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 그리스신화에 시간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있는데,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이다. 크로노스(kronos)는 물리적 시간, 수평적 시간으로'시간(時間)' 그 자체를, 카이로스(kairos)는 논리적 시간. 수직적 시간으로 '순간'(瞬間), '때'를 의미한다. 구체적인 사건의 시각(시점), 감정을 느끼거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시간, 질적인 관점의 시간을 의미한다. 이태리의 토리노 박물관의 카이로스 석상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또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리지기 위함이다.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저울은 나를 만났을 때 신중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내 이름은 카이로스! 지금이 바로 기회다!“ 기회(Chance)란 준비된 자에게만 오고, 준비된 자에게는 위기마저도 기회가 된다.
2018.03.07
블로그 소개
1. 네이버 블로그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https://blog.naver.com/ksh17141715 2. 다음 블로그A Korean Calligrapher, Sangho Kwonhttp://blog.daum.net/ksh-1715
2018.03.07
동방대학원 서예지도자 과정 - 행서 동영상 감상 자료 안내
故宮至寶9-學習先人的書法https://www.youtube.com/watch?v=zSvfdnMQvlU故宫至寶10-眼花缭亂的书法https://www.youtube.com/watch?v=WzJwKVkMHvw故宮至寶11-文人士大夫的書法 https://www.youtube.com/watch?v=v1FGssHNv_Y故宮至寶12-學習先人的書法https://www.youtube.com/watch?v=B0vGohOmzCk
2018.03.06
헌법 7조를 보라 - 대통령 법률가 종교인 교육자 경제인 공무원 예술가 군경의 책무
대통령과 정치인은 미래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과거를 말하지 말고 비전만을 제시해야 한다.법률가는 과거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적폐청산만 할 것이 아니라 논공행상도 병행해야 한다.종교인은 현재의 행복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국민의 행복지수가 낮다면 종교인의 책임이 크다. 국회의원은 소속 당이나 자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교육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고, 경제인은 그 열매를 수확하는 사람이다.공무원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다. 헌법 7조에 의하면 대민 봉사자이자 책임까지 져야 한다.예술가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미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삶에 신명과 재미를 줘야 한다.위의 모든 이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24시간 지켜주는 파수꾼은 군인과 경찰이다.우리가 그나마 무탈하게 '먹고 일하고 놀고 자고' 있다면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덕이라 할 수 있다. - 권상호의 긴 생각 짧은 글
2018.02.24
고대문자의 예술성, 현대 타이포그래피와 통하다
바라캇 서울 ‘수행하는 문자…’전 열어 / 의미 전달 넘어 미적 감상의 대상 형상화 문자의 기원에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고대인은 동식물의 형상이나 자연환경, 의식주와 같은 생활 모습, 그리고 내면의 염원을 사물의 형태나 특징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그림이 단순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자의 형태로 발전했다. 문자는 인류 최초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바라캇 서울에서 28일까지 열리는 ‘수행하는 문자, 문자의 수행자’전은 고대 문자와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리다. 