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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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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선용으로 얻은 결실 (KBS 근로자미술제 서예 부문 심사평)

여가 선용으로 얻은 결실  서예분과 심사위원장 도정(塗丁) 권상호(權相浩)국가 산업의 주춧돌로서 주야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틈틈이 붓을 잡고 예술 활동을 펼쳐, 마침내 땀방울을 먹방울로 열매 맺은 출품자 여러분께 갈채를 보냅니다. 그러니까 각박한 삶 속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는 여러분은 어쩌면 낭만파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융합문화의 선두 주자인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이 여러분의 일과 예술 활동을 본다면 ‘과연 풍류 민족으로서 풍류지도(風流之道)를 지키고 있구나’라고 감탄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스마트폰이 탄생하면서 인류는 ‘쓰기 시대(writing age)’에서 ‘누름 시대(tapping age)’로 바뀌는, 문자 생활의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편리한 볼펜조차도 가지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준비와 절차가 복잡하고 오랜 수련을 요구하는 서예에서 동양 미학의 정수를 찾는 여러분이야말로 이 땅의 진정한 문화 지킴이라 부르고 싶습니다.이번 38회 근로자미술제 심사에서는, 많은 출품작 중에서 한문·한글·문인화·캘리그라피까지 합쳐서 22점만을 입상작으로 뽑아야 한다는 극히 좁은 선발 기준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되도록이면 부문별 출품 수에 비례하여 선별할 것을 약속하고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전체 작품 수준을 둘러보면서 좋은 작품일지라도 오·탈자가 있으면 내용을 모르고 썼거나 무성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선택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여러 작품을 출품했을 때에는 잘 쓴 하나만을 골라서 경선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출품 시차를 달리하기도 하고, 장르를 바꿔가며 여기저기에 출품한 사람이 있어 다소 혼선이 일어나기도 했답니다. 기록경기가 아닌 작품 심사는 심사위원의 미적 기준과 심미안에 따라 등위가 바뀔 수도 있는데, 이날은 놀랍게도 시종일관 큰 이견(異見) 없이 순조롭게 합의 심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본 행사에 대한 더 큰 호응을 기대하며 심사 과정을 말씀드립니다. 우선 응모 작품이 타 공모전에 출품했는지의 여부 확인, 응모 작품의 예술성과 창작성을 기준으로 하되, 획법·자법·장법 등의 기본을 지켰는지 살폈습니다. 장법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억지로 종이에 글자를 나눠 쓴 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몸에 맞는 옷을 골라야 하는데, 옷에 맞는 몸을 만드느라 고생한 격이지요. 그리고 낙관문을 쓰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글자의 크기 및 위치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명인과 호인의 처리에서도 미숙함이 더러 노출되었습니다.물론 금상, 은상, 동상 권에 들어가려면 이러한 여러 조건 외에도 필력과 독창성과 함께 좋은 문장과 먹빛도 뛰어나야 하므로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나마 부문별 최고 작품은 위의 조건들을 잘 충족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금상에 선정된 단연 서필숙 씨의 궁체 정자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입니다’는 정교하면서도 유려함을 잃지 않은 수작이었습니다. 은상에 선정된 효천 전재규 씨의 이백 시 ‘초서가행(草書歌行)’은 핵심 어구를 부각한 장법이 남다르고 북위 해서를 바탕으로 한 개성적 서체에 진지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문인화 부문과 캘리그라피 부문은 출품 수가 적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출품작 비율로 보면 한문이 절대적으로 많았고 수준 또한 높았습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입상작에도 많이 선발되었습니다. 한글은 출품 수는 적어도 뛰어난 작품이 많아 선별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문인화 부문에서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더러 있었지만, 화제에 약점이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캘리그라피 부문은 개인차가 상대적으로 심했으며,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배경 그림에 가려 주제가 혼돈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많은 낙선자에게 ‘패배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평소 좋은 글과 잦은 붓질을 통한 자기 수련에 더욱 매진하시길 기원합니다. 2017. 9. 25.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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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仙臺(금선대)

은 海左(해좌) 丁範祖(정범조) 先生 文集으로 시, ‘錦仙臺(금선대)’는 卷之五에 나오는 詩이다. 1867년 간행. 舊洞非難辨 (구동비난변) 옛 마을을 알아보기는 어렵지는 않으나羣峰更覺幽 (군봉갱각유) 뭇 봉우리가 숨어있음을 새삼 깨달았네.石靈如欲響 (석령여욕향) 신령스런 돌들은 울리는 듯하지만 潭定不爲流 (담정不위류) 고요한 연못은 흐르는 듯 마는 듯.無愧基川守 (무괴기천수) 부끄럼 없이 금선대는 基川을 지키고堪傳甲午秋 (감전갑오추) 늠름하게 갑오년의 가을 알리고 있네.吾猶有餘恨 (오유유여한) 내 오히려 세상에 여한이 있지만差却錦翁遊 (차각금옹유) 금선대에서 노니는 늙은이가 되려네. * 基川(기천): 경상도 풍기군(豐基郡)의 조선 초기 때 이름. 태종(太宗) 13년(1413)에 기주현(基州縣)을 고친 이름으로, 문종(文宗) 원년(1451)에 풍기군으로 개칭되었다. 永定. 安定. 금선계곡(錦仙溪谷)은 소백산 비로봉(높이 1,439m)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를 관통하는 5.75km의 계곡이다.크고 작은 바위와 기암괴석, 노송이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는 계곡으로 특히 중간 지점에 있는 금선정(錦仙亭)과 금선대(錦仙臺)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다. 물가의 커다란 바위 위에 서 있는 금선정은 영주 풍기 출신의 조선 중기 문신이자 퇴계학파 유학자였던 금계 황준량(호 錦溪,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출생, 문집 이 있음.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퇴계학파의 맏형으로, 청빈·애민의 목민관. 풍기의 욱양서원(郁陽書院), 신녕의 백학서원(白鶴書院)에 배향.)의 후손이 1781년(정조 5)에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정면 2칸·측면 2칸 규모이며 사면이 벽체 없이 개방된 형태이다. 정자를 받치고 있는 바위는 황준량이 금선대라고 이름 지었던 바위로, 바위에 음각된 ‘錦仙臺(금선대)’라는 글자는 1756년(영조 32) 풍기군수로 부임한 송징계(宋徵啓)가 새겼다고 전해진다. 금선정 뒤쪽 산 중턱에는 황준량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다는 금양정사(경북유형문화재 제388호)가 있다.금선계곡이 흐르는 금계리는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십승지지(천재지변, 전쟁에도 몸을 보존할 수 있다는 열 곳의 땅) 중 으뜸이라고 기록된 곳이자, 영주에서 풍기인삼을 최초로 재배한 곳이다. 계곡 주변에는 정감록의 예언을 믿는 정감록파 후예들이 사는 정감록촌이 있고, 풍기인삼을 기르는 삼포(삼밭)가 펼쳐져 있다. 정범조 [丁範祖] 1723년(경종 3) ~ 1801년(순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자: 법세(法世), 호: 해좌(海左), 시호: 문헌(文憲) 본관: 나주(羅州) 저서: 39권 대표관직(경력): 개성유수, 형조판서, 예문관·홍문관의 제학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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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훈 선수를 위한 라이브 서예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붓을 잡았다. 막내 권창훈 선수는 안동권씨 별장공파 집안 조카이다. 현재 프랑스 디종 소속이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에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권창훈 선수의 아버지 권상영은 집안 동생이자, 고향 후배이자, 신일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권창훈 선수 백넘버 22번의 추리닝과 빵을 사들고 서실을 찾아 왔다. 프랑스로 떠나기에 앞서 신묵회 월요 서예 스터디에 합류하여 축구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하여...붓을 잡았다. 한방 빵 터지길... 기원하며...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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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대표팀 권창훈 선수를 위한 붓질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붓을 잡았다. 막내 권창훈 선수는 안동권씨 별장공파 집안 조카이다. 현재 프랑스 디종 소속이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에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권창훈 선수의 아버지 권상영은 집안 동생이자, 고향 후배이자, 신일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권창훈 선수 백넘버 22번의 추리닝과 빵을 사들고 서실을 찾아 왔다. 프랑스로 떠나기에 앞서 신묵회 월요 서예 스터디에 합류하여 축구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하여...붓을 잡았다.  한방 빵 터지길 기원하며...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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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붓 큰 인연

