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전 국회의장님께 올리는 시
한국정치학회로부터 제1회 국가지도자상을 수상하신정의화 전 국회의장님께 올리는 헌시입니다.
2026.03.11
예천유림단체연합회 신년교례회 라이브 서예
전통 계승의·정신문화 강화 의지 다져예천 지역 전통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온 예천유림단체연합회(회장 조윤 예천문화원장)가 2026년 첫 회합으로, 지난 2월 27일 예천축협한우프라자 2층 대회의실에서 신년교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학동 예천군수, 도기욱 도의원, 권상호 서예가 등 지역 내빈과 유림 원로·회원 150여 명이 참석해 우리 지역사회의 전통 계승과 유도 정신 함양의 의지를 다졌다.올해 교례회는 예천향교를 비롯한 각 지역 향교, 예천유도회 외의 각 지역 유도회, 각 지역 박약회, 예천담수회 등 14개 유림단체의 많은 회원들이 함께하여, 예천 유림문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신년 단배와 덕담을 나누며 유림의 건승을 기원했다. 조 윤 문화원장, 전통 계승과 숙원사업 추진 강조예천 유림의 중심에서 막중한 책임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조 윤 회장은 신년 인사에서 “전통은 지켜야 할 가치이자 미래를 여는 힘”이라며 유림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유림의 숙원사업인 문화원 독립원사 및 유림회관 건립의 필요성을 재차 언급하며 “예천 정신문화의 체계적 보존·교육을 위한 상징적 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예천의 인물, 유일한 박사 소개이날 행사에서는 진주류씨 종중의 류덕기 교수(수원대 경영학부)의 특별강연이 있었는데, 예천 출신인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삶과 철학, 그리고 예천과의 알려지지 여러 인연들이 소개되어 참석자들의 많은 박수와 호응을 받았다. 류 교수는 “올해는 유일한 박사께서 미국에서의 유학과 사업 성공 후 귀국하시어, 우리 예천에 금의환향으로 방문하신지 꼭 100년일뿐 아니라 유한양행 창업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며 “박사님의 애국심과 사업 철학은 예천이 지닌 유림정신에서 나온바, 유림정신이 충만하신 부친 기연 공으로부터 이러한 지역정서와 가르침을 잘 이어받은 결과, 우리 역사에서 보기드문 훌륭한 경영자가 되셨다. ”고 강조했다.민요 공연과 서예 퍼포먼스, 참석자들 큰 감동행사 후반에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천아리랑보존협회의 공연과 함께, 서예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무대에서 펼쳐진 신년 휘호 ‘숭례화향(崇禮化鄕: 예를 받들어 고을을 변화시키자)’은 예천 유림이 추구해야 할 도의와 화합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며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지역 정신문화 강화의 해로참석한 단체 회원들과 지역 인사들은 “우리 유림단체의 숙원사업인 유림회관 건립은 지역 정신문화의 기반을 강화하는 핵심 사업”이라며 한목소리를 냈고, 이에 모든 이해관계자 및 참석한 내외빈들도 본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협력을 약속했다.이번 신년교례회는 단순한 새해 인사를 넘어, 예천 유림이 지향해야 할 전통 계승·공동체 발전과 예천의 미래를 위한 발전방안 모색 등의 공통의 비전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2026.03.11
전국유림 신년교례회 라이브서예
병오년 윤리도덕성 회복을 위한 학술회 및 전국유림 신년교례회2026년 2월 21일(토) 새벽 5시 30분.문인화 작가인 동생 와석 권상학과 함께 전국유림 신년교례회 현장 휘호를 위해 경상북도 상주 실내체육관을 찾았다.6m에 이르는 종이 위에 와석은 힘찬 소나무 한 그루를 치고, 나는 축하의 글귀를 써 무대에 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다해 준비한 작업이었다.이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황의호 전 성균관청년유도회중앙회 명예회장님의 도움이 컸다. 또한 함께 휘호하기로 하였으나 여의치 못했던 강원대학교 중관 황재국 교수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아울러 정성껏 촬영해 주신 유초 성익창 사무국장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소나무의 화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천년의 뿌리, 유림의 기상으로 일어나라그리고 휘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隨時處中道 敦本立國基(수시처중도 돈본입국기)때에 맞게 처신하되 중용의 도를 지키고,근본을 돈독히 하여 나라의 기반을 세우자는 뜻이다.
