三寒四溫)처럼 며칠간의 장마 끝에 다시 햇살이 나왔다. 장마 ‘빗줄기’ 대신에 햇살 ‘빛줄기’가 아름답기만 하다. 풍년을 위해서는 갈마드는 빗줄기와 빛줄기가 고마울 뿐이다. 빛줄기의 조명을 받은 북한산 자락이 아직 빗기를 머금은 탓에 상큼하게 빛난다. 나도 모르게 백운대에 하이파이브하고 두 손을 모은다. 기도를 위해 손을 비비는 행위가 비굴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순간 창세기 1장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선조는 하늘에서 내리비치는 빛, 빛살 또는 햇살을 문자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처음에는 가늘고 기다란 작대기 모양의 ‘통할 곤(丨)’ 자로 표현했었다. 그런데 빛이 점차 신격화되면서 햇살은 ‘곤(丨)→ 신(申) → 신(神)’의 단계를 거치면서 신(神, god)으로 완성된다.곤(丨)의 첫 변화는 신(申)이었다. ‘신(申)’ 자는 먹구름을 뚫고 터져 나오는 번개 빛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천둥과 번개가 가장 심한 음력 7월을 신월(申月)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고 보면 신(申) 자는 낯 뜨거울 정도로 절묘한 음양 교합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중에 번개의 뜻은 전(電) 자로 대신하고, 신(申)은 그대로 ‘빛’이나 ‘신’의 뜻을 지키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빛의 형상은 ‘신(神)’으로 탄생한다. 이 글자는 시(示)와 신(申)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보일 시(示)’ 자의 갑골문 형태는 ‘높은 제단’을 가리켰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에서 내리비치는 햇살 세 줄기로 보인다. ‘빌 축(祝)’, ‘빌 기(祈)’, ‘빌 도(禱)’, ‘참선 선(禪)’, ‘보일 시(視)’ 등의 글자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시(示) 자는 ‘위[亠]’에서 지상으로 삼광(三光)이 내리 비치는 모양이다. 여기서 삼광은 햇빛, 달빛, 별빛을 가리킨다. 삼광을 구체적으로 일월성신(日月星辰) 또는 일월성수(日月星宿)라 하는데, 일월성(日月星)이라 해도 될 것을 언어 관습상 사자성어로 만들기를 좋아하여 만든 말이다. 그중에서도 수효가 많은 별만을 성수 또는 성신으로 나타낸 것이 재미있다. 신은 빛으로 보이니 언제나 밝다. 그래서 천지신명(天地神明)이라 하는 것이다.건축에서 상량문에는 ‘빛’과 ‘비’가 공존한다. 빛의 신인 삼광(三光)에게 인간의 오복(五福)을 기원하며, 비의 신인 용(龍)과 거북[龜]에게 화마(火魔)로부터 집을 보호해 달라는 소망을 적고 있다. 거북은 신령한 동물로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귀(龜)/라고 발음해야 옳다.여러 사람 중에 빛나는 사람을 ‘스타’라고 한다. 별빛이다. 북녘에는 오직 한 사람을 신격화하여 ‘태양’만이 존재한다. 그곳에서는 달빛과 별빛은 무색하다.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빛과 비다. 빛과 비는 발음도 비슷하지만 ‘빌어야’ 할 기원의 대상이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알맞은 빛과 비가 내려야 함은 절대적이다. 뭐든 지나치면 ‘폭’이다. 빛이 지나치면 폭염이요, 비가 지나치면 폭우가 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순풍조(雨順風調)를 대문에 써 붙이기도 한다. 빛을 숭배하는 것은 아마 인류 공통일 것이다. 우리말의 ‘빛’, ‘비치다’, ‘불’, ‘붉다’, ‘밝다’, ‘봉화(烽火)’, ‘백(白)’ 등의 단어의 공통점은 ‘ㅂ’으로 시작한다는 데에 있다. 영어의 브라이트(bright)까지 들이대면 지나친 억측이겠지. 올가을에는 볕 좋은 마당에 벼를 말리고 싶다.신에게든 인간에게든 비는 행위 그 자체로는 돈이 들지 않고, 빌면 소원대로 이루어지며, 지난 잘못까지도 용서되니, 이보다 더 복된 일이 어디 있으랴.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두 손 모아 비옵나니, 부디 지구를 살리시고 이 땅에 평화를 내려 주옵소서.”