작은 붓 큰 인연   정의화 국회의장님은 무겁되 어둡지 않고, 합리적 엄숙함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친근한 이웃입니다. 이러한 성정은 놀랍게도 함자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정의감에서 우러나오는 기개’를 뜻하는 의기라 할 때의 ‘옳은 의(義)’ 자와, ‘서로 뜻이 맞아 잘 어울림’을 뜻하는 화합이라 할 때의 ‘화할 화(和)’ 자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분과 어울리는 사자성어를 들라면 ‘여민동락(與民同樂)’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할 수 있습니다.의장님과의 소중한 인연은 무엇보다, 작지만 영원한 먹 자국을 남겨주는 붓이 맺어주었습니다. 부연하자면 의장님의 20대 직계 선조이신 고려 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대책문(對策文) 전문을 불초 서예가인 필자가 10곡 병풍 위에 붓글씨로 써서 의장님께 올린 인연입니다. 대책문이란 과거시험 답안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대책문을 줄여 대책(對策) 또는 책문(策文)이라고도 하는데, 임금이 시국이나 사건에 대하여 순문(詢問)하면, 그에 대한 방책(方策)을 적습니다. 필자는 역사적 명문인 포은 선생의 대책문을 읽고 또 읽은 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지역인 무수골에 들어가 목욕재계 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습니다. 행·초서체로 썼기 때문에 하루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병풍은 국회부의장을 거쳐 국회의장이란 막중한 임무를 맡으셨을 때도 의장님 등 뒤에서 국회의장실을 지키고 있다가 한남동의 국회의장 공관을 거쳐, 201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藏書閣)에 기증되어 영구 보존된 상태입니다. 장서각은 조선왕실의 자료를 모은 왕실도서관으로 한국학 전문도서관입니다.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배용 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몇 분이 자리한 가운데 국회의장실에서 간단한 증정 의식을 거친 뒤 장서각에서 특별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핵심 문장을 발췌하여 쓴 또 다른 작품은 중국 황희지미술관에 전시 소장되어 있습니다. 감동적인 사실은 대책의 내용이 포은 선생께서 과거에 수석 합격한 해인 공민왕 9년(1360)의 현안과 대응방법을 말해주고 있음에도, 그 내용이 시대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현 실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포은 선생께서 후손 정 의장님에게 정치가로서의 바른길을 깨우쳐주기 위해 쓰신 내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문무(文武)를 함께 쓰는 것은 모든 왕이 따라야 할 대법(大法)이고 만세불변의 원칙이다. 문(文)은 융성을 유지하고 완성을 지킬 수 있게 해주며, 무(武)는 어지러움을 바로 잡고 바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 
201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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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초대전

부산 허경무 박사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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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투자한다/ 만주 만행을 위한 준비 메모

SBS와 함께 '만주 오천년을 가다' 키 워드-----------------------------------------------워렌버핏의 투자원칙 두 가지는1. 절대 돈을 잃지 않는다.2. 절대로 제1원칙을 잊지 않는다. 등이다.그러나 나의 투자 원칙은 1. 나 자신에게 투자한다.2. 절대로 제1원칙을 잊지 않는다.후후후...---------------------------------------眞元道醫館 - 正通百脉邪安在 德駐身心藥自靈遵德守禮 - 溫馨提示文明誕生希望 誠信凝聚力量天兵天將 (砂岩石芽)石鼓寺 天王殿石磴 鼓聲 돌 비탈길 북 소리觀音殿大雄寶殿 - 石鼓禪寺圓通寶殿三洲感應鼓樓鍾樓(鐘樓) - 有求必應釋迦法延龍象衆如來當觀第一像如是諸觀法王法解脫法王法如是本師釋迦牟尼佛中華人民共和國國泰民安風調雨順世界和平人民安樂長生祿位 – 石鼓寺住持釋願定率雨招寶進 - 富貴吉祥金州卑沙城靜者心多妙 飄然思不群庄河服務區 - 超市supermarket 公厠toliet - 提升服務水平 優化營商環境 - 全面開展服務質量年活動 爲廣大用路人提供優質服務 - 烤冷面(구이냉면) 鮮搾果汁(짠과즙) 奶昔(밀크쉐이크)鴨綠江丹東港人人參與環境保護 个个爭當綠色天使寬甸 8km 桓仁(桓因?) 100km 通化 180km天罡山景區 白石砬子[lázi] 硼海 罡 [gāng] 1. 북두칠성. 砬子 [lázi]  1. 산 위에 우뚝 선 큰 바위. [주로 지명이나 산 이름에 쓰임] 硼 [péng] (외래어) 붕소.匝道(잡도) ramp 1. [명사] 입체 교차로. 인터체인지. 환상(環狀) 도로. 순환 도로. 2. [명사] (입체 교차로나 고가 도로 등의) 진입로. 램프(ramp). 경사로. ramp 1. (높이가 다른 두 도로・건물 등의 사이를 연결하는) 경사로, 램프 Ramps should be provided for wheelchair users.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해 경사로가 제공되어야 한다.2. (美)  slip(미끄러지다) road(진출입로, 나들목)  off-ramp, on-ramp a freeway exit ramp (고속도로 나들목)3. 램프(화물 적재・항공기 탑승 등을 위한 경사면・경사 계단) a loading(적재) ramp (화물 적재용 램프)错草沟隧道 - 长度 [chángdù] 길이. 错 [cuò] 섞일 착(錯) 不错 [búcuò] 沟 [gōu] (溝) 봇도랑 구 1. (논밭의) 도랑. 2. (~儿) 개울. 개천. 도랑. 내. 시내. 수거(水渠). 小河沟儿  시내. 3. 고랑 모양의 인공 방어 시설물. 壕沟  참호. 4. 협곡. 골짜기. 계곡. 山沟  산골짜기. 隧道 [suìdào] 굴. 터널. 牛毛坞[wù] 太平哨塢 성채 오. 산간의 평지. 哨[shào] 1. (~儿)호루라기. 2. 옛날 군대 편제의 하나. 3. 초소(哨所).牛毛坞镇人民政府(만족자치진)镇 11. 진. [縣 관할에 속하는 행정 단위] 牛毛坞镇善行義擧榜榜 [bǎng] (牓) 편액 방 1. 편액. 2. 게시한 명단. 3. 공고문. 방문. 방. 靑山沟 八河川 ETC : 自由流电子收费 [zìyóuliúdiànzǐshōufèi] 1. 자유유동ETC(전자요금징수시스템). 砬门 楓林谷桓仁 五女山(本溪)康熙來了 - 尙膳坊 尚 1. [부사] [문어] 아직. 여전히. 年龄尚小  나이가 아직 어리다. 2.[형용사] 숭고하다. 거룩하고 존엄하다. 高尚  고상하다. 3.[명사] 풍조. 물결. 上网已成尚。인터넷을 하는 것은 이미 시대의 풍조가 되었다. 4.[동사] 존중하다. 중시하다. 崇尚  숭상하다. 膳 [shàn] (饍) 음식 선 1. 식사. 밥. 坊 [fāng] 1. 골목. 거리. [주로 거리나 골목의 이름에 쓰임] 國泰民安客至如歸(宾至如归) 形容客人到这里就像回到自己家里一样隆興門 : 桓仁 迎薰门、隆兴门、朝阳门 简介迎薰门位于桓仁县城南,是桓仁八卦城的南门,始建于清光绪4年(公元1878年),于1039年坍塌。迎薰门的恢复工程于2006年4月26日奠基,历时6个月,于10月22日竣工。恢复后的迎薰门长27米,高21米,进深9.9米,形制为三门五间重檐式仿古建筑。主门宽7.2米,高7米;边门宽3米,高5米。总投资180万元。迎薰门的设计单位是本溪市城乡开发设计研究院,施工单位是桓仁顺达建筑安装有限公司和沈阳乾清园林古典建筑有限公司。恢复迎薰门拉开了恢复桓仁八卦城工程的序幕。隆兴门位于民族路南端,于2006年7月31日奠基,2006年秋季开始加工构件,于2007年4月23日开始安装,于5月11日竣工。隆兴门为三门四柱九梁三楼式石制牌坊,采用山东嘉祥天青石制作。总宽21.4米,高13.6米,中门净宽7.2米,高6.5米,边门净宽5米,高5.5米。隆兴门雕龙共81条,四柱基座上方各设两座石狮,计八座。隆兴门总重528吨,大石99块,屋脊六兽32块,共131块石材。投资180万元。隆兴门的设计和施工单位是山东嘉祥超越雕塑艺术有限公司。隆兴门的建设是基于桓仁是“龙兴之地”,为了使“龙兴之地”,更加人才辈出、百业兴旺。朝阳门位于五女山路在北岭处的制高点,于2006年7月31日奠基,2007年9月21日竣工。朝阳门基座底长28.9(基座顶28.6)米,基座底进深25.8(基座顶25.5)米,高31.98米,是三门五间三重檐式四攒顶仿古建筑。中门宽8.5米,高7.2米,边门宽3.75米,高5米。朝阳门基座高8.5米,阁楼为边长16.5米的正方形。投资300万元。朝阳门的设计单位是沈阳乾清园林古典建筑有限公司和沈阳市第二建筑设计研究院,施工单位是辽宁天泰大学城建筑安装有限公司和沈阳乾清园林古典建筑有限公司。朝阳门的建设是基于桓仁是高句丽的发祥地、满清王朝的肇兴地,是朝阳般充满活力、充满希望的一方热土,为了使桓仁创造出更加灿烂的文化。부경5 (桴京) 고구려 때에, 집집마다 있던 작은 창고. 곡식, 찬거리, 소금 따위를 저장하였다. 양대는 ‘동부’의 방언(강원, 경상). 담을 따라 심어놓은 양대콩이 어린 시절을 생각게 한다. 上古城子 : 城子는 적을 막기 위해 쌓은 작은 성인 성보(城堡)를 뜻한다.上古城子郡? 高句麗古墓群上古城子墓群(성급 문물보호단위, 요령성인민정부 1988년 12월 20일 公布. 本溪市人民政府立)상고성묘군(전국 第6批 중점문물보호단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2006년 5월 25일 공포, 요령성인민정부 립. 2007년 5월 25일 립)审批 심사하여 비준하다.수수(高粱)史蹟(事跡)公園IRS 미국·영국. [약어] 미국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 下古城子城址꽈리 : 酸浆果 (suānjiāngguǒ)。灯笼草 (dēnglongcǎo)。菇娘 (gūniang)。 사회주의 핵심가치관 : 부강, 민주, 문명, 화해,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경업, 誠信, 友善오녀산박물관高句麗第一都鐵甲衣고구려시조비요령환인, 오녀산十八盤招财进宝(招財進寶) 招财进宝 [zhāo cái jìn bǎo] [释义] 招引进财气、财宝。[出处] 元·刘唐卿《降桑椹》:“招财进宝臻佳瑞;合家无虑保安存。”소자하요령 최대의 인공호 - 桓龍湖五女山城城墻환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刷新生活放心 [fàngxīn] 마음을 놓다. 안심하다. 耐水漆 [nài shuǐ qī] water resistance paint 내수 페인트丛 [cóng] (叢) 모일 총 1. 덤불. 수풀. 2. 떼지어 모이다. 군집하다. 3. 무리. 떼. ‘丛中 밭綠草靑靑 足下留情trample 1. 짓밟다, 밟아 뭉개다 2. (남의 감정・권리를) 짓밟다 好太王碑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旅游[lǚyóu]=旅行집안-满浦市 만포-伊川현 高山镇고산진-日游집안-평양-개성-妙香山五日游집안-평양-금강산五日游  집안국제여행사북성벽중문유적지國內城旅遊線老示意圖安武門集安最美 因爲有你丸都山城景區導覽圖고구려 문물 고적 旅遊景區門票價格表 - 聯票(장수왕릉, 호태왕릉, 우산귀족묘지, 환도산성)자乙醇 [yǐchún] 1. 에탄올(ethanol). 에틸알코올(ethyl alcohol). 알코올(alcohol). 주정(酒精). 紫油 디젤汽油 [qìyóu] 1. 휘발유. 가솔린(gasoline). 功夫豆皮쿵후유부 新賓縣 第一家 謹防假冒 jǐnfáng jiǎmào假冒 [jiǎmào] 1. 사칭하다. 속여서 …하다. …인 체하다. 가장하다.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하다. 腰子 [yāozi] 1. 콩팥. 蚝 [háo] (蠔) 굴 호烤扇贝 1. 가리비구이陈醋 [chéncù] 1. 오래 묵은 진한 식초. 香辣 [xiānglà] 1. 매콤한 香辣肉丝 [xiānglàròusī] 제육볶음 原味 [yuánwèi] 1. 