2026.03.11
봉암서예원, 이경무 원장 8주기 추모
헌정시·휘호작품 봉정식 개최[고양신문] 봉암서예원은 이경무 원장 8주기 추모 및 헌정시·휘호작품 봉정식을 지난 4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50여 명의 회원 등이 참석했다.약 3개월 동안 헌정할 작품을 준비한 도정 권상호씨는 ‘어진 마음으로 선을 베푸시어 민생을 구제하고 집집마다 쌀을 나누시니 엄동설한도 가벼워라, 고양에 큰집을 세우시고 문화를 드넓히시니 그 덕업은 길이길이 남아 만세토록 빛나리라’라는 작품을 설명하며 이경무 원장의 업적이 선양하고자 했던 뜻을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고 이경무 원장의 장남 이병철씨는 “아버님의 뜻이 담긴 봉암서예원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힘써주시는 이남무 원장님께 감사드린다”며 “이렇게 아버님을 추모하는 시를 헌정해주시니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들겠다”고 인사의이어 이남무 원장은 “올해로 8주기를 맞는 봉암 이경무 원장은 지역사회의 순화와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고양문화원의 토대를 세우신 분”이라며 “처음으로 헌정시를 봉정하게 되어 큰 영광이며 대대손손 잘 보전해 계승하고, 이경무 원장님의 유훈대로 봉암서예원이 누구나 오셔서 학문과 서, 화를 공부하시는 행복한 배움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잘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
2026.02.21
한국과 중국의 서예가들 제주로 제주로 - 미디어제주
2025 제주·서울·중국서예교류전 개최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문예회관서[미디어제주 = 김형훈 기자]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예가들이 제주에 모인다. 바로 2025 제주·서울·중국서예교류전이다. 교류전은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마련된다.이번 서예교류전은 사단법인 제주서예문화연구원(원장 김광우), 서울신묵회(대표 권상호), 중국류서법연구원(원장 예하이린) 등 세 곳의 서예 단체가 공동 주최한다.제주는 회원 33명이 65점을, 서울은 30명의 회원이 64점을, 중국에서 오는 이들도 12명이 15점을 내놓아 서로 묵향을 뽐낸다. 찬조 작품을 포함하면 이번 교류전에서 150점에 가까운 작품을 볼 수 있다.한국과 중국은 한자를 기반으로 서예를 발전시켰다. 같은 듯하지만 서로의 장점을 살리며 결이 다른 서예를 발전시켜 왔다. 이번 특별전은 중국의 고전적 형태의 서예를 맛볼 수 있고, 한국은 우리글인 한글을 포함해 다양한 서예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제주서예문화연구원 김광우 원장은 “중국 상하이 예하이린 교수 그룹이 동참하면서 전시 품격이 높아졌다. 서울과 제주 작가들도 훌륭한 작품을 출품했다. 보시는 분들은 비교 관람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며 “앞으로 국내외 교류전을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추사체 탄생 고장의 자존심이, 소위 ‘제주서예의 국제화 또는 세계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한편 개회식은 6월 28일 오후 5시 예정돼 있다. 개회식에 앞서 식전 행사로 휘호대회와 대금 공연 등이 열린다.출처 : 미디어제주(https://www.mediajeju.com)
2025.11.13
빈정경 초대전 콜라보 - 중앙일보, 스포츠경향, SBS 외
[문화 단신] 물레 사용않고 맨손으로… 빈정경 초대전물레 사용않고 맨손으로…빈정경 초대전도예가 빈정경 작가 초대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15∼20일 열린다. 빈 작가는 30년 동안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흙을 둥글고 길게 말아 포개고 합치는 코일링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한 번에 세 줄을 쌓고 며칠 동안 마르기를 기다려 또 쌓아야 되는 지루한 작업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60점의 작품 중에는 서예가 권상호 작가와의 콜라보 작품도 포함된다.허길량 장인, 불교 목조각 개인전국가무형유산 목조각장 보유자를 지낸 허길량 장인의 개인전이 15∼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관에서 열린다. ‘박달다듬이목과 소나무에서 깨어난 비천(飛天)’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목조 비천상 20여 점을 비롯해 미륵반가사유상·보살상·삼신불 등 3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허 장인은 15세에 조각을 시작해 57년 동안 불교 목조각을 해왔으며, 오대산 중대보궁 등 여러 사찰의 불상 제작에 참여했다.[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74121맨손 도예가 지행(芝杏) 빈정경 초대전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는 오는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6일 동안 국 내 최정상급 맨손 도예가 지행(芝杏) 빈정경 작가를 초대, 초대전을 갖는다.이번 빈 작가의 초대전은 4번째 초대전으로 지난 30년 동안 맨손 코일링 도예만을 고집한 대 작 20점과 소작 40점을 포함 총 60점의 작품이 전시 될 예정이다.이번 전시 대표작 달항아리는 대가가 아니면 물레로도 만들기 힘든 고난도 작업으로 30년 코 일링 도예의 정수를 보여준다.30년 동안 고집스럽게 외길만을 걸어 온 작가는 5년 전 도봉산 중턱 국립공원 안에 연구실을 마련 가마를 설치하고 새로운 유약 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 새롭게 변 화한 작품의 모습도 보여준다. 서예 대가인 도정 권상호 작가와의 콜라보 작품도 출품한다.작가가 고집하는 코일링 맨손 도예는 한 번에 세 줄을 쌓고 며칠 동안 마르기를 기다려 또 쌓 아야 되는 매우 느리고도 지루한 작업이다. 얇게 성형하는 기술 또한 고도의 숙련도를 요함으 로 최소 20년 이상의 노력과 단련이 필요하다. 20년 이상 되면 직업병인 양손 근육 손상으로 대 수술을 받아도 오랜 시간 재활을 거쳐야한다. 