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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교육이란 무엇인가2

敎는 글문에 없음. - 宗敎, 敎令의 의미. 教(교)의 본자(本字). 爻(엮다? 사귀다, 본받다, 육효(육효에서 윷이 오지 않았을까? ☞배움)와 부수(部首) 글자 (회초리)의 합자(合字).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 서예는 敎外別傳, 사제 간은 敎學相長. 有敎無類(논어). 毓(기를 육; ⽏-총14획; yù, 글문, 금문) -> 育(許愼(30 ~ 124)의 작품), 陸-六, 戮‘學xué(글문), =斅(xiào가르칠 효), ’이라는 한자어를 가리켜 이렇게 설명한다. “字解: 회의, 집 안(宀)에서 두 손(臼)으로 새끼 매듭(爻) 지우는 법을 아이(子)가 배우는 모습을 그렸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 기억의 보조 수단이었던 새끼 매듭(결승) 짓는 법을 배우는 모습이다. 배우다가 원래 뜻이며, 모방하다, 본받다, 배우는 사람, 학교, 학과, 학문, 학설학파 등의 뜻이 나왔다. 속자에서는 윗부분을 文(글월 문)으로 줄인 斈으로 쓰기도 하는데, 아이(子)가 글자(文)를 배운다는 뜻을 담았다. 간화자에서는 윗부분을 간단하게 줄여 学으로 쓴다.” 毒을 『 설문해자』에서는 ‘독성이 있는 풀’로 설명했지만, 손을 앞으로 모으고 가지런히 앉은 모습의 女, 女에 두 점(유방)을 찍어 양육 기능을 강조한 母, 母에 다시 비녀를 상징하는 가로획을 더해 성인 여성을 그린 每(‘재빠르다’는 뜻의 敏이나 ‘가르치다’는 뜻의 誨에서 보듯 원래는 ‘어머니’라는 뜻임), 每에다 비녀를 하다 너 넣어 농염함을 강조한 毐(음란할 애, ǎi), 毐에 다시 비녀를 더해 만든 것이 毒임을 고려해 볼 때, 毒은 머리 장식을 화려하게 한 농익은 여인을 그렸고, 그런 여인이 남성과 사회를 파멸케 하는 ‘독’적인 존재임을 그렸습니다. 남성들이 지키고자 한 이상적 질서를 이렇게 만들어 넣은 것이지요. 이는 성인 남성(夫)이 보는(見) 그것이 바로 規로, ‘규칙’이자 ‘규율’임을 반영한 것처럼 남성중심의 사고가 잘 드러난 글자입니다.   校(學校, 將校, 部隊, ‘울타리’, 차꼬, 헤아리다, 가르치다, 比較하다/師, 獅- 軍制에서 旅의 5배, 곧 2500인을 이르던 말, 世子師)는 나무나 대나무의 울타리→진을 친 곳에 있는 지휘관(指揮官)→장교를 나타냄. 또 交(교)는 爻(효), 敎(교), 學(학) 따위와 관계(關係)가 깊은 글자로서, 뒤섞인 것을 이것저것 비교하는 데서 較(교), 校(교)는 비교하다→재다→생각하다의 뜻으로 됨   아카이브(archive) : 고기록, 공문서 등의 기록 보관소(건축), 파일 저장고(컴).   logos: 말씀, 이성, ‘學’의 의미.logos와 pathos: 논리적인 것, 감성적인 것을 지칭. 도슨트(docent)의 뜻은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지식을 갖춘 안내인을 말한다. 한국에 1995년 도입된 도슨트는 일정한 교육을 받고 박물관·미술관 등에서 일반 관람객들을 안내하면서 전시물 및 작가 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전시물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역대 왕들이나 황제의 평균 연령이 40 안팎인 데 비하여, 역대 유명 서예가의 평균 연령은 80세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 서예는 힐링을 지나 장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와 모든 영역에 스토리텔링과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요구되듯이, 서예도 기존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바탕으로 필묵(筆墨)에 유머를 입힌 캘리테인먼드(Callitainment, Calligraphy와 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거듭나고 있다. 현재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융합, 인문학에서는 통섭, 예술에서는 크로스오버 등이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대의 서예도 환골탈태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학문과 예술의 가치는 실천과 공유에 있다. 서예의 실천과 공유를 통하여 문화예술은 물론 여러 방면에 나비효과가 일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행복한 정신혁명이 일어나길 희망한다.  
2015.03.14

