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2- 예측(豫測) 가능한 약속(約束) 시대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2예측(豫測) 가능한 약속(約束) 시대 大韩民国 书法家 涂丁 权相浩dàhánmínguó shūfǎjiā túdīng quánxiānghào 옷은 각자 자신의 몸을 싸서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입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는 네트워크(network) 시대를 열면서 자기 몸을 감싸기 위한 육신의 옷 외에, 지구촌 전체를 덮을 만한 또 하나의 정보 그물(net) 곧, 생각의 옷을 더 걸치고 살아가고 있다.기업이나 국가에서는 인터넷, 모바일, SNS에 드러나는 빅데이터 분석 자료에 의거하여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거나 정책을 수립한다. 그리고 그 성공 가능성도 빅데이터 분석 자료를 통해 예측해 보고 난 뒤에 투자를 결정하고, 정치에 반영한다. IT의 발달에 의한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미래 예측가가 아니더라도 예측이 가능한 약속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일상을 파고들어가 보면 미래지향적 비전과는 달리 너무나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맞춤형 프로젝트가 없이 대충대충 랜덤스타일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한국은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 세계 보급률 6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일상의 작은 행사마저도 예측 가능한 일이 없다.이를테면 대형 정부 공약 사업은 물론 여러 지자체 공사가 예상을 빗나가 세금을 축내고 있다. 작게는 자녀 결혼식에 하객 몇 명이 올지, 동창회, 향우회, 등산모임 등에 몇 명이 참가할지 예측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초대에 대한 참석과 불참의 아무런 대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뜻밖의 비용이 들어가 가계 부채에 부채질하고 있다.만약 모 식당에서 예약 손님으로만 운영을 할 수 있다면, 주인은 좀 더 신선한 식자재를 제때에 제공할 수 있어서 좋고, 고객은 준비된 서비스를 받으며 질 좋은 식감을 누릴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식당측은 유용한 시간 관리에 도움이 되고, 빗나간 예측으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어 좋다. 일 년에 한번쯤은 그 수익의 일부로 예약 손님을 위한 감사의 자리라도 베풀어 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물론 이러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과 고객 간에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 스마트 시대에 스마트폰을 들고 살면서도 참가 인원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 주먹구구식 생활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여기서는 ‘예측(豫測)’ 가능한 ‘약속(約束)’ 시대를 꿈꾸며, 이 두 말에 투영된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미리 예(豫)’의 진실을 찾으려면 ‘예(豫)’ 자의 앞에 있는 ‘나 여(予)’ 자의 DNA를 분석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뚱맞게도 ‘베틀’에 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 여(予)’ 자가 베틀 부품의 하나인 ‘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용두머리, 도투마리, 잉앗대, 바디, 북... 이러한 말들이 이제는 낯선 낱말로 들리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어머니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베틀의 부분명칭이었다. 누구나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길쌈’이라는 어휘가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삼베, 모시, 무명, 명주 따위의 피륙을 짤 때 사용하던 길쌈이란 말이, 이제는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를 지나 기능성 섬유인 스마트 섬유와 초극세사 나노섬유까지 나오고 있으니 잊힐 만도 하다. 베 짜는 일은 식량 생산 다음으로 농가의 중요한 일이었고, 베틀은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천을 만드는 틀이었지만 이제는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다. 흔히 ‘날씨’라 하면 기상 상태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베의 ‘날’과 ‘씨’도 ‘날씨’이다. 에는 ‘날과 씨를 경위(經緯)’라 했다. 그러니까 피륙을 짜거나 짚신을 삼을 때, 세로로 놓는 실은 ‘날’이고, 가로로 놓는 실은 ‘씨’라는 말이다. 경위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주의해서 써야 한다. ‘직물의 날과 씨’ ‘사건의 경위’를 말할 때는 ‘경위(經緯)’로 쓰지만, ‘경위가 밝다’ ‘경위가 분명하다’라고 할 때는 ‘경위(涇渭)’로 쓴다. 경위(涇渭)는 ‘사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의 뜻으로 중국의 징수이(涇水)와 웨이수이(渭水)라는 강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경수는 늘 흐리고 위수는 늘 맑은데, 이 두 강물은 시안(西安) 근처에서 만나 멀리 흐르는 동안에도 맑고 흐림이 구별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말이다. 날실과 씨실이 한 땀 한 땀 지날 때마다 서로 교차하며 엮여서 천이 된다. 베틀로 베를 짤 때는 먼저 ‘날실’을 베틀에 올리고, 나중에 ‘씨실’을 날실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방식이다. 이때 ‘북’이라는 매우 유용한 도구를 사용하여 씨실을 날실 사이에 통과시키면서 옷감을 짜 나간다. 물론 천의 가장자리 부분은 올이 풀리지 않게 짜야 하는데, 이를 우리말로는 ‘매듭’, 한자어로는 ‘식서(飾緖)’라 한다. ‘매듭’은 통상 ‘실의 매듭’을 뜻하지만, ‘사태를 매듭짓다’에서처럼 ‘일의 결말’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매듭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 하면 ‘일이 막힘’을 뜻하기 때문이다. ‘식서(飾緖)’는 ‘꾸밀 식(飾)’에 ‘실마리 서(緖)’ 자로 ‘실마리를 잘 꾸민다’는 뜻이 되겠다. ‘북’은 베를 짜는 동안 여인의 두 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북은 베를 짤 때, 베틀에서 날실의 틈을 부지런히 신출귀몰하듯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북은 유선형의 쪽배 모양으로 아름답고 날렵하게 생겼다. 바삐 쏘다니는 사람을 일러 ‘베틀에 북 지나가듯 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북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나 여(予)’ 자는 본래 ‘북 여(予)’ 자였다. 에서는 여(予) 자를 ‘손으로 어떤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내미는 모습’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보면 여(予) 자는 분명 ‘북의 모양’에 ‘북의 작용’까지 표현한 글자이다. 두 개의 삼각형이 방향을 마주하여 교차해 있음은 북이 날실 틈새를 왔다 갔다 하는 작용을 상징하고, 드리워진 선은 북에서 나오는 씨실 모양이다. ‘여(予)’ 자는 나중에 같은 발음의 ‘여(余)’ 자와 함께 일인칭대명사로 쓰이자, 북의 본뜻을 살리기 위해 ‘북 저(杼)’ 자를 다시 만들었다.예측(豫測)이라 할 때의 ‘미리 예(豫)’ 자는 ‘북 여(予)’에 ‘코끼리 상(象)’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덩치에 비해 의심 많은 코끼리(象)는 모든 일에 북처럼 이리저리 생각하며 신중히 행동함’에서 ‘미리’의 뜻이 나왔다. 같은 뜻의 ‘미리 예(預)’ 자는 ‘북(予)이 오가듯이 머리(頁)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다가올 일을 미리 생각함’의 뜻이다. ‘헤아릴 측(測)’ 자는 ‘솥 안의 물의 양을 제다’의 뜻인데, 이 글자 속의 패(貝) 자는 조개가 아니라 ‘원
2017.07.06
새 책 출판을 위한 준비- 臥土爲王
# 문자, 사람에게 머물다* 반안반심(半眼半心) - ‘끝’의 의미: 안(眼) 한(恨)* ‘입 구(口)’ 이야기 – 이목구비(耳目口鼻) 一曰二耳目 一口二言 懸河之辯 말조심 가르침-言音齒. 인간탄생 일패구개. 목숨-식도와 기도. 총명. 21세기 문화코드 소통과 공유, 비움과 나눔.*약한 손, 강한 힘- *寸과 爪 이야기-*얼굴 面 이야기-*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 웃음, 笑, health, happiness, - hele(그리스어 웃음), 웃음의 echo 효과. *세상의 울타리, 서울- 서울은 명치의 위치, 命門(생명의 문)*옷이 날개다- 好衣好食 錦衣還鄕*집은 창조의 공간이다- 創造*시공인간*雜病 진단- 질병
# 문자, 자연에 머물다(봄 여름 가을 겨울)겨울 冬 이야기- /동/이란 발음의 글자. 동동, 빙빙, 설설 화간시주- /화/란 발음의 글자보춘삼화- 소언다시청굼벵이의 羽化登仙, 선부지설, 당랑포선 황작재후여름과 벼 이야기- 穀, 米, 刀-搗禾 자 타령- 穆(화목할 목) 和睦(화목할 목) 名利-어둠과 칼이 비 내려 강으로 흐르다- 水 자의 운행颱風
# 문자, 마음에 머물다人氣- 氣노합생주덕담- 年賀狀喜怒哀樂아는 것과 모르는 것- 知識어떻게 볼 것인가- ‘보다’와 관련한 글자끝없는 미로, 인간의 감정 – 희로애락 이외休息, 心이 들어간 글자, 휴게실, 勤勉雌雄을 겨뤄볼까새처럼 飛翔하라- 非, 犧牲, 鳶飛魚躍, 燕雀, 鴻雁
생활의 향기# 도정, 것을 예찬하다매화- 문방사우, 세한삼우, 시조 수편, 흙의 노래 불의 춤- 도자기책 – 讀書三餘刀劍설四君子의 멋茶바람처럼 향기처럼 흔적 없이 다가가리- 부채 扇바위에 아로새긴 한민족의 꿈- 반구대암각화‘한’, 그리고 한국, 한옥, 한글...
