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문인화 세미나 참석
수원대학교 차대영 교수님을 주축으로 서예, 문인화 세미나가
수차례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중 나는
인사동 영빈관 세미나
용산 군사박물관 세미나
경운동 연수관 세미나에 등에 각각 참석하여
사회를 보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문화예술인들과 교유를 가졌다.
2003.10.20
다짐 글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지 말고
내 자신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쓰자.
남을 의식해서도 안되고
남의 선심을 사려고 해서는 더 안되며
남에게 아부하는 글을 쓰느니 차라리 붓을 꺾는 편이 낫다.
조용히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참자아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나를 꼭 빼닮은 나만의 글씨를 쓰자.
2003.10.17
석림사와 박세당 유적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7번지에는 석림사(石林寺)가 있다. 이 절은 신라시대의 옛 절터로 석탑과 축대·주춧돌만이 남아있던 곳에 현종 12년(1671) 석현화상과 치흠이 석림암으로 창건하였다. 그리고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하였다. 그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6·25전쟁으로 완전히 퇴락한 것을 1956년에 비구니 상인이 복원하였다. 석림사 중수나 역사가 있을 때마다 박세당의 후손들이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후원하였다고 한다. 지금 옛 건물로는 산영각·천태각 등이 남아 있고 법당과 부속건물은 근래에 재건한 것이다.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
석림사 옆 장암동 197번지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박세당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서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료생활을 포기하고 수락산 기슭에 은둔하여 농사를 지으며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만 힘썼다. 그는 실학파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였다.
박세당 묘소 동쪽편 장암동 산 146-1에는 계곡 사이의 깨끗한 바윗돌을 주춧돌로 삼아 세워진 6각형의 궤산정이 있다. 이곳은 박세당이 살았던 곳이다. 궤산정이란 이름은 박세당이 이 정자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할 때 자주 강론하던 ‘아홉길 산을 만드는데 마지막 삼태기의 흙이 모자란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한다. 또 정자 밑 바위에는 ‘西溪幽居’(서계가 한적하게 산다), ‘聚勝臺’(경치 좋은 곳) ‘石泉洞’(돌과 샘이 어우러진 곳)이라는 박세당의 암각이 뚜렷하다. 또 청풍정이 있던 자리 옆에는 박세당의 처남 남구만이 쓴 ‘水落洞天’이라는 초서 글씨가 암각되어 있다. 또 박세당이 심은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 두 그루 소나무와 은행나무 등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다.
노강서원(鷺江書院)
노강서원은 수락산 남쪽 중턱 의정부시 장암동 146-1에 위치해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강서원은 숙종 21년(1695) 서울 노량진에 건립한 충신 정려로서 ‘朴泰輔之祠’라 사액되었다가, 정조 15년(1791)에 노강서원으로 다시 사액되었다. 6·25전쟁 때 훼철되어 1969년 수락산 기슭 옛 김시습의 서원터에 새로 건립되었다. 경내 건물로 박세당의 둘째 아들인 박태보 위패가 모셔진 본전과 동재·서재·정문(旌門)과 관리사 등이 있다.
우우당(友于堂)과 벽운동천(碧雲洞天)
수락산 입구 노원구 상계동 1241번지의 우우당은 영풍부원군 홍봉한이 영조 37년과 44년 두번씩 영의정을 지냈을 당시의 벽운동 별장 안채의 일부이다. 이곳에는 추사 글씨 ‘友于堂’ 현판이 걸려 있었으며, 정문 앞 살구나무 근처에는 승마대가 지금도 남아 있다. 홍씨 일문이 한창 위세를 떨칠 때 벽운동별장에는 문인·정객들이 모여들어 탄금대와 벽운루·우우당은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홍봉한의 맏딸인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서정성을 키웠고, 후에 좬한중록좭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벽운동의 주인 홍봉한이 세상을 떠난 약 100년 뒤에는 이병직의 고조되는 부원군이 벽운동의 명승지를 사들여 5대에 걸쳐 지켜오다가, 1957년 6월에 이르러 덕성학원에서 매입, 덕성여대 생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락산 계곡 냇가 상계동 1240번지에는 큼직한 바위에 ‘碧雲洞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수락산 계곡으로 흐르는 개울을 벽운천이라 부르며, 이곳에 있는 마을을 벽운동 또는 백운동이라 부른다. 이것은 계곡에 바위가 허옇게 드러난 수락산의 절경이 골짜기의 계곡과 어우러져 흰 구름이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우우당의 한쪽에 백운루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한다. 또 벽운동천이라 새긴 바위 옆에는 이병직의 호인 국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2003.10.13
수락8경과 수락산 유래
노원서예협회 제2차 역사탐방의 주제가 수락팔경이다.
