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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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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주의 사랑노래 이야기

남북의료협력재단 10주년 기념'​​윤형주의 사랑노래 이야기' 공연 캘리그라피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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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 고원사 '학사전(學士殿)' 현판

고원사는 해인사 말사 중의 하나.서각 명인 성헌 김기철씨가 새길 것이다.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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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웃고 야술에 울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9예술에 웃고 야술에 울다   5월의 대한민국 예술계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었다. 문학은 웃고 미술은 울었다. ‘웃음’이든 ‘울음’이든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신의 창조물이 자연이라면 인간의 창조물은 예술이 아니던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신과 인간, 자연과 예술에 대한 인식과 관계 설정에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처지에서 바라볼 때, 신은 삶의 지표요, 자연은 삶의 터전이며, 예술은 삶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과정이 진실하면 아름답지만, 진실을 잃으면 추하다.예술은 우리의 지친 영혼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오염된 영혼을 씻어주는 해독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근래의 우울한 경제 지표와 경색되어가는 남북 관계 속에서도 그나마 희망의 싹에 물을 뿌려주는 것은 한류 예술문화의 새바람이었다. 10여 년 전 와 과 같은 TV 드라마에서 출발한 장엄한 한류가 케이팝(K-Pop)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거쳐 이제는 클래식, 문학, 발레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폴란드 쇼팽 피아노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지난달 16일에는 소설가 한강이 영국 런던에서 로 한국인 최초의 ‘맨 부커 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받고, 그다음 날 발레리노 김기민은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춤의 영예)’라는 최고남성무용수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도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했던 문학에서의 수상 소식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맨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영어권에서는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부커 그룹이 주최하고, 맨 그룹이 후원하는 본 상의 대상은 영국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 작품이다. 1969년 첫 시상이래. 2005년부터는 맨 부커 국제상이 추가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번에 한강이 받은 맨 부커 국제상은 영국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와 함께 받았다. 소설가 한강이 문학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는 번역가의 공도 컸다. 데보라 스미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할 무렵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는데, 마침 영국에 한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히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한글을 터득했다는 사실이 사뭇 놀랍기만 하다. 이로써 ‘한글은 배우기 쉬운 과학적 언어’라는 실증적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세종대왕의 미소가 느껴진다. 그녀는 한국어가 블루오션이란 사실을 깨닫고 2010년 런던대학교 한국학 석사과정에 입학하고, 이후 2015년 런던 대학교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박사과정 중이었던 2012년에 출판사로부터 를 건네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해에 번역을 완성하고 이어 출판하기에 이른다. 이후 번역본 은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등 유력 일간지로부터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특별한 경험’, ‘감성적 문체에 숨이 막힌다’ 등의 표제로 호평을 받는다. 2015년 4월 상 선정위원회가 을 국제상 최종 후보에 올렸을 때는 그녀가 한글을 배운 지 6년이 되는 된 시점이었다. 현재 28살의 데보라 스미스가 7년 전만 해도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학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녀의 언어적 재능을 인정하더라도 한글이 대단히 쉬운 언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장단과 추임새가 소리를 살리듯이, 훌륭한 번역가는 한국문학을 살려준다. 