# 도정, 삶을 조언하다準備- 有備無患이룸 예감- 건강, 약속, 준비, 메모, 독서, 조언, 긍정(성공7칙), 설날, 聽取, 공약바람과 믿음(물)- 風雨, 생각, 견문/ 눈귀코의 위치와 의미, 臥土爲王성년의 날- 成, 冠婚喪祭, 가르마끝없는 길- 답설야중거, 路 徑조율시리휴식 없는 휴가 없다늙음의 미학건강지성- 반드시 혼자서 빈손으로 죽는다.예술에 풍덩
2017.07.02
시작 노트
心家마음이 머무는곳이 집이다.너!내 마음이 머무는 곳-----心筆붓을 잡으면 붓은 눈을 뜨는데너를 잡으면나는 눈을 감는다.------바람갑자기 수런수런누가 왔나?손도 없이나무를 잘도 흔든다.-----백운대또 비가 내린다.장마철을 맞아 이따금 샤워하더니부끄러움 타나 보다.또 얼굴을 가리는 너. ------------心劃 미어캣meer·kat처럼 주변을 살피다드론drone처럼 날았다.---------- 다행이다.무더운 여름태양이 붉어지는 만큼 누리의 푸른빛은 짙어진다.차가운 겨울밤이 어두워지는 만큼대지엔 하얀 눈이 내린다. ---------구구단홀수는 양짝수는 음음과 양이 곱해지면 언제나 음의 승리!1단, 3단7단, 9단의 끝은 1에서 9까지의 숫자가 나온다.그런데 5단은모 아니면 도이다.------------지하 숲숲이 자란다.더 넓고 더 높게자연의 숲이다.지하 숲도 자란다.더 넓고 깊게인간의 숲이다.----------빌딩 숲 미세먼지가 피톤치드가 되고소음이 광합성작용을 한다.------------빌딩 숲잘 자란 숲속일수록배부른 사람이 많은 걸 보면햇빛보다는 불빛이 좋은가 보다.
2017.06.24
삶 속에 스민 오방색(五方色)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0삶 속에 스민 오방색(五方色) 하지의 태양이 뜨겁다. 오행에서 여름과 남방(南方)의 상징 색깔은 ‘붉은색(赤)’이다. 겨울의 상징 색깔인 ‘검은색(黑)’을 막기 위해 흰 눈이 내리듯, 여름의 붉은 열기를 막으려고 대지는 온통 푸른빛으로 버텨 보지만 때 이른 불볕더위에다 오랜 가뭄으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른바 ‘열적 고기압’이 비를 몰고 올 ‘태평양 고기압’을 막고 있기 때문이란다. 기상청의 날씨정보가 SNS를 통해 온통 붉은 색깔로 나타나고, 코앞에는 윤오월이 기다리고 있으니 올여름은 더욱 무덥게 느껴진다.인간은 색깔을 통해 표현하고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온도는 물론, 오존농도, 미세먼지농도 등도 수치와 함께 색깔 정보로 나타난다. 색깔에는 우리의 정서와 가치관은 물론 상징적 의미까지 들어있다. 우스개지만 정치판에서조차 색깔론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확실히 대한민국은 회화예술이 뛰어난 문화국가인가 보다. 우리말 중에 ‘때깔’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다. 과일이나 옷감이 눈에 들어와 산뜻하게 비치는 ‘맵시’와 ‘빛깔’을 이르는 말이다. 때깔에는 아름다운 모양새와 고운 빛깔이 있다. 멋과 빛이 동시에 잘 어우러진 말이다. 이참에 매력적인 외모에 선명한 컬러가 있는 국민이 살아가는 때깔 있는 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맵시’와 ‘매무새’는 서로 통하는 말이다. ‘매무새’는 ‘매무시한 모양새’를 말하는데, 여기서 ‘매무시’는 옷을 입을 때 ‘매고’ 여미고 하여 ‘매만지는’ 일을 뜻한다. 외출 시에는 하던 일은 잘 ‘매듭짓고’ 차분히 ‘매’ 꾸며야 ‘매끈한’ 몸매가 돋보일 것이다. ‘눈매·몸매’의 ‘-매’라는 접미사도 맵시나 모양을 뜻한다.‘빛깔’과 ‘빛’, ‘색깔’과 ‘색’, 이 밖에도 ‘색상, 색채, 물’ 등과 비슷한 말이 많다는 것은 ‘빛’이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증거이다. ‘빛’이 없으면 ‘색’은 물론 생명도 있을 수 없다. 빛은 태양에서 발하는 것이었지만, ‘하늘빛, 능금빛’에서처럼 ‘물체가 광선을 흡수 또는 반사하여 나타내는 빛깔’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아가 ‘얼굴빛’에서처럼 ‘기색’을, ‘쓸쓸한 빛’에서처럼 ‘분위기’를, ‘희망의 빛’에서처럼 ‘바람’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그럼 ‘색(色)’이란 무슨 뜻일까. 이 글자는 사람이 사람을 올라타고 있는 모양으로 원래는 ‘성행위 때 나타나는 흥분된 얼굴빛’을 뜻하며 ‘낯빛’이 본뜻이었다. 나중에 ‘여성의 미모’, ‘빛깔(color)’은 물론, 각양각색(各樣各色)에서 보듯이 ‘종류’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색에 빠지다’라고 할 때의 색은 ‘여색’의 의미이고, ‘색이 동하다’라고 할 때의 색은 ‘성적 교접’, 즉 ‘색사(色事)’를 뜻하는데, 이는 영어 ‘sex’와 발음도 비슷하다. ‘색(色)’이란 말에 대한 최고 접대는 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2017.06.23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9- 직업(職業)과 일자리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9직업(職業)과 일자리직업은 인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늠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교유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두는 점은 그 사람의 직업이다. 이와 반대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서로 다툴 때도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라며 직업을 따지게 된다. 관계 설정에서 우리는 왜 상대의 여러 정보 중 직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것은 직업을 알면 그 사람의 관심 분야와 재능은 물론 가치관과 생활수준까지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직업이란 말은 오늘날 한·중·일에서 함께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다. 우리의 경우 신라 최치원의 이나 조선의 등에 ‘직업(職業)’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말의 탄생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사용이 흔하지 않음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신분이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의 하나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으로 본다.직업(職業)의 사전적 의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이다. 따라서 임시적, 단기적 개념이 강한 아르바이트(Arbeit)는 직업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직업을 줄여서 ‘직(職)’ 또는 ‘업(業)’이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직(職)은 ‘사회적 지위’를, 업(業)은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뜻한다. ‘벼슬 직(職)’은 ‘귀 이(耳)’와 ‘새길 지(戠)’의 합자로, 본뜻은 ‘귀로 들은 소리를 창끝으로 새기다’이고, 여기에서 ‘기록하는 행위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의 뜻으로 발전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戠)’ 자는 무언가를 꼭 기억하기 위한 ‘메모’의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기억하기 위하여 적는 일은 ‘알 식(識)’이고, 나무를 박아 영역을 표시하는 일은 ‘말뚝 직(樴)’의 몫이다. 지식(知識)이라 할 때는 ‘알 식(識)’이지만, 사람 이름 밑에 쓸 때는 ‘적을 지(識)’로 읽어야 한다.‘벼슬 직(職)’ 자를 보면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귀(耳)의 소중한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로는 상관의 말을, 아래로는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이를 잘 기록하여(戠) 선정에 힘쓰라는 교훈이 들어있다. 나랏일을 살피는 ‘관청(官廳)’도 백성의 말을 잘 들으며 다스림에 힘쓰라는 의미에서 ‘귀 이(耳)’ 자가 들어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벼슬 직(職)’은 ‘귀로 들은 것을 기록하다’에서 출발하여 ‘잘 알다’가 본뜻이며, 나아가 ‘벼슬, 직책, 지위’ 등의 뜻으로 의미 확장이 이루어졌다.누구나 다 귀가 두 개인 것을 보면 양쪽의 말을 균형 있게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국회 청문회장의 각 의원께 ‘청문(聽聞)’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주고 싶은 이유이다. 양반집에서 잡일을 맡아보던 사람을 ‘청지기’라 하는데, 이는 ‘청직(廳直)’과 상통한다. 청지기 역시 상전의 말만 들어선 안 된다. ‘귀 이(耳)’ 자에 ‘두 이(二)’가 들어있음은 놀라운 일이며, 두 글자는 발음도 서로 같다. 그렇다면 ‘눈 목(目)’과 ‘코 비(鼻)’ 자 속에 들어있는 ‘두 이(二)’ 자의 비밀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일 업(業)’은 ‘여러 개의 갈고리가 달린 나무틀’의 상형으로 지금 봐도 튼튼한 옷걸이를 닮았다. 이 글자는 많은 물건을 걸어 둘 수 있는 도구에서 출발하여, 편경(編磬)이나 편종(編鐘)과 같은 무거운 악기를 거는 도구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학업(學業), 공업(工業), 산업(産業), 직업(職業) 등에서 보듯이 업(業) 자가 ‘일’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업(業) 자의 다양한 유용성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직업을 순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일자리’ 정도 되겠다. ‘일자리 절벽’이라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밥통이 떨어졌다’라는 말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음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말인데, 이로 보면 ‘일자리’란 용어는 적어도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을 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일자리를 잃게 됨을 더러는 ‘밥줄이 끊어졌다’라고도 하는데, ‘밥줄’이 ‘식도’의 뜻임을 감안하면 일자리의 의미가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 밥줄이 끊어질까 봐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아가는 답답한 이웃은 또 얼마나 많을까.