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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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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5

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5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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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4

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4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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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3

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3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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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2

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2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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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1

미리 보는 도정 권상호 전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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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9 - 월간묵가 원고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9 -필(feel)이 필(筆)을 필(必)히 움직인다-   권상호 (고려대학교 최고위과정 담임교수) 지난 주말에는 원주 한지테마파크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한지서예·문인화 휘호대회’ 심사를 위해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의 고향이자 한지(韓紙)의 고장인 강원도 원주에 다녀왔다. 한때는 참가 서체로서 육조 해서가 주름을 잡던 때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놀랍게도 예서체로 참가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대상도 예서에서 나왔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노래가 있다. 7~80년대에 우리나라를 강타한 스페인의 여성 2인조 그룹 Baccara의 노래, ‘Yes Sir I can buggie’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내 귀에는 ‘Yes Sir’가 ‘예서’로 들렸기 때문이다. 어떤가요? 이제 예서에 자신이 붙었나요? ‘써야지 써 봐야지’ 하고 꿈만 꾸고 벼르기만 하면 평생 붓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글씨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러하다. 꿈은 꿈일 따름이다. 꿈은 휘발성이 강하여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금세 날아가 버린다. 단 한 번일지언정 실천이 중요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 걸렸다.’라는 고백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겸손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이를 서예 학습에 적용해 보면 잔꾀(머리)로 쓰지 말고 진정(가슴)으로 쓰라는 얘기로 들린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머리와 심장과의 거리인 40센티를 뛰어 넘어야 한다. 취미가 서예라 하면서도 일주일에 단 한 번도 붓을 잡지 않았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좀 못 쓰면 어떠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 있게 붓 잡아(붙잡아) 보자. ‘쪽팔림은 순간이요 실력은 영원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감은 자신감이라 했다.^^ 그럼 제일 맛없는 감은 당연히 열등감이렷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술은 입술이지만 입술보다 더 매혹적인 술은 예술, 그 중에서도 서예술이다.   서예가들 사이에 주고받는 우스개가 있다. 서예는 세우는 예술이라고. 부드러운 모필을 세우는 데 일 년이 걸렸느니, 삼 년이 걸렸느니 한다. 사람도 서야 걸을 수 있듯이 붓도 세워야 쓸 수 있다. 역입(逆入)할 때 구부러진 붓끝은 절(折)을 넣거나 회봉(回鋒)을 하면서 세운다. 예서의 경우 삐침 획을 도법(挑法)으로 처리할 때도 붓을 벌떡 세워야 필획의 자연스런 맛이 난다. 도1과 도2에서 각각 ‘포(布)’, ‘금(金)’ 자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서예는 모양을 만들기가 아니라 동작이다. 모든 운동에서 기본 동작이 중요하듯이 서예도 자세와 동작이 중요하다. 그렇다. 붓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우선 설 줄 알아야 하고, 날이 지나고 힘이 붙으면 의식하지 않고서도 벌떡 일어서고 훌쩍 앉을 줄도 알아야 하며, 마지막 단계로는 어디든
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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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굴 9월호 원고 - 九光樓(구광루) 柱聯(주련)

九光樓(구광루) 柱聯(주련) 六根但守三空戒 (육근단수삼공계) 육근으로 다만 삼공의 계를 지켰을 뿐인데 雙眼曾得七祖燈 (쌍안증득칠조등) 두 눈은 이미 칠조의 등불을 얻었다네. 寶刹樓臺八面通 (보찰루대팔면통) 보배로운 사찰 누대는 여덟 방향으로 통하고 珠林雲樹千山合 (주림운수천산합) 아름다운 숲을 이룬 많은 나무는 천산에 모였네. 淸景常開松嶺月 (청경상개송령월) 맑은 경치 늘 펼쳐지고 고갯마루 솔엔 달이 뜨며 香泉時擊石門風 (향천시격석문풍) 향기로운 샘은 이따금 솟고 석문엔 바람이 인다. 玉毫不着世間塵 (옥호불착세간진) 부처님의 옥호에는 세상 먼지 묻지 않고 日晃金輪湧佛光 (일황금륜용불광) 해 같이 밝은 금륜엔 불광이 용솟음친다.   구광루(九光樓)는 해인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구광루라는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에서 따온 말인데,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하시면서 그때마다 설법하시기 전에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1, 2구는 집착을 끊고 고승(高僧)의 지혜를 얻는 기쁨을 3, 4구는 사찰과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5, 6구는 우주와 자연의 오묘한 움직임을, 7, 8구에서는 깨달음의 순간에서 솟구치는 감동을 노래하고 있다.   육근(六根)이란 육식(六識)을 낳는 여섯 가지 근원(根源)으로 곧,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를 가리킨다. 육식을 육감(六感)이라고도 한다. 육근의 집착을 모조리 끊고 무애(無礙)의 묘용(妙用)을 발하여 깨끗해지는 것을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고 한다. 삼공계(三空戒)는 인공(人空), 법공(法空), 구공(俱空) 등 3가지 공(空)의 관한 계율을 말한다. 인공(人空)은 아공(我空)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은 오온(五蘊)의 일시적인 화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자아(自我)라는 실체가 없음을 뜻한다. 법공(法空)이란 우주 만유의 법은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구공(俱空)은 유(有)와 무(無)가 모두 텅 비었다는 뜻이다. 칠조(七祖)는 화엄칠조(華嚴七祖)를 말하니, 마명보살, 용수보살, 중국의 두순, 운화존자 지엄, 현수대사 법장, 청량대사 증관, 규봉대사 종밀 등이다. 옥호(玉毫)는 32상(相)의 하나로,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을 말한다. 백호상(白毫相)이라고도 한다. 일황(日晃)은 해와 같이 밝음을 뜻한다. 금륜(金輪)은 쉽게 말해 세계를 받들고 있다는 삼륜(三輪) 가운데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수미산 둘레에 있는 구산팔해(九山八海)와 사주(四洲) 밑에는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세 원통형의 층(層)이 있는데, 위층을 금륜(金輪), 중간층을 수륜(水輪), 아래층을 풍륜(風輪)이라 한다.                                                                                    수월 권상호  
2014.08.19