이런 연유로 국내에는 대작을 만들 수 있는 맨손 도예가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작가는 “이번 초대전이 계기가 돼 앞으로 코일링 도예에 관심을 갖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와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일본의 작고한 국보 기타오지 노산진 같은 세계가 알아주는 맨손 도예가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출처 : 스포츠 경향맨손으로 감아올리는 도자…코일링 기법 도예가 빈정경 초대전 ▲ 코일링 기법 도예가 빈정경 초대전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흙을 가래떡처럼 길게 만들어 층층이 쌓아 올리는 코일링 기법의 도예가 빈정경 초대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달항아리와 채색 화병 등 대작 20점을 포함해 모두 60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서예가 권상호 작가와의 콜라보 작품도 출품합니다. 코일링 맨손 도예는 흙을 코일처럼 만든 뒤 한 번에 세 줄씩 쌓고 며칠 동안 마르기를 기다려 또 쌓아야 되는 느리고도 지루한 작업입니다. 얇게 성형하는 기술 또한 고도의 숙련도를 필요로 해서 오랜 기간의 노력과 단련이 필요합니다. 빈정경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맨손 코일링 도예에 매진해 오며 코일일 기법 개발과 전수에 힘써오고 있습니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출처 : SBS 뉴스
2025.11.13
봉암서예원, 이경무 원장 8주기 추모
헌정시·휘호작품 봉정식 개최[고양신문] 봉암서예원은 이경무 원장 8주기 추모 및 헌정시·휘호작품 봉정식을 지난 4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50여 명의 회원 등이 참석했다.약 3개월 동안 헌정할 작품을 준비한 도정 권상호씨는 ‘어진 마음으로 선을 베푸시어 민생을 구제하고 집집마다 쌀을 나누시니 엄동설한도 가벼워라, 고양에 큰집을 세우시고 문화를 드넓히시니 그 덕업은 길이길이 남아 만세토록 빛나리라’라는 작품을 설명하며 이경무 원장의 업적이 선양하고자 했던 뜻을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고 이경무 원장의 장남 이병철씨는 “아버님의 뜻이 담긴 봉암서예원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힘써주시는 이남무 원장님께 감사드린다”며 “이렇게 아버님을 추모하는 시를 헌정해주시니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들겠다”고 인사의 말을 했다. 이어 이남무 원장은 “올해로 8주기를 맞는 봉암 이경무 원장은 지역사회의 순화와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고양문화원의 토대를 세우신 분”이라며 “처음으로 헌정시를 봉정하게 되어 큰 영광이며 대대손손 잘 보전해 계승하고, 이경무 원장님의 유훈대로 봉암서예원이 누구나 오셔서 학문과 서, 화를 공부하시는 행복한 배움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잘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
2025.11.13
춤과 글씨는 하나다 - 2025. 10월호 논단
舞書一如(무서일여)— 몸과 붓, 하나의 선으로 흐르다도정 권상호춤과 서예는 서로 다른 예술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필자는 무용 공연을 즐긴다. 그때마다 몸가락을 붓가락으로 생각하며 감상한다. 몸이 움직이는 선과 붓이 긋는 획은 모두 생명에서 비롯된 리듬이며, 그 리듬은 정(靜), 중(中), 동(動)의 조화 속에서 피어난다.춤의 단계는 서예의 필법과 맞닿아 있다. 춤의 입문 단계인 입춤은 춤의 기본으로 기필, 행필, 수필의 흐름과 같고, 춤의 법도가 있는 승무는 전서·예서·해서처럼 형식과 법도를 갖춘다. 감정과 즉흥적 요소가 돋보이는 살풀이춤은 행서와 초서, 캘리그라피의 자유로운 필치처럼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필획의 흥취를 달리하는 데에 매력이 있다. 故(고) 이매방 선생은 자신의 춤을 ‘사방춤’이라 했다. 사방을 돌며 관객과 호응하는 춤으로, 모든 방향을 향해 추는 춤이다. 이는 행사장에서 쓰는 라이브서예와 그대로 닮아있다. 이는 점·선·원—즉 점획, 직획, 곡획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움직임의 원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춤의 구조는 서예의 운필 원리와 정확히 겹친다. 몸의 중심은 중단전(氣), 아래는 하단전(精), 위는 상단전(神)이다. 이매방 선생은 “배꼽은 중, 아래는 정으로 암놈, 위는 동으로 수놈”이라 했다. 서예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정·중·동이다. 붓대는 정, 붓털머리는 중, 붓끝은 동에 해당한다. 정이 동을 일으키고, 여성이 남성을 움직이듯, 서예의 획도 정에서 시작해 동으로 흐른다. 붓글씨를 쓰는 동안 뇌(腦)는 천둥과 번개처럼 움직이며, 종이와의 관계에서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곧 글씨다. 몸과 붓은 서로 거울처럼 닮았다. 춤과 서예는 결국 하나의 몸에서 나오는 예술이다. 그리하여 ‘舞書一如(무서일여)’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단순한 유사성을 넘어 존재론적 일체감을 드러내고, 예술적 통일성과 조화를 강조하는 말이다. ‘一如(일여)’는 불교와 동양 철학에서 본질의 통일성을 뜻하며, 예술에서는 體(체)와 用(용), 身(신)과 心(심)의 리듬에 나오는 일체의 미학을 담아낸다.사방춤에서의 몸의 움직임과 서예에서의 붓의 움직임도 일치한다. 사방춤의 사방은 운필의 전후좌우와 같다. 서예 입문자에게 흔히 前(전)에서 後(후, 몸쪽)로, 左(좌)에서 右(우)로의 운필만을 가르치는데, 이와 병행하여 후에서 전으로, 우에서 좌로 긋기를 병행하면 표현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順手(순수)와 逆手(역수)를 동시 익혀야 모든 서체의 운필이 자유롭게 된다는 말이다. 춤의 동선과 서예의 필획은 모두 몸의 흐름에서 비롯된다. 글 쓰듯 춤추고, 춤추듯 글을 써도 전혀 이상할 게 못된다. 몸가락 없이는 춤도 서예를 잘할 수 없다. 춤의 원리, 곧 몸의 원리를 서예에 적용해 봄직하다. 결국 서를 잘하려면 몸을 잘 가꾸어야 한다. 건강 없이는 서예도 없다.心口一如(심구일여)하고 舞書一如(무서일여)하니, 心書一致(심서일치)하여 常樂筆墨(상락필묵)이로다.
2025.11.13
민족대창(民族大昌)의 참뜻 창간호
민족대창(民族大昌)의 참뜻 중20, 고19회 권상호
대창인에게 가장 친숙한 발음은 ‘大韓民國(대한민국)’ ‘大昌學園(대창학원)’이라 할 때의 /대/이다.
‘松臺(송대)’ 옛터 높은 언덕 넓은 동산에 유서 깊은 크나큰 집 우리의 모교….
‘大地(대지)’를 굳게 밟고 창공을 쳐다보는 씩씩한 저 용사야, 너 이름 ‘大昌(대창)’ 건아….
‘대창’ ‘대창’ 사자왕 ‘대창’….’
‘송대’를 ‘무대’로 성장한 ‘대다수’의 ‘대창인’은 ‘대지’ 위에서 ‘대기’를 호흡하고, ‘대성’에 ‘대한’ ‘대망’을 ‘기대’하며, 오늘도 ‘대한’의 남아답게 ‘대면’하고 ‘대화’하며 ‘대변혁’과 ‘대박’을 꿈꾸고 있다. /대/라는 발음이 들어가는 15개의 단어로 만들어본 문장이다.