2016.07.07
성(性)이 성났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12성(性)이 성났다음성언어인 말과 문자언어인 글의 변화를 보면 세상의 흐름이 보인다. 일찍이 ‘성(性)’에 따라붙는 말은 으레 ‘도덕, 윤리’와 같은 것이어서 ‘성도덕, 성윤리’라는 말이 그만큼 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래서 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성은 신비롭고 성(聖)스러운 영역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추문’, ‘추행’이나 ‘폭행’, ‘폭력’과 같은 끔찍한 단어가 ‘성(性)’ 자 뒤에 따라붙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성이 섹스라는 야한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신문, 잡지는 물론 스마트폰과 컴퓨터 속까지 아예 점령해 버린 듯한 느낌이다. 모니터 주변의 발칙한 사진들은 온통 성(性) 지뢰밭이다. 마우스를 갖다 대는 순간 야동과 야사가 터지고 만다.추문(醜聞)은 ‘추근’거리며 행하는 ‘추잡’한 소문이고, 추행(醜行)은 순간의 자극을 ‘추구’하다가 영원히 ‘추락’하게 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폭행(暴行)은 난폭한 행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강간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폭력(暴力)이란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물리적 힘을 이용하여 신체적 손상까지 입히는 경우를 뜻한다. ‘여교사 성폭행’,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성폭행 연예인’, ‘고교생 집단 성폭행’, ‘장애인 상습 성폭행’, ‘몰카족’ 등의 뉴스 타이틀을 보면 성 문제에 있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모두 직업이나 계층, 나이와는 무관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부터 특정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전자발찌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범인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직장 안에서는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하고, 개인적으로는 순간적 실수 정도로 인식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물론 정신질환자라면 치료를 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격리수용을 해야 마땅하다.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성(性)은 본래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성품 곧, 마음 바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맹자는 마음 바탕은 선천적으로 착하다고 보고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하지만 성이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가리키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자 유교 사회에서는 성을 금기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성에 대하여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되었다. 성에 대한 가르침은 없이 감추는 것만 미덕으로 생각해 온 것이 더 큰 문제였다.누구나 성장하면서 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스스로 깨닫게 되지만 실은 눈높이에 맞는 '성 건강' 도우미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가정에서는 성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하긴 하지만 쏟아지는 음란물과 무분별한 성 정보 등으로 인하여 성의 쾌락적이고 자극적인 측면만 드러나고 위기 대처 방법은 모르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성 지식을 바로잡아 주고 행복한 성문화 운동을 펼치고자 지난달 한국에이즈퇴치연맹(대표 권동석)에서는 서울시 성북구에 한국성교육센터를 설립하고 문을 열었다. 여기에서는 누구든지 성교육을 받을 수 있고, 기구를 통하여 임신과 출산 및 육아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면 나올 때는 성에 대하여 똑똑해진다는 의미에서 ‘똑똑 성교육관’이라 이름 붙였다. 또 성은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 성인 등 누구나 주위의 또래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특성이 있으므로 센터에서는 ‘또래 지킴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모든 언어는 발음이 서로 같으면 의미도 서로 통한다. 