과거에는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곧 권위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각 문자에 담긴 의미는 주술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 믿어졌기에 문자와 책은 모두 신성시되었다. 고대 문자가 실용적인 수단이면서 예술작품이었고, 더불어 제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상형 문자인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옛 이집트인들은 죽은 이의 관에 미라와 함께 ‘사자의 서’ 같은 장례문서를 안치했다. 사후 세계의 여정을 안내하는 정보서다. 삽화로 표현된 장면들은 미술품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부활과 영생을 위한 주문과 기도 등 제의적 기능도 담았다. 문자가 정보 전달을 위해 정확해야 했고, 예술로서 아름답게 형상화되어야 했으며, 강력한 주술적 힘도 갖춰야 했다. 문자는 날로 쓰임에서 점점 실용성과 보편성이 강조되면서 추상적 기호로 진화했다. 문자가 예술로서의 성격이나 제의적 역할을 미술, 종교, 과학 등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문자를 위한 인간의 갈고 닦음과 그 문자들이 선보이는 예술적 승화는 고대 이후에도 그 명맥을 이어왔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필경 수도사들은 성서의 필사를 성스러운 노동으로 여겼고, 장식적인 머리글자나 아름다운 그림을 더하는 삽화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채색 필사본이라는 종교적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신의 이미지화를 꺼린 이슬람교에서는 글로 된 경전 ‘쿠란’을 더 중시하면서 서체 미술인 캘리그래피가 발달했다. 동양의 서예 문화 역시 ‘글과 그림은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의 개념 안에서 발전했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디자이너들에게 이어지고 있다.타이포그래피는 문자의 배열을 통해 예술적으로 구성된 이차원적 표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일컫는다. 문자가 갖는 실용성을 넘어서 미학적 상징성에 주목하는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를 쓰는 일상적 행위에 예술적 의미를 더한다. 의미 전달의 수단이라는 실용적 기능을 넘어 문자를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글자의 예술적 성취를 이뤘던 과거의 장인과 현대의 타이포그래피 작가는 공통분모를 갖는다.전시에는 이집트왕조 고위관직자의 명문 석비를 비롯해 수메르 상형문자가 새겨진 원뿔 테라코타, 기원전 4000년 전 ‘눈의 우상’ 등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현대 타이포그래피 작가 안상수, 노지수, 이푸로니가 정보 전달의 목적으로 작업을 수행(遂行)하는 역할을 넘어서 수행(修行)적 차원의 작품을 보여준다.
2018.02.17
구속(拘束) 구치소(拘置所) - ‘잡을 구(拘)’, ‘둘 치(置)’
박근혜ㆍ최순실ㆍ신동빈 구치소 설맞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拘束)된 지 10개월이 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서울구치소(拘置所)에서 홀로 명절을 보내게 됐다.박 전 대통령은 혈육인 박지만 EG 회장,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여전히 접견 거부 명단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져 홀로 명절을 보낼 전망이다.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법정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같은 구치소에서 설을 보낸다.한편 최순실씨는 회고록을 쓰면서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 당일인 16일 아침 전국 52개 교정시설에서는 수형자 합동 차례가 열리지만,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수용자)인 박 전 대통령 등은 참석할 수 없단다. 서울구치소(拘置所)는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구치소다. 