제2회 대한민국한지서예문인화 휘호대회 심사평

(심사평- 제2회 대한민국한지서예문인화 휘호대회)   한지 본향에 펼쳐진천하제일의 묵향 잔치   권상호(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 글로벌 최고위과정 담임교수)지금까지 나에게 원주라고 하면 문득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주가 고려 말 조선 초의 은사(隱士)인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선생께서 평생 이곳에 은둔하면서도 나라 걱정을 한시도 놓지 않으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강원도(江原道)의 원(原)자가 원주를 가리키며 조선 시대에 강원감영이 바로 이 고을에 있었다는 점이다.그러나 서예를 즐기는 나에게 원주의 최고 자랑거리라면 단연 원주한지테마파크가 으뜸이다. 더구나 여기에서 ‘대한민국 한지서예·문인화 휘호대회’를 펼친다는 사실은 정말 이름에 걸맞은 탁월한 선택이라 믿는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우리 고유의 종이인 한지(韓紙)라는 이름을 내걸고 펼치는 행사라는 점, 현장에서 직접 글씨와 문인화를 쓰고 치는 휘호대회라는 점, 공정한 현장 심사와 심사위원의 현장 휘호 시범을 보여준다는 점 등에 있다. 이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행사는 서예·문인화에 뜻을 둔 많은 참가자들에게는 자랑스럽고 유익한 일이며, 행사주최 측에게는 보람되고 떳떳한 한지 홍보 행사라는 믿음을 주었다. 심사위원 입장에서도 이처럼 진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소신껏 심사해 본 적이 일찍이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심사는 1차, 2차, 3차에 걸쳐 실시했다. 1차에서는 우선 전체 작품의 수준을 살펴보고 일일이 점수를 매기며 입선 이상의 작품을 골랐다. 이 중에는 훌륭하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오자나 탈자로 인하여 한글에서는 2점, 한문에서는 5점 정도를 탈락시켜야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각 서체가 지니는 기본점획의 이해 부족이나 수련이 미숙한 작품들도 제외되었다. 본 휘호대회의 명제가 사전에 주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휘호 작품 수준이 타 대회에 비하여 훌륭하였음을 밝힌다.2차 심사에서는 특선 이상의 작품을 골랐다. 특선 작품은 필획의 기본이 충실하고, 필력이 돋보이며, 글자 하나하나 서체자전을 찾아보고 결구를 잘 완성한 작품으로 골랐다. 3차 심사는 대상과 금·은·동상을 가리는 심도 있는 작업이었다. 여기에서는 자법과 장법의 창의성, 먹빛의 변화와 조형성, 내용과 흐름의 연결성, 서력과 장래의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최종 점수를 매기고, 이를 합산하여 수상작을 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매우 힘든 작업이었으나, 결과는 놀랍게도 심사위원 서로의 개별적 채점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는 점을 고백한다.전체적으로 볼 때, 한글 흘림과 한문 예서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한글 한자 다 같이 서체가 흘림과 예서에 편중되어 있고, 기본 점획의 이해 부족과 과장이 심하며, 종이에 글자를 억지로 짜 맞추어 놓아서 장법의 인식이 부족하고, 본문과 어울리지 않는 낙관글씨 때문에 점수를 잃는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 기회에는 한글의 경우, 정음고체(판본체)와 조화체 및 국한문 혼용체 등으로도 참가하여 한글을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시키길 기대해 본다. 한문의 경우에는 내용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끊어 읽기를 잘못하면 엉뚱한 뜻이 되듯이, 행초서의 경우에 특히 내용의 호흡과 붓길의 호흡이 맞지 않아 필맥이 끊어지는 경우가 없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상자에게는 갈채를, 탈락자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하지만 수상자에게도 시련이 올 수 있고, 낙선자에게도 희망이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공은 준비와 기회의 함수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지금부터 다시 준비하는 사람에게 최후의 명예와 영광의 기회가 안겨질 것이다. 축하의 글로 심사평을 마친다.   天下一品原州韓紙(천하일품원주한지) 천하일품 원주 한지여!氣通四時心身淸安(기통사시심신청안) 사시에 기가 통하니 심신이 맑고 편안하도다.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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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주련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270 정암사 박법상 / 621-971
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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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정암사 현판 - 삼계주전