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자리를 ‘얻기도, 옮기기도, 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일자기를 ‘잃거나, 빼앗기기도’ 한다. 하기야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자리라면 더없이 좋겠지만...일자리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권력으로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은 아무래도 대통령일 것이고, 능력으로 줄 수 있는 사람은 각 기업의 대표와 고용주일 것이다. 제1장에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라는 말이 나온다. 일은 ‘복된 노동’이다. 또 ‘이루다(成)’의 어근 ‘일’은 명사로서 ‘일(事)’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의 목적은 이룸에 있고, 이룸이란 뜻하던 일의 완성에 있다.우리말 ‘일’의 어원은 무엇일까. ‘일찍’이란 부사, ‘일어나다’란 동사를 살펴보면 ‘일’의 어원은 ‘해 일(日)’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수렵, 농경사회에서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일을 놓았다. 혹여 달이라도 밝으면 일손을 ‘놓고’ 함께 ‘놀게’ 되는데, 여기에서 ‘놓다’와 ‘놀다’도 동원어로 볼 수 있다. 해와 함께 일어나 일하고, 일손을 놓으면 놀게 됨은 삶의 진리이다. 서녘 하늘에 ‘놀’이 지면 일과를 마치고 ‘놀’ 때가 되어 성찬과 함께 놀이마당이 펼쳐지는데, 그렇다면 ‘놀’과 ‘놀다’도 상관이 있지 않을까.부정부패를 ‘일삼아’ 저질러 오던 관리에 대한 적폐(積弊) 청산의 기치가 올랐다. 부정한 일을 반복할 때, 우리는 ‘일삼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삼다’라는 단어는 ‘일 같지 않은 일을 일로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고어에서 ‘일벗다’는 ‘도둑질하다’의 뜻인데, ‘일’에서 ‘벗어나(脫)’ 할 수 있는 짓은 도둑질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서양에서 직업(일)의 의미는 종교 개혁을 기준으로 달라진다. 종교 개혁 이전에는 직업을 ‘속죄’나 ‘노동’의 의미로, 이후에는 ‘소명(召命, 신의 부르심)’이나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직업의 의미는 경제적 보상을 통한 ‘생계유지’와 자아실현을 위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전문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실업대란’을 방치하면 국가재난 수준의 ‘경제위기’가 다가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11조 2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 처리를 당부하며, 이를 통해서라도 고용을 개선하고 소득 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 청년실업은 국가재난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고, 우리는 한 세대 청년들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금을 쏟아 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타당한지는 깊이 있게 따져 봐야 한다. 노동개혁과 공공부문 일자리 줄이기로 ‘프랑스 개조’를 외치는 마크롱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는 나라 곳간을 헐다 국가 부도를 당한 그리스를 닮아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나라 곳간에 항산(恒産)이 없으면 국민의 항심(恒心)도 사라질 것이다. 맹자의 말이 되새겨지는 시점이다.
2017.06.15
망종에 지구 환경 망보기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8망종에 지구 환경 망보기자연은 너그럽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뭇 생명을 너그럽게 안아준다. 온갖 꽃 빛으로 볼만하던 봄이 꼬리를 감추자, 꽃 대신 다양한 열매로 장식하며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던 여름이 이젠 제법 당당한 모습으로 아예 창틀에 올라앉았다. 더운 만큼 여유를 찾고 싶다. 여린 몸에 엷은 옷을 걸치고 여름과 함께 산자락을 걷는다. 여리꾼이 막걸리 한잔하고 가라며 손짓한다. 여름 안주로는 열무 냉국이 제격이다. 4월 5일은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었지만, 6월 5일은 절기로 볏모를 심는 ‘망종’이었다. 망종은 6월 5일이 아니면 6일이므로 ‘환경의 날’이 아니면 ‘현충일’과 겹친다. 올해의 망종은 지구를 되살리자는 ‘환경의 날’과 겹쳤다. 때마침 오늘은 현충일로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도 호국 영령을 위해 눈물로 참배를 드리나 보다. ‘망종(芒種)’이란 입하(立夏), 소만(小滿) 다음에 오는 여름의 여섯 절기 중 세 번째 오는 절기를 이르는 말이다. ‘보리 망(芒)’에 ‘볍씨 종(種)’이 말해주듯 까끄라기 많은 보리는 베고, 볏모를 심는 절기를 뜻한다. 망(芒) 자의 본뜻은 ‘까끄라기’이지만 까끄라기가 많은 ‘보리나 밀’을 뜻하기도 한다. 밀도 보리의 일종으로 보고 특별히 소맥(小麥)이라 하지만, 범칭 ‘맥(麥)’으로 통한다. ‘볍씨 종(種)’은 ‘벼 화(禾)’에 ‘무거울 중(重)’ 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볍씨를 큰대야 물에 부어보고 바닥에 가라앉는 알짜 종자만으로 못자리를 만듦에서 생긴 글자이다. 희나리쌀이 들었거나 쭉정이는 물에 뜨기 때문에 건져 버린다.여기서 ‘까끄라기 망(芒)’ 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망할 망(亡)’을 알아야 하고, ‘망할 망(亡)’ 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 도(刀)’ 자부터 살펴야 한다. 칼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불만큼이나 유용한 도구였다. ‘칼 도(刀)’ 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엌칼이라기보다 원래는 일종의 병기(兵器)를 가리켰다. 도병(刀兵)이라 하면 ‘병기와 군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창(戈)처럼 찌르는 병기가 아니라 낫(鎌)처럼 당겨서 베는 병기였다. 이러한 의미는 벼를 자를 때 낫을 당겨서 베는 모습의 ‘날카로울 리(利)’ 자나, 칼의 안쪽에 날이 선 ‘칼날 인(刃)’ 자를 봐도 알 수 있다. 도(刀)가 ‘돈’을 뜻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명도전(明刀錢)이란 돈은 칼과 같은 모양에 명(明) 자가 새겨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 ‘돈’도 ‘도(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종이를 발명하고 이를 칼로 잘라 사용하게 되고부터는 종이 100장을 가리키는 단위로도 쓰였다. /도/라는 발음은 칼질할 때 나는 소리의 의성이다. 지금의 도(刀) 자는 손잡이가 사라진 모양이다. 바깥 획이 구부러진 것은 칼이 길쭉함을, 안쪽의 삐침은 날카로운 칼날을 상징한다. 한자에서 구부러진 획은 ‘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자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刀’ 자의 이미지를 말해 보라고 하면 ‘칼’이라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글자를 두고 한국어를 아는 사람에게 물으면 ‘칼’의 ‘ㅋ’을 닮았다고는 한다. 물론 ‘칼’의 고어는 ‘갈’이었다. 에 ‘갈爲刀’라 적혀있다. 따라서 ‘갈’ 놓고 ‘ㄱ’ 자도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갑골문에서 ‘칼 도(刀)’ 자는 ‘사람 인(人)’과 비슷하게 생겼다. 놀랍게도 ‘칼날 인(刃)’ 자는 ‘사람 인(人)’과 발음까지 똑같다. 인간이 칼을 사용하는 모습은 ‘칼날 인(刃)’, 인간이 활을 당기는 모습은 ‘당길 인(引)’, 인간에게 요구되는 정신력은 ‘참을 인(忍)’, 인간 윤리의 이상은 ‘어질 인(仁)’으로, 모두 /인/이다. 한자에서 도(刀, 刂)가 포함되어 있으면 대개 ‘칼날(刃), 약속의 부호를 새기다(契), 죽이다(刑), 자르다(刴), 날카롭다(利), 나누다(分), 쪼개다(剖), 벗기다(剝)’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刀) 자의 활용 범위는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확대되어 물건을 베고(斬), 깎고(削), 끊고(切), 가르는(割) 공구 등으로도 쓰이고 있다. 다음으로 ‘망할 망(亡)’ 자가 과연 ‘칼 도(刀)’에서 나왔는지 살펴보자.‘망할 망(亡)’ 자의 갑골문은 무딘 칼날의 모양이다. ‘칼날 인(刃)’이 ‘칼 도(刀)’에 점을 찍어 칼날이 번쩍이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면, ‘망할 망(亡)’ 자는 똑같은 ‘칼날 인(刃)’ 자의 점 대신에 획을 그어 무디어진 칼날을 상징한 것으로 본다. 이로부터 망(亡) 자에서 ‘베어내다, 깎아내다, 버리다’ 등의 뜻이 나오고,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없어지다, 도망치다, 죽다, 망하다’ 등의 의미도 탄생한다. 이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서슬 망(鋩)’ 자를 만들고, 뾰족한 칼끝은 ‘칼끝 봉(鋒)’으로 썼다.결국 망(亡) 자가 들어간 모든 글자는 뜻이 서로 통한다. 이를테면, 마음을 버리면 ‘잊을 망(忘)’이고 여자를 버리면 ‘허망할 망(妄)’이다. 그물에 갇히면 망한 것으로 생각하여, 본래의 ‘그물 망(网)’에서 새로운 ‘그물 망(罔, 網)’ 자를 만들어낸다. 나아가 한자도 소리글자로 발음이 같으면 뜻이 통한다. 예컨대, 알곡은 없고 잡풀만 우거진 모양은 ‘잡풀 우거질 망(茻)’, 이런 잡풀 속에서 개가 사냥감을 찾는 모습은 ‘우거질 망(莽)’이다. 알곡 중에서도 까끄라기가 많은 종자가 있으니 바로 보리이다. 여기에서 ‘까끄라기 망(芒)’에서 ‘보리’의 뜻이 나온다.칼은 사용하기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도망(逃亡), 멸망(滅亡), 사망(死亡)’에는 ‘망할 망(亡)’ 자를 쓰지만, ‘소망(所望), 야망(野望), 희망(希望)’에는 ‘바랄 망(望)’ 자를 쓴다.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정한 것은 육대주 오대양을 살리기 위해서였을까. 2017 세계환경의 날 주제는 ‘인간과 자연은 이어져 있다(Connecting People to Nature)’이다.