특히 우리말과 한자는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음통의통(音通義通)이라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지/라는 발음에는 ‘지탱’의 의미가 담겨있다. ‘땅 지(地)’는 하늘을 지탱하고, ‘종이 지(紙)’는 붓을 지탱하며, ‘못 지(池)’는 물을 지탱하는 등의 예를 보면 음통의통이 확실해진다. 이처럼 ‘섹스’를 뜻하는 /성(性)/도 발음을 같이하는 다른 글자들을 통하여 성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다.첫째, 성(性)은 신비롭고 고결하다. 그래서 ‘성스러울 성(聖)’과 통한다. 둘째, 그러면서도 성은 별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별 성(星)’과 통한다.셋째, 성은 성스럽고 아름답기에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살필 성(省)’과 통한다.넷째, 이토록 고귀한 성은 평생 정성으로 잘 가꿔야 한다. 그래서 ‘정성 성(誠)’과 통한다. 다섯째, 성은 고귀하기에 성처럼 든든하게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성 성(城)’과 통한다.여섯째, 굳게 지켜야 할 성이지만 ‘성숙한 인간’ 곧, 성인(成人)에게만은 허락된다. 그래서 ‘이룰 성(成)’과 통한다.일곱째, 하지만 성의 원초적 의의는 혈통을 잇는 데 있다. 그래서 ‘성 성(姓, family name)’과 통한다. 성(性)은 글자 모양에서 보듯이 마음에서 돋아난다. 성(性)에 눈뜨는 것도 마음에서 비롯하고, 사랑을 나눔도 마음에서 비롯한다. 사랑의 결실로 결혼하고 2세가 태어나면 부모로부터 성(姓)을 받는다. ‘앞으로 담배를 피우면 성을 갈겠다’에서 보듯이 우리는 굳은 결심을 할 때 성을 담보로 말한다. ‘성 성(姓)’ 자를 보면 모계사회에서 생겨난 글자가 아닌가 한다.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에 의해 남녀가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을 수용하는 쪽은 여성이다. 사랑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깊이 생각하여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과 통한다.정상이 아닌 성욕을 가졌거나 성적으로 이상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켜 ‘변태(變態)’라고도 한다. 변태란 동물이 알에서 부화해서 성체(成體)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일, 곧, 탈바꿈을 가리킨다. 인간 변태는 한마디로 비정상이란 얘기니 미리 경계해야 한다.그러면 성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생각 사(思)’ 자에 그 해답이 있다. 사(思)는 원래 ‘정수리 신(囟)’ 밑에 ‘마음 심(心)’을 더한 글자였는데, 예서 시대가 되면서 신(囟)이 전(田)으로 바뀌었다.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과, 가슴에서 나오는 ‘의지’가 결합될 때 진정한 사(思)가 된다. 문제는 생각만 하고 의지가 없어도 안 되고, 의지만 있고 생각이 없어도 문제가 된다. 생각은 올바른 방향을 낳고, 의지는 꾸준한 노력을 낳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만년에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이나 걸렸다”라고 고백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이 맞나 보다.무더운 여름, 노출의 계절에 남녀 간에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농담을 주고받겠지만 신중하지 못하면 성이 성낼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성폭행을 예방을 위한 단어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추천한다. 한 호흡 멈추고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성폭행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2016.06.30
塗丁書藝 九訣九則(도정서예 9결9칙, 9 Secrets & 9 Principles of Dojung Calligraphy )
塗丁書藝 九訣九則(머리의 ‘생각’과 가슴의 ‘의지’가 일치하는 서예)思 = 囟 → 心(머리에서 가슴까지) 1. 基本九則- 運轉과 運筆 ① 起筆 收筆 ② 提筆 按筆 ③ 藏鋒 露鋒 ④ 圓方 轉折 ⑤ 中鋒 側鋒 ⑥ 推拉 向背 ⑦ 輕重 遲速 ⑧ 垂露 懸針 ⑨ 永字 八法 2. 不怯- 붓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3. 不擇- 처음에는 시간, 공간은 물론 도구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4. 讀書- 좋은 글씨를 자주 보고, 정확히 파악하는 습관을 가진다. 5. 樂書- 좋은 글씨를 많이 보고 용기를 내어 즐기면서 써야 한다. 6. 記錄-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적자생존! 이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7. 作文- 평소에 하는 말을 글로 옮겨본다. 자신의 기쁨이자 역사의 기록이다. 8. 下心-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풍운이 일고 가끔 무지개도 뜬다. 9. 健康- 몸이 붓이다. 건강한 몸에서 좋은 글씨가 나온다.