음악과 무용에는 재해석이 있을 뿐이지만 문학은 반드시 번역 과정을 거쳐야 세계화를 기대할 수 있다. 번역은 문학의 재창조이다. 따라서 '문학 한류'는 훌륭한 번역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문학과 무용계의 축제 분위기와 달리 미술계에서는 대중가수 조영남의 ‘대작 논란’으로 화가, 화랑, 소장자 모두 내홍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화투 그림을 대신 그렸다고 폭로한 송기창 외에 다른 화가 두세 명도 조 씨의 그림을 대신 그려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남으로써 가뜩이나 활기를 잃고 있던 미술계가 더욱 술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8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16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에서 조 씨는 “어른들이 화투를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너무 오래 가지고 놀다가 쫄딱 망했다.”라고 하면서 현 상황을 코믹하게 풀이했다. 코치 밑에 선수가 있듯이 화가 밑에는 대필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항상 문제가 되는 건 대필이 아니라 작가의 진정성(眞情性)이다. 진정성은 양심에서 우러나는 법인데 그것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진정성에도 천적이 있다. 돈이다.어쩌면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라는 멘트를 잘못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겠지만, 내 생각에는 예술세계는 전혀 현실이 아닌 창조된 세계라는 뜻으로 내뱉은 화두로 생각된다. 곧 창조에 대한 역설이라고 본다. 칸트가 말한 “미(美)에는 객관적 논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학창시절에는 기타를 치며 ‘딜라일라’를 따라 부르느라 바빴고,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제비’와 ‘화개장터’를 즐겨 부르는데…. 포크송 가수에서 크로스오버 가수로, 청년문화운동을 일으킨 주역으로, 바닥을 치며 쓰러질 듯 파안대소하던 소탈한 그의 모습에 포장된 진정성이 숨어있었다는 말인가.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은 “진실한 말 한마디가 전 세계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진실의 가치는 영원하다. 진실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움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   그래도 한류는 흐른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한류도 그렇게 흐른다. 문제는 높은 곳에 흘려보낼 물이 없으면 건천이 되고 만다. 따라서 한류를 줄곧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화의 물을 자아올리든가 예술의 단비를 쏟아부어야 한다.일본 응신왕의 초빙으로 과 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태자의 스승이 된 백제의 왕인 박사는 한류스타의 원조다.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한 조선 도공이나 통신사는 한류의 선배다. 그렇다면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문화로 무장해야 한다. 한류 문화는 칼날 없는 무기이다. 문화무기는 국력이나 인구수, 경제 수준과 무관하므로 잘만 무장하면 칼 한 자루 없이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대필(代筆) 대신에 대필(大筆)을 잡자. 올여름에는 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문화 대장정에 나서자. 한류 열풍은 지구온난화와 무관하다. 한류(韓流)를 넘어 한해(韓海)
20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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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暴炎)인가 복염(福炎)인가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8폭염(暴炎)인가 복염(福炎)인가 인류 생존의 4대 과제는 식량, 물, 에너지, 환경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네 가지 기본 조건이 갖추어져야 먹고 마시고 자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가 상호의존적 호혜관계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상호배타적 견제관계이다. 이를테면 더 많은 먹을거리 생산을 위해서는 더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또 숲이나 초원을 들로 만들어야 하니 환경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곧 호수의 한쪽 둑에만 신경 쓴다면 다른 쪽이 무너지기 쉽다는 뜻이다. 게다가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위하여 국가 간에 경쟁논리를 도입하면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게 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만약 환경오염으로 마실 물과 숨 쉴 공기가 부족하고, 기온상승으로 인간이 생활하기 힘든 지구별이 된다면 결국 인류는 공룡처럼 화석만 남기고 지구 위에서 사라지는 대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긴급재난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국민안전처에서 보낸 문자로, 서울 경기 일부 지역에 폭염(暴炎) 주의보를 내리니, 노약자는 낮 시간에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수분 섭취 등 건강에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아직 5월이 다 가지 않았는데 서울 경기 일대가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가 며칠간 계속되고 있다. 5월 중순의 한낮 기온으로는 1932년 이후 84년 만에 가장 더웠다고 한다. 