오리지널 맛. 본래의 맛. 酸甜 [suāntián] 1. 새콤달콤하다酸辣 [suānlà] 1. 시고 맵다. 低价 [dījià] 저가 钻井 [zuānjǐng] 1. 착정기로 우물을 파다. (鑽) 뚫을 찬 凿 [záo] (鑿) 뚫을 착 碗 [wǎn] (盌|椀) 사발 완 碗碟 [wǎndié] 사발과 접시八碟八碗 [bādiébāwǎn] 1. [낮은말] 여덟 개의 접시와 여덟 개의 그릇. 2. [낮은말,비유] 진수성찬. 풍성한 연회석. ≒[八大碗八小碗(bādàwǎnbāxiǎowǎn)] 别有风味 [biéyǒufēngwèi] 1.[성어] 또 다른 특색이 있다. 특별한 맛이 있다. 赫图阿拉城 [hètúālāchéng] 랴오닝(辽宁)성 푸순(抚顺)시에 있는 여유경구 AAAA등급의 중국 국가공인 관광지. 連啓聲聞 - 계운고華亭賜吉祥天地永昌金鼓啓靈運日月恒泰啓運箱启 [qǐ] (啓) 열 계 (啟|唘) 열 계 1. 열다. 펼치다. 2. 계도하다. 일깨우다. 3. 시작하다. 汗王寢宮 政善思凝 선하게 정치하고, 골똘히 생각하다.理政愼思著前史顯赫 정치를 잘 하고 신중히 생각하면 앞으로 역사에 빛날 것이고養神益智爲後世留名 정신을 기르고 지혜를 더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百祿是荷 福德靈聰是荷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功德箱美滿姻緣花好月圓洞房春热珠聯壁合永結同好珠聯璧合洞房春热 花好月圓魚水情深.数码照片 디카 사진→디카 数码 shùmǎ 快照 kuàizhào 디지털 스냅숏(snapshot) 촬영.汗宮大衙門 - 聲迹常留赫图阿拉城景區滿族歌舞表演今麥郞 冰糖雪梨冰糖 [bīngtáng] 1. 얼음설탕. [차·커피를 탈때 쓰는 투명 혹은 반투명, 백색 혹은 담황색의 덩어리 설탕] 雪梨 [xuělí] 1. 배의 일종. 雪花梨(xuěhuālí) 八旗射練場雪糕冷飮文明向前靠 点滴不外落贴近文明 靠近方便贴 [tiē] (貼) 따를 첩, 붙을 첩 1. 붙이다. 2. 바싹 붙다. 아주 가깝게 달라붙다. 3. (경제적으로) 보태 주다. 도와주다. 文明之路 只需半步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昭陵神功聖德碑亭大淸昭陵神功聖德碑隆恩殿月牙城寶城 寶頂 地宮角樓明樓愛新覺羅 皇太極(1592~1643)极 [jí] (極) 다할 극 1. 정점. 절정. 최고점. 꼭대기. 끝. 2. (지구의 남·북) 극. 3. (자성체(磁性體)의) 극. 愛國篇愛黨篇大帥府심양시 소년아동도서관滿鐵奉天公所 舊址爲中華之崛起而讀書 周恩來聚財龍魚領航舵春染燕州城蔣氏摸骨燕州城山城爲人民服務 - 铧子鎭環境衛生管理隊全新體驗游遍天下山川 只留脚印一串 - 遵德守禮 遵規守法 文明旅游永相伴사회주의 핵심가치관 – 부강 민주 문명 화해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경업 성신 우선赢 [yíng] (贏) 이익 남을 영 1. 이익을 얻다. 이윤을 남기다. 2. (도박이나 시합에서) 승리하여 (무엇을) 획득하다. 3. 이기다. 승리하다. ≒[胜(shèng)]↔[输(shū)]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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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사랑 - 청소년과 성

청소년과 성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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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여행 중에 쓴 글씨 5품

​만주에 가고 싶다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 선생이 순국한 여순감옥지금 그곳의 간판은 여순일아감옥구지(旅順日俄監獄舊址)로 적혀 있다.1907년에 건축된 건물이니 꼭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발해의 수도 동경성과 하얼빈까지.다시 대련에서 단동까지는 5시간이 걸린다.압록강(鴨綠江)이다.두만강이 ‘(동해로) 도망가는 강’이라면 압록강은 ‘(앞으로) 누비는 강’인가. ‘머리가 푸른 물오리가 많아서 붙인 이름인가. 6.25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반이 끊어진 채 그대로 놓아둔압록강 단교(斷橋)를 지나 위화도를 지나북한 신의주를 지척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위화도는 최근 북·중 간의 경제특구로 지정되어중국에 50년간 조차되었다고 한다.인근의 황금평과 함께 50년 조차에 50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하니북녘의 강토가 천연자원과 더불어 하나 둘씩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2017. 8. 14. 강의 자료 - 涂丁 权相浩 북저(北渚) 김류(金瑬)의 ‘부서심양(付書瀋陽)’ 高梧葉落雨凄凄 높다란 오동나무 잎 떨어지고 찬 비 쓸쓸히 내리는데 塞路三千夢迷(亦)迷 변경(邊境) 가는 길 아득히 머니 꿈속에서도 헤매네.欲向征人寄消息 먼 길 떠나는 사람에게 소식 보내려 하는데 一行書又萬行啼 편지 한 줄 쓰자니 눈물이 억수같이 흘러내리네.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나라가 치욕을 당하고, 백성의 살림살이는 말이 아니었다. 김류(1571, 선조 4~1648, 인조 26)는 안산 사람으로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으로 후에 영의정을 지냈고 시(詩)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외아들 김경징이 강화도 패전의 책임으로 사사(賜死)되는 쓰라린 고통을 겪고,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에 칩거하였다.이 시는 1640년(인조18) 호란으로 청(淸)에 붙들려간 김상헌 등 3학사 등의 소식이라도 알고자 해도 감감하고,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려 하나 그들을 생각하면 글 한 줄 못 쓰고 눈물이 앞서는, 깊은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쓸쓸한 배경을 통하여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지정(憂國之情)과 비애지통(悲哀之痛)을 느낄 수 있다. 청나라에 항복한 후 두 왕자와 척화파 신하들이 붙잡혀 가고, 또 김상헌이 명나라를 치기 위한 출병에 반대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 심양에 붙잡혀 갔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 심양에 편지를 쓰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기구는 쓸쓸한 가을비다. 높이 솟은 오동나무에 잎은 지고 가을비가 처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높은 오동나무는 조선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상관물이기도 하다. 승구는 청나라에 대한 감정이다. 한양에서 심양이 삼천리 떨어져 있고, 심양으로 향하는 길이 굴욕스러운 길이기에 꿈에서마저 심사를 어지럽게 한다. 전구와 결구는 편지를 쓰며 느끼는 통분한 심정이다. 심양으로 가는 사람에게 편지를 부쳐 보내려고 글을 쓰면서 분하고 원통한 마음에 눈물범벅으로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인조반정을 주도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청나라의 침입에 굴복하여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통분한 심정이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김응하(金應河)의 ‘別恨(이별의 한)’ 天涯各南北(천애각남북) 하늘 끝 남북으로 서로 나뉘니 見月幾想思(견월기상사) 달 보며 몇 번번이나 그리워했던가. 一去無消息(일거무소식) 한 번 가고는 소식조차 전혀 없으니 死生長別離(사생장별리) 생과 사는 기나긴 이별이런가. 김응하(1580~1619)는 조선 중기의 무신. 선안동김씨. 1618년 명이 후금(後金)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청하자,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姜弘立), 부원수 김경서(金景瑞)를 따라 좌영장으로 출정했다. 이해 3월에 부차령전투에서 명군이 대패하고 조선의 원군도 후금 군대에 항복했을 때, 3,000의 군사로 후금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 1620년 명 신종(神宗)으로부터 요동백(遼東伯)에 봉해졌다.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가노라 삼각산아~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청나라와 싸우자는 척화파(斥和派)의 대표자였다.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主和派)의 대표인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가지고 적진에 가려 하자 국서를 찢고 통곡했다. 임금이 항복문서를 가지고 산성을 나가려 하자 김상헌은 식음을 전폐하고 자결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삼학사가 죽은 뒤 3년 후 청나라는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했다. 그는 심양으로 끌려가 심양에서 4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강직한 성격과 기개로 청의 굴복 요구에 끝까지 거역하며 저항했다. 이 시조는 김상헌이 청나라로 붙잡혀 가는 길에 삼각산을 바라보며 지은 시조이다.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이다. 3개의 높은 봉우리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87m)가 삼각을 이루었다 하여 삼각산이라 불린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북한산의 정기를 말살하려 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북한산으로 개명하였다. 지금 삼각산으로 고쳐 부르자는 운동과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삼학사(三學士)란 병자호란 때 청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세 학자인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등을 말한다. 삼학사란 이름은 1674년(현종 15) 송시열이 ‘삼학사전’을 편찬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이들은 청 태종의 12만 군대가 쳐들어와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함께 47일간 항쟁하면서 끝까지 싸울 것, 곧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 청에 끌려간 삼학사는 청태종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아 심양에서 참형을 받게 된다. 남한산성에는 삼학사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기리기 위한 현절사(顯節祠)가 있다. 현절사는 숙종 때 세운 사당이다.경이 한 장의 글월로 – 광해가 이이첨에게 경계한 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릉에 있는 세조 능의 위패를 지켜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08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하였다. 