2016.06.26
공항(空港) 입지 선정 두고, 영남권은 공황(恐慌) 장애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11공항(空港) 입지 선정 두고, 영남권은 공황(恐慌) 장애- 구공항 확장하면 신공항 건설인가 지난 21일 오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또다시 백지화되고, 대신 기존의 김해공항을 대폭 확장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아온 프랑스 파리공항 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회’를 열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입지 선정을 두고 대구, 울산, 경남, 경북 등은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지지해 왔었다.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는 출정을 앞둔 전사들처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심리전까지 펼쳤다. 그도 그럴 것이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표를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선 약속, 후 폐기의 모습은 두 대통령이 판박이다.정치가의 공적인 공약(公約)인지 정치꾼들의 허황한 공약(空約)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대선 공약이자 그것도 두 차례의 같은 약속이었기에 철통같이 믿었지만, 결국은 약속은 무산되고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공약이라면 공황장애가 일어날 판이니,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을 것 같다. 약속한 공항은 ‘부질없다’는 뜻의 ‘빌 공(空)’ 자 공항(空港) 약속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쉬움은 인천국제공항과 같은 훌륭한 공항을 일궈낸 나라에서 국내 전문가에게 평가 용역을 맡기지 못하고 외국에 의뢰했다는 점이다. 만약 어느 한 지역이 지정되었을 때, 소외된 다른 지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 출신 국회의원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상대편의 의견이 옳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표(票)를 목표(目標)로 한, 지역 이기주의 탓이리라. 이번 일은 처음부터 잘못된 계획으로 보인다. 누가 봐도 밀양과 가덕도 중간에 있는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면 무탈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공항(空港)’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이다. 영어의 ‘air(空)+port(港)’를 그대로 한자로 대치한 말이다. 중국에서는 자존심을 살려 ‘지창(机场)’으로, 북한에서는 항공역(港空驛)으로 쓰고 있다. 우리는 품위 유지를 위해 비행장(飛行場)이라 해야 하나? 풍성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어느 걸 사용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날 비(飛)’ 자의 전서 형태를 보면 ‘아닐 비(非)’ 자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비(非) 자의 전서 형태를 보면 새가 날기 위해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본래 하늘을 나는 일이란 새나 할 수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비행(飛行)은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비행(非行)으로 생각했다.1987년의 KAL기 폭파 사건, 1993년의 목포공항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1997년의 괌공항 추락사고, 2002년의 김해공항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등을 생각하면 비행에 대한 회의에 젖기도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꾸준히 하늘길을 열어가고 있다. 영종도에 새로 국제공항이 들어설 때, ‘인천공항’과 ‘세종공항’이라는 두 명칭을 두고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인천공항(仁川空港)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仁)’ 자에는 '사람, 하늘, 땅'이 들어있고, ‘천(川)’자는 영락없는 '활주로' 모습이니, 인천(仁川)은 숫제 공항 이름이 되기 위해 태어난 고유명사로 보인다. 그렇다면 ‘밀양(密陽)’은 ‘은밀(隱密)한 양지(陽地)’이니 건강이나 연구 센터로 어울리는 지명이고, ‘가덕도(加德島)’는 ‘덕을 더하는 섬’이므로 휴양이나 연수원 센터로 어울리는 지명이 아닌가? 1992년 서해 한가운데에 있는 영종도에 신공항을 건설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지반침하, 안개와 철새 등의 이유를 들어 그 가능성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2001년 개항한 이래 지금까지 인천국제공항은 세계항공업계상 유례없는 성공적인 공항으로 인식되고, 또 공항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Airport Service Quality)’에서 사상 처음으로 11년 연속 세계 1위로 선정되는 귀염을 토했다. 인천공항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이제는 동북아 허브공항을 지나 세계의 허브공항이 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마침 붓을 즐겨 잡는 필자에게 총사업비 4조 2천억 원 규모의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상량문을 짓고 쓰는 일이 떨어졌다. 