이 더위는 다음 달에도 계속되리란 소식과 함께 오늘도 맑은 가운데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고 있다. 더구나 인도 북서부 사막지대에서는 섭씨 51도까지 올라가 기상 관측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소 300명이 넘는다는 소식이다.   절기로 보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는 소만(小滿)이고, 이때는 햇볕이 풍부해야 만물이 생장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뭔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일시적인 캐나다의 대형 산불 탓인가, 본격적인 지구온난화 영향인가. 언어유희 같지만, 음력으로 사월(四月)은 사월(巳月)이고, 오월(五月)은 오월(午月)이다. 지금은 음력으로 사월 중순임에도 오월처럼 뜨겁다. 오월(午月)의 오(午)는 원래 ‘절굿공이’를 본뜬 글자이다. 이 글자가 십이지(十二支)의 하나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만든 글자가 ‘공이 저(杵)’이다. 하루 중에는 오시(午時), 곧 정오(正午)의 햇볕이, 연중에는 오월(午月)의 햇볕이 가장 따갑다. 햇볕이 머리 위에서 절구질하듯이 내리찍으면 따가움을 넘어 현기증에 쓰러지기도 한다. 강한 자외선과 높은 농도의 오존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햇볕의 열 덕분에 열매가 열고 또 익으니 폭염(暴炎)이 아니라 복염(福炎)이라 부르고 싶다. 오(午) 자가 숨어있는 다른 글자의 내력을 캐보면 재미있다. 액체를 담는 그릇인 ‘장군 부(缶)’는 질그릇[凵]을 만들기 위해 공이[午]로 흙을 다지는 모양이고, ‘시웅’ 소리를 내며 시위를 시원하게 떠나는 ‘화살 시(矢)’는 공이[午]에 깃을 단 모양이다.   기후환경만큼 언어환경도 중요하다. 한 나라의 언어환경을 살펴보면 그 국민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 어쩌면 선진국에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은 언어환경의 숙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환경은 어떠한가. 내가 보기엔 신문, 방송에 온통 ‘사나울 폭(暴), 터질 폭(爆)’ 자투성이다. 폭염(暴炎)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가격의 ‘폭등, 폭락’에, 날씨에는 ‘폭풍, 폭우’가 있고, 개인의 ‘폭음, 폭식’에, 권력자에겐 ‘폭정, 폭압’이 있고, 조직폭력배에겐 ‘무차별 폭행, 폭언, 성폭행’ 등도 있다. 이 외에도 치안과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동, 폭리, 폭주족, 난폭운전’ 등을 폭로해 보니 과연 우리는 ‘폭(暴)’ 자 지뢰밭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아니 폭 자에 ‘폭’ 파묻힐 지경이다. 이러다가 인류 문명이 하루아침에 ‘폭삭’ 주저앉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왕 내친김에 폭언을 더 해 볼까나. ‘사나울 폭(暴)’보다 더 무서운 글자가 ‘터질 폭(爆)’이 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에다 북한의 ‘핵폭탄’ 위협, 먼 나라의 일이긴 하나 ‘IS 폭격, 공항 폭발, 자폭테러’에다 끔찍한 ‘원폭 피해, 폭탄 테러’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인가. 칠곡의 미군 부대 ‘가스 폭발’처럼 사고에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야구에서는 ‘폭투’, 방송에서는 ‘폭소클럽, 폭소 대작전’, 게다가 광고에서는 ‘남심(男心) 폭격’과 같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의미의 심리적인 용어에도 폭(爆) 자가 태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걸 보면, 호전적 문자는 그 폭발력도 원폭 급이다.   ‘폭(暴)’ 자의 본래 모습은 평화로웠다. 전서에 보면 ‘해 일(日)’, ‘날 출(出)’, ‘두 손 공(廾)’과 ‘쌀 미(米)’의 합자였다. 여기에서 ‘해가 나오면 두 손으로 알곡을 퍼내어 말리다’가 본뜻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납다’의 의미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하여 ‘말릴 폭(曝)’ 자를 다시 만든 것이다. 폭(暴) 자의 지금 모습을 보면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글자 밑에 ‘물 수(氺)’ 자를 슬쩍 집어넣었을까. 이 글자의 발음도 처음에는 ‘포’로서 ‘포악(暴惡)한 행동’의 예에서 보듯이 ‘폭’만큼 난폭하게 들리지는 않았다.글자의 발음은 그 의미와 상통한다. ‘폭’이라는 발음은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를 일단 막았다가 터뜨리면서 내는 소리이다