서울구치소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이 감옥은 이후 서대문감옥(1912년)을 거쳐 1923년부터 서대문형무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감금됐던 곳이다. 18세 미만의 소녀들은 모두 이곳에 감금됐기 때문에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 갇혀 순국했다. 서대문형무소는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꿨다. 1987년 서대문을 떠나 경기도 의왕시 지금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서울구치소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을 주로 수감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본원 제1, 2심 피의자 및 피고인과 서울고등법원 및 관할지방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상고를 제기한 피고인 및 사형 확정자들이 이곳에 수용돼 있다. 조직은 총무과, 보안과, 출정과, 분류심사과, 수용기록과, 민원과, 사회복귀과, 복지과, 의료과, 시설과 등으로 구성돼 있다.서울동부구치소(東部拘置所)는 서울지방교정청 산하의 구치소이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다. 과거 이 지역이 성동구 소속이었기 때문에 성동구치소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2017년 6월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구치(拘置)는 법률에서 ‘형(刑)을 집행하려고 피의자나 범죄자 따위를 일정한 곳에 가둠’을 뜻한다. 쉽게 말해 ‘가둠’ 또는 ‘가둬 둠’의 의미이다. ‘가둠’이라 하면 될 것을 ‘구치’라고 하니 문자권력임에 틀림없다. 구치소(拘置所)는 형사 피의자 또는 형사 피고인이 구속 영장에 의하여 구속된 사람을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수용하는 시설을 뜻한다.그러면 구치(拘置)와 구치소(拘置所)에 사용된 ‘잡을 구(拘)’ 자와 ‘둘 치(置)’ 자는 문자학적으로 어떠한 유래가 있는가.‘잡을 구(拘)’는 ‘손[수(扌)]’과 손에 잡은 ‘갈고리[구(句)]’로 구성되어 있다. ‘갈고리 구(句)’는 고리로 구멍[구(口)]을 거는 모양인데, 이 글자가 ‘문장’이나 ‘글귀’의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만든 글자가 ‘갈고리 구(鉤)’이다.‘둘 치(置)’는 ‘그물 망(网)’과 ‘곧을 직(直)’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치(置)’ 자는 ‘똑바로 세워놓고 그물로 덮어씌워 두다’의 뜻이다. ‘죄(罪)’를 져도 그물을 쓰고, ‘벌(罰)’을 받을 때에도 그물을 쓰고 있다. 박스가 아니라 그물이니 겨우 숨은 쉴 수 있겠다. 안치(安置): (일정한 장소에) 안전하게 놓다. 안방(安放)과 같은 뜻. 각치(搁置): 놓다. 내버려두다. 보류해 두다. 방임하다. 搁置一边(儿): 한쪽(한편)에 두다. 치신무지(置身無地)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름 치주고회(置酒高會) 술상을 놓고 높이 모인다는 뜻치지물문(置之勿問) ①내버려두고 묻지도 않음 ②그다지 중요(重要)하게 여기지 않음 치추지지(置錐之地) 송곳을 세울 만한 좁은 땅 참고로 ‘곧을 직(直)’은 ‘十(십)’과 ‘目(목)’과 ‘乚(숨을 은(隱의 옛자)’의 합자(合字)이다. 十(십)과 目(목)을 합(合)하여 열개(여러 개)의 눈, 곧 많은 사람의 눈이라면 숨어 있는(乚) 것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뜻에서 ‘바르다, 곧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8.02.16
삼각산(북한산)의 유래 - 삼각산 포럼 강의 자료
三角山 有感1982년 3월에 서울에 올라왔으니 어언 서울 생활이 36년을 채우고 있다.그 사이 삼각산 자락에 감겨 살면서 숱하게 기상이 넘치는 삼각산을 바라보고 붓을 닮은 인수봉을 특별히 섬기며 살아왔다. 마침 삼각산포럼에서 삼각산을 주제로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메모를 해 본다.들어가는 말- 靑山不墨萬古屛, 流水無絃千年琴. 三必知 三不知사고방식의 진화: 2분법(생사, 밤낮, 해달, 승패...) – 3분법(시간) - 4~5분법(공간)지난여름의 만주 답사 소감(환인, 집안, 비사성, 오녀산성, 환도산성, 백암산성, 안시성, 선양 등 답사)- 역사는 쓰여진 거짓말이요, 신화는 쓰여지지 않은 진실이다.‘산’은 ‘셋’이다. 