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함께 죽는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모순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환경의 날에 文 대통령은 환경정책에 대한 기본 기조를 바꾸려고 한다며, ‘4대강 보에 대한 개방조치를 취했고,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을 포함한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탈 원전 기조를 확실히 하며 이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후 지구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구온난화는 한갓 미신일 뿐인가 보다. 태평양의 섬나라가 물에 잠기든, 북극곰이 사라지든 그에게는 관심 밖이며, 자국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인가 보다. 농부에게는 망종 절기가 가장 바쁘다. 밀보리 수확과 모내기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리 갈아 놓고 못 참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라 하지만 익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그렇다고 까끄라기 무서워 망설망설 망설이며 마냥 버려두었다간 도둑맞기에 십상이다. 망종에 보리를 도둑맞을지언정 지구 환경을 도둑맞을 수는 없다. 헤쳐 나갈 길이 망망대해(茫茫大海)처럼 보일지라도 망연자실(茫然自失)하지 말고, 지구 환경을 ‘망(望)’보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망(亡)한다. 우두망찰하다가는 망신살(亡身煞)이 뻗히고 끝내 망징패조(亡徵敗兆) 곧, 망조(亡兆)가 든다.
2017.06.07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7- 단오와 여름맞이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7단오와 여름맞이무한한 우주 속의 작고 푸른 행성 지구, 그곳에는 밤낮이 갈마들며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모여 달과 해를 만든다. 남반구 저편은 지금 겨울이라는데, 북반구에 사는 우리는 시방 한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지구는 우리의 고향인가 여행지인가. 더운 날씨에 식곤증은 쪽잠을 부르기도 하지만, 퀴지근한 땀 냄새는 철학하는 잠을 깨우기도 한다.유월이 오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은 덥다며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야단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 뭐라고 둘러대야 했다.“여름엔 열이 나야 온갖 열매와 알곡이 무르익는 법이란다. 열이 나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지. 열나면 창문을 열면 되고... ‘여름’ ‘열나다’ ‘열매’ ‘열다(열매 맺다, 문을 열다)’ 등의 단어는 한 가족이란다.”“선생님, 졌습니다. 더워도 참을 거예요.”유월 초인데도 연일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고, 가뭄까지 더하니 더 덥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금주에, 남자는 씨름으로 여자는 그네뛰기로 주체할 수 없는 기(氣)를 풀어야만 했던 명절, 단오가 지나갔다. 이번 단오는 오월 뒤에 윤오월이 뒤따르기 때문에 예년보다 빨리 치른 명절이었다. 음력으로 사·오·유월 석 달이 여름이다. 사월은 초여름으로 맹하(孟夏), 오월은 한여름으로 중하(仲夏), 유월은 늦여름으로 계하(季夏)라 한다. 흔히 ‘오뉴월 삼복더위’라 말하는데, 이는 연중 가장 더운 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음력법으로 윤달은 3년 또는 2년마다 든다. 2012년에는 윤삼월, 2014년에는 윤구월, 2017년 금년에는 윤오월, 2020년에는 윤사월, 2023년에는 윤이월이 각각 들어있다.초승달이 된 때부터 다음 초승달이 될 때까지, 또는 보름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이 될 때까지 약 29.5일 걸리는데 이를 삭망월(朔望月)이라 하고, 해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약 365.24일 걸리는데 이를 태양년(太陽年)이라 한다. 계산해 보면 음력 12달은, 양력 1년보다 약 11일이 짧다. 그래서 19태양년 동안 13개월의 윤년을 일곱 번 두는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윤달을 끼워 넣지 않으면, 인류는 오뉴월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동지섣달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 큰 혼란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조들은 음력 달력과 24절기 달력, 두 가지를 사용해 왔다. 음력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한 24절기력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인 세수(歲首)는 설날이 아니라 ‘입춘(立春)’이었다. ‘윤달 윤(閏)’은 ‘문 문(門)’ 안에 ‘임금 왕(王)’이 있는 모습이다. 옛날 제왕은 윤달이 든 해 정월 초하루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침문 안에서 새 책력을 나눠주던 의식에서 생긴 글자이다. 어쨌든 예부터 윤달을 덤이나 보너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윤달을 가리켜 ‘공달’, ‘썩은 달’이라 부르기도 했다. 미신이지만 윤달에는 천지의 모든 신이 인간에 대해 감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윤달에는 무덤을 옮겨도 무탈하고, 만약 부모님의 수의를 만들어 두면 장수한다고 믿었다.‘윤달 윤(閏)’ 자에 ‘덤’의 의미가 있으므로 윤택(潤澤)이라 할 때의 ‘젖을 윤(潤)’도 ‘물이 넘쳐 대지를 적시다’의 뜻이 된다. 물이 기운차게 흐르거나, 말을 거침없이 잘할 때, ‘도도(滔滔)하다’고 하는데, 여기의 ‘넘칠 도(滔)’ 자는 손(爪)으로 절구(臼) 안의 물을 끊임없이 퍼내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하루의 열두 시와 일 년의 열두 달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가 있다. 십이지로 달을 계산하면 음력 사월(四月)은 사월(巳月)이고, 오월(五月)은 오월(午月)이다. 발음이 같으면 의미도 통한다고 보는 것이 문자 세상이다.우리 선조는 홀수(양, 남자, 하늘)를 짝수(음, 여자, 땅)보다 더 좋아했다. 홀수는 ‘1, 3, 5, 7, 9’의 다섯 개가 있는데 홀수 두 개가 겹치는 날은 모두 명절로 삼고 다양한 행사를 즐겼다. 특히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할 때인 음력 오월 초닷새는 ‘오(五)’가 겹치므로 ‘중오절(重五節)’이라 칭하고 이날을 숭상해 왔다. 또 오(五)는 홀수의 중간, 곧 하늘의 중간이므로 단오를 달리 ‘천중가절(天中佳節)’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 부르며 다양한 세시풍속을 즐겼다.그럼 단오(端午)라는 말 자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오(五)’와 통하므로, 단오는 ‘첫 번째 오일’, 곧 ‘초닷새’를 뜻한다. 그리고 단오(端午)의 단(端) 자는 식물이 생명력을 갖고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모양인 ’시초 단(耑)’에서 왔다. 따라서 단(耑)에는 ‘시초’는 물론 ‘끝’의 의미도 들어있다. 단(端) 자는 단(耑)에 ‘설 립(立)’ 자가 붙어 있다. 따라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몸을 꼿꼿하게 세운 사람의 모습에서 ‘단정(端正)하다’는 의미가 생성되고, 나아가 ‘바르다, 공정하다’ 등의 뜻도 추가된다. 예컨대 첨단(尖端)이란 단어도 ‘뾰족한 끝’의 의미에서 출발하여, ‘학문이나 유행의 맨 앞’의 뜻으로 확장된다. 단오(端午)라 하면 에로틱한 분위기의 그림인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오(午)’ 자가 본래 ‘절구(杵)’의 모양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면, 미역 감는 반라의 여인을 훔쳐보는 까까머리 중이 아니더라도 얼굴이 불콰해진다. 실제로 오월(午月) 오시(午時)의 여름 햇살은 여지없이 절구처럼 대지에 내리꽂힌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태양 속에 ‘세 발 가진 까마귀’가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五)는 양의 중심 수이고, 오(午)는 한여름이나 한낮의 햇살을 상징하므로 ‘오(烏)’ ‘오(五)’ ‘오(午)’는 발음도 같지만 의미도 서로 통한다.여름을 뜻하는 ‘하(夏)’ 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지금의 모양대로 보면 ‘머리 혈(頁)’의 생략형과 ‘뒤져 올 치(夂)’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날씨가 더워 모자도 벗고 맨발을 내놓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두 팔과 두 다리를 부각한 큰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덩실덩실 춤추는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제사장의 모습을 한족(漢族)의 선조라 믿고, 자신들은 화하(華夏) 민족의 후예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하(夏) 자가 ‘크다, 성대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고, 나아가 기우제가 주로 여름에 행해졌기 때문에 ‘여름’의 뜻으로 확장되었다.우리 고어에서 ‘하다’는 ‘많다, 크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보면 적어도 우리말과 한자는 뿌리가 같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큰 집도 ‘하(厦)’, 큰 강도 ‘하(河)’라 부르며, 꽃 중에서 큰 꽃인 연꽃도 ‘하(荷)’라 일컫는다.온 천지가 녹색(綠色)으로 뒤덮여 있지만, 여름을 관장하는 신은 적제(赤帝)이다. 온 세상이 백색(白色)의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겨울을 관장하는 신은 흑제(黑帝)이다. 푸른색은 붉은색이 다스리고, 흰색은 검은색이 다스린다는 사실이 오묘하다. 가뭄으로 온 나라가 열병을 앓고 있다. 열병에는 시원한 비와 바람이 제격이다. 바람은 작은 바람(소망)과 노력으로 만들 수 있지만 큰 비는 빌어야(기도해야) 한다. 비 우(雨)’ 자 소지(燒紙)라도 올리고, 두 손 비비며 단비 내리기를 빌어 볼까. 가뭄으로 애타는 농민의 땀을 씻어주려면 선선한 바람 이는 단오선(端午扇)이라도 선물해야겠다.