수락산의 볼거리로 우선 손꼽는 것이 수락팔경이다.
수락팔경
1.옥류폭포
2. 은류폭포
3. 금류폭포
4. 성인봉 영락대
5. 미륵봉 백운
6. 향로봉 청풍
7. 칠성대 기암
8. 불로정 약수
수락산은 이 외에도 궤산정, 석림사, 내원암, 흥국사, 학림사 등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곳을 많이 품고 있다.
수락산의 선경 중에 정허거사(연대미상)가 즐겨 불렀다는 ‘수락팔경(水落八景)’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허거사에 대하여 현재 조사중이나 소상하지 않다. 무명의 스님이었는지, 아니면 경상북대 군위군 압곡사 선사 영정 중의 정허당대선사(淨虛堂大禪師)가 본인인지 석연치 않다.
양주라 수락산을 예듣고 이제 오니...... 아름답게 솟은 봉이 구름 속에 장관일세
청학동 찾아들어 옥류폭에 다다르니...... 거울 같은 맑은 물이 수정 같이 흘러가네
푸른 송림 바위길을 더듬어서 발 옮기니...... 백운동에 은류폭이 그림 같이 내려 쏟고
자하동에 돌아들어 금류폭을 바라보니...... 선녀 내려 목욕할 듯 오색 서기 영롱하구나
미륵봉의 흰 구름은 하늘가에 실려 있고...... 향로봉의 맑은 바람 시원하기 짝이 없네
칠성대 기암괴석 금강산이 무색하고...... 울긋불긋 고운 단풍 그림인 듯 선경인 듯
내원암 풍경소리 저녁연기 물소리네...... 불노정 맑은 약수 감로수가 이 아닌가
선인봉 영락대에 신선 선녀 놀고 가니...... 청학 백학 간 곳 없고 구름만이 오고 가네
'불수도북 종주'란 말이 있는데,
이는 불암산에서 출발,수락산을 거쳐 도봉산과 북한산을 종주하는
4개의 산행코스를 말한다.
구전에 의하면 태조가 서울을 등지고 있다 하여 '반역산'이라는 설과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형상이라 하여 서울의 '수호산'이란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수---락(물이 떨어지다)이란 이름의 유래는 내원암 일대 계곡의 바위와
폭포, 계곡의 형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그밖에 옛날 사냥꾼이 호랑이에게 아들을 잃고 찾아 헤매다
수락산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후 여름에 장마가 지면
"수락아!"수락아!" 소리가 들린다고 전해 내려온다.
수락산은 은둔의 산이다.
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어 조용히 숨어 지내기 좋은 곳이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공부하던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정처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
첫 번째 숨어든 곳이 석림사 계곡이다.
그후 서계 박세당이 김시습의 뜻을 추모하여 청절사를 짓고,
후학을 가르친 마을이 장암, 장재울이다.
이 부근은 지금도 박씨의 후손이 관리하고 있는 종중 땅이 많다.
한북 정맥의 한 줄기로 운악산과 죽엽산에서 갈라져 축석고개를
넘어 도봉산과 마주 보고 서 있어 능선에서의 사방 조망이 좋고, 바위가
둥글 둥글하니 모가 나지 않은 게 특징적이다.
온통 사암으로 형성되어 있어 비가 오면 그대로 빗물이 흘러 내린다.
수목은 울창하지 않으나, 상수리나무 신갈나무가 많으며, 소나무,
아카시아 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2003.10.13
晏海林 敎授 招待展(안해림 교수 초대전)
내 절친한 친구인 중국 상해 복단대학교 예술중심 안해림 서법 교수 초대전이 물파아트센타에서 열렸다. 여기에 의 화보와 월간 의 기사 내용을 올린다.
2003.10.06
필묵의 다양성전 기사
'필묵의 다양성전'기사가 월간 2003년 10월호에 게재되었다.
200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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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연(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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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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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영(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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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숙희(보람)
한정환(매촌)
허우석(청매)
허회태(무산)
홍우기(의석)
황석봉(포헌)
황성현(죽봉)
2003.10.03
7언율시 한 수 짓다
颱風蜩螗(태풍조당) 태풍 매미
(平起式)
立秋幽住讀書閑 초가을에 유거하며 독서로 한가한데
측평평측측평평
災害風波忽到韓 재해풍파 느닷없이 한국에 이르누나.(풍파로 재해가 갑자기 한국에 이르네.)