20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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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기획 7 -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삶과 죽음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삶과 죽음   4월은 친환경의 달, 5월은 친인간의 달이다. 식목일, 지구의 날이 들어있는 4월은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달이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에 부부의 날까지 들어있는 5월은 분명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달이다. 그래서 흔히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기념일로 포장한 계절에 들려오는 뉴스는 늘 흉흉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세상과 소통하면서 잘 ‘살자’고 접하는 뉴스인데, 지면과 자막엔 온통 ‘살자(殺字)’투성이다.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어버이날 부모 살해 사건, 게다가 살균(殺菌)하려다가 살인(殺人)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등을 접하다가 보면 숫제 살인의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살인을, 그것도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도 줄을 잇고 있다 ‘살인의 추억’, ‘살인 의뢰’에 이어 막 개봉된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역시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연쇄살인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곡성군에서는 지역 이미지 실추냐, 지역 인지도 상승이냐를 두고 곡소리 날 정도로 옥신각신하고 있다. 천륜도 무너지는가. 공동체는 어디 갔는가. 세상 사람들은 정녕 돈과 분노의 노예로 변해 가고 있는가.   도대체 ‘殺(살)’이란 무슨 뜻일까. 자신에게 끼치는 해 중에 가장 큰 해는 자살(自殺)이고, 남에게 끼치는 해 중에 가장 큰 해는 살해(殺害)다. 둘 다 생명의 존엄성을 저버린 비인간적 행위로, 자살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해는 남의 삶을 빼앗는 짓이다.살(殺)자의 갑골문을 보면 글자의 왼쪽 부분만 보이는데, 사람이 살살 기어 다니는 지네와 같은 해충을 밟아 죽이는 모습이다. 나중에 때려죽임을 뜻하는 수(殳)가 추가되어 지금은 ‘예(乂)와 출(朮) 그리고 수(殳)’의 세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처음보다 훨씬 더 끔찍한 살생으로 다가온다. 예(乂)는 예리한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죽이는 것이고, 출(朮)은 가죽을 벗겨 죽이는 것이며, 수(殳)는 뭉뚝한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것이다. 참으로 잔혹한 살(殺)이다. 이 대목에서는 언어유희가 필요하다. ‘살기(殺氣)’를 ‘피’하려면 잘 ‘살피’고 다녀야 한다.   삶의 마지막 여정은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하늘 소풍도 매일 준비해야 한다. 유서도 써 보고 묘비명을 지어보자. 준비한 만큼 소풍도 재미있을 테니까.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고종명(考終命)이라 했는데 요즘은 폼나게 웰다잉(well-dying)이라 하는가 보다. 웰다잉은 웰빙(well-being)과 함께 인생의 두 축이며 건강, 장수, 부귀, 덕행과 더불어 오복의 하나로 여겨 왔다.‘삶’의 동사형은 ‘살다’로서 ‘사람’과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ㅅ’으로 시작하는데 ‘사람 인(人)’ 자를 닮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서다’에서 보듯이 ‘ㅅ’은 사람이 두 다리를 떡 벌리고 마오리족처럼 서 있는 모양이다. 본래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할 때 치아를 본떠 ‘ㅅ’을 만들었다. 치아는 건강의 척도이기도 하다. 치아가 튼튼해야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을 더 먹을 수 있다. 소나 말의 나이를 확인할 때도 이빨을 살핀다. 연령(年齡)이라 할 때의 ‘나이 령(齡)’ 자에는 ‘이 치(齒)’가 들어있다. 게다가 치(齒) 자에는 윗니 아랫니가 각각 두 개씩 쌍시옷 모양으로 들어있다. ‘죽음’의 동사형은 ‘죽다’로서 ‘주검’과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나무[木]의 뿌리만 남고 윗동이 댕강 잘려나가 자라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 불(不)’인 것처럼, 놀랍게도 ‘죽음’의 첫소리 ‘ㅈ’은 사람이 땅속에 묻혀서 머리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죽음’의 ‘ㅜ’는 음성모음으로 하늘(ㆍ)과 땅(ㅡ)이 뒤집힌 상태이며, ‘ㄱ’은 죽어서 꼬꾸라진 사람의 형상이다. ‘음’의 ‘ㅁ’을 시신의 관으로 본다면 지나친 유추일가.   한자어 생사(生死)에서 생(生)은 ‘흙[土]’ 위에 ‘싹[屮]’이 돋아나는 모양이고, 사(死)는 ‘뼈[歹]’로 ‘변한[匕]’ 모양이다. 갑골문이나 금문의 사(死) 자에는 죽은 이의 뼈 옆에 사람[人]이 있었다. 울고 있는 유족이리라. 나중에 인(人)을 ‘비(匕)’로 바꾼 것은, 살은 썩어 없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변화’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본다. 생사(生死)의 두 글자를 비교해 보면 생(生)은 식물에서, 사(死)는 동물에서 비롯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생(生)이란 흙 위에 돋아난 싹처럼 조금씩 조심스럽게, 느리면서도 튼실하게 자라는 것이고, 사(死)란 뼈에 붙어있던 온갖 살과 장기는 녹아 없어지고 몸이 ‘앙상한 뼈[歹]’로 ‘변한[匕]’ 것을 말한다. 그렇다. 생(生)도 공든 탑처럼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뜨리기는 순간이다. 15년 전의 9.11 테러나 최근의 캐나다 산불에서 보듯이 우리의 인생도 빌딩처럼 높이거나 숲처럼 아름답게 만들기는 힘들지만 파괴하기는 손바닥뒤집기다.  