2017.06.01
한글 에이비시(ABC) 노래
한글 에이비시(ABC) 노래 작사 권상호에이(A), 어쩌면 좋아? 비(B)가 내리면시(C)나브로 디(D)제이 출신의 이(E)쁜 너가 그립다.에프(F)M 방송 들으니 지(G)난 시절이 떠올라에이치(H)B 연필로 너를 그린다.나의 영원한 아이(I)돌, 제이(J)의 삶을 준 너,케이(K)S 마크인 너, 엘(L)레강스 자체인 너너는 나의 영원한 엠(M).V.P.오늘 따라 엔(N)조이하고 싶는 너.오우(O)케이! 피(P)하지 마. 스탠바이(standby) 큐(Q,cue)를 기다려. 아르(R).O.K. 나이스 가이, 나의 에스(S)코트(escort)오늘은 내 앞에서 마음껏 티(T)를 내도 좋아.유(U)명인도 브이(V).I.P.도 더블유(W).C.는 피할 수 없어.엑스(X)축인 너와 와이(Y)축인 나는 피할 수 없어.제트(Z, jet)기처럼 빠른 세월, 아깝지 않니?
2017.05.29
작은 결혼 큰 의미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6작은 결혼 큰 의미 한 국가의 인구가 줄어들면 생산과 소비도 감소하게 되어 국가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늦은 결혼과 늦은 출산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늦은 결혼의 원인으로는 늘어나는 청년 실업에 따른 보금자리 마련의 어려움과 과다한 양육비 부담 등의 경제적 이유를 들고 있다. 여기에다 막상 결혼하려 들면 한국 특유의 체면치레로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고, 그 비용 또한 경제적 압박으로 다가와 이른 결혼을 가로막고 있다.결혼이란 남녀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고, 생활 전체를 공동으로 영위하는 인륜적 관계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에서의 결혼식은 절대적으로 당사자 2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웨딩파티이지만 집단주의와 인사치레가 강한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보다 혼주의 사회적 위상과 관계 지도를 보여주는 허례 의식으로 비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성사시킨 결혼식이 진정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축하의 자리라기보다 체면과 의무에 따른 축의금을 주고받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 ‘작은 결혼식(스몰웨딩)’ 붐이 일어나고 있다. 진취적인 젊은이들에 의해 작은 결혼식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의 결혼 풍속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근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화려한 결혼식 대신에 소박하고 조용한 결혼식을 잇달아 올리고 있으며,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들 사이에서도 당사자들이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개성적이고 낭만적인 결혼식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작은 결혼식이란 불필요한 규모와 허례허식을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한 결혼식을 뜻한다.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고비용의 혼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 산하 공공시설을 ‘작은 결혼식장’으로 개방 운영하면서 붐이 일기 시작했다.대구시는 출산 친화적인 환경조성을 위해 ‘출산 장려 및 양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결혼을 장려하고 결혼비용의 거품을 빼기 위해 야외 공공시설을 예식장소로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대구시는 또 ‘작은 결혼식’을 위해 하객 의자 배치, 꽃길, 음향장비 등의 설치도 지원한다고 밝혔다. 결혼방식도 기존의 결혼식과 달리 느긋하고 여유롭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결혼식이 꼭 화려하고 커야만 할 이유는 없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가족 단위로 신혼부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면 혼례의 의미는 충분히 살렸다고 본다.지난 주말 이태원의 리즈발코니에서 아들과 예비며느리의 요청으로 예약된 양가 친지 70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비용을 줄인다기보다 ‘하고 싶은’ 결혼식을 하겠다는 취지라 했다. 아들이 약혼자와 함께 찾아와 저희가 알아서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겠다고 하기에, 처음에는 체면치레나 축의금 거래 명세 등을 생각할 때 다소 난감했지만, 일단 한번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했다. 주말마다 바쁜 삶을 이어왔는데, 앞으로는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잘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작은 결혼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결혼’이 싫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성스러운 행사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기쁨 대신에 오히려 큰 부담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하다. 예단, 예물, 혼수, 결혼식 문제로 얼굴을 붉히고 심지어 결혼을 앞두고 갈라서는 경우도 있다.양복 한 벌을 해 주겠다는 아들에게 예의상 한번 사양했더니, 와이셔츠와 넥타이만 사 들고 왔다. 아들의 알뜰한 생각에 왠지 서운하지도 않았다. 필자는 아비로서 노트북을 선물했다. 아직도 체면(體面)을 중시하는 오랜 관습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 비싼 호텔결혼식을 선택하고 있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점차 소박하고 간소한 결혼으로 바꿔야 할 것으로 본다. 결혼식이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양가 혼주의 사회적 체면과 인맥 관계를 보여주는 자리라면 뭔가 잘못된 관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 결혼식은 물론 집도 차도 큰 것을 좋아하고, 다리나 도로 이름 등에도 ‘큰 대(大)’ 자 붙이기를 좋아한다. 소박한 작은 결혼식에서 소박(素朴)하다고 할 때의 ‘흴 소(素)’ 자는 누에고치에서 뽑아 올린 물들이지 않은 명주실을 뜻한다. 여기에서 ‘흰색, 바탕, 소박’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순박할 박(朴)’ 자는 본래 ‘통나무 박(樸)’으로 썼었다. 가공하지 않은 목재를 뜻했는데, 여기에서 ‘순박하다’의 뜻이 나온다. 박(朴) 자는 ‘후박나무’의 뜻도 있다. 여기의 복(卜) 자는 후박나무의 껍질이 터진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지금은 한·중·일 모두 주로 결혼(結婚)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결혼이란 말보다 ‘혼인(婚姻), 가취(嫁娶), 혼가(婚嫁), 혼례(婚禮), 성혼(成婚), 혼취(婚娶), 가약(佳約)’ 등의 다양한 용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음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단어가 여러 개라는 사실은 결혼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증거가 된다. 또 있다. ‘장가들다’는 고어에서 ‘댱가들다, 댱가드리다, 쟝가들다’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같은 뜻으로 ‘겨집ᄒᆞ다, 혼인(婚姻)ᄒᆞ다, 가ᄎᆔ(嫁娶)ᄒᆞ다, 혼가(婚嫁)ᄒᆞ다, 셩혼(成婚)ᄒᆞ다, 혼ᄎᆔ(婚娶)ᄒᆞ다’ 등의 용례도 보인다. 남자가 결혼하면 ‘장가가다’, 여자가 결혼하면 ‘시집가다’라고 한다. ‘장가가다’는 ‘장인의 집에 가다’라는 뜻으로 데릴사위제에서 생겨난 말로 보이고, ‘시집가다’는 혼례 이후 처가에 온 신랑은 처가를 위해 일하고 신부는 아이를 낳아 어느 정도 기른 후에 ‘시댁(媤宅)에 가다’라는 뜻이다. ‘시집 시(媤)’ 자를 보면 여성이 생각해야 할 곳은 친정이 아니라 시집임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시집갈 가(嫁)’는 ‘여자가 시집에 가서 집을 이루다’, ‘장가들 취(聚)’는 ‘여성을 취하다’, 곧 강제로 여성을 빼앗아 가는 탈취혼(奪取婚)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축의금 봉투에 흔히 ‘화혼(華婚)’이라 적는데, 여기에 ‘꽃 화(華)’ 자를 쓰는 이유는 지금까지 지켜온 아름다운 꽃 청춘을 사랑하지만, 이를 아낌없이 버릴 때 귀한 가정과 2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상징이 들어 있다. 일반적인 풀꽃을 지칭하는 ‘꽃 화(花)’와는 구분된다. 중국에서는 이성지합(二姓之合) 백년가약(百年佳約)하여 부부가 화합하고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쌍희 희(囍)’ 자를 많이 쓰고, 일본에서는 신랑·신부를 ‘붙이다, 묶는다’는 뜻에서 반창고(絆瘡膏)라 할 때의 ‘얽어맬 반(絆)’ 자를 흔히 쓴다.결혼(結婚)에서 ‘맺을 결(結)’ 자는 이왕 맺을 일이라면 ‘길(吉)하게 맺으라’는 뜻이고, ‘혼인할 혼(婚)’ 자에 ‘저물 혼(昏)’ 자가 들어있음은 어둑어둑해질 때 혼례를 올렸다는 것과 이때 점촉(點燭) 의식이 필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신혼부부여, 촛불을 끄고 사랑을 밝히라. 결혼이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나라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작은 결혼이지만 큰 사랑의 시작에 의미를 두고 행복한 꽃잠 이루길...