2. 서예 교육 내용

2. 교육 내용   서예경제학(書藝經濟學) - 돈이 되는 서예인문학과 서예의 위상 – 문(文)·사(史)·철(哲)과 서예예술로서의 서예 – 순수예술인가 실용예술인가, 조형예술과 시간예술시간, 공간, 인간을 이어주는 서예 – 종교와 예술의 공통점과 차이점상실 시대의 네티즌 서예 – 즐기는 서예로크로스오버 서예 – 타장르와 만나는 라이브 서예시니어 비즈니스로서의 서예 – 노인은 인생과 예술의 도서관이다.예쁜 손글씨의 미학 – 캘리그라피음악, 무용으로서의 서예 – 필가묵무(筆歌墨舞)의 진정한 의미느림의 미학 – 슬로우 아트로서 서예인생과 닮은 서예 – 왕복이 없는 편도 일회성(一回性)의 서예캘리테인먼드 서예 – 즐기는 서예 힐링 및 장수를 위한 서예 – 건강 아이콘으로서 서예, 왜 서예인가.문방사우론(文房四友論) - 고독을 즐기면 외롭지 않다.서예의 전개 – 글로벌 시대의 서예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 선문(選文)과 동기유발한글·한자(漢字)·문인화(文人畵)·전각(篆刻) -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세계흑백(黑白)의 앙상블 – 일묵천색(一墨千色)의 비밀방원(方圓)·전절(轉折)의 기(技)와 예(藝)서체(書體)·필체(筆體)·서풍(書風)비(碑)와 첩(帖) - 무엇으로 공부할 것인가. 임서(臨書)에서 창작까지 – 형림(形臨)·의림(意臨)·방림(倣臨)전각삼법(篆刻三法) - 도법(刀法)·자법(字法)·장법(章法)고대 서예 특강 자료 서예를 통한 발상의 전환 - 눈으로 마시는 황홀한 술 서예사(書藝史) – 한중일(韓中日 )서예사전각론(篆刻論) - 방촌(方寸)에 새겨진 우주문자학(文字學)과 서예 - ‘앎의 맛’과 ‘쓰는 멋’ 음운학(音韻學)과 서예 – 글씨가 입을 열다.건축학(建築學)과 서예 – 결구(結構)란 무엇인가.문인화(文人畵)와 사군자(四君子) - 왜 서예가의 몫인가.서예가 등단(登壇) – 공모전·개인전·단체전의 전개서예와 재료학(材料學) - 대안은 없는가.사경(寫經)과 서예 정신 - 유(儒)·불(佛)·선(仙)·기(基)와 서예역대 서예가론 – 발칙한 개성의 세계서론(書論) 그 끝없는 세계서예 비평론(批評論) - 품평(品評)의 노하우비갈(碑碣) 탁본(拓本)현대서예(現代書藝)의 전개고서화(古書畵) 감정(鑑定) - 아는 만큼 보인다.IT시대에 서예의 나아갈 길 - 인터넷과 서예, 스마트폰과 서예, 방송과 서예  
2015.03.14

서예 교육 방법과 스승

3. 교육 방법   이론과 실기 병행 지도과제물 첨삭 지도 창작 실기 지도 - 동질성 속의 개성적 서예   PPT(파워포인트,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 제작 및 활용 교육UCC(User Created Contents,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직접 글ㆍ사진ㆍ동영상 등을 만들어 웹상에 올린 사용자 제작 콘텐츠) 활용 교육서예 지도자 양성을 위한 서예 교육론   세미나 개최 비중 있는 전시회 관람 -연1회 전시회 개최 선후배 교유의 장 마련 - 인적 네트워크 구성국내 및 해외연수  4. 스승의 조건   학기 시작 전에 강의 내용을 충분히 조율할 줄 아는 소통형정체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며 새 세상을 열어가는 미래지향형서예와 행복한 삶에 대하여 끊임없이 사유하고 연구하는 창의성자기 분야의 중심에 서서 최고위지도자를 육성할 수 있는 진취성한결 같은 열정으로 재학생과 동문의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나눔형체(體)와 용(用), 양(量)과 질(質), 서예와 인간을 두루 중시하는 통섭형
2015.03.14