봉우리가 하나면 '峰', 둘이면 '丘', 셋이면 '山' 다섯이면 '岳(嶽)'이다.산은 天地人 ‘三才’와 깊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산은 하늘을 이고, 대지를 딛고, 사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삶, 사랑’도 3의 수이다.山은 봉우리로 볼 때 /三/이고, /셋/이고, /삶/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壽似山 福如海’라고 했다. 山과 三은 흔들림과 변함이 없다. 산을 닮은 사람을 ‘산을 닮은 사람’ 곧 ‘仁者’라 했다.‘仁’ 자는 ‘사람·하늘·땅’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仁者樂山 知者樂水’라는 말이 탄생한다.오악(五岳/五嶽) : 1. 우리나라의 이름난 다섯 산. 동의 金剛山, 서의 妙香山, 남의 智異山, 북의 白頭山, 중앙의 三角山을 이른다.2. 중국의 이름난 다섯 산. 타이산(泰tài山), 화산(華huá山), 헝산(衡héng,山), 헝산(恒héng山), 쑹산(嵩sōng山)을 이른다. 衡(저울대 형)과 恒(항상 항)의 중국 발음은 같다.3. 사람의 얼굴에서 이마, 코, 턱, 좌우 광대뼈를 이르는 말. 여기에서 관상이 출발한다.유명인일수록 이름이 많다. 산도 그렇다. 금강산은 계절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삼각산’은 ‘소뿔산, 셔블산, 세뿔산, 한산, 북한산, 중악, 삼봉산, 화산, 부아악’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名山이자 靈山이다.'三角山'이란 명칭과 '北漢山'의 명칭의 빈도수를 조사해 보았다.에는 '三角山'이란 단어가 182회 나오는 데 반해, '북한산'은 145회 나타난다.에서는 291 대 145, 에는 391 대 76으로 나타난다.통계적으로 보면 '삼각산'이란 용어가 '북한산'이란 용어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여기에서 삼각산의 명칭 유래를 유추해 본다. 도봉산의 ‘牛耳峰’(인수봉에 뾰족이 튀어나온 바위가 소의 귀를 닮은 것으로 보기도 함), 강북구의 ‘牛耳洞’, 강북구와 도봉구 사이를 흐르는 ‘牛耳川’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삼각산은 '소'와 관련이 깊은 산이다. 우이동은 본명은 ‘쇠귓골’이었다. 그렇다면 ‘소뿔산’이 삼각산의 원명일 것이다. 북쪽에서 바라본 삼각산은 마치 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백운봉과 만경봉은 겹쳐 보여 마치 ‘소뿔’처럼 보인다. 우리 민족의 뿌리가 북방에서 내려온 민족이라면 분명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여기에서 백제의 수도가 들어서자 ‘소뿔산’이 ‘셔블산(서울산)’으로 와전된다. 문제는 셔블산 남쪽에서 바라보면 소뿔 2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백운봉·인수봉·만경봉이 3개의 뿔로 보인다. 여기에서 ‘세뿔산’으로 와전되고, ‘세뿔산’을 한자로 옮기면 ‘三角山’이 되는 것이다. 삼각산의 다른 이름으로 백제의 수도를 지키는 산, 곧 ‘한산(漢山)’과 오악의 하나인 ‘중악(中岳)’도 있다.이외에도 삼봉산(三峰山, 세봉오리로 이루어진 산), 화산(華山, 꽃이 만발하는 산) 또는 부아악(負兒岳,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 등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때에는 산의 형상이 아이를 업고 있는 모양과 같다 하여 부아악(負兒岳)으로 부르기도 했다. '북한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백제의 수도 이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기록으로는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부터라고 추정된다. 원래 수도를 지키고 있는 산을 ‘큰 산’의 의미인 ‘한산(漢山)’이라 했다. 한강 북쪽 위례에 도읍하던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한강 남쪽 하남으로 밀려나고는 새로운 ‘한산’ 명명이 불가피했다. 여기에서 ‘북한산’은 ‘남한산’의 상대적 개념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북한산, 남한산 등은 동산, 앞산처럼 고유명사라기보다 보통명사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왜 '삼각산' 대신에 ‘북한산’으로 불리도록 강요당하는가. 