약속의 땅 영종도 하늘길 연 인천공항혁신과 도전으로 세계 일등 일구었네.여객 물류 운송으로 국가 경제 선도하고이제는 동북아 넘어 지구촌 허브공항. 최고의 시설과 최상의 서비스로세계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온 국민의 정성과 공항가족 염원 담아오늘도 하늘과 땅을 행복하게 잇습니다. 땀과 지혜로 쌓아갈 명성과 신뢰더 안전한 공항, 더 편리한 공항,더 빠른 공항으로 거듭나기 위하여내일도 이 터전에 새 역사 펼치리. 제2여객터미널 공사 알차게 추진하여마침내 상량함을 하느님께 고하오니하늘에선 일월성신 삼광이 비치고땅에서는 인류에게 오복이 임하리. 2017년 제2 여객터미널이 완공되면 그때는 동북아의 허브공항에서 세계의 허브공항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한다. 공항(空港) 입지 선정을 두고, 지금 영남권은 공황(恐慌)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구공항 확장이 신공항 건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죽 답답했으면 정부에서 이런 변명을 할까. 국론이 분열되더라도 우리는 하나다. 지역을 사랑하되 지역이기주의는 막아야 한다. 비움과 나눔, 양보와 화합으로 공생의 길을 열어 함께 비상(飛
2016.06.17
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10 - 먹빛 피부, 핏빛 인생, 알리여 안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10먹빛 피부, 핏빛 인생, 알리여 안녕! 한 인간의 치열한 삶은 본인에게는 아픔이지만 남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감동은 선한 죽음으로 극대화된다.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화를 주는 게 아니라 시련을 주는가 보다. 어쩌면 시련이란 이를 극복할만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시련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들지만, 평화는 장군을 질식하게 한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임진왜란이 기회였고, 넬슨 제독에게는 트래펄가 해전이 선물이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불세출의 미국의 천재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지난 3일, 향년 74세를 일기(一期)로 멀고 긴 하늘 여행길에 올랐다. 전설이 된 복서 알리의 장례식은 10일 그의 고향인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치러졌다. 고인의 뜻에 따라 이슬람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종교, 인종, 성별을 따지지 않고 공개행사로 열렸다. 32년간 병마와 싸우다 하늘의 부름을 받은 알리를 추모하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치가,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비롯한 유명 스포츠인,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비롯한 유명 배우 등 1만 4,000여 명이 참석했고 노제에는 10만여 명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종교를 초월하고 국적조차 극복하고자 했던 복서 알리는 여성들도 다 알리라. 알리가 알리는 메시지는 ‘먹빛 피부를 깨닫는 순간 삶은 치열했고, 투쟁의 핏빛 인생 뒤에 오는 아픔은 너무나 길었다.’라는 것이다. 인종 차별에서 오는 울분은 주먹과 독설로 삼키고 그것도 모자라 알리는 결국 알라신을 찾게 된다. 그리고 병은 길었고 죽음은 빨리 왔다. 그 엄청난 영욕과 갈등 속에 이어진 인생 후반부의 아픔을 그 누가 알리.이제 하늘 복서가 된 알리. 미국 최초의 먹빛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백악관 성명에서 “알리는 링 위에서는 투사였고, 마이크 앞에서는 훌륭한 시인이었으며,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인물”로 평가했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흑인 인권운동을 위해서도 기여한 바가 크다”라고 회고하였다. 뜬금없는 얘기, 하나다. 붓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의 문방사우(文房四友)가 필요하다. 글 쓰는 일은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에 모두 물건이지만 인격화하여 문방사우라 부른다. 옛날에는 이를 통하여 명예도 쌓고 실리를 챙길 수 있었기에 문방사보(文房四寶)라 칭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제자들에게 물어보면 붓 또는 종이를 든다. 틀렸다. 먹이 가장 중요하다. 벼루는 먹이 빛을 낼 수 있도록 먹을 갈기 위해 존재하고, 붓은 먹을 옮기는 도구이며, 종이는 먹을 안고 빛을 내는 먹빛 창고일 뿐이다. 붓털과 종이가 흰빛이라고 더 좋아해서는 안 된다. 비록 검지만 먹빛은 영원하다. 인류의 고향은 아프리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향 사람들의 피부가 검다는 사실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먹빛 아프리카 사람들은 온 인류의 종손(宗孫)이다. 비유하자면 인조 보석이 아닌 자연산 흑진주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지구온난화가 뭔지 모르지만 이를 막기 위해 난개발을 하거나 화석연료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강 유역의 숲을 지키는 종족이나 남태평양의 마오리족 등은 모두 양식(養殖) 인간도 양식(洋式) 인간도 아닌 순수 자연산(自然産) 인간이다. 못사는 미개한 민족이 아니라 폭식을 거부한 청정한 인간이다. 