20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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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 6월호 원고. 光明天地(광명천지)

光明天地(광명천지)   頓忘一夜過(돈망일야과)時空何所有(시공하소유)開門花笑來(개문화소래)光明滿天地(광명만천지)   몰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시간과 공간이 어디에 있는가.문 열자 꽃은 웃으며 다가오고광명이 온 천지에 가득하여라.   정초에 해인사 향적(香寂) 주지 스님께 세배를 드리러 갔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1985년에 본지 을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도 역임하셨다. 쏟아지는 귀한 덕담을 몰록 메모하고 싶었지만 기록할 겨를이 없었다. 말씀 중에 스님께서는 라는 비교적 긴 제목의 시집 한 권을 몰록 선물로 내놓으셨다. 직접 해설을 붙인 선시집이었다.이 책을 여는 시가 바로 동곡(東谷) 일타(日陀) 스님(1929~1999)의 선시였다. 일타 스님께서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해인사 주지를 역임한 바 있다.그런데 ‘몰록[頓]’이란 첫 단어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지만 자전(字典)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흔히 편지 마지막에 성명 뒤에 ‘돈수(頓首)’라고 붙여 쓰는데, 머리를 숙여 땅에 대고 절을 한다는 뜻의 겸사이다. 불교에서는 돈오(頓悟)의 예에서 보듯이 ‘갑자기, 문득, 단번에’의 뜻으로 쓰인다. 돈오(頓悟)란 깊고 오묘한 교리를 듣고 단번에 깨달음을 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돈생(頓生), 돈사(頓死)의 의미도 미루어 알 수 있다.‘몰록’이란 말이 어디에서 왔을까. ‘모르다’는 말이 ‘몰(沒)+알다’에서 왔듯이 몰록은 ‘몰(沒)+록(錄)’으로 ‘기록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의 뜻이 아닐까?1구와 2구는 깨달음을 위한 정진에 몰입하다가 보니 하룻밤이 몰록 지나갔음을 노래하고 있다. 정일집중(精一執中)의 상태에서는 시간은 물론 자신의 존재조차 깨닫지 못하는 아망오(我忘吾)의 경지이다. “시간과 공간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은 시공초월(時空超越)의 자득(自得)의 깨달음이다.3구와 4구는 깨달음에서 오는 법열(法悅)을 노래하고 있다. 활연대오(豁然大悟)의 순간이다. 번뇌와 망상의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광명한 지혜의 아침을 맞이하면 꽃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고, 드넓은 우주도 한눈에 들어오리라.순간 생식과 장좌불와(長坐不臥), 燃指發願(연지발원)에 일일삼천배(一日三千拜)로 기도하신 일타 스님의 전신 세포가 빛을 발하며 법신(法身)이 되었다.   수월 권상호  
20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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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국의 비전

​국회의장(정의화)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새한국의비전연구원(한국의비전)’을 창립하신다는 말씀과참가 의사를 물어오셨다.물론 평소 존경하는 분으로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5월 26일 16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16:30분까지 식전행사로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서예를 펼치기로 했다.   이어 자리를 옮겨18:00시에 청와대 문화담당 보좌관님 등과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 한다.​​------------ SBS 기사​http://tvcast.naver.com/v/899609​일필휘지 서예 퍼포먼스…정의화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 출범​​어제(26일) 국화 헌정기념관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의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출범식에는 여야 정치인을 비롯한 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정 의장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의 밑그림이 되는 데 남은 인생, 남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이라고 밝히는 한편, 대선 출마설에 대해서는 ‘오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출범식에서는 권상호 서예가가 ‘새한국의 비전’ 휘호를 즉석에서 그려내는 ‘서예 퍼포먼스’가 열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 출범식 현장, SBS 비디오머그가 준비했습니다.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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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관련한 글자