모교 ‘大昌(대창)’은 한자로 구성된 고유명사이다.
漢字(한자)도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40여 개의 문자언어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문자언어가 가지고 있는 공통성과 고유성을 한자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龍(룡)’을 ‘龙’으로, ‘蘭(란)’을 ‘兰’으로, ‘禮(례)’를 ‘礼’로, ‘華(화)’를 ‘华’로 쓰듯이, 이른바 简体字(간체자)를 새로 만들어 쓰기 시작하면서 전통한자는 繁体字(번체자) 또는 废字(廢字, 폐자)라 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동이족이 만든 갑골문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전통한자는 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한나라 때 전래한 문자라는 뜻의 漢字(한자)는 이제 한국의 문자, 韓字(한자)라고 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음근의통(音近義通)이라는 말은 文字學(문자학), 訓詁學(훈고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음이 비슷하면 뜻도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大(큰 대)와 太(클 태), 泰(클 태), 颱(태풍 태) 등은 모두 ‘크다’는 의미가 있고, 地(땅 지)와 池(못 지), 紙(종이 지), 之(갈 지). 止(발지) 등은 ‘땅’ 또는 ‘지탱’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한자는 多義語(다의어, Polysemy)이다. 만약 천자문 외듯이 한자의 한 가지 뜻만 머리에 박혀 있으면 결국 그 하나의 뜻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고의 유연성을 살려, 왜 이렇게 발음하고, 왜 이런 뜻을 가지며, 왜 이런 모양으로 쓰는지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 특히 어떤 의미의 기록을 위한 한자 자형의 탄생 과정은 아이디어 뱅크요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이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여러 권의 책을 읽음에서 오는 다양한 사고와 견해를 갖지 못하고 자신의 짧은 생각이 세상의 모든 지식인 양 들이대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적을 바꾸는 일도 용이하지 않다. 어렵사리 이민하여 국적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까지는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母國(모국), 母校(모교), 父母(부모) 등과 같이 ‘母(모)’ 자가 들어있으면 운명을 지나 숙명에 가깝다. 그래서 모국, 모교, 부모는 ‘母心(모심)’으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우리의 모교 이름 ‘大昌(대창)’은 ‘크게(大) 창성하라(昌)’ ‘크게 일어나라’ ‘크게 뻗어 나가라’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大昌’이란 명칭을 찾아보면 신라 제24대 眞興王(진흥왕, 534~576)의 세 번째 연호로 처음 나타난다. 서기 568년의 기사이다. 大昌(대창)은 대외적으로 신라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용한 연호이고, 마지막으로 사용한 鴻濟(홍제)는 ‘크게 구제하다’의 뜻이니, 왕권을 강화하고 내치를 잘하겠다는 의미의 연호이다. 진흥왕은 일곱 살에 왕위에 오른 뒤 왕태후의 섭정을 받지만, 친정을 시작한 10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영토를 넓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북한산(北漢山, 555년)·창녕(昌寧, 561년)·황초령(黃草嶺, 568년)·마운령(摩雲嶺, 568년) 등지의 4개 순수비(巡狩碑)와 단양적성비(丹陽赤城碑)까지 세우는 등 신라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 왕이다.
민족대창이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은 이후 1354년째 되는 1922년의 일이었다. 암울하던 일제 치하에서 민족혼을 일깨우고 조국 광복을 도모하며 나아가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건설의 인재를 기르고자 설립한 모교 대창이 백 년을 넘어 이제 새로운 백 년을 향해 웅비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고 동문의 친목을 도모하며 더욱 굳건한 대창 暢達(창달)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재경대창중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이라는 동문회지를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필자는 ‘민족대창’이라는 제호(題號)를 쓴 바 있고, 또 ‘대창(大昌)’에 대한 문자학적 깊은 의미를 살핌으로써 대창의 참뜻을 살펴보고, 나아가 대창 동문으로서 矜持(긍지)와 自負(자부)를 공유하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이다.
大자의 변천을 보면 동이족이 만든 甲骨文(갑골문)에서 출발하여 金文(금문)을 거쳐 戰國文字(전국문자), 篆文(전문, 전서), 隸書(예서), 楷書(해서)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사람이 정면으로 두 다리를 벌리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다만 진나라 때 李斯(이사)가 정리한 篆書(전서, 篆文) 시대까지는 아래로 길쭉한 네모 형태로 이른바 縱方形(종방형)을 이루고 있던 것이, 한나라 隸書(예서) 시대에 오면 옆으로 납작한 橫方形(횡방형)으로 바뀌었다가, 北魏(북위) 이후의 해서 시대에 오면 네모반듯한 正方形(정방형)으로 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大(대)의 의미 속에는 면적, 부피, 용량, 수량, 강도, 힘 등이 비교 대상보다 큰 것을 뜻하며 小(소)의 상대 개념이다.
자형 변화를 살펴보면 ‘大’자는 ‘크다’는 의미로 다가오기 이전에 두 팔을 좌우로 펼치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大자가 들어가 있는 대부분의 글자는 ‘크다’는 의미보다는 ‘사람’의 뜻으로 출발하였다.
예컨대 ‘天(하늘 천)’은 사람(大)의 머리와 맞닿은 곳이 ‘하늘’임을 뜻한다.
‘立(????, 설 립)’은 사람(大)의 발이 땅(一) 위에 서 있는 모습에서 ‘서다’의 의미가 나왔다.
‘夫(지아비 부)’는 사람(大)이 머리에 비녀(一)를 꽂고 있으니 ‘성인 남자, 지아비’를 뜻한다.
‘央(가운데 앙)’은 사람(大)이 어깨 위까지 솟구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모습인데, 이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짐을 어깨 ‘가운데’에 얹어야 함에서 나온 글자이다. 무거운 짐을 줄곧 지게 하면 怏心(앙심)을 품게 되면서 ‘怏(원망할 앙)’이 나온다.