2017.05.25
묵가논단 - 미어캣처럼 드론처럼 (줄인 내용)
묵가논단미어캣처럼 드론처럼 권상호(문학박사, 칼럼니스트)서울에 살면서 그나마 보람이라면 붓끝을 닮은 삼각산 인수봉을 습관처럼 바라보는 일이다. 위용을 갖추었으면서도 부드러운 저 봉우리보다 뛰어난 조각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수봉은 누구의 작품일까. 날카로운 칼이나 단단한 정이 아니라 부드러운 비와 흐르는 바람의 작품이었다.그렇다. 엄정한 사초(史草)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글씨를 남긴 주인공도 바로 부드러운 종이와 흐르는 붓이었다. 부드러워서 붓이라 하는가, 아니면 붙잡으라고 붓이라 하는가. 세종 때의 붓의 표기는 ‘붇’이었으니 두 가지 생각이 다 가능하다.부드러움과 딱딱함의 싸움을 보면 당장은 딱딱함의 승리로 보이나,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언제나 부드러움의 승리였다.자동차 모는 것을 운전(運轉)이라 하듯이 붓을 운용하는 것을 운필(運筆)이라 한다. 자동차 운전을 위해서는 면허증이 필요하듯이, 붓을 다루기 위해서는 운필법(運筆法)을 알아야 한다. 일단 운전면허증을 따면 도로 표지판과 노면 표시에 따라 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음껏 달릴 수 있듯이, 운필법을 알면 어떤 서체든 마음껏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운전 시 신호등을 잘 지켜야 하듯 글씨도 방향을 전환할 때는 아프리카의 귀여운 동물 미어캣(meerkat)처럼 붓끝으로 오뚝 서서 주변 동정을 잘 살피고 난 다음에 나아가야 한다. 발음으로는 자동차도 붓도 ‘지면’ 위를 달린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그런데 자동차는 평면이동에 그치지만, 붓은 평면이동에 상하이동을 더한다. 붓글씨를 쓰는 동안 붓은 드론과 같이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공간이동을 하므로 흔히 서예는 어렵다고들 한다. 알고 보면 붓털 하나하나가 굽혀졌다 펴졌다 하는 굴신성(屈伸性) 덕분에 서예가 예술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본다.서예를 좀 더 품위 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운필의 평면이동뿐만 아니라 상하이동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영자팔법(永字八法)’을 획의 모양이 아닌 동작으로 이해해야 하듯이 모든 운필법도 동작으로 접근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붓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상관관계로 먹을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종이 위에서 이루어지는 붓의 평면이동은 전후좌우 사방팔방 경계가 없고 붓을 끌고 다니면 된다. 평면이동 방법으로는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중봉(中鋒)과 편봉(偏鋒), 방필(方筆)과 원필(圓筆), 전필(轉筆)과 절필(折筆) 등의 여덟 가지가 있고, 여기에 상하이동 방법인 제필(提筆)과 안필(按筆) 두 가지를 합하면 운필십법(運筆十法)이 완성된다.여기에서 ‘제(提)’ 자는 ‘위로 끌어올리다(提高)’의 뜻이고, ‘안(按)’ 자는 이와 반대로 ‘편안히 누르다(壓筆)’의 뜻이다. 따라서 제필은 ‘붓을 끌어올려 세우는 필법’이고, ‘안필은 붓을 지그시 눌러 호를 구부리는 필법’이다.호를 미어캣처럼 일으키며 제필할 때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봉(筆鋒)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묵객들이 ‘붓은 세워야 맛이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데, 이 말은 객담이 아니라 서예의 법어이다. 그리고 한 획의 시작을 시필(始筆)이라 하지 않고 굳이 ‘일어날 기(起)’ 자를 써서 ‘기필(起筆)’이라 하는 것을 보면, 제필이 먼저이고 안필과 행필은 그다음임을 알 수 있다. 제필과 안필의 연속을 인체 비유하자면 유문괄약근(幽門括約筋) 운동과 같다. 유문괄약근은 숙변(宿便)을 가둬두었다가 배출하는 기능을 하듯이, 제안은 먹을 가둬두었다가 배출하는 기능을 한다.운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금종(擒縱)과 돈좌(頓挫)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금종(擒縱)에서 ‘사로잡을 금(擒)’ 자는 붓을 꽉 잡으며 수렴(收斂)함을, ‘풀어놓을 종(縱)’ 자는 붓을 느슨하게 잡아 방종(放縱)함을 뜻한다. 곧 금종이란 시종일관 붓을 꼭 잡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붓대를 쥐었다 풀었다 하며 쓰라는 말이다.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지실장허(指實掌虛), 오지집필(五指執筆) 등을 운운하면서 붓을 꼭 잡으라 하는데, 골프채나 당구 큐를 잡을 때도 때에 따라 강약이 있듯이 집필 때의 손가락 힘도 강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돈좌(頓挫)에서 ‘조아릴 돈(頓)’ 자는 획을 그어나가다가 미어캣처럼 멈추고 서서 고민함을, ‘꺾을 좌(挫)’ 자는 획이 나아갈 방향과 길이가 결정되었으면 안필하여 나아감을 뜻한다. 어쩌면 우리가 걷다가 방향을 바꿀 때, 발끝으로 찍고 턴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볼 수 있다. 필봉의 노장(露藏)·굴신(屈伸)의 변화는 영활(靈活)하면서도 듬직하다. 때론 신출귀몰하듯 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죽이고 붓걸이에 매달려 있다. 붓털로도 감정 표현이 부족할 때에는 숫제 붓대를 끌거나 밀기도 한다. 운필에는 인간의 모든 동작이 깃들어있다. 때론 붓대를 밀고 당기기도하고, 때론 들었다 놓았다 하는 모습은 마치 드론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자유자재하다. 그때마다 필봉의 크기와 붓털의 탄력에 따라 붓 맛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인수봉 위에 구름 한 점이 흐른다. 인수봉이 썼나 보다.