하지만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경계를 받았다. 시강원(侍講院) 사서(司書)로 있으면서 세자 광해군을 가르치는 교사를 역임하여 신임을 쌓았으며 조식의 제자이자 대북파(大北派)의 영수인 정인홍(鄭仁弘)의 가르침을 받았고 허균(許筠)과 친밀하게 지냈다.선조가 만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후계로 삼으려 할 때 소북(小北)의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이에 찬성하자, 정인홍(鄭仁弘)과 함께 동궁(東宮)인 광해군(光海君)의 적합함을 주장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원배령(遠配令)이 내려졌다. 하지만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조판서에 올랐다. 당시 선조의 죽음을 두고 독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는데, 아침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선조가 집무를 보다가 광해군이 올린 음식을 먹고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기 때문에 광해군을 옹립한 이이첨이 김상궁과 함께 선조를 해쳤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원배령을 받았던 이이첨이 유배를 떠나지 않고 이틀 동안 머뭇거리다 풀려난 것도 이런 소문을 뒷받침했다. 선조는 어의(御醫) 허준(許浚)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하하였으며, 영창대군을 옹립했던 유영경 등은 모두 유배되어 처형되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이이첨은 정운공신(定運功臣)에 녹훈되었다. 이어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臨海君)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한 뒤 사사(賜死)하였으며, 광해군의 조카인 진릉군(晋陵君)도 같은 방법으로 제거하였다.이어 대제학을 겸임하고, 광창부원군(廣昌府院君)에 봉해지고 과거(科擧)를 주관하게 된 것을 기화로 소북파(小北派)는 완전히 전멸하였으며 서인과 남인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이로써 대북파가 조정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여 권력의 기틀을 다졌다. 1613년(광해군 5년) 서양갑(徐羊甲)과 박응서(朴應犀)를 사주하여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여 역모를 꾀한다고 자백하게 하여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켰다.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안치하여 죽게 하고 김제남을 사사하였다. 1617년 정인홍과 함께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여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켰다. 광해군이 호패법을 실시하려고 하자 정인홍과 함께 이를 반대하여 중단시켰는데, 이는 당시 이이첨과 정인홍이 각각 자신의 근거지에 임진왜란 때 소집된 많은 사병(私兵)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자 이천으로 달아났다가 붙잡힌 뒤 이튿날 참형되었으며 그의 세 아들도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대북 소북파1602년에 임진왜란 때의 타협적 정책을 빌미로 정인홍의 탄핵을 받은 유성룡이 밀려나면서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북인은 고위 관료 중심의 대북과 신진 세력인 소북의 두 개 정파로 구성되었으며, 선조 말기에는 소북이, 광해군 대에는 대북이 집권했으며, 소북은 영창대군을, 대북은 광해군을 지지하였다.1606년에는 인목대비가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하여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이 치열해졌다. 선조가 1608년에 세자 문제를 결정 짓지 못하고 사망하여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광해군을 적극 지지한 대북이 집권당으로 부상했다. 이이첨과 허균, 홍여순이 대표적인 인물이다.대북은 다시 육북(肉北)·골북(骨北)·중북(中北)으로 나뉘며, 소북은 청소북(淸小北)·탁소북(濁小北)으로 분열한다.1623년에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이 성공하면서 북인은 몰락하였고, 특히 광해군 재위 당시 집권당이었던 대북은 거의 전멸하였다. 이후 동인의 전통은 서인의 보복을 피하여 살아남은 남인과 일부 소북이 잇게 되었다.위키백과 – 붕당의 계보 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C%9D%B8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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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 송조천객 귀국시장(送朝天客 歸國詩章)

송조천객 귀국시장(送朝天客 歸國詩章)명나라 관리가 조선사신(海路使行團)을 전송하는 유일한 그림. 명대 후기, 작자미상, 견본채색 1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명나라 관리인 김유심(金唯深)이 조선사신을 전송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시는 김유심이 짓고, 글씨는 매애(梅厓)가 쓰고, 그림은 화원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시를 지은 김유심과 글씨를 쓴 매애(梅厓)의 생애는 자세하게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으며, 시를 준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림의 시기를 추정해볼 때 배편으로 사신이 오고간 것으로 보아 조선사신을 접대하고 전송하며 지은 시로 추정된다. 명나라 초기 바닷길을 이용한 사행기록화로서 남경 황성의 모습이 조감도처럼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제작 시기는 해로를 이용해서 명나라로 갔던 1392년 이후부터 1409년 사이로 추정된다. ‘앵무주(鸚鵡洲) 가에는 외로운 나무가 아득하고 봉황대(鳳凰臺) 아래에는 오색구름이 날리네’라는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조선으로 귀국하는 사신이 중국 남방의 명소인 앵무주와 봉황대 등지를 유람한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현재까지 확인된 해로(海路)로 사행한 사신을 전송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 사행단, 귀국길에 오르다 : 명나라에 조회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사신 일행이다. 그림 우측 자금성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반해 사신이 탄 배와 인물들은 과장되어 표현되었다. - 김유심 일행, 무사귀환을 바라다 : 해로로 귀국길에 오른 사행단을 배웅하는 김유심 일행으로 추정된다. 사행 노정은 중국을 오고가는 데만 석 달, 북경에서 체류하는데 두 달, 최소 5개월 이상이 걸리는 쉽지 않은 길이다. 특히 해로의 경우는 바람과 파도에 의해 그 위험성이 더 컸을 것이다. 그에 따라 사행단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김유심 일행의 바람도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 자금성을 세밀하게 그리다 : 북경 자금성으로 조감도처럼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개의 문과 내부의 전각들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는 좌측의 사신이 탄 배와 인물들이 과장되게 표현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 김유심, 시(詩)로 사행단을 배웅하다 : 당시 감찰어사를 역임한 김유심이 명나라에 조회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행단을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즉 조천객(朝天客, 천자의 나라 중국에 온 사신)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는 시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海域航珍貢帝畿(해역항진공제기) 해역을 항해하여 황성에 조공 와서 壯遊萬里恣輕肥(장유만리자경비) 장유 만리는 빠른 말에 맡겼네. 中朝禮樂歆才望(중조예악흠재망) 중국의 예악은 명망 있는 인재를 대접하고 故國江山耀德輝(고국강산요덕휘) 고국의 강산은 빛나는 덕을 발하네. 鸚鵡洲邊孤樹杳(앵무주변고수묘) 앵무주 가에 외로운 나무 아득아득하고 鳳凰臺下五雲飛(봉황대하오운비) 봉황대 아래 오색구름 날리네. 俄然爲報潮平候(아연위보조평후) 이윽고 파도가 잔잔해졌다 알리니 滿載恩光向日歸(만재은광향일귀) 은총 가득 싣고 동녘으로 돌아가네.   致監察御使 日湖 金唯深(치감찰어사 일호 김유심) 감찰어사 일호 김유심을 전송하며.​ ​大韩民国 书法家 涂丁 权相浩dàhánmínguó shūfǎjiā túdīng quánxiānghào  
2017.08.13

미움받을 용기 1, 2 - 아들러 심리학 메모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Alfred Adler,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 의학자, 심리학자,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개인심리학’을 창시) 현대 심리학의 3대 거장 – Gigmunt Freud, Carl Gustav Jung과 함께. 의 가르침. - ‘용기의 심리학자’, ‘자기계발의 아버지’.프로이트의 원인론을 정면 부정. 사람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내놓았다. 우리는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생에 놓인 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자유도 행복도 모두 ‘용기’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들러의 심리학을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부른다.“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할 용기’가 부족한 거지.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나의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결정한다.김정운(문화심리학자)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에 현재의 내 인생을 맡길 수는 없다.’인생의 과제, 인정 욕구, 과제의 분리, 타자공헌, 공동체 감각과 같은 개념 이해.기시미 이치로(案見一郞)의 탁월한 해석프로이트식 ‘원인론’ -> 아들러식 ‘목적론’으로 뒤집음.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개념에 대해서는 돌직구 수준. 미래의 꿈과 목적을 위해 현재를 살아야 한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다가 만약 미래의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인생은 도대체 무엇인가. 