‘夬(터놓을 쾌)’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모습을, 이때의 기분은 愉快(유쾌)·爽快(상쾌)·痛快(통쾌)라고 할 때의 ‘快(쾌할 쾌)’이다. 그런데 통쾌에서 ‘아플 痛(통)’자를 쓴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는 아픔, 좌절, 실패를 겪은 다음에 얻는 짜릿한 쾌감이 통쾌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짊어진 것이 물이라면 ‘決(터질 결, 물이 쏟아져 나갈 결)’이다. 여기서 질그릇이 깨어져 떨어져 나가면 缺陷(결함)이 생기니 ‘缺(이지러질 결)’이 된다.‘奇(기이할 기)’는 고무래(丁)를 들고 노래하며(口) 일하는 사람(大)의 모습은 ‘기특하고, 뛰어나다’에서 ‘기이하다’는 뜻으로 확장된다. 그런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모습이 倚(의지할 의)이다.
‘夷(편안할 이; yí)’는 사람(大)이 활(弓)을 가지고 있으니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에서 ‘怡(기쁠 이; yí)’와 발음도 같고, 뜻도 비슷하다. 여‘기에서 그런 사람들이 사는 ‘중국의 동쪽 평지’, ‘중국의 동쪽 민족’의 의미가 나왔다. ‘오랑캐’라는 의미는 중국 자전에도 없는 뜻을 우리 스스로 붙인 언어 사대주의적 발상의 결과이다. 夷자의 갑골문 형태는 ‘矢+弓’으로 활 위에 화살을 얹은 모습이었다.
‘契(맺을 계)’는 사람(大)이 칼(刀)로 예쁘게(丰) 새기는 모습에서 ‘새기다, 긋다, 글, 契約(계약), 맺다’ 등의 뜻이 나왔다.
‘亦(또 역)’은 두 팔을 벌린 사람(大)의 양 겨드랑이 부분에 각각 점을 찍어서, 겨드랑이는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에 또 있으므로 ‘또, 역시’의 뜻이 된다.
‘夜(밤 야)’자는 亦의 겨드랑이 한 점 대신에 밤을 뜻하는 ‘저녁 석(夕)’자를 붙였다. ‘腋(겨드랑이 액)’, ‘液(진 액)’ 등의 글자도 모두 사람(大)의 겨드랑이를 뜻하는 亦(역)자에서 파생한 글자들이다.
‘夾(낄 협)’자는 사람(大)과 두 개의 人(인)으로 구성되어, 양쪽으로 사람을 끼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를 좌우(左右)에서 모시는 두 보살을 夾侍菩薩(협시보살)이라고 한다.
‘奔(달릴 분)’은 사람(大)이 풀밭(卉: 풀 훼) 위를 달려가는 모습이다. 奔走(분주)하다, 東奔西走(동분서주)하다 등의 용례를 살필 수 있다.
‘奚(어찌 해)’은 사람(大)을 줄(幺)로 묶어 손(爪)으로 부림에서 ‘여자 종’의 뜻이었으나 나중에 ‘어찌’라는 의문사로 가차 되었다.
다만 ‘失(잃을 실)’은 한자 사전에서 ‘大‘부수에 넣어놓았으나, 이는 문자학적으로 보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手+乙(소리부)’로 손에서 놓쳐 ‘잃다’의 뜻이 나왔으므로 大자 가족이 아니다.
다음으로 ‘昌(창성할 창)’자는 ‘日(해 일)’과 ‘曰(말씀 왈)’의 결합으로, 태양(日) 아래에서 태양의 아름다움과 햇빛에 대한 감사의 뜻을 노래하는(曰) 모습이다. 곧, 태양신에 대한 기도와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昌자의 출발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日(일)’자 밑에 ‘口(입 구)’자를 결합한 모습으로 ‘唱(노래 창, 부를 창)’의 본자로 보고 있다. 昌자의 변화 과정을 보면, 아침 해가 막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윗부분은 태양의 상형인 日이며, 아랫부분은 ‘수면에 비친 태양의 그림자’ 곧, ‘윤슬’로 볼 수도 있다.
농업을 중시했던 고대사회에서 태양은 ‘풍요’와 ‘번창’의 상징이었다. 우리말에서 ‘빛’과 ‘비’는 ‘빌다’의 대상으로, 어원이 같다고 본다. 大韓(대한)의 ‘韓(나라 이름 한)’, 朝鮮(조선)의 ‘朝(아침 조)’에도 태양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태양 신앙 민족임이 분명하다.
갑골문에서 ‘言(말씀 언)’과 ‘音(소리 음)’은 같은 모양에서 출발했다. 音자는 입안에 혀를 가리키는 획 하나를 더 그었을 뿐이다. ‘兄(맏 형)’과 ‘呪(빌 주)’ ‘祝(빌 축)’은 亨通(형통)을 기원하며 입을 벌리고 꿇어앉아 축원하는 모습이고, 音보다 더 큰 소리로 꾸짖는 소리는 喝破(갈파), 喝采(갈채)라고 할 때의 ‘喝(꾸짖을 갈)’이다.
형태적으로 가장 빛나는 글자는 ‘明(밝을 명)’이다. 햇빛과 달빛을 형상화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때로는 日(일)이 아닌 囧(빛날 경)자를 붙여 창으로 스며드는 휘영청 밝은 달빛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朙(밝을 명)’으로 써 오기도 했다.
水晶(수정), 結晶體(결정체)라고 할 때의 ‘晶(밝을 정)’자는 원래 빛나는 별을 뜻했으나, ‘밝다’는 의미로 사용되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曐(별 성)’자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너무 복잡하므로 지금은 ‘星(별 성)’으로 줄여 쓰고 있다.
昌(창), 明(명), 晶(정), 星(성) 등의 발음상 공통점은 받침 ‘ㅇ’이 있어서, 光(광), 黃(황), 皇(황), 朗(랑), 上(상), 陽(양), 螢(형), 鳳凰(봉황), 蒼空(창공)처럼 밝게 다가온다.