역사 교과서에서 '삼각산'이란 명칭 대신, 일제가 붙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라고 명명함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북한산'이란 말에 익숙하게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추사 김정희의 역할이 크다. 추사는의 '眞興二碑攷'에서 '이상의 신라 진흥왕순수비는 지금 경도(京都)의 북쪽으로 20리쯤 되는 북한산 승가사(僧伽寺) 곁의 비봉(碑峯) 위에 있다'(右新羅眞興王巡狩碑 在今 京都北二十里北漢山僧伽寺傍碑峯之上)라고 하여 '삼각산'이란 명칭 대신에 '북한산'으로 불렀기 때문이다.그리고 1910년대 일제의 친일적 조선 지명 명명과 오늘날 정치적 메커니즘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 게다가 1983년에 '삼각산'과 '도봉산'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함으로서 '삼각산'이란 말 대신에 ‘북한산’이란 명명이 더욱 공고해졌다. 이후 지명학회를 비롯한 몇몇 민간 단체의 노력이 있었지만 말이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사회적 기능 탓으로 쉽게 되돌릴 수 없는 형편이다. 만약 추사가 '삼각산신라진흥왕순수비'라고 했거나, 정부에서 '삼각산국립공원'이라고 했다면 '북한산'이란 명칭 대신에 '삼각산'이 힘을 얻었을 것이다. 비봉의 진흥왕순수비는 국보 제3호로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 순행을 기념하여 碑峯에 세운 순수비이다. 다시 말하면 신라의 영역표시이다. 1816년에 김정희가 비문의 일부를 판독한 후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유추해 보면 시작은 '소뿔산'이었으나 백제의 수도가 들어온 이후 명칭이 두 갈래로 나뉘어, 고유명사로서의 '삼각산'계 및 보통명사로서의 '북한산'계로 나눠 볼 수 있다.1. 소뿔산(북쪽에서 볼 때, 소의 두 뿔로 보임. 고유명사) - 세뿔산(산의 남쪽에 있는 위례성에서 볼 때, 뿔이 세 개, 또는 三峰이 3각형을 이룸. 고유명사) - 三角山(고유명사. '세뿔산'을 三角山을 표기)2. 셔블산('서울의 산'이란 의미의 보통명사) - 漢山('수도를 지키는 산', '큰 산'의 의미로 '동산', '앞산'과 같은 보통명사. 순우리말 '한산'을 '漢山'으로 차자 표기) - 北漢山(보통명사. 남한산에 대한 상대적 개념. 北漢山으로 표기)
2018.02.15
조경환(曺京煥) 의병장이 남긴 시와 만장
'호남창의대장' 조경환 의병장의 행적 조경환(曺京煥) 의병장은 1876년 2월 14일, 전라남도 광산군 서방면 산안리(현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서 태어났다. 9세부터 22세까지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900년부터 전국 명산대천을 순례하며 산세와 지리를 답사 기록하고 당신 호를 대천(大川)이라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1907년 대한제국군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자 조경환은 분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1907년 12월 초순 광주·함평 등지에서 이원오(李元五)·김동수(金東洙)·양상기(梁相基) 등과 뜻을 모아 12월 10일 함평으로 죽봉 김태원(竹峯 金泰元)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조경환은 김태원 의병부대의 좌익장(左翼將)이 되어 항일전을 전개하였다.1907년 12월 14일 새벽, 함평 성내의 일군을 급습하여 적 수십 명을 생포하고 총 18정 및 다수의 화약과 탄환을 노획하였다. 이 전투 이후 조경환은 김태원 의병부대의 선봉장(先鋒將)이 되었다. 1908년 1월 1일 적의 동태를 미리 파악하고, 창평 무동촌(舞童村)에 잠복 기다리고 있다가, 내습하는 일본헌병대를 맞아 싸워, 대장 요시다(吉田) 이하 수명을 사살하였다. 1908년 4월 25일 김태원 의병장이 순국한 뒤 조경환은 의병진의 중의에 따라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조경환은 '호남창의대장'이라는 이름으로, 각지 향교에 수차 격문을 발송하여 항일사상을 고취시키는 한편, 의병부대를 이끌고 광산 흑석리(黑石里)로 가서 경찰대와 교전한 결과, 대장 정득주(鄭得柱) 이하 수명을 생포하였다. 그 뒤에도 광주의 동촌(東村), 담양의 대치(大峙), 장성의 낭월산(浪月山), 함평의 석문산(石門山) 등 여러 곳에서 일군과 교전하여 혁혁한 승전고를 울렸다. 