천재 복서 알리는 1942년 미국 켄터키에서 자연산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살던 곳은 인종차별이 특히 심한 곳으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는 늘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으며, 이것이 자존심 강한 알리를 만들었다.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했다.”12세에 권투를 시작한 그는 1960년 미국 대표로 로마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한다. “내가 인식할 수 있고 내 마음이 믿는다면 나는 그걸 달성할 수 있다.” 알리는 미국의 영웅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금메달로 국위를 선양했음에도 동네 햄버거 가게에서 인종차별로 쫓겨나는 일을 겪는다. 이에 울분을 느낀 알리는 즉시 오하이오 강에 달려가 금메달을 미련 없이 던져버린다. “강물은 흑백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돌아와 ‘프로 복서’로서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간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을 포기할 때 당신은 패배한 것이다.”이때 그는 이슬람교에 입교하고 노예 이름인 케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를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찬양받는 사람, Muhammad Ali)’로 개명하기에 이른다. 알리는 뛰어난 반사신경과 예리한 공격기술에다, 상대를 자극하고 대중을 열광하게 하는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드디어 1964년 첫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고는 미국의 대표라는 환상을 깨고 세계의 최고 복서로 재탄생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때릴 수는 없다. (Float like a butterfly, string like a bee, You can't hit what your eyes don't see)”라는 말은 그의 평생 좌우명이었다.하지만 시련은 이어졌다. 알리는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였다. “베트콩은 나를 검둥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총을 들이댈 이유가 없다.” 이 명쾌한 신념이 반전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3년 6개월간 링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나이가 생명인 선수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역경을 뚫고 마침내 그는 통산전적 61전 56승 5패 37KO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세 번이나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유일한 복싱 영웅이 된다. 그러나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 했던가. 1981년 그는 마침내 은퇴선언을 한다. 운명의 장난인가 숙명의 굴레인가. 행복도 잠시 은퇴 3년 만에 그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무려 32년 동안 병마와 싸우게 된다. 2014년 12월에는 폐렴, 이듬해 1월에는 요로 감염 등 각종 질병으로 편치 않은 삶을 살게 된다. 나비와 벌을 닮은 그도 서서히 변해갔다. 말이 점점 느려지고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표정마저도 사라져 갔다. 선수 시절의 뇌 충격 탓인가. 어쩌다 아픈 그가 행사장에 나타나면 넥타이부대는 어김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다. 이제 더는 정치적인 눈치 박수가 아니라 먹빛 피부에 핏빛 인생을 살다 간 전설의 복서 알리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박수이길 바란다. 이 세상의 자리를 비우고 떠나는 그에게, 나는 그의 어록을 적어 만장을 대신하고자 한다. 평등과 자유를 위해 두 주먹 불끈 쥐었던 알리여, 이젠 투쟁 없는 안식의 세계로 잘 가소. 먹을 갈 때는 아리랑인지 ‘알리랑’인지 구분되지 않는 노래가 머뭇거리더니, 그의 야멸찬 명언을 마주하는 순간 붓끝에서는 먹물이 눈물 되어 흐르고 코끝에서는 그의 고향 민요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이 터져 나온다.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저 새는 긴 날을 노래 부를 때 옥수수는 벌써 익었다.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 세상을 모르고 노나.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 옛집.잘 쉬어라 쉬어, 울지 말고 쉬어.그리운 저 켄터키 옛집 위하여 머나먼 집 노래를 부르네.
2016.06.17
경기도 파주시 정와마을 상량문 쓰기
대한민국 대표 한옥마을을 7년째 조성 중이다.경의를 표한다.
2016.06.16
경기도 파주시 정와마을 상량문 쓰기
대한민국 대표 한옥마을을 7년째 조성 중이다.경의를 표한다.
2016.06.16
제7회 아동 청소년 풍덩미술대회
2016. 5. 26(토)나눔의 학교 보람의 교실, 풍덩예술학교큰 뜻의 작은 학교, 풍덩예술학교 주최의제7회 아동청소년 풍덩미술사생대회가서울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실시되었다.지구촌청소년연맹과 아청안전지도사협회 후원으로 치러졌다.특히 개인적으로 큰 성금을 기탁해 주신 분들과주먹밥 및 음료수 등을 협찬해 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특히 귀한 시간을 내어 재능 기부와 노력 봉사를 해 주신풍덩을 사랑하는 분들께 고마움의 뜻을 전합니다.또 있네요.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들에게도...심사를 거쳐 전시회 및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입니다.