평측평평측측평
海溢暗侵呑市場 해일은 몰래 침입하여 시장을 삼키고
측측측평평측측
颱狂掩襲屈人間 태풍은 미친듯 엄습하니 인간도 쓰러뜨리네.
평평측측측평평
山崩川濫黎民苦 산이 무너지고 내가 넘치니 서민의 고생이나
평평평측평평측
物聚誠來勇氣汗 물품 모으고 정성 보내니 용기의 땀이로다.
평측측평측측평
勞使合心避擊突 노사가 합심하여 싸움을 피하라
평측측평평측측
皇天震怒甚難安 하늘을 노하게 하면 안심하기 어려우리.
평평평측측평평
* 국문학을 전공했음에도 자작시 번역조차 진정 어렵습니다.
7언율시를 풀이함에 우리말 운율에 맞게 해 보려고
딴은 애써 보았습니다만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가르침에 감사하오며, 많은 제 허물을 海恕하소서.
2003.09.28
5언절구 한 수 짓다
◙ 三角山浮休室有感(삼각산부휴실유감) 삼각산 부휴실에서
突兀峰爲筆(돌올봉위필) 우뚝한 봉우리 붓으로 삼아
蒼天寫字雲(창천사자운) 창천에 글 쓰니 구름이로다.
勃然顚墨汁(발연전묵즙) 갑자기 먹물을 엎지르고 나니
凌雨霹中奔(능우벽중분) 소나기 천둥 속에 지나가누다.
2003.09.28
길약국 이동길 약사님
奔走蒙垣幾閱年(분주몽원기열연) 그대 몽원에 분주히 달려가 책을 본지 몇 해일런가
仙崗煉藥屬群賢(선강연약속군현) 선강의 약을 다려달라 어진 그대에게 부탁하네.
千秋句漏無眞宰(천추구루무진재) 천년 동안 구루에는 진재(주제자)가 없다던데
那識丹成葛雉川(나식단성갈치천) 이에 금단이 갈치천이란 신선을 만들었음을 아노라.
강북구 수유시장 앞에 길약국이 있다.
내가 가끔 들르는 이유는
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안에 소중한 서예 작품과
간찰을 소장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작은 평화'를 소망하며
우리 옛것과 연약한 화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다.
진성 이씨로서 퇴계 선생 집안인 이동길 약사님은
경상북도 예천군 범울이고을(虎鳴面) 행솔이(白松) 출신이시다.
2003.09.27
한국문학평론가협회 국제심포지움 참가
금일 13:30에 경희대에서 개최된
한국문학평론가협회 국제심포지움에 다녀왔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열띤 심포지움이었지만
국내에서 최초로 다루어지는
‘세계문학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과 그 문학적 결산’이라는
주제 때문인지 많은 문학도들이 참석하였다.
물론 동원된 학생들도 많았지만......
김종회 교수의 사회 아래 뜨겁게 박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임헌영 회장의 개회사
- "미군들이 망키 몇 마리 잡었어?" 이때의 망키는 누굴까?
늘 그런 편이지만 총장의 축사는 대독으로
장관의 축사는 생략되었다.
역시 김윤식 명예교수님의 기조발제가 시사하는 바가 가장 컸다.
1정 연수 때 40일간 모신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저녁 식사 때의 정담은 더욱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일본에는 한국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950명 정도.
중국에는 국가에서 한국 전문가를 기르고 있는데, 교수보다도 사회교육원보다도 더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고.
6.25와 한국전쟁/ 몸부림으로서의 황소울음/ 화전민의 논리와 생리/ 전설로서의 6.25/ 내면화로서의 부계문학/ 땅끝 의식과 목매달기/ 서울의 ‘취우’와 평양의 ‘대동강’/ 6.25와 한국전쟁 속에 놓인 합동 위령제/ 6.25문학이 놓이는 자리 등 어느 하나 노교수의 싱싱한 열정이 배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
방민호 국민대 교수의 ‘한국의 1920년대산 작가와 한국전쟁’에 이은
중국 연변대학 김호웅 교수의 발표는 제목부터 이채를 띠었다.
抗美援朝戰爭과 中國文學- 지나치게 국수적 내용중심의 용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오무라 마스오 일본 와세다대 교수
송상옥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박 미하일 러시아 작가동맹 회원
등 중일미러 4개국 제위의 발표는 논문이라기보다는 주로 소개에 그치고 있다.
2003.09.26
백두산 문학 화보에
새 천년 한국문학의 견인차
(2003 여름호, 통권 제6호) 화보에
내 얼굴이 실렸다.
왜냐하면
제20회 문학강연 및 시낭송회에서
본인이 특별 순서로 한시를 낭송했기 때문이다.
200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