법과 관련한 추가 글씨:법(法) 외에도 법을 뜻하는 한자에는 식(式) 준(準), 범(範), 칙(則) 등이 있다. 순우리말 중에 ‘본때를 보여 주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본때가 ‘법식이나 표준, 규범이나 법칙’ 등과 관련한 말이 아닐까 한다.‘법 식(式)’은 베틀[工] 설치하는 방식에서, ‘법 준(準)’은 송골매[隼]가 물처럼 수평을 이루며 날아가는 모습에서, ‘법 범(範)’은 대쪽이나 수레바퀴, 병부[卩]처럼 딱 들어맞는 점에서 법의 의미가 나왔다고 본다.‘법 칙(則)’의 패(貝)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솥 정(鼎)’의 생략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칙(則)은 솥 안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뜻하며, 내용은 제사, 왕의 명령, 계약 따위이다. 그리고 패(貝)가 솥[鼎]의 생략형인 근거로 원(員), 구(具), 적(賊)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지금은 ‘인원 원(員)’이지만 원래는 ‘둥글 원(圓)’이었다. 솥이 둥글기 때문이다. ‘갖출 구(具)’는 두 손으로 솥을 들고 있는 모양인데, 집집이 솥 하나쯤은 갖추고 산다는 뜻에서 ‘갖추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둑 적(賊)’은 솥에 새긴 법을 파괴한[戎] 사람이다. ‘법 칙(則)’이 부사로 쓰일 때는 ‘곧 즉’이 되며 ‘곧 즉(卽)’과 통용한다. 즉(卽)의 왼쪽은 ‘그릇 위에 먹을거리가 푸짐히 쌓인’ 모습이고, 오른쪽은 ‘이를 즉시 먹기 위해 꿇어앉은 사람’의 형상이다. 여기에서 ‘곧’이란 의미가 탄생한다.‘법 칙(則)’인 동시에 ‘곧 즉(則)’인 것은 ‘법이란 즉시 시행해야 함’을 깨우쳐주고 있다. 19대 국회 임기가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법이라고 믿는다면 즉시 입법 처리해야 한다. 국회란 눈치 보며 명령에 맹종하는 통법 기관이 아니라 최고 입법기관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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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밥과 법(法) 밥은 먹어야 맛이고 법은 지켜야 맛이다. 밥을 굶으면 몸의 기능이 떨어지듯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의 기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모든 국가에서는 사회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해 법을 정하고 또 법으로 다스린다. 법은 밥만큼이나 필요하고 중요하다. 혼자 산다면 법이 필요 없겠지만 ‘법 률(律)’ 자를 보면 가까운 사이[彳]라도 약속을 붓[聿]으로 적어놓아야 할 정도로 법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법을 무시하고 싸우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재해뿐이었다. 재해는 뜻하지 않은 변고를 말하는데 돌이켜보면 자연재해보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인재가 대부분이었다. 불교에서도 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불교에서는 ‘설법, 법석, 법열’ 등의 예에서 보듯이 부처의 가르침이나 계율을 법이라 하므로 불자라면 그 누구도 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밥과 법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법을 지킬 수 없고, 법을 지키지 않고서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 소설 의 ‘장발장’에서 보듯이 범법행위는 배고픔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법이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만든 법인지, 아니면 권력 남용을 위한 통치수단으로서의 법인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라마다 법의 제정과정과 운용방법에서는 전혀 다름을 보면 법이라고 다 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더는 용납되지 않는 어불성설이다. 선법(善法)만이 진정한 법이라 할 수 있다.근 보름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불공정 입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9년부터 도입된 로스쿨은 입학 및 취업 과정에서 법조인 집안이나 상류층 자녀에게만 좋게 됐다는 세간의 반목 아래 ‘현대판 음서제’니 ‘금수저’니 ‘아버지 소개서’니 하는 유행어가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법치가 잘되는 동네에 들어가 살고자 하면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법을 어겼으니 논란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구나 장차 법을 배우고 약자 편에서 변호해야 할 사람의 범법이니 꼴불견일 수밖에….   법(法)이란 무엇일까? 서법(書法)과 어법(語法)만을 따지던 내가 입법(立法), 사법(司法)에 사용된 ‘법 법(法)’ 자를 얘기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하지만 모든 염려를 한방에 접어두고 문자를 통한 법의 원초적 의미쯤은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순우리말에 법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없다. ‘법 없이 살 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일까. 우리 한자에는 ‘법 법(法)’ 자처럼 음과 훈[뜻]이 똑같은 글자들이 더러 있다. ‘책 책(冊), 문 문(門), 덕 덕(德), 굴 굴(窟), 귤 귤(橘), 죽 죽(粥)’ 등이 그러하다. 이런 말들은 우리말에 유입된 한자어로 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순우리말소리와 한자어 발음이 근원적으로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흥미로운 것은 법에 대한 모든 속성이 법(法) 자의 초기 형태인 ‘법 법(灋)’ 자 안에 다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법(灋) 자는 ‘수(氵), 치(廌), 거(去)’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氵)가 있다는 것은 물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 마지막에는 수평을 이루듯, 법도 물처럼 낮은 자세로 서민에게 다가가 서민과 함께 평평하다는 뜻이다. 둘째, 치(廌)는 ‘해치’를 가리키며 사람 마음의 잘잘못을 판단한다는 전설상의 외뿔 신수(神獸)로 흔히 ‘해태’라 부른다. 셋째, 거(去)는 ‘거(厺)’가 변한 것으로 사람[大]이 움집이나 화장실[厶]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나가다, 내쫓다’의 의미가 탄생한다. ‘법(灋)’ 자는 치(廌)를 생략하고 ‘법(㳒)’처럼 쓰이다가, 한나라 예서 시대에 와서야 ‘법(法)’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법(灋)이란 글자 속에는 ‘사람 마음의 선악을 판단할 줄 아는 외뿔 해치가 악인을 내몰아 물속에 빠뜨린다.’