설사 미래의 꿈이 이뤄진다 해도 그 꿈을 위해 희생한 그 숱한 ‘오늘’은 내 인생이 아니다. 인생은 선이 아니라, 點 같은 찰나가 쭉 이어질 뿐이다. 현재의 순간에 내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에 춤추듯 즐겁게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을 살 수 있다.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인정 욕구’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싸구려 인정’에 목매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한다.-------세계는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한 곳인가. 단순한 곳인가. 괴짜 철학자.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세계는 단순하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청년: 아이에게는 근로나 납세의 의무가 없다. 부모나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즐겁게 살아간다. 어른이 되면 세계는 그 본성을 드러낸다. ‘너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다’라는 현실을 매정하게 보여주고, 인생 앞에 기다리고 있던 온갖 가능성이 불가능으로 반전된다. 행복한 낭만주의의 계절은 막을 내리고 잔혹한 리얼리즘 시대가 열린다. 어른- 일, 가정, 사회적 역할... 차별과 전생, 빈부격차...철학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우물물의 온도는 1년 내내 18도. 그런데 느끼는 정도는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첫 번째 밤 -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환이 아니라 고쳐나는 것이야.* 역설(Socratic Paradox) 그리스어로는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이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선은 ‘아가톤(agathon)’이라 하는데, ‘득이 된다’라는 의미도 있다. 악은 ‘카콘(kakon)’에는 ‘득이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있다.두 번째 밤 –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뤄서는 안 돼.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상황. ‘이대로’에 멈춰 서 있는 것이라네.”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네가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라고 결심했기 때문이야. 赤面恐怖症.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나에 대해 어떤 모자람을 느끼는 상태.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키가 작아서 고민. 155cm.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낸 주관적 감정이다. – 위압감을 주지 않고,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게 한다. 가치 전환. -> “너에게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능이 있잖아.”객관적인 劣等性이 아니라 주관적인 劣等感이다.‘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다.‘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A라서 B를 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열등 콤플렉스는 우월 콤플렉스다이아몬드 같은 건 관점에 따라 한낱 돌멩이에 불과.이 세계에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1달러짜리 지폐를 난로에 던져 넣고 불을 지필 걸세. 코를 풀지도 몰라.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같지는 않지만 대등’한 준재이다.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받지 못한 것.私憤과 公憤. 공분이 오래간다. 사분은 타인을 굴복시키려는 도구에 불과.리스트컷증후군(wrist-cut syndrome, 손목자해증후군.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한 강박적인 행동이다.) - 목적은 복수이다. 인간관계가 복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면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연에 방지를 위해서라도 싸움을 걸어왔을 때는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분노라는 도구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메모 – 행동의 목표 1. 자립할 것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위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1.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2.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가질 것인생의 과제 – 일, 교우, 사랑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은둔형 외톨이’라고도 불린다.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다. 연인이 붉은 실로 연결된 사이라 한다면, 부모자식은 단단한 쇠사슬로 연결된 관계.아들러는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태를 가리켜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했다. 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고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친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선악도 도덕도 아닌 ‘용기’의 문제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로 심리학’이며 동시에 ‘사용의 심리학’이다.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화폐란 주조된 자유다.”(도스토예프스키 소설)‘굴레’ ‘인정욕구’ -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인정욕구는 상벌교육의 영향이다.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유태교 교리에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 산다.‘공부한다’는 과제.. ‘과제를 분리’하라.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은둔형 외톨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아이라면. - 일단 ‘이것은 아이의 과제’라고 생각. 개입하려 들지 않고, 과도하게 관심을 갖고 살피는 것을 그만둘 걸세. 그런 다음 곤경에 처했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거야. 그러면 부모의 변화를 눈치 챈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신의 과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도움을 구하거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할 걸세.“타인은 자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리가 가까운 가족이야말로 더 의식적으로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자신의 희망만 밀어붙이면 그것은 스토커나 다름없지. 그것이야말로 하지 말아야 할 ‘개입’이라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임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도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의 획기적인 점. 아, ‘자유’‘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을 끊으라. 고르디우스는 과거 프리지아의 국왕이었다.기원전 4세기경에 활약한 마케도니아의 국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가 프리지아 원정. 신전 기둥에 묶여 있는 전차 한 대. “전차를 묶은 대듭을 푼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 하는 전설이 있었다. 그는 단단하게 묶인 매듭을 보자마자 단검을 꺼내 단칼에 끊어버렸네. 그리고 아시아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왈, ‘운명이란 전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라고.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의 최종 목표가 아니야. 오히려 입구라고 할 수 있지.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책과 얼굴의 거리 문제와 같다. 인간관계도 너무 가깝거나 멀면 볼 수 없다.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네. 아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면 안돼. 예쁘게 빨리 묶어주면 그건 아이의 과제를 빼앗는 것. 완전한 개입이다. “곤경에 직면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곤경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아들러)칸트의 ‘傾向性’진정한 자유란 -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모두에게 사랑받는 인생’ vs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인생’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선택.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 즉 자유롭게 살고 싶은 거지.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 ‘아버지에 맞아서 사이가 틀어졌다’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입각한 발상. 아들러의 목적론의 입장에 서서 보면 원인과 결과가 역전된다.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서 맞은 기억을 꺼내들었다“라고 생각.네 번째 밤 –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자네도 나도 세계의 중심이 아니야.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네. ‘내기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과제의 분리- 인간관계의 출발점/ 공동체 감각 – 인간가계의 목표!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일세. 