2017.05.22
붓 맛을 찾기 위한 운필법
묵가논단붓 맛을 찾기 위한 운필법- 운전(運轉)과 운필(運筆)을 비교하며 -서울에 살면서 그나마 보람이라면 붓끝을 닮은 삼각산 인수봉을 습관처럼 바라보는 일이다. 위용을 갖추었으면서도 부드러운 저 봉우리보다 뛰어난 조각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수봉은 누구의 작품일까. 날카로운 칼이나 단단한 정이 아니라 부드러운 비와 흐르는 바람의 작품이었다.그렇다. 엄정한 사초(史草)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글씨를 남긴 주인공도 바로 부드러운 종이와 흐르는 붓이었다. 부드러워서 붓이라 하는가, 아니면 붙잡으라고 붓이라 하는가. 세종 때의 붓의 표기는 ‘붇’이었으니 두 가지 생각이 다 가능하다.부드러움과 딱딱함의 싸움을 보면 당장은 딱딱함의 승리로 보이나,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언제나 부드러움의 승리였다.붓으로 기록하는 일을 필기(筆記)라 하고, 필기할 때 사용되는 도구를 일러 필기구라 한다. 연필, 철필, 만년필, 볼펜, 샤프펜슬, 플러스펜, 매직펜, 분필, 보드마커(칠판펜) 따위의 다양한 필기구가 있지만, 여기서는 서예 용구 중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다루기 힘든 모필(毛筆) 곧, 붓만을 이야기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자동차를 모는 것을 운전(運轉)이라 하듯이 붓을 운용하는 것을 운필(運筆)이라 한다. 자동차 운전을 위해서는 면허증이 필요하듯이, 붓을 다루기 위해서는 운필법(運筆法)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붓의 움직임의 원리를 이해하고 수련하지 않고서는 붓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일단 운전면허증을 따면 도로 표지판과 노면 표시에 따라 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음껏 달릴 수 있듯이, 운필법을 알면 어떤 서체든 마음껏 써 내려갈 수 있다. 발음으로는 자동차도 붓도 ‘지면’ 위를 달린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자동차는 평면이동에 그치지만, 붓은 평면이동에 상하이동을 더한다. 다시 말하면 붓글씨를 쓰는 동안 붓은 드론과 같이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공간이동을 한다. 그래서 대개 서예는 어렵다고들 한다. 볼펜이나 연필 등과 같은 경필(硬筆)은 평면이동에 그치지만 유연한 모필은 굴신성(屈伸性)으로 인하여 상하이동이 추가된다. 알고 보면 붓털 하나하나가 굽혀졌다 펴졌다 하는 이 굴신성 덕분에 서예가 예술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본다.붓이 이동하다가 멈춰 섰을 때의 모습은 마치 아프리카의 귀여운 동물 미어캣(meerkat)이 오뚝 서서 주변을 살피는 모습과 같다. 붓털 굴신의 묘기가 서예를 낳았다면, 신체 굴신의 묘기는 발레(ballet)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차량도 길에 따라서는 상하운동이 있다. 이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 차에는 흔히 쇼바라고 하는 완충기(shock absorber)가 있다. 그러나 붓에는 완충기가 없으므로 일일이 매 순간 손으로 충격을 주기도 하고 완화하기도 하며 운필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서예는 많은 연습과 노력이 요구된다.게다가 주유(注油)에 해당하는 호에 먹물 주입은 끊임없이 셀프로 해야 하므로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먹 가는 일까지 추가되니 서예는 어쩔 수 없는 슬로우 아트(slow art)이다. 서예의 결과물은 언제나 공간예술이지만 과정은 어디까지나 음악이나 무용처럼 과정이 중시되는 시간예술이다. 여기에서 서예를 위한 꿀팁 하나를 보탠다. 운전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지만, 운필은 잘못해도 그럴 염려는 없으니, 운필 노하우가 부족하더라도 그냥 즐기면 된다는 사실이다.그래도 서예를 좀 더 품위 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운필의 평면이동과 상하이동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영자팔법(永字八法)’을 획의 모양보다 동작으로 이해해야 하듯이 모든 운필법도 어디까지나 동작으로 접근해야 한다. 좀 더 심각하게 말한다면 붓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상관관계로 먹을 다루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운필법을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용어는 알아야겠기에 평면이동과 상하이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화선지 위에서 이루어지는 붓의 평면이동 방향은 전후좌우 사방팔방 등 경계가 없다. 다만 평면이동의 연습은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중봉(中鋒)과 편봉(偏鋒), 방필(方筆)과 원필(圓筆), 전필(轉筆)과 절필(折筆) 등의 네 가지의 상반된 붓 운동법을 익히면 된다. 여기에서 편의상 붓의 평면이동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붓을 대거나 들 때는 어느 정도의 상하이동이 가미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둔다.우선 기필(起筆)하거나 수필(收筆)할 때 붓끝의 자국을 획 안에 감추는 필법은 장봉(藏鋒), 붓끝의 자취가 획 밖으로 드러나도록 쓰는 필법은 노봉(露鋒)이라 한다. 그리고 행필(行筆)할 때의 붓끝이 중심을 잃지 않게 쓰는 필법은 중봉(中鋒), 붓끝이 획의 가장자리를 지나가게 쓰는 필법은 편봉(偏鋒)이라 한다.또 획의 처음과 끝이 모난 형태로 쓰면 방필(方筆), 둥근 형태로 쓰면 원필(圓筆)로 구분된다. 대게 방필은 장중하고 날카로운 느낌, 원필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마지막으로 행필 과정의 곡직(曲直)에 따라 전필(轉筆)과 절필(折筆)로 나뉜다. 이를 운전에 비유하자면 전필은 S 코스나 주행코스를 달리는 것과 같고, 절필은 L 코스나 T 코스를 지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다음으로는 서예를 예술로 승화시켜주는 붓의 상하이동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상하이동의 필법으로는 제필(提筆)과 안필(按筆) 두 가지가 있다. 여기에서 ‘제(提)’ 자는 ‘위로 끌어올리다(提高)’의 뜻이고, ‘안(按)’ 자는 이와 반대로 ‘편안히 누르다(壓筆)’의 뜻이다. 따라서 제필은 ‘붓을 끌어올려 세우는 필법’이고, ‘안필은 붓을 지그시 눌러 호를 구부리는 필법’이다. 다시 말하면 제필은 구부러진 붓에 탄력을 주어 수직으로 일어나게 힘을 주는 필법이고, 안필은 세워진 붓을 편안히 종이 위에 눌러 호를 휘게 하는 필법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제안(提按) 시에 붓이 절대로 미끄러져서는 안 된다. 자동차 타이어나 신발 바닥에 요철(凹凸)이 있듯이, 붓은 털 하나하나가 끝이 바늘처럼 뾰족하기 때문에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동차가 빙판(氷板) 위를 달리거나 포장도로라도 수막현상(水膜現象)이 일어나면 타이어가 미끄러져 큰 사고가 날 수 있듯이, 붓도 호작질을 하거나 미끄러운 양지 위에다 쓰면 호가 잘 미끄러져 글씨를 망치기 쉽다.요는 붓을 일으킬 때는 꼭 필봉(筆鋒)으로 딛고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묵객들이 수시로 ‘붓은 세워야 맛이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데, 이 말은 객담이나 유머가 아니라 실로 서예의 금언(金言)이자 진리(眞理)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획의 시작을 시필(始筆)이라 하지 않고 굳이 ‘일어날 기(起)’ 자로 ‘기필(起筆)’이라 하는 것을 보면 붓을 세움, 곧 제필(提筆)이 먼저이고 행필(行筆)은 그다음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일단은 붓을 미어캣처럼 우뚝 새웠다가 이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한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체나 한자에서 전서체는 획의 굵기에 변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외의 모든 서체는 끊임없는 획의 변화가 요구된다. 여기에 요구되는 것이 지금까지 설명한 제필과 안필이다. 획을 긋다가 굵게 쓰고 싶으면 조금씩 안필하면서 그어나가면 되고, 다시 가늘게 쓰고 싶으면 조금씩 제필하면서 그어나가면 된다. 알고 보면 사람도 붓도 먼저 벌떡 일어선 다음에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발레리나(ballerina)가 발끝으로 서거나 발바닥으로 서거나 중력(重力)에는 변화가 없다. 글씨도 기본적으로는 제필이든 안필이든 오지(五指)로 붓을 누르는 필압(筆壓)이 있어야 붓이 쓰러지지 않는다.제필과 안필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자면 제(提)는 기어를 넣은 상태, 안(按)은 중립 상태라 할 수 있다. 제필과 안필의 연속을 인체 비유하자면 유문괄약근(幽門括約筋) 운동과 같다. 유문괄약근은 숙변(宿便)을 가둬두었다가 배출하는 기능을 하듯이, 제안은 먹을 가둬두었다가 배출하는 기능을 한다.붓의 상하이동인 제안(提按)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금종(擒縱)과 돈좌(頓挫)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서예에서 점획의 변화는 끝없이 다양하지만 모두 제안(提按), 금종(擒縱), 돈좌(頓挫)와 같은 운필법을 피할 수 없다.금종(擒縱)에서 ‘사로잡을 금(擒)’ 자는 붓을 잡으며 수렴(收斂)함을, ‘풀어놓을 종(縱)’ 자는 붓을 풀며 방종(放縱)함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금종이란 시종일관 붓을 꼭 잡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붓대를 쥐었다 풀었다 하며 글씨를 유연하게 쓰라는 얘기로 본다.금종(擒縱)은 종금(縱擒)이라 해도 좋다. 금종은 칠종칠금(七縱七擒)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칠종칠금이란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사로잡았다는 고사에서 생긴 말로, 상대방을 마음대로 다룸을 이르는 말이다. 묵객에게 상대방이란 붓이라 할 수 있다.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지실장허(指實掌虛), 오지집필(五指執筆) 등을 운운하면서 붓을 꼭 잡으라 하는데, 실은 골프채든 붓이든 강약이 있어야 한다. 금종은 결국 붓을 마음대로 다루는 데 필요한 집필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돈좌(頓挫)에서 ‘조아릴 돈(頓)’ 자는 획을 그어나가다가 멈추고 서서 고민함을, ‘꺾을 좌(挫)’ 자는 획이 나아갈 방향과 길이가 결정되었으면 호를 꺾어 나아감을 뜻한다. 어쩌면 우리가 걷다가 방향을 바꿀 때, 발끝으로 찍고 턴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볼 수 있다. 붓과 종이가 만나면 운명적으로 먹 자국 곧, 묵흔(墨痕)이 남게 마련이다. 붓을 종이에 당당하게 들이대야 묵흔(墨痕)도 선명하게 남는다. 접필이 흐지부지하면 나중에 필적(筆跡) 감정(鑑定)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운필(運筆) 원칙은 강직(剛直)하면서도 유연(柔軟)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먼저 획의 장단(長短)·후박(厚薄)·언앙(偃仰)·향배(向背)를 잘 살피고 붓을 움직여야 한다. 먼저 붓을 움직이고 나중에 획을 살피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험준함은 마치 산악과 같아 반걸음도 숨을 고르며 나아가고, 평온함은 잔잔한 호수와 같아 잠자리가 꼬리를 스쳐도 흔적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필봉(筆鋒)의 날카로움은 창칼과 같지만 때로는 그 부드럽기가 솜과 같아야 한다.붓털의 노장(露藏)·굴신(屈伸)의 변화는 영활(靈活)하면서도 듬직하다. 때론 신출귀몰하듯 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죽이고 붓걸이에 매달려 있다. 붓털로도 감정 표현이 부족할 때에는 숫제 붓대를 끌거나 밀기도 한다. 운필에는 인간의 모든 동작이 깃들어있다. 때론 붓대를 밀고 당기기도하고, 때론 들었다 놓았다 하기도 한다. 물론 그때마다 필봉의 크기와 붓털의 탄력에 따라 붓 맛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인수봉 위에 구름 한 점이 흐른다. 인수봉이 썼나 보다. 인수봉의 붓 맛은 어떨까.