이와 같이 연전연승하던 조경환 의병장은 1908년 음력 12월 19일 구정을 앞두고, 설을 쇠고자 의병을 귀향시킨 뒤, 몇 명의 막료와 함께 어등산 사동(寺洞)에 은신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일본 헌병대의 급습을 받아,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기증 받은 백마를 타고 이리저리 내달으며 일병을 무찌르던 중, 적탄이 오른쪽 가슴에 연달아 두 발 명중되었다.조경환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깨닫고는 목에 걸린 망원경을 벗어 놓고 왼쪽 품안에 깊이 간직하였던 의진 명단을 꺼내 안간힘 다해 불사른 후 조용히 순국하였다. 하늘이 거듭 푸르고 달빛 다시 밝으니 (天月重蒼 천월중창)못된 귀신 되어서라도 왜적을 섬멸하리 (癘鬼殲賊 여귀섬적)섬나라 왜놈들을 멸망시키지 못하면 (不滅島夷 불멸도이)내 죽어 혼백이라도 돌아오지 않으리. (惟魂不復 유혼불복) 조경환 의병장이 순국하면서 남긴 시이다. 鹿川 高光洵(녹천고광순) 의병장(義兵長) 輓章(만장) - 曺京煥(조경환) 지음. 조경환의 字: 棲巖(서암). 號: 大川(대천). 一名: 準煥(준환). 韓末(한말) 義兵長(의병장) 조선 고종 13년(1876~1909) 대한제국 순종 3년 ‘등불 앞에 잠 못 들고 나 홀로 슬퍼하네’白首丹心建義旗(백수단심건의기) 흰머리 붉은 마음으로 의병깃발 세웠건만眐風吹落槿花時(정풍취락근화시) 홀연히 부는 바람에 무궁화 떨어질 제.光山有約人何去(광산유약인하거) 광산 모임 약속 두고 그대는 어딜 갔소不寐燈前獨自悲(불매등전독자비) 등불 앞에 잠 못 들고 나 홀로 슬퍼하네. ‘서풍 등지고 만장 쓸 즈음에 눈물만 가득하네’千秩許遠復吾東(천질허원부오동) 천 년 전 허원 장군이 이 땅에 다시 태어나義鼓聲高燕谷中(의고성고연곡중) 의로운 북소리 연곡 골짜기에 높았건만國運否耶能未捷(국운비야능미첩) 국운이 비색(否塞)하여 능히 이기지 못하니西風題輓淚盈瞳(서풍제만누영동) 서풍 등지고 만장 쓸 즈음에 눈물만 가득하네.
2018.02.12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 기원 서예전 (Kwon's Calligraphic Works for a Successful Pyeongchang Winter Olympics)
' one passion ''Beautiful Korea at the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Snow & Ice Festival Pyeongchang Winter OlympicsPeace and prosperity to all around the world.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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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관련하여서 참조하실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참석자별 특징을 정리해봤습니다. 현장에서 작업하실 CEO용 문구는 과거 "동주공제/동심협력"을 작업하신 사례가 있던 걸로확인되어서 첨부와 같이 현장에 문구해석을 띄워줄 계획입니다. (나머지 참석자 분들도 첨부와 같이 만들어볼 계획이니 문구 확정되시면 아래표 노랜색 부분에 기입하여 알려주십시오) 거래선No성명직책특징추천 문구 촉박한 기한으로 어려운 부탁드리게 되어 다시한번 양해 부탁드리며,문의사항은 언제든지 연락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2.07
평창(平昌)의 문자학적 해석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서예전 한반도의 등뼈 태백산맥그 중간에 평창이 있다.강원도 중남부에 위치한 평창은평균고도가 600m가 넘는다.군청 소재지는 평창읍에 있고미탄면, 방림면, 대화면,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대관령면 등1읍 7면의 8개 행정구역이 있다.대관령면에서 2018년 동계 올림픽과2018년 동계 패럴림픽이 개최된다. HAPPY 700, HAPPY 평창평창은 인간이 가장 쾌적함을 느낀다는 해발 700m에 위치하고 있다.평창(平昌)은 평화(平和)와 번창(繁昌)의 땅이다.기분 좋은 만남의 도시 평창.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 등의 삼재(三災)를 막을 수 있다는 길지(吉地)오대산사고지(五臺山史庫址)가 자리잡고 있는 평창.그런데 오대산사고의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 터만 남았다가 1989년 선원각(璿源閣)이 복원되고, 선원각 앞 사고 터에는 영감사(靈鑑寺) 법당이 자리잡고 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하나 된 열정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 하나 된 세계, 평창 파이팅!98개국 102개 금메달평창에 이어 도쿄, 베이징까지 동아시아에서 릴레이올림픽이 열린다.