공동체 개념은 가정이나 학교, 직장,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국가와 인류 등을 포괄한 전체와 과거에서 미래를 이어지는 시간 축, 나아가서는 동식물과 무생물까지도 공동체에 포함된다. 우주 전체를 아우른, 글자 그대로 ‘만물’을 공동체라고 역설할 걸세. 사회학에서 말하는 최소 단위는? ‘나와 너’ ‘자기에 대한 집착’은 ‘자기중심적’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폭군 리어왕이 연상된다. 제멋대로인 사람도. ‘과제의 분리’를 하지 못하고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네.지도로 보지 말고 지구의로 보라. 자네는 공동체의 일부이지 중심이 나닐세.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일세.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스러운 삶이야.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과제를 분리하면서 어떻게 서로 협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시킬까 하는 점.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수평관계’라는 개념일세. 채찍과 당근... 아이들을 기르거나 부하직원을 가르칠 때,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야단치는 방법과 칭찬하는 방법. 그러나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야단도 칭찬은 금물이다’라는 입장을 취한다네. 칭찬은 무의식중에 상하관계를 만든다. ‘자기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대를 조종하기 위한 것’이라네. 상벌교육 부정.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하네. ‘같지는 않지만 대등’인간관계를 수직으로 받아들이면,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라고 보고 개입을 하네. 공부는 ‘개입’이지만 아픈 사람을 보면 ‘지원’이다. 칭찬하지도 야단치지도 않는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 부여’라고 한다.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 평가란 수직관계에서 비롯된 말이다. 만약 수평관계를 맺고 있다면 감사나 존경, 기쁨의 인사 같은 더 순수한 말이 나오겠지.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만 용기를 얻는다.” 병석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는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야지. 아이를 이상적인 100점에서 보지 말고 0점에서 출발하면 존재 그 자체로 기뻐할 수 있을 걸세.다섯 번째의 밤 -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신용(담보 필요)과 신뢰. 信賴의 반대는 懷疑.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네.타자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 타자공헌의 예- 일, 자신의 존재 가치.‘자기수용’ - ‘타자신뢰’ - ‘타자공헌’의 순환구조.일중독자 – 일을 구실로 다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인간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rkl를 실감할 수 있다.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철학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행복이란 ‘공헌감’이라고.‘안이한 수월성 추구’이자 불건전한 태도, 앞서 말한 ‘복수’와 연결됨 – 수업 중에 지우개 던지기, 큰 소리를 내어 수업 방해.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 등교 거부, 음주, 흡연 등도. 은둔형 외톨이인 친구.평범해질 용기 – 자기 수용을 위함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이다. 인생이 정상 등정이라면, 인생의 대부분을 途上위에서 보내게 되네. 이는 ‘가짜인 나’가 지나온 ‘가짜 인생’이 되는 거라네. 정복 실패하면?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어. 춤을 추듯 살라.키네시스(kinesis)적 인생 – 목적론적 인생. 에네르게이아(energeia)적 인생 – 현실태, 실현해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과정의 상태. 곧 춤을 추는 인생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운동.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춤일세. 스무 살에 마친 삶도 아흔 살에 마친 삶도 모두 완결된 삶이며 행복한 삶이니까. 인생 최대의 거짓말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어.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꿀 수 있다.“세계는 단순하고 오늘부터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2권. 2013년 출간. 한국에서는 14년(전작이 ‘지도’였다면 이 책은 ‘나침반’입니다. 사랑과 자립에 대한 아들러의 가르침.)첫 번째 이야기 - ‘나쁜 그 사람, 불쌍한 나’라는 핑계아들러의 철학은 과학일까, 종교일까.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과 과학을 구분하지 않았다. 과학(science)의 어원인 라틴어 ‘스시엔티아(scientia)’는 단지 ‘지식’이라는 의미에 불과.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과학과 달리 철학과 종교는 인간의 ‘진’ ‘선’ ‘미’까지 다루네. 이 부분이 아주 큰 핵심이지. 칼 포퍼의 이론 ‘반증이 가능하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다’종교와 철학의 차이- 신의 유무. 종교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네. 신은 세계를 설명하는 커다란 이야기의 주인공이지. 그에 비해 철학은 이야기를 거부하네. 주인공이 없는 추상의 개념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지. 철학(philosophy)의 어원인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의미가 있네. 즉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愛知學)’이고,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愛知者)’인 셈이지. 거꾸로 말하면, 모든 지혜를 다 알고 완전히 지혜로운 자(지자)가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가 아닐세.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칸트는 “우리는 배울 수 없다. 철학하는 것을 배울 뿐이다.” 철학은 인생을 사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추구하려고 하지 않네. 나는 언제까지나 자아를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할 걸세.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원히 ‘모른다’고 해야겠지.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소피스트)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네.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는 교육이다. ‘자신의 과제’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말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라. 공부는 아이의 과제이며 부모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 교육자들은 아이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불법 침입자들인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카운슬링을 치료라고 생각지 않고 ‘재교육’의 장으로 본다네. 교육자는 카운슬러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네. 교육의 목표는 지식 연마, 사회성 기르기, 심신 건강...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自立’이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더 나아지길 바라는 욕구를 가진, 즉 ‘우월성을 추구’하며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네.  일어서고, 말을 배우고, 의사소통을 하고... 교육이란 ‘개입’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지원’인 셈이야.혼자 살면 지혜가 필요없다. 그러나 타인이 있고, 사회가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할 ‘지혜’도 있는 것이다. 지혜 속에는 ‘知性’도 포함되네. ‘나’를 알고 ‘너’를 아는 것. 인간의 본성을 알고 이해하는 것. 아들러는 이것을 ‘인간 이해(Menschenkenntnis)’라고 했네.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이 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등의 인간관계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가정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교육의 장이라고 할 수 있지.가정과 학교의 교육에 있어 앞에 든 네 가지가 중요. ‘자립’이라는 목표를 도외시하면 안 된다. 교육은 강제적인 ‘개입’이 아니라, 자립을 촉구하는 ‘지원’에서 멈춰야 한다.교육, 지도, 지원이 ‘자립’이라는 목표를 세울 때, 그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존경’이라는 명확한 지침이 있다. 교육의 입구에는 ‘존경’ 외에 없다. ‘자네’가 먼저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나.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된다네. ‘가르치는 쪽’에 있는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쪽’에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존경이 없는 곳에서는 좋은 인간관계는 생길 수 없고, 좋은 인간관계 없이는 자네의 뜻을 전달할 수도 없네. 어떤 문제아라도 존경해야.“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아들러와 같은 시대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한 말일세.) 또 “존경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존경이란 ‘용기 부여’의 출발점. 존경(respect)의 어원인 라틴어 ‘레스피치오(respicio)’에는 ‘본다’라는 의미가 있네. 먼저 있는 그대로의그 사람을 보는 걸세. 타인을 조정하려는 태도, 교정하려는 태도에는 절대 존경이 없지.