경상남도 김해시 정암사
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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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 보장전(寶藏殿) 주련(柱聯)

보장전(寶藏殿) 주련(柱聯) 七重寶樹圍金界(칠중보수위금계) 일곱 겹의 보배로운 나무는 극락세계 에워싸고 一點閒燈伴白雲(일점한등반백운) 한 점의 고요한 등은 백운과 짝하였네. 簇簇法雲生片刹(족족법운생편찰) 뭉게뭉게 법운은 작은 절을 지어내고 霏霏花雨散諸峰(비비화우산제봉) 부슬부슬 꽃비는 모든 산봉우리에 흩날린다. 己無踪跡到人間(이무종적도인간) 이미 자취 없이 인간 세상에 이르렀고 却指容顔非我相(각지용안비아상) 지금 이 얼굴도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닌걸. 香裊金爐花放鉢(향뇨금로화방발) 향은 금로에서 피어오르고 꽃은 발우에 피는데 海日蟠桃開壽域(해일반도개수역) 바다에 솟는 해 같은 반도가 장수 세상을 여는구나. 이 게송은 보장전의 위엄과 아름다움, 오묘함과 신비감을 노래한 것이다. 보장전(寶藏殿)은 사찰의 보배를 수장해 놓은 집이므로 사찰 박물관(temple museum)이라 할 수 있겠다. 의미상으로 보면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배 중의 보배는 아무래도 보장전의 유물보다도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에서 오는 법열(法悅)일 것이다. 1, 2행은 대구로 이루어져 있다. 금계, 곧 아름다운 극락세계의 모습과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칭송하고 있다. 3, 4행 역시 대구로 부처님의 지혜로운 가르침, 곧 법운(法雲)은 상승의 이미지로,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 곧 화우(花雨)는 하강의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5, 6행에서는 공(空)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본래 자취마저 없는 곳에서 왔고, 지금의 이 모습도 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지막 7, 8행에서는 해탈(解脫)에서 오는 기쁨과 극락의 영원성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삼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는 신선계의 반도(蟠桃)가 등장하는 것은 불교의 수용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수월 권상호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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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8 - 월간묵가 원고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8 도정 권상호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마주하는 것은 사람 아니면 일이다. 곧, 인사(人事)이다. 글씨 쓰는 일은 당연히 사(事)에 해당한다. 대상이 인(人)이라면 예(禮)를 다하고, 대상이 사(事)라면 성(誠)을 다해야 한다. 예절(禮節)과 성실(誠實), 이 두 가지는 처세의 키워드다. 오늘은 글씨 쓰는 일, 그중에서도 임서(臨書)를 성실하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한다. 성실한 임서를 위해서는 정확한 안목을 길러야 한다. 사람의 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사물을 정확하게 살필 줄 아는 관찰의 눈, 두 가지 이상을 견주어 보고 장점을 취할 줄 아는 융합의 눈, 기존의 모든 것을 뒤집어 볼 줄 아는 역발상의 눈이 그것이다. 임서는 이 중 첫 단계인 관찰의 눈이 요구된다. 미안하지만 임서는 아무리 잘해 보았자 제이인자(第二人者)밖에 되지 못한다. 완당의 글씨를 죽으라고 임서해 본들 완당의 아류밖에 되지 못하고, 선생의 글씨를 평생 따라 써 본들 선생 이상이 될 수 없다. 허걱. 하지만 다음 단계의 눈을 뜨기 위해서는 관찰의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일. 두 번째 단계로는 여러 법첩을 임서해 보거나 여러 스승을 찾아 배우는 일이다. 그러면 융합의 눈이 길러지고 새로운 스타일의 글씨가 탄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작품을 보고 학습 과정을 읽을 수 있음은 바로 융합의 눈 덕분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창조의 눈은 역발상의 눈에서 탄생한다. 이는 ‘해가 뜬다.’가 아니라, ‘지구가 자전한다.’가 맞는 것처럼 기존의 모든 상식을 뒤집어 볼 때 생기는 창조의 눈이다. 기존의 모든 서체를 거부하는 역발상의 눈에서 새로운 서체가 창조된다. 앗싸.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귀찮아도 임서(臨書)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귀찮다’는 말은 ‘귀(貴)하게 여기지 않다’는 뜻이렷다. 서예는 슬로우 아트이고, 게다가 준비가 번거로우므로 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구상의 모든 귀차니스트들이여 안뇽~. 