한글 서체 명칭 제안서​​

한글 서체 명칭 제안서   권상호(문학박사, 칼럼니스트, 서예가) 한글 서체 명칭은 한글이 쉽듯이 쉽게 정해야 한다. 한글은 척 보면 알 수 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한자 서체도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의 5체로 뚜렷이 나누고 있는데, 한글 서체 명칭이 이보다 더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안자의 소신이다. 물론 한글 창제 이후 500여 년간 한자 권력에 눌려서 한글에 대한 명칭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해방 후부터 본격적인 한글 서예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서체 명칭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으로 40여 가지의 명칭이 난립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과정을 거치면서 통폐합 되겠지만 나날이 높아가는 한글 위상과 이에 걸맞은 한글 서예교육 및 한글 서예사를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한글 서체 명칭은 통일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국어국문학 전공을 바탕으로 하고, 50여 년간 붓을 잡아 온 서예가로서 감히 간단명료한 3분류안을 제시해 본다.   ⑴ 고전체(古篆體) : 에서 제자원리를 풀이하면서 ‘자방고전(字倣古篆- 한글의 글자체는 고전을 본받는다)’이라고 한 데에서 따온 명칭이다. 기존의 ‘판본체, 정음고체, 훈민정음 해례본체, 곧은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명칭에 뚜렷한 근거가 있고, 부르기 쉽지 않은가? ⑵ 정자체(正字體) : 한자와 어울리고, 활자로 새기기에도 비교적 쉬우며, 무엇보다 실생활에서 읽고 쓰기에 편리한 서체로 기존의 ‘조화체, 효빈체, 민체, 훈민정음 언해본체, 궁체 정자, 바른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⑶ 흘림체 : 여기에는 궁체 중의 ‘반흘림, 진흘림’ 등이 포함됨은 물론이고, 궁체 외에도 ‘훈민정음 언해본’ 형태의 글씨를 흘려 쓴 듯한 양반들의 한글 서간도 여기에 속한다. ‘추사 간찰’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서체 용어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국한문 혼용체’라는 말은 국한문 혼용이 서체가 아니라 방법이기 때문에 ‘-체’자를 붙여서는 곤란하고, 그냥 ‘국한문 혼용’이라 해야 한다. ‘궁체’도 궁중의 서사 상궁들에 의해 창작된 서체로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 왔지만 상위 서체 분류 명칭으로는 곤란하다. 출처에 따른 하위 특징의 하나로 봐야 한다. 따라서 ‘궁체정자’니 ‘궁체흘림’과 같은 명칭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굳이 명명하려면 ‘정자체 궁서’, ‘흘림체 궁서’라고 불러야 한다. 단아한 숙종의 한글 서간 등도 그냥 정자체로 보면 된다. 그리고 양반들의 한글 서간도 따로 명명하면 곤란하다. 그냥 ‘흘림체 서간’으로 부르면 되겠다. ‘옛체’, ‘옛글씨체’ 등은 명칭 음절수가 다른 3음절 명칭에 어울리지 않고, ‘훈민정음 해례본체’, ‘훈민정음 언해본체’ 등은 ‘해례본체’, ‘언해본체’처럼 줄여 명명하더라도 무슨 뜻일까 하고 한참 고민해야 할 정도로 너무 어렵다. ‘정자체’를 ‘곧은체’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굳이 이 말을 사용하려면 ‘곧음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우리말에서 ‘디딤돌, 걸림돌, 비빔밥, 다람쥐, 흘림체’ 등과 같이 ‘-ㅁ’이 관형사형의 역할을 하는 용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곧음체’를 주장했을 때 ‘ㆆ, ㅎ, ㅇ, ㆁ’ 등의 자음을 과연 곧다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도 발생한다. ‘정자체’를 ‘바른체’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곧은체’와 ‘바른체’의 의미 구분이 쉽지 않음에 문제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모두 ‘곧다’를 풀이하면서 ‘바르다’를 사용하고, ‘바르다’를 풀이하면서 ‘곧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글전서’, ‘한글해서’, ‘한글행서’ ‘한글초서’라고 부르면 편리할 듯하지만, 한글만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 절름발이 명칭이다. 쉬운 한글, 편리한 한글, 과학적인 한글이다. 한글 서체 명칭도 척 보면 알 수 있듯이 쉽게 부를 수 있고, 외국인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한글 서체 명칭이어야 하겠다. ‘고전체, 정자체, 흘림체’라. 어떤가?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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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을 맞아 붓을 잡다 -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으리