라는 교훈적 신화가 내재해 있다. 광화문 앞 양옆에는 목에 방울을 찬 커다란 돌짐승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여러 맹수를 조합한 형태로 보이는 이 짐승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하여 만들었으며, 불을 먹고 산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광화문 복원 공사 때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국보1호 남대문이 불타버린 기이한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해치’니 ‘사자’니, ‘고려견’ 또는 ‘사자견’이니 하며 이견이 분분하지만 그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는 의 기록대로 ‘해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논란의 중심은 해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외뿔이 없다는 점에 있다. 해치가 상상의 동물이길 망정이지 실제로 살아있었다면 법관이란 직업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법(法) 외에도 법을 뜻하는 한자에는 식(式) 준(準), 범(範), 칙(則) 등이 있다. 순우리말 중에 ‘본때를 보여 주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본때가 ‘법식이나 표준, 규범이나 법칙’ 등과 관련한 말이 아닐까 한다.‘법 식(式)’은 베틀[工] 설치하는 방식에서, ‘법 준(準)’은 송골매[隼]가 물처럼 수평을 이루며 날아가는 모습에서, ‘법 범(範)’은 대쪽이나 수레바퀴, 병부[卩]처럼 딱 들어맞는 점에서 법의 의미가 나왔다고 본다.‘법 칙(則)’의 패(貝)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솥 정(鼎)’의 생략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칙(則)은 솥 안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뜻하며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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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제2청사 상량문

  약속의 땅 영종도 하늘 길 연 인천공항혁신과 도전으로 세계 일등 일구었네.여객 물류 운송으로 국가경제 선도하고이제는 동북아 넘어 지구촌 허브공항.   최고의 시설과 최상의 서비스로세계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의 정성과 공항가족의 염원 담아오늘도 하늘과 땅을 행복하게 잇습니다.   땀과 지혜로 명성과 신뢰를 쌓아가고 더 안전한 공항, 더 편리한 공항,더 빠른 공항으로 계속 발전하는 새 역사새로운 이 터전에 무궁하게 펼치리.   제2여객터미널 공사 알차게 마무리하여 마침내 인천공항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고 하늘에선 일월성신 삼광이 비치고 땅에서는 모든 이에게 오복이 임하리.   2016년 4월 26일 15시 입주상량    
20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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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분배의 경제(經濟) 원칙

세계일보 문화기획 - 문자로 보는 세상 5생산과 분배의 경제(經濟) 원칙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겠노라.”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시인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누항사(陋巷詞)’에 나오는 구절이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육을 40년 가까이 해온 사람으로서 우리 선조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생각하지 않고, 늘 안빈낙도(安貧樂道)나 안분지족(安分知足) 타령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춘하추동 강호에 묻혀 자연을 즐긴 맹사성, 청풍명월을 벗하며 살아간 정극인,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낸 송순, 산수 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고 산 윤선도를 비롯하여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정훈의 ‘머들령’, 김관식의 ‘거산호(居山好) 2’ 등에서도 안빈일념(安貧一念)은 맥맥이 이어지고 있다. 안빈낙도란 가난하지만 가난함을 탓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것이고, 안분지족이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안다는 뜻일 진데, 이러다가 외침을 당하면 속절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난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간 지도자가 도인의 경지에는 이르렀다 하겠으나 현실 인식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위와 다른 현실적인 내용의 노래도 있다. 일찍이 신라 경덕왕 때의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安民歌)’에는 백성이 먹을 것이 풍족하여 “내가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랴?”라고 생각한다면 나라가 평안해짐을 알리라고 하였다. 신라가 천년토록 이어온 까닭을 알 만하다. 적어도 백성이 이민을 선택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해야 함은 지도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소비를 늘려 내수 활성화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정부가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연휴가 4일로 늘어나자 환영과 염려의 찬반 여론이, 부산 오륙도(五六島)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이듯이 헷갈리고 있다. 