이 세계에서 어떤 권력자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네. ‘존경’과 ‘사랑’. 권력자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그것은 공포가 깔린 복종. 분노의 광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릴 뿐. 첫발을 내딛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통할 리 없다.미소를 지으며 “너를 존경하고 있어”라고 말이라도 하라는 건가요? 아니, 존경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닐세. 게다가 그렇게 다가오는 어른의 ‘거짓말’이나 ‘속셈’을 아이들은 민감하게 읽어내지. ‘이 사람을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존경하는 마음은 나오지 않을 걸세.결론. 존경부터 시작하라, 철학자는 말한다. 교육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토대는 존경에서 비롯된다면서. 분명 인간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철학자의 주장에도 이해가 가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모든 타인을 존경하라, 학급의 문제아도 세상의 악당들도 전부 존경의 대상이다, 라는 주장에는 절대 반대한다. 게다가 이 남자는 자기의 무덤을 팠다. 간과할 수 없는 모숨을 말했다... 존경이란 공은 던진 사람에게만 돌아온다는 것을, 마치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것과도 같지. 자네가 공을 던지면 돌아올 수도 있어. 하지만 벽을 향해 “공을 던져”라고 외쳐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공동체 감각’ - 영어로 ‘소셜 인터레스트’라고. 이것은 ‘사회에 대한 관심’, 곧 ‘타인에 대한 관심’이라는 뜻이 되네. 독일어로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게미인샤프트’와 감각을 의미하는 ‘게퓔’을 조합시킨 ‘게마인샤프트게퓔’이라고 했네. 이를 영어로 충실하게 번역하면 ‘커뮤니티 필링’이나 ‘커뮤니티 센스’가 되었을지도 몰라.아들러 심리학의 중심 개념이자 난해하기 그지없는 ‘공동체 감각’, 철학자는 이것을 ‘타인의 관심사’에 관심!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감이라는 기술이 필요하고, 공감의 첫걸음은 ‘타인의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우리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휘둘릴 정도로 나약한 존재가 아닐세. 아들러의 사상은 “인간은 언제나 자아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네. 우리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네. 열 명이 있으며, 그 열 명 각기 다른 ’지금‘에 의해 채색된 각각의 해석이 있을 뿐이지.자네의 ‘지금’이 과거를 정하는 것이지. 역사는 늘 승자가 다시 쓰는 것.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라네. 인간은 누구나 ‘나’라는 이야기의 편찬자이고, 그 과거는 ‘지금의 나’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유자재로 다시 쓸 수 있네. 인간은 과거에 일어난 방대한 사건 중에 지금의 ‘목적’에 합치되는 사건만을 골라서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으로 삼는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의 ‘목적’에 반하는 사건은 지워버리는 거지. 아들러의 심리학의 ‘사용의 심리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네. 과거가 ‘지금’을 정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의 ‘지금’이 과거를 정하는 것이지.‘나쁜 그 사람’을 비난하느냐, ‘불쌍한 나’를 어필하느냐.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말은 결국 둘 중의 하나. 삼각주의 한 면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카운슬러 삼각주)자네가 말하는 과거는 ‘지금의 자네’가 교묘히 편찬한 이야기에 불과해. 아들러의 심리학은 건설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에 대한 존경을 토대로 하는 인간 이해의 심리학이네.두 번째 이야기 – 왜 ‘상과 벌’을 부정하는가교실은 하나의 민주주의국가다. 존경부터 시작하라.교실이라는 공간의 주권자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일세. 그리고 교실의 규칙은 주권자인 학생들의 합의를 통해 제정되어야 하네. 교실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학생들은 ‘국민’이 되겠지. 교실은 교사가 통치하는 독재국가가 아니야. ...‘니버의 기도’ “신이여, 바로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를 되새기면서 한 번 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반성문은 시키는 쪽의 자기만족을 그치지.인간이 미성년 상태에 머무는 까닭은 결단력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칸트,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책임지는 상태’로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데, 칸트는 이를 ‘계몽’이락 표현했다.“그런 건 스스로 결정해도 돼”라고 가르쳐줄 것. 본인의 인생은, 매일의 행동은 전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줄 것, 그리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자료 – 예를 들면 지식과 경험 –가 있으면 제공해줄 것. 그것이 바람직한 교육자의 자세라네. 학생을 의심하는 것은 존경하지 않기 때문. “내 인생은 나 스슬 선택할 수 있다” 영원한 주제.세 번째 이야기 – 경쟁원리가 아닌 협력원리에 기초하라공동체 감각은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발굴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걸세. 공동체 감각이란 뜬구름 같은 이상이 아닐세.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삶의 근본 원리인 셈이지.교육의 목표는 자립이다. 그리고 교육자는 카운슬러다.아들러의 심리학은 수평관계에 기초한 ‘민주주의 심리학’인 셈이지.열등감은 핸디캡이 아닌, 늘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되어 왔으니까. 만약 인간이 말만큼 빨랐다면 마차를 발명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자동차도 그렇고.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비행기도 발명되지 않았을 테지. 흰곰처럼 온몸이 털가죽으로 덮여 있었더라면 방한복도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고, 돌고래처럼 헤엄칠 수 있었다면 배도 나침반도 필요하지 않았겠지. 문명이란 인간의 생물학적 약점을 보상하기 위한 산물이고, 인류사는 열등성을 극복하는 과정인 셈이지. 더 나아가 인간은약하기 때문에 공동체를 만들고 협력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네. 거꾸로 말하면, 인간에게 고립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네. 고립된 인간은 몸의 안전뿐 아니라 마음의 안전까지도 위협받지. 그래서 ‘유대’ 갈망. 모든 인간에게는 공동체 감각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identity)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지. 공동체 감각이란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발굴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걸세.교육은 일이 아닌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일로서 학생을 대하지 말고, ‘교우(벗과 사귐, 아들러의 미친 소녀 상담)’로 현장에 나가길. 일, 교우, 사랑이란 세 가지 ‘인생의 과제’를 피하지 말길.네 번째 이야기 – 주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모든 기쁨도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행위가 아닌 관계. 아들러의 고민 정의: ‘모든 고민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래 고독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 그래 사회의 탄생, 그것은 고뇌의 탄생이지. 충돌, 경쟁, 질투, 고독, 열등감... 등의 다양한 고뇌에 직면. 인간의 기쁨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네. 교우의 과제에 대해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네. “우리는 교우의 관계를 통해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배운다”라고. 이것은 공동체 감각의 정의이기도.신용할 것인가, 신뢰할 것인가. ‘신용’이란 상대가 가진 조건을 믿는 것‘, ’신뢰‘란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을 믿는 것. ’그 사람을 믿는 나는 믿는다‘아들러, “만약 우리가 일하지 않아도 모든 거서이 제공되는 행성에서 산다면, 게으름이 덕이 되고 근면함은 악덕이 될 것이다.”타인과 ‘분업’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믿어야만 하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인간의 가치는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세. 그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지.‘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인생의 시련이다.성경,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아들러, “주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다섯 번째 이야기 – 사랑하는 인생을 선택하라이기적으로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이타적으로 ‘너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닐세. 나눌 수 없는 ‘우리의 행복’을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네. 사랑은 ‘나’였던 인생의 주어를 ‘우리’로 바꿔주지.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올리는 것이다. ‘의지력’을 발판 삼아 아무것도 없는 곳에 쌓아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과제가 어렵고 힘든 것이라네. ‘사랑받는 기술’에서 ‘사랑하는 기술’로. 아들러가 일관되게 설파한 것은 능동적인 사랑의 기술, 즉 ‘타인을 사랑하는 기술’이었네. 사랑이란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다. 