2016.06.16
7월호 '소림사' 無爲經行(무위경행)
無爲經行(무위경행) 無爲閑道人(무위한도인) 행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여 在處無蹤跡(재처무종적) 어디 있으나 그 자취가 없도다. 經行聲色裏(경행성색리) 경행이 소리나 빛 속에 있어도,聲色外威儀(성색외위의) 소리 빛 밖의 위의를 보이도다. 해인총림 방장이신 벽산원각(碧山源覺) 대종사께서 2016년 하안거 결제 법어에서 문을 연 게송이다. 앞 구절의 키워드는 무위(無爲)이고 뒤 구절의 키워드는 경행(經行)이다. 그래서 제목을 ‘無爲經行(무위경행)’으로 붙여 보았다. 1행은 ‘무위(無爲)’ 속에 한가롭게 지내는 ‘도인(道人)’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탈속한 도인은 불도를 깨달은 고승(高僧)이다. 무위라는 말의 세속적인 뜻은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예에서 보듯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부정적 의미이다. 도가(道家)에서의 무위는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두어 일체의 인위적인 행위를 더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불가(佛家)에서의 무위는 현상을 초월하여 생멸(生滅)의 변화가 없는 불변의 진리를 뜻한다. 곧 1행에서는 영원한 불법의 진리를 깨달은 허허로운 도인을 만날 수 있다. 2행에서는 무위도인(無爲道人)의 절대적 존재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마디로 무위도인은 자신의 거취는 물론 깨달음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머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3, 4행은 무위도인의 행동 양식에 대한 구체적 예시라 할 수 있다. ‘경행(經行)’은 일정한 장소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님을 뜻한다. 예컨대 공양을 마친 뒤나 피곤할 때, 또는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경우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하는 일을 경행이라 한다. 경행하면서 경전을 독송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사부대중(四部大衆)의 정진이나 중생(衆生)의 건안을 기원할 수도 있겠다. 경행(經行)을 경학에 밝고 행실이 착하다는 의미의 경명행수(經明行修)의 약자로 보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그렇게 본다면 선승의 수도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성색(聲色)의 표면적 의미는 말소리와 얼굴빛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수행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 번뇌를 가리킨다. 경행에는 반드시 성색이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무위도인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무위도인의 경행은 성색을 승화한 위의(威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란 성불하기까지의 수행상의 규범이다.잠시나마 문자의 감옥 속에서 고생하지 않으셨나요? 생멸이 없는 불변의 진리, 무위와 함께 경행하시죠. 이른바 無爲經行(무위경행).
2016.06.14
작호 - 창전 태천만, 치곡 신동만
강원도 양구에 볼일이 있어태천만 아프리카 관장과 KBS 신동만 PD와 함께 다녀왔다.요즘 방송에 많이 뜨고 있는화천 느릅나무 마을 촌장이신 명재승님의 '솔마루'에 들러동서양이 만난 신개념의 멋진 한옥 체험과 맛있는 산채 식사 대접도 받았다.감사합니다.마침 대화 속에 태 관장과 신 PD의 호를 지어 보았다.솔마루 먹방에서 즉흥적으로 써 보는데...창전(蒼田) 태천만 아프리카 박물관 관장님치곡(鴟谷) 신동만 PD 솔개 박사님즐거웠어요.
2016.06.14
The Stone 배중섭전
방송 광고 간판 책제호 등의 많은 글씨를 써 왔습니다.
이번의 배중섭전의 타이틀 the stone도 기분 좋게 썼었습니다.
끊임없는 찰나의 연속성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돌처럼 원만하면서도 다부진 전시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돌맛이 나게 써 보았습니다.
타이틀 작품을 보니, 멋지네요.
저도 열심히 홍보하겠습니다.
의미있는 전시회를 거듭 기원합니다. 권상호 배상 유튜브 '권상호'
blog '말과 글로 세상보기'
homepage '도정 권상호의 먹울림' (www.dojung.net )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