이처럼 昌자는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의미가 좋으므로 지명, 인명과 같은 고유명사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大昌(대창), 昌原(창원), 昌寧(창녕), 居昌(거창), 平昌(평창), 淳昌(순창), 咸昌(함창), 新昌(신창), 碧昌牛(벽창우), 昌慶宮(창경궁), 昌德宮(창덕궁), 昌林寺(창림사), 文昌星(문창성), 孝昌公園(효창공원), 昌王(창왕), 화랑 官昌(관창), 독립운동가로서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이봉창(李奉昌, 1900~1932)을 비롯하여 금년에 작고한 자랑스러운 동문 서예가 權昌倫(권창륜, 1943~2024) 등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民族(민족)이란 함께 살아온 지역성, 사용 언어, 문화의 공통성을 기초로 형성된 사회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民族大昌(민족대창)은 韓民族(한민족), 배달겨레의 정서 위에 세워진 사학 명문이다. 民族(민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문자학적으로 풀이할 기회가 있으려고 믿는다.
大昌(대창)이여 民族大昌(민족대창)이여, 영원히 ‘繁昌(번창)’ ‘隆昌(융창)’ ‘昌盛(창성)’하리….
2025.11.13
월간서예 논단 2025. 5.
2025. 5월호 논단 - 날줄과 씨줄, 그리고 글씨날줄과 씨줄, 그리고 글씨 권상호(權相浩)가정에서 베틀이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날줄과 씨줄을, 감염과 전염 또는 망각과 착각처럼 가끔 혼동하는 수가 있다. 날줄과 씨줄은 각각 날실과 씨실이라고도 하며, 직물이나 그물을 짜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각각 세로 방향의 실과 가로 방향의 실을 의미한다. 날줄은 이미 ‘나 있는 줄’이고, 씨줄은 날줄 사이사이에 ‘씨를 뿌리는 줄’이라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는다. 날줄 없는 씨줄은 없다. 날줄이라는 기본 구조가 없으면 씨줄을 엮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필자가 관심하는 줄은 ‘씨줄’의 ‘씨’에 있다. ‘글씨’에도 ‘씨’가 있기 때문이다. 글씨의 ‘글’에서는 ‘긋다’가 파생되고, ‘씨’에서는 ‘쓰다’가 나온다.베틀에서 이미 나 있는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걸어 주는 기구는 ‘북’이다. 타악기에도 북이 있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두 손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밀당을 한다는 점이다. 서예 용어로는 ‘날줄’ ‘씨줄’보다, 획(劃)을 뜻하는 ‘금’ 자가 들어간 ‘날금’ ‘씨금’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지구과학 시간에 날금은 경선(經線)으로, 씨금은 위선(緯線)으로 배웠다. 나아가 경위(經緯)는 일의 진행 과정, 경위(涇渭)는 시비의 분간, 경우(境遇)는 사리나 도리를 뜻하니 주의해야 한다.‘씨’라는 말은 식물의 종자는 물론, ‘씨가 좋은 소’라고 할 때는 동물에게, ‘성씨(姓氏)’라고 할 때는 인간에게도 여지없이 씨가 붙는다. 씨가 들어가는 말에는 ‘글씨’ 외에도 ‘마음씨’ ‘말씨’ ‘솜씨’ 등이 있다. ‘맵시’는 맵씨가 변형된 말이다. ‘씨’는 사람의 태도나 재주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그날의 기상 상태를 뜻하는 ‘날씨’도 있다. 씨에서 뿌리가 뻗고 줄기 가지가 생기며, 꽃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은 모두 씨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가장 끔찍한 재앙을 뜻하는 속담이 ‘씨가 마르다’이다. 씨는 반드시 남겨야 하고, 또 뿌려야 한다. 글씨도 마찬가지로 화선지라는 밭에 먹이라는 씨를 뿌릴 때 발아하고 먹꽃이 만발하며 묵향이 진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작가의 목소리를 영원히 대변하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남게 된다. 하지만 육신은 나날이 노화하고 끝내 흙으로 돌아가므로 믿을 게 못 된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 중에 ‘경경위사(經經緯史)’가 있다. 이 구절이 그의 묵란(墨蘭) 작품 위에는 유인(遊印)으로 찍혀 있다. ‘경학(經學)을 날줄로 삼고 사학(史學)을 씨줄로 삼겠다’라는 추사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곧, 만고 진리의 말씀인 경전(經典)을 먼저 읽어 자아가 확립한 뒤에, 시끄럽고 시비 많은 사서(史書)를 읽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선경후사(先經後史)와도 상통한다. 조선 순조 20년(1820)에 다산 정약용이 엮은 책, 에는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農夫餓死枕厥種子)’라는 속담이 나온다. 필자는 여기에서 ‘선비는 굶어 죽어도 글씨는 베고 죽는다(士人餓死枕其文字)’라는 말을 대구로 덧붙여 본다.정보화시대에 넘치는 정보로 인한 정신적 어지러움을 없애고,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방법으로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의 독서와 서예를 추천한다. 날줄과 씨줄을 촘촘히 엮어 아름다운 비단을 짜듯, 날금과 씨금을 엮어 나만의 진솔한 붓글씨를 써 보자. 나아가 소통과 공유의 서예 활동을 통하여 극단으로 분열된 마음을 치료하고 화합과 행복의 장을 만들어나가자.
2025.11.13
월간서예 논단 2024. 12.