대한민국은 금 8개, 은 4개, 동 개로 4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평화와 번창의 땅 – 평창에서 만나요!!오케이! 평창!!Okay, ROK!!(오케이 알오케이)하계, 동계 올림픽 및 월드컵 경기까지 치른 나라는 5개국밖에 되지 않는다.더 큰 대한민국 평(平)‘平(평평할 평, 화평할 평)’은 원래 ‘밭 뚝’을 뜻했던 ‘우(于)’와‘나눔’을 뜻하는 ‘팔(八)’이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였다.지금은 ‘장대’를 뜻하는 ‘간(干)’ 자를 쓰는데,이는 아마도 장대가 ‘한쪽으로 치우치 않고 평평하게’ 하기 위해서는지구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꼿꼿이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본다. 창(昌), 창(倡), 창(唱)발음이 같으면 의미도 서로 통한다.창(昌)의 본뜻은 ‘창도(唱導)’ 곧, ‘앞장서서 제창하다’ ‘창도하다’ ‘선도하다’의 의미이다.중국에서는 ‘倡导(chàngdǎo)’로 쓴다.에서는 ‘倡(여광대, 기생),樂也. 唱,導也. 昌,美言也.’로 설명하고 있다. 금문의 昌자는 손에 목탁(木鐸)이나 방울[鈴]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곧 손을 뜻하는 ‘조(爪)’ 밑에 ‘터진 가로 왈(曰)’로 썼다.이 글자가 각각 일(日)과 왈(曰)로 바뀌어 오늘날의 ‘창(昌)’이 되었다.다시 말하자면 창(昌)의 일(日)은 ‘손’이었고, 왈(曰)은 ‘방울’이었다는 말씀이다. 옛날에 추장은 법령(法令)을 발포(發布)할 때,반드시 먼저 요령을 흔들어 씨족을 불러 모으고, 이어서 큰 소리로 대중에게 선언했으니, 이를 뜻하는 글자는 창(唱)이다.일(日)은 단(旦)의 초문(初文)으로 ‘일출(日出)’으 모습이며조기(朝氣; 생기의 뜻)나 창성(昌盛)을 뜻하고,여기에 왈(曰)을 더했는데 이는 ‘하는 말이 아름다움’을 표시한다.이리하여 창(昌)은 나중에 倡议(제안, 제의)의 뜻으로 발전한다.전서의 호필원절(弧筆圓折)이 예서에 오면 직필방절(直筆方折)로 변화했다.이로 인하여 원래의 둥근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2018.02.04
科擧(과거)과 관련한 말, 壓卷(압권)과 觀光(관광)
科擧(과거)과 관련한 말, 壓卷(압권)과 觀光(관광) '두루마리를 누르다'라는 뜻의 壓卷(압권)은 ‘어떤 서책 가운데서 가장 잘 지은 대목이나 시문(詩文)’을 뜻하는 말로서 'highlight'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데, 그 내력을 살펴보기로 한다.이 말은 '科擧制(과거제)'에서 유래한 말이다. 과거제도는 중국의 隋(수)나라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도 전래된 이래 관리를 등용하는 기본적인 제도로 정착이 된 전형적인 관리등용 시험이다.과거에 응시한 수많은 선비들이 3차에 걸친 시험 끝에 최종 급제(及第: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임금의 재가(裁可: 결재)를 받아야 최종 장원급제(壯元及第)가 된다. 이 때 채점관은 1등으로 뽑은 답안지를 여러 급제자들의 답안지 맨 위에 올려놓고 임금에게 올린다. 여기에서 1등으로 뽑힌 답안지가 나머지 답안지를 누르고 있는 형국에서 壓卷(압권)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또 科擧(과거)와 관련하여 유래한 말 가운데 '觀光(관광)'이란 말이 있다. 오늘날 觀光(관광)이라 하면 여행 중에 뛰어난 경치나 명소 따위를 구경하는 것을 뜻하지만, 원래 관광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옛날 선비들은 科擧(과거)에 응시하러 고향을 떠날 때 항상 '觀光(관광)하러 간다'고 했다. 시험을 치러 가는 사람이 무슨 관광이냐고요. 觀光(관광)은 글자대로 ‘빛을 본다’는 뜻다. 여기서 빛[光]이란 곧 임금[王]을 상징한다. 따라서 관광은 ‘임금을 보러 간다’는 의미였다. 당시 관리(官吏)가 아닌 이상 龍顔(용안)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시대였으므로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이 임금의 얼굴을 보겠다는 것은 곧 장원급제하여 임금과 獨對(독대)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결의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觀光(관광)이었다.
2018.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