이로써 2016년 휴일은 토·일 포함해서 123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원 투 쓰리 숫자 배열처럼 경제 성장 전망에 희망의 싹이 트길 바란다. 한국의 경제 전망은 어떤가.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이던 한국은행마저 올해 3% 경제 성장은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8%로 낮추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2.7%로 내리고, 아시아개발은행은 2.6%를 제시했다. 문제는 중국의 성장침체로 인해 대중국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리라는 우려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숨 쉬듯 자주 거론하는 ‘경제(經濟)’라는 단어는 고려 말의 이곡(李穀)의 시에 보이는데, 여기서의 경제는 Economy와는 달리 벼슬살이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經濟隨時有易難(경제수시유역난) 경제는 때에 따라 난이의 차이가 있지만人心只願作高官(인심지원작고관) 사람의 마음은 고관이 되기를 바랄 뿐이네.如今自揣眞無用(여금자췌진무용) 지금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쓸모없는 몸悔不當時早掛冠(회부당시조괘관) 당시 일찍 벼슬사퇴 못 한 것이 후회스러워.   우리 옛글에 의미 차이는 있지만 ‘경제’라는 단어는 무수히 나타난다. 에만 해도 2백여 곳에 보이는 것을 보면 경제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어젠다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의 경제는 조선 후기에 와서야 실학파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들은 임병양란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한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주창하였다.   ‘경(經)’과 ‘제(濟)’의 원초적 의미는 무엇일까. ‘경(經)’ 자는 처음에 ‘경(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천을 짜기 위해 날실을 걸어놓은 베틀’을 본뜬 모양에서 ‘날실’을 뜻했다. 맨 위의 ‘一’은 베틀의 끝을, ‘巛’은 걸어놓은 여러 가닥의 날실을, ‘工’은 바닥에 설치해 놓은 베틀 모양을 각각 본뜬 것이다. ‘巛’ 모양에서 우리는 한자 만드는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곧 셋으로 표현한 것은 ‘물건 품(品)’과 같이 ‘많다’는 뜻을, 구부려 표현한 것은 ‘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나중에 비단을 뜻하는 ‘糸’이 추가되어 오늘날의 ‘경(經)’ 자로 완성되었다.경(經) 자만큼 의미 확장이 심한 글자도 드물다. 이는 경(經) 자가 그만큼 비중이 큰 글자라는 뜻이다. 경위(經緯)라는 낱말에서는 ‘날실’의 의미로, 경험(經驗)에서는 ‘실제로 겪어 봄’의 의미로, 경전(經典)에서는 ‘변하지 않는 도리, 글이나 책’의 의미로, 경국(經國)에서는 ‘다스림’ 등의 의미로 발전한다. ‘베틀로 짠 비단 위에 소중한 경험을 적어두고 이를 도리로 삼아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면 충분히 연상에 의한 의미 확장이 가능하다.제(濟) 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齊) 자의 뿌리를 캐야 한다. 이는 많은 곡물 이삭[셋으로 표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서 ‘고르다, 가지런하다’의 의미가 있다. 나중에는 세 개의 이삭 중에 가운데 있는 것이 솟아나게 표현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다 자란 곡물을 신[示→神]에게 바치는 집은 재실(齋室)이라고 할 때의 ‘집 재(齋)’이다.그런데 제(濟) 자는 왜 ‘건너다, 구제하다’의 의미가 되었을까. ‘수(氵)’가 붙어 있으므로 강을 건너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강을 가장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심이 고른[齊] 곳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제(濟) 자에는 백성을 빈곤이나 어려움에서 고르게 구제해야 한다는 높은 뜻이 숨어있다.문자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여기에서 경제의 뜻을 명쾌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곧, 경(經)은 베틀에서 출발하여 생산을 뜻하고, 제(濟)는 강을 건너는 방법에서 출발하여 고른 나눔을 뜻한다. 성장을 위한 지혜로운 생산과 행복을 위한 고른 분배는 국가나 기업의 영원한 목표이다.   내가 아는 한 할머니의 식당 경영 원칙이다. 한 달을 4주간으로 나누어 ‘첫 주에 번 것으로는 식자재를 사고, 둘째 주에 번 것으로는 직원 봉급 주고, 셋째 주에 번 것으로는 세금 내고, 마지막 주에 번 것은 내 몫’이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시간과 재화 경영에는 효율성과 평형성이라는 경영철학이 담겨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나 이기적인 쪽의 선택을 할 것이다. 비록 이타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속내는 명예라는 이기적인 마인드가 깔려있다. 애덤 스미스는 에서 인간의 이기적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 국부가 창출된다고 보았다. 다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번 주는 무슨 일로 어떻게 보낼까? 기쁘게 바쁘고, 즐겁게 지치리라.
20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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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사랑전 출품

여덕위린(與德爲鄰) -  덕으로써 이웃을 삼는다는 뜻으로, 덕이 있으면 모두​가 친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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