비질과 붓질, 운전과 운필 - 논단(2024. 12월호)늦가을을 넘어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마당과 거리에는 온통 낙엽들이 진을 치고 있다. 너나없이 ‘비질’에 바쁜 계절이다. 소음이 많은 도시 생활이라 쓱쓱 하는 비질 소리마저 그립다. 추워지는 날씨에 몸은 옴츠려 들고, 길어지는 밤을 지키며 서생(書生)은 독서와 ‘붓질’에 바쁜 계절이다. 지금은 플라스틱 빗자루를 많이 사용하나 원래는 싸리비를 많이 사용했고,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기구는 볼펜이지만 전통적으로는 양호필(羊毫筆)이 주종이었다.그렇다면 비질과 붓질의 차이는 무엇일까? ‘빗자루로는 쓸고, 붓대로는 쓴다’라고 한다. 또 비질은 쓰레기나 낙엽 따위를 지면(地面)에서 쓸어 내는 행위이지만, 붓질은 지면(紙面)에 먹 씨앗을 뿌리며 시문이나 그림을 창작하는 행위이다. 빗자루를 잡고 쓰는 비질은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붓대를 잡고 쓰는 붓질은 필요한 것을 생기게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비질은 외면의 청결을 위하여 버리는 행위라면, 붓질은 내면의 풍요를 위해 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비질과 붓질은 방법에서도 서로 다르다. 비질은 빗자루의 방향과 90도가 되게 옆으로 쓸어야 효과가 있지만, 붓질은 붓대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효과가 있다. 운필법에 비유하자면 비질은 편봉(偏鋒)이거나 측봉(側鋒)을 사용하지만, 붓질은 중봉(中鋒)을 귀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크게 구분된다.한 걸음 더 나아가 ‘비질’ 대신에 ‘운전(運轉)’을, ‘붓질’ 대신에 ‘운필(運筆)’을 대입시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자동차를 모는 것을 운전이라 하고, 붓을 놀리는 것을 운필이라 한다.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듯이, 붓을 운필하기 위해서는 운필 면허증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운전과 운필은 너무나 유사하다. 굴절코스(L)와 곡선코스(S)는 각각 전(轉, 굴림)과 절(折, 꺾음)에 해당하고, 방향전환코스(T)는 역입(逆入) 또는 회봉(回鋒)에 해당한다. 주행은 제(提, 끌고 가기)이고, 멈춤은 돈(頓, 일단 멈춤)이다. 경사진 길이나 미끄러운 길에서 1단 기어로 무겁게 가는 것은 안(按, 누르며 끌기)이라 할 수 있다. 달리다가 빨간 신호등을 만나 일단정지 하더라도 자동차 시동은 꺼지지 않듯이,
2025.01.22
오마이뉴스에 작품 소개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33026 월간 , 폐간 위기 넘기고 400호 발간[인터뷰]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동일 회장"월간 5월호로 창간 400호를 맞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2019년 3.1만세운동 100돌을 맞이하던 해에 출간 비용이 없어 폐간 위기 직전까지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제게는 유독 월간 400호 기념이 죽었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듭니다. 월간 은 1988년 1월에 창간했으니, 올해로 36살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것이지요. 그간 흑백으로 발간하다가 2020년 5월부터 국배판 B5 크기에 전면 컬러로 매월 130쪽 안팎 분량을 펴내고 있습니다."이는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아래, 순국선열유족회) 이동일 회장의 말이다. 24일 오전 10시, 기자는 독립운동계의 으뜸 정기간행물인 월간 창간 400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자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 지하 1층 순국선열유족회를 찾아가 이동일 회장을 만났다."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지령 400호를 맞이한 월간 은 세 가지 관점에서 주목받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단체가 1988년 창간 이래 36년 동안 중단 없이 발간해 오고 있는 점 둘째, 국가보훈부가 이 잡지의 질적 우수성을 높게 평가하여 2021년 1월부터 발간을 지원하여 발행 부수가 4,000여 부로 늘어난 점 셋째,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문화관광부 한국잡지협회로부터 '우수콘텐츠 잡지'로 선정되는 기록을 세운 점을 들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동일 회장의 목소리는 밝지 못했다. 그 까닭은 월간 이 걸어온 길이 지난했다는 점과 앞으로 나가야 할 길 역시 험난하기 때문이다.사실 2021년부터 국가보훈부가 발간 지원을 일부 해 오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이동일 회장의 숨은 노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이동일 회장이 순국선열유족회에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8년으로 당시 월간 은 국가보훈처(국가보훈부 승격 2023.6.5)의 순국선열기금 사업비 일부와 국군장병위문비 일부를 지원 받아 제작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동일 회장이 취임하던 그해(2018) 국가보훈처가 국군장병위문비로 군에 잡지를 보급하는 사업을 일괄 중단하면서 월간 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었다.매월 발행 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오던 군 보급사업 중단으로 월간지 발행에 차질을 빚게 되자 이동일 회장은 사비를 털어 2년 가까이 월간 을 중단시키지 않고 펴냈으나 앞날을 생각하니 아득했다고 회고했다.국가보훈처가 일부 잡지 지원금을 지원해 주던 2018년 이전에도 그 비용은 잡지 발간 비용에는 터무니없는 지원금이었다. 그것은 월간 에 원고를 쓰고 있는 집필자들이 제대로 된 원고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만을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다른 예를 찾을 것도 없이 오랫동안 월간 에 연재물을 기고하고 있는 기자도 거의 자원봉사 수준의 원고료를 받으면서 여러 해 동안 연재물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그렇게 집필자들의 희생과 봉사로 원고가 모여져 36년 동안을 중단없이 지탱해 오던 월간 의 폐간 위기 소식을 2019년에 접했을 때 기자를 포함한 많은 시민은 당시 청와대 국민신문고를 비롯하여 각계에 '폐간만은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고군분투했던 이가 이동일 회장이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듣기로는 당신의 노후 자금마저도 월간 에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건강까지 잃어,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월간 만은 중단시킬 수 없다는 일념으로 지령 400호를 맞이했으니, 어찌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월간 의 주요 내용은 명사나 전문가들의 시사 칼럼, 화제가 되는 인물이나 주요 공공기관장, 전문가ㆍ학자 등을 인터뷰하는 '순국 특별초대석', 매월 기획 특집 주제 4편의 학술적 에세이를 게재하는 '스페셜 테마', 그리고 이달의 