공헌감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오로지 믿고 오로지 주는 이타적 태도를 통해서만 교우의 관계가 생긴다네. ‘나’와 ‘너’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우리’라네. 이처럼 인생의 주어를 바꾸어라. ‘나’의 행복도 ‘너’의 행복도 아닌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자립이란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자립이란 ‘자기중심성으로부터의 탈피’라네. 사랑이란 진정한 자립. 자립이란 경제상의 문제도, 취업상의 문제도 아닐세. 인생에 대한 태도, 생활양식의 문제라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 된다네. 사랑은 진정한 자립이네.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서 사랑이 힘든 거라네. 상대가 이쪽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그냥 사랑하는 것이라네. 사랑에 몸을 던지는 거지.상대가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는 타인의 과제라네. 자네가 제어할 수 없지.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제를 분리하고, 자신이 먼저 사랑하는 것. 그것뿐일세.‘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줄까?’ 하는 것만 보고 사랑한다면 그런 태도로 기다리는 자네를 누가 사랑해주겠나? 이런 자기중심적 욕구에 응해주는 이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사랑. 우리에게 운명의 상대는 없다. 의미 없는 ‘만남’을 특별한 ‘관계’로 발전시키려면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네. 말을 걸든 편지를 보내든. 사랑이란 ‘결단’이다. ‘운명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이란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세.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거지. 아들러 심리학은 모든 결정론을 부정하고 운명론을 거부하네. 우리에게 ‘운명의 사람’은 없다. 사랑이란 결단이다. 결혼이란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세.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거지. 대상은 누구라도 상관없다. 운명이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짝과 ‘지금’을 춤추는 거지. 두 사람이 오래 춤을 추며 그려낸 궤적을 사람들은 ‘운명’이라 부르겠지.생활양식을 다시 선택하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밖에 방법이 없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때만 자기중심성에서 해방될 수 있지. 오직 타인을 사랑할 때만 자립할 수 있다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때만 공동체 감각에 도달하네... 사랑하고 자립하고 인생을 선택하라... 행복해질 용기. 사랑하고 자립하고 인생을 선택한다. 그것이 얼마나 고된 길인지를...단순하게 산다는 것. 세계는 단순하고 인생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계속 단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시련이기 때문이지. ‘처음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하네. 터닝 포인트는 그 ‘처음 한 걸음’이 되겠지. 가능하면 아들러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지 말고, 자네 손으로 갱신하게.. 아들러는 ‘모든 사람들의 심리학’이라고 정의했네.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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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4- 유시유종(有始有終)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4유시유종(有始有終)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다. 이른바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철칙이다. 문자는 영원하나 그 연재는 유한하다.오늘로 세계일보 문화기획 칼럼 ‘문자로 보는 세상’은 문을 닫는다. 두툼하면서도 읽을거리가 쏠쏠하던 세계일보의 지면 축소 소식은 안타까우면서도 수긍이 간다. 전자시대를 맞이하면서 종이신문의 다이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문화면이 가장 많이 줄어든다고 하니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아쉬움이 앞선다.그런데도 신문은 여전히 문자를 통하여 세상을 밝혀주는 가장 강력한 정보 발전소이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지면에는 다양한 폰트의 문자가 크고 작은 목소리로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듯이, 문자를 보면 그 당시의 세상이 보인다. 문자를 보면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자를 보면 귀와 눈이 밝아지므로 ‘총명(聰明)해진다’는 말이 성립된다.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음성언어인 말과 문자언어인 글을 사용해 왔다.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말로만 살아가는 미개인들도 있지만, 말의 시간적·공간적 제약 때문에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끼리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또 그들이 일궈낸 문명과 역사를 후손에게 남길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문자(文字)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자는 문명과 미개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됨은 물론, 오늘날의 각종 신문, 잡지, 사전 등의 기록을 가능케 해 준다는 점에서 문자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인생도 만남도 유시유종(有始有終)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죽을 일도 없을 테지만, 태어났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이른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이는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리는가 보다. 일이든 사람이든 만나지 않았다면 헤어질 일도 없을 테지만, 만났다면 반드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른바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다. 따지고 보면 시간도 공간도 모두 유시유종(有始有終)이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일차적 의미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시작도 잘하고 끝마무리도 잘해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작한 일은 끝까지 잘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시작한 일은 끝을 보라’는 속담과 상통한다.‘시작이 반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등의 속담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에 나오는 다음 구절도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합포지목(合抱之木) 생어호말(生於毫末), 구층지대(九層之臺) 기어누토(起於累土), 천리지행(千里之行) 시어족하(始於足下)’ ‘아름드리의 큰 나무도 털끝만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9층의 높은 누대도 한 무더기의 흙을 쌓는 데에서 시작하며, 천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 시작의 종결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다.   시작을 뜻하는 한자로는 ‘처음 시(始)’ ‘처음 초(初)’ ‘비롯할 창(創)’ 등이 있다. ‘처음 시(始)’ 자는 ‘인생의 시작’을, ‘처음 초(初)’ 자는 ‘일의 시작’을 뜻한다. 여기에서 ‘시초(始初)’라는 단어가 생성된다.‘처음 시(始)’ 자는 배 속에 아기가 생기는 일이 인생의 시초라는 데에서 ‘비로소’, ‘처음’을 뜻하는데, 좀 더 자세히 시(始) 자를 들여다보면, 여인 뱃속 아기의 숨구멍인 기도(氣道)와 목구멍인 식도(食道)가 보인다. 지금은 ‘나’를 뜻하는 ‘사(厶)’ 자는 본래 ‘코’의 모양을, 지금은 ‘입’을 뜻하는 ‘구(口)’ 자는 본래 ‘목구멍’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였다.‘처음 초(初)’ 자는 ‘옷 의(衣)’ 자와 ‘칼 도(刀)’의 합성인 걸 보면, 옷을 만들기 위해 칼로 재단하는 모습으로 ‘일의 시작’을 뜻한다.창조(創造)라 할 때의 ‘비롯할 창(創)’ 자도 ‘일의 시작’을 뜻한다. ‘곳집 창(倉)’ 자와 ‘칼 도(刀)’ 자의 합성으로, 이는 창고에서 칼을 들고 일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시·공간, 사물 따위에서 마지막 한계가 되는 곳을 가리키는 ‘끝’이란 말은 다소 절박하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우리말에 ‘끝을 보는 성격’이라 하면 일단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맺음하는 과단성 있는 사람의 성격을 뜻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란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일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 (All’s Well That Ends Well)’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만든 희곡명이기도 하다.‘행백리자(行百里者) 반어구십(半於九十)’은 에 나오는 구절로,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일은 마무리 단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이 말은 특히 등산 교훈으로도 많이 사용되는데, 정상에서 거의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신종여시(愼終如始) 즉무패사(則無敗事)’는 에 나오는 구절로, ‘무슨 일이든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정성을 다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는 처음과 끝을 매우 중요시한 철학자임을 알 수 있다. 
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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