어떤 일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번거롭고 성가시게 생각하면 되는 일이 없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도전의 가치는 올라가는 법이다. 옳거니. 서예로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하자! 오늘의 화두는 임서(臨書)이다. ‘臨(임할 림)’ 자는 ‘臥(엎드릴 와) + 品(물건 품)’으로 이루어졌으며, 본뜻은 ‘여러 물건을 굽어보다’이다. 臥는 눈을 뜨고[臣] 편안히 드러누워 있는 모습니다. 졸려서 눈꺼풀이 드리워지면 睡(잘 수)요, 완전히 잠이 들면 眠(잠잘 면)이다. 眠 자는 眼(눈 안) 자와는 달리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臣(신하 신) 자는 당연히 위로는 임금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백성을 굽어보는 눈이다. 따라서 임서는 위로는 서예가의 심신(心身)을 읽고, 법첩을 뚫어지게 잘 살펴본 뒤에 따라 써야 한다. 우선 글자 전체의 윤곽을 살피고, 이어 점획의 길이와 모양을 살필 것이며, 마지막으로 운필 동작을 생각해야 한다. 메뚜기나 다람쥐가 뛸 때는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뛰듯이, 점(點)은 위치를 획(劃)은 목적지를 설정한 후에 붓을 대야 한다……. 사신비(史晨碑) 임서의 둘째 시간이다. 사신비를 잘 임서하기 위해서는 팔분예서의 일반적 보편적 특성과 사신비만이 갖는 특징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메모를 잘해 두고 염념하며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집을 지을 때는 설계도를 먼저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는 스케치를 먼저 한다. 임서를 쓰기 전에도 임본 관찰을 잘한 후에 그림 1과 같이 따라 써 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꼭 붓이 아니어도 좋다. 볼펜, 사인펜, 연필, 세필 등 무엇이든 좋다. 좀 더 전문적인 서예가가 되고자 한다면 임본 위에다 인찰지를 대고, 쌍구 뜨기를 해 보는 것도 좋다. 쌍구 뜨기는 획질 탐색에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된다. 오늘날에는 손안의 사진기나 복사의 편리성 때문에 사진이나 복사가 대세이나, 이는 깊이 있는 관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나뭇잎은 그냥 사진 찍어 보는 것과 잎맥을 직접 그려보는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서예에 입문하는 초심자 대부분은 막 바로 그림 2처럼 따라 쓰기, 곧 임서에 열중한다. 그림 1에서 ‘闡(열 천), 崇(높을 숭)’, 그림 2에서 ‘能(능할 능)’ 자 등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앞뒤 문맥을 통하여 짐작하거나, 사신비 안의 다른 글자를 통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서예자전을 자주 찾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그림 3). 이러한 작업들이 금석학(金石學)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작문을 잘하기 위하여 다독(多讀) · 다작(多作) · 다상량(多商量)이 필요하듯이,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시(多視) · 다임(多臨) · 다감상(多鑑賞)이 필요하다. 여러 법첩이나 글씨를 자세히 살피고, 많이 임서하고, 또 스승이나 동호인들의 비평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임을 할 때도 무조건 따라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점획, 결구, 장법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하게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나만이 옳다고 너무 싸우지들 말고 겸허하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씨도 마음처럼 비운만큼 채울 수 있다. 완전히 비울 때, 우주는 당신의 것이 된다. 하지만 진정한 창작을 위해서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관찰의 눈만으로는 안 된다. 융합의 눈, 역발상의 눈을 가져야 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 한다. 이 말은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 곧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하였다. “나의 모든 재물은 내가 죽는 순간 명의가 변경되는데……. 내가 쓴 붓글씨만은 명의 변경 없이 영원한 나의 것이 아닌가?” 무더운 여름나기의 하나로도 좋고, 버킷리스트의 하나로도 좋다. 붓을 잡아봄 직하지 않은가?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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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서예원 1:1 상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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