순국선열과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6․25전쟁영웅을 연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특정 주제나 인물, 역사의 현장을 집중탐구하는 '순국 포커스', 나라 안팎 독립운동이나 근현대사의 현장, 우리 문화 등을 탐방하는 '순국 인사이드', 또한 순국선열 관련 소식과 신간 서적, 화제의 전시ㆍ공연을 게재하는 '순국 네트워크' 등의 7종 분류ㆍ편집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독립운동과 관련된 풍부한 역사와 다양한 기사는 일반 국민의 교양지로서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역사교육용 교재, 나아가 대학생들의 교양 교재 더 나아가 군장병에게도 큰 도움이 될 만한 잡지가 월간 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다른 무엇보다도 국군장병을 위한 잡지로 가장 먼저 추천받아야 할 잡지가 배포 중단 사태를 맞았다는 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국군장병들이 밥만 먹고 군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처사다. 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의 양식이 아니던가? 월간 은 독립정신과 호국정신을 모두 다룬 국내 유일의 월간지다.이번 5월호(통권 제400호)는 '명사칼럼'에 김두식 전 콜롬비아대사의 '독도 영유권 문제와 우리의 대응전략',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전 동아일보 사장)의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함락이 불러일으킨 식민지해방전쟁 : 그 역사적 사변 70주년을 맞이해'가 실려 최근 일본의 독도영유권 도발과 베트남-프랑스의 디엔비엔푸 함락 70주년 관련 기념행사 협력에 시의적절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또한 월간 400호 발간 기념 기획특집으로 '순국선열유족회 발간과 독립운동가들의 기록 편찬' 주제로 4편의 전문적 에세이를 게재하였다. 그리고 '순국특별초대석'은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ㆍ근현대사기념관 관장(전 한성대 총장)을 인터뷰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근현대사기념관 운영 포부와 1~3권(2009) 개정ㆍ증보판 발간 관련 내용을 특별 게재하였다.운영비가 없어서 폐간 위기에 몰렸던 월간 은 이제 겨우 기사회생한 상황이다. 더욱 알찬 내용으로 400호에서 4,000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이 급선무일 것이다. 월간 에 이어 순국선열유족회가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동일 회장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 중요한 사업이라고 이야기했다."첫째는 월간 의 확대ㆍ보급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순국선열 추념관' 건립입니다. 광복 75주년에 이르는 동안 순국선열의 영혼을 제대로 모실 '순국선열 추념관'이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에서 2021년 3월 11일 국민 참여예산 신청을 통해 새로운 '순국선열 추념관' 건립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현재의 서대문 독립공원 터에 1,500평에 지상 249평, 지하 676평, 전체 925평으로 2024년 6월 착공, 2025년 12월 준공 예정입니다. 현재 국가보훈부에서 서울시와 부지교환 및 건축허가 과정에 있습니다.세 번째는 순국선열유족회 공법단체 설립으로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상 순국선열유족회가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법단체에서 배제되어 매우 열악한 형편으로 전락하여 이를 개선하고자 진력하고 있습니다.그 실례로 2021년 4월 29일 당시 이낙연 의원(더불어민주당, 전 국무총리)의 소개로 동 법률개정에 대한 국민청원을 하였습니다. 그 뒤 이를 지켜본 홍석준 의원(국민의힘)이 2023년 7월 6일 국회소통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거친 뒤 같은 해 11월 15일 동 법률개정(안)을 발의하여 제21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제1소위에 상정된 바 있으나 안타깝게도 무산된 상황입니다.네 번째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중 보상금 법 개정 문제로 독립유공자 보상금법은 1965년 최초 법률제정 당시 반세기(51년) 동안 투쟁한 독립운동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보상금 수혜대상자를 대수(代數: 본인, 아들, 손자 등)로 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찍 독립운동을 하였거나 늦게 발견된 독립유공자는 이미 증손대를 넘어 처음부터 국가의 보호(보상금)를 전혀 받지 못하는 처참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이에 2023년 광복회와 순국선열유족회가 협의하여 보상금 수혜대상자를 대수(본인, 아들, 손자 등)로 할 것이 아니라, 서훈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보상금 수혜일로부터 2대 보상을 받도록 합의하였으나 아직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동일 회장은 그동안 순국선열유족회가 걸어온 고난에 찬 이야기를 대담 내내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암흑과도 같았던 조국에 한 줄기 빛을 부여했듯이, 순국선열유족회가 이동일 회장의 집념으로 똘똘 뭉쳐 나라사랑을 실천해 온 순국선열들의 '숙원 사업'을 하나둘씩 이루기 위한 강한 의지요, 집념의 표출이었다.대담을 마치고 '독립관' 지하 1층 순국선열유족회의 눅눅한 지하 사무실을 나오며 순국선열유족회의 숙원 사업인 '순국선열 추념관'이 순조로운 완공을 보아 번듯한 사무실에서 다음번 대담을 할 수 있길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에 대하여(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동일)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와 그 이전에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순국하신 순국선열의 후손들이 조직한 단체다. 비영리법인으로 1959년 설립되었다가, 1981년에 사단법인으로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고 현재 300여 명의 순국선열 유족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는 수십 년 세월 동안 나라가 해야 할 순국선열의 영혼(위패)을 '독립관(순국선열추념관)'에 모시고 해마다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한편으로는 월간지 (편집고문 김중위, 편집자문 김희곤, 편집주간 장세윤)을 1988년 1월에 창간하여 나라사랑 정신 확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2024년 5월호로 400호). 이러한 순국선열유족회는 현재 국가유공자 등 단체설립법 상, '공법단체'에서 제외되고 있는 상황이며, 유족보상금조차 대부분 받지 못하고 있어 순국선열유족회와 그 유족들은 처참한 형편에 처해 있다.(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현저동) 독립관(지하1층)전화:02- 365-4387
202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