2017.05.20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5-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5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어리석은 백성의 문맹 퇴치를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세종은 1397년(태조 6년) 음력 4월 10일에 태어났는데,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5일이 된다. 지난 15일 경기도 여주시 영릉(英陵)에서는 ‘세종대왕 탄신 620돌 숭모제전’이 펼쳐졌다. 이에 앞서 영릉광장에서는 한글서예 솜씨를 겨루는 ‘제7회 세종대왕 전국한글휘호대회’가 열렸다. 여주 시장의 3번의 타고(打鼓)와 함께 6백여 명의 묵객은 과거를 치르듯이 현장에서 붓글씨를 써 내려갔다. 필자는 식전 행사로서 ‘온 누리 빛 되신 세종 큰 임금’이라는 글감으로 국악의 반주에 맞추어 긴 천에 대붓 퍼포먼스를 펼쳤다. 세종은 인류에게 지혜를 열어줄 한글을 창제한 공로로 겨레의 스승을 지나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9월 8일은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 문해(文解)의 날’로, 이날 전 세계 문맹 퇴치를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 또는 단체를 뽑아 시상하는데, 이 상의 이름이 자랑스럽게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문해란 ‘literacy’의 번역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세종의 성명은 ‘이도(李祹)’이고, 자는 ‘원정(元正)’이다. 임금의 시호를 묘호(廟號)라 하는데, 세종의 묘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이를 줄여서 흔히 세종대왕(世宗大王)이라 하는데 이는 ‘세상의 으뜸인 대왕’의 뜻이다. 사실 세종에게만 대왕의 호칭이 붙은 것은 아니다. 에 나온 모든 왕의 묘호 끝에는 대왕(大王)이 붙어있다. 나라가 작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는 대한민국, 한강대교, 대성공, 대선배 등의 예에서 보듯이 ‘큰 대(大)’ 자 붙이기를 좋아한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들로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 비는 심온의 딸 소헌왕후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조선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세종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 그런데 ‘스승’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뜻일까. ‘선생(先生), 사부(師傅), 은사(恩師)’로 부르기도 하는 ‘스승’은 나를 가르쳐서 바른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스승이란 말이 사용된 예를 살펴보면 에는 ‘화상(和尙)은 스승을 이르니라’, 에는 ‘법(法) 가르치는 사람은 스승이고 배우는 사람은 제자이다’ ‘늘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에는 ‘스승 아니면 깨닫지 못하나니(非師不悟)’, 에는 ‘스승님을 존(尊)하오며’, 에는 ‘스승을 섬기되’, 에는 ‘스승 ᄉᆞ(師), 스승 부(傅)’, 에는 ‘어버이를 사랑하며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존대하며(愛親敬長隆師)’, 조선 시대 사역원에서 간행된 중국어 어휘집 에는 ‘스승: 사부(師傅)’ 등이 있다.위의 예에서 보면 스승이란 ‘승려, 인도자, 법을 가르치는 사람, 깨닫게 해 주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섬김을 받는 사람’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스승이란 말이 ‘무당’의 뜻으로 쓰인 예도 있다. 에는 ‘옛 임금이 스승 불사름을 삼가시고(前聖愼焚巫)’, 에는 ‘세속에 스승이 간대로(함부로) 비손함(두 손 비비며 신에게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빎)에 미침이 심하여(世俗巫禱狂妄尤甚)’ 등의 용례를 살필 수 있다. 소리나 의미로 볼 때, ‘스승’과 가장 닮은 한자어는 ‘사승(師僧)’이다. 이는 승려(僧侶)가 자신의 스승을 이르는 말이었다. 사승(師僧)의 중국어 발음이 /shi seng(스성)/인 것을 보면 우리말 ‘스승’과 말 뿌리가 서로 같다고 판단된다.그도 그럴 것이 ‘스님’이란 말도 ‘사(師, shi)님’에서 왔거나, ‘승(僧, seng)님’에서 ‘ㅇ(이응)’이 탈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결국 ‘스승’의 어원은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으며, ‘무당’의 뜻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어에서 ‘스치다’는 ‘생각하다’의 뜻이었다. 스스로 바른길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신 스승을 스승의 날에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늘 마음속으로 스승을 스치며(생각하며) 살아가야 내 언행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각의 근육을 기르다가 생을 마감한다. 스승의 핵심적 역할은 제자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세종 시대에 정치·국방·경제·과학·음악·언어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특출한 재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승 세종으로서 궁궐의 도서관인 집현전(集賢殿)을 통하여 뛰어난 인재들을 길러내고, 대왕 세종으로서 신분이나 가문을 따지지 않고 훌륭한 인물을 고루 등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요순보다 뛰어난 공적을 세우고 조선의 황금기를 일구어냈다.그렇다면 세종은 이와 같은 정의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어떻게 길렀을까. 독서로부터 생각의 근육을 길렀다. 세종은 손에 책을 들고 있어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독서는 세종에게 마음의 안식처이자 국가 경영의 산실이었다. 부왕 태종은 왕자의 건강을 염려하여 지나친 독서를 금지하기까지 했지만, 실은 의 기록과 아들 세종의 고백을 보면 부왕도 독서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정치를 잘하려면 널리 책을 읽어 이치를 깨닫고 마음을 바로잡아야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습관은 아버님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매일 사경(四更)이 되면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32년의 재위 기간(1418~1450) 동안 세종이 이루어 낸 위대한 업적 뒤에는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독서에 매진했던 노력이 있었다.사실 유교 사회에서 왕위계승에는 장자가 1순위다. 태종의 네 아들 중 셋째인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왕자 시절부터 심취했던 독서 덕분이라 생각한다.세종이 22세 되던 8월에 왕위에 오르고, 원년인 23세에 이종무를 통하여 쓰시마 섬을 정벌한 데 이어, 세종 2년 24세에 집현전을 설치한 것을 보면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국방과 학문에 주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의 겨레 스승으로서의 면모는 세종 32년 54세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특히 젊고 재주 있는 신하들을 집현전에 모아 놓고 기초 학문을 연구하도록 늘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결과 1443년 세종 25년 47세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 IT 시대에 더욱 빛나는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하기에 이른다.文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지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택한 것은 세종대왕의 첫 국정 업무였던 쓰시마 섬 정벌을 통한 국방태세 정비와 닮았다. 바라건대, 文 대통령의 하루 시작도 태종이나 세종처럼 독서였으면 좋겠다.여덟 살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던 교문을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드나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종보다 더 오래 살았고, 책을 가까이 한 기간도 더 길었다. 그런데도 쓴소리가 들려온다. 선생은 많되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되 제자는 없단다. 온 누리 빛 되신 세종 큰 임금님, 용서하소서.
201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