용서한다.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 - 폴란드 수상 요셉 키란티예비츠가2차대전 때 독일의 나치 정권의 만행을 사죄하기 위해폴란드의 유태인 위령탑을 찾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에게 했던 말이다. 아베 총리는 언제 독립기념관을 찾아와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할까? 그 때야 우리도 위의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201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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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해인 '심사굴' 2015. 3월호 원고

海印寺(해인사) 解脫門(해탈문) 柱聯(주련)毘盧遮那佛願力周法界 (비로차나불원력주법계)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이 법계에 두루 미치니以最後勝體詣菩提道場 (이최후승체예보제도장) ​마지막엔 수승하신 몸으로 보리도량에 나아가​圓解脫深因登金剛寶座 (원해탈심인등금강보좌) ​원만한 해탈 깊은 인행으로 금강보좌 오르셨네. ​伽倻山中成就無上正覺 (가야산중성취무상정각) ​가야산 가운데에서 위없는 바름 깨침 이루시고​海印三昧常說大華嚴經 (해인삼매상설대화엄경) 해인삼매 속에서 언제나 대화엄경 설법하시네.​一百四十功德不共二乘(일백사십공덕불공이승) ​일백사십 공덕은 이승과 함께 못할 불공덕이요​八萬四千法門高超十地(팔만사천법문고초십지) ​팔만사천 법문은 십지를 뛰어넘는 법문이라네. ​번뇌의 끝, 열반의 시작이 해탈이렷다. 해인사 해탈문은 본당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이다. 해탈문을 지나면 중생의 속박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내용상 1~3행은 수행으로 부처님이 되어 금강보좌에 오름을, 4~7행은 해인사에서 공덕을 쌓고 설법하는 내용이다.1행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큰 광명(光明)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이다. ‘법계(法界)’란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 진리의 세계 곧 진여(眞如)의 세계를 말한다. 2행에서 ‘승(勝)’은 수승(殊勝)의 준말로 매우 뛰어남을, ‘詣(이를 예)’는 절에 감을 뜻한다. 3행의 ‘원해탈(圓解脫)’은 원만한 해탈, ‘인(因)’은 인행(因行)으로 불도를 닦는 것을 말한다. ‘금강보좌(金剛寶座)’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이다.4행의 ‘가야산(伽倻山)’은 본래 석가모니가 해탈한 인도의 산이지만,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도 여기에 비길 만한 산이란 뜻이다. 5행의 ‘화엄경(華嚴經)’은 대승불교의 최고 경전으로, 석가가 이레가 되던 날에 깨달은 바를 설한 경문(經文)이다. ‘해인삼매(海印三昧)’란 말은 바로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구절로 모든 법이 부처님의 마음에 나타남을, 바다에 만상이 투영되는 모습으로 비유한 말이다.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해인사의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6행의 ‘일백사십공덕(一百四十功德)’이란 여타의 수행자들과 다른 부처님만이 갖고 계신 140가지의 뛰어난 공덕을 말한다. ‘불공(不共)’은 함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승(二乘)’은 부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는 성문승(聲聞乘),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연각승(緣覺乘)을 말한다. 7행의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은 중생의 팔만 사천 가지 번뇌를 다스리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한 법문의 수이다. ‘십지(十地)’란 보살이 수행하여 성불하기까지의 52단계의 수행 중 41~50단계까지를 가리킨다. 마지막 52단계가 묘각(妙覺)인데 이것이 성불(成佛)의 지위이다. 수월 권상호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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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체 명칭의 통일 방안- 2015.2.27. 국회도서관

  ‘형태적 특징에 따른 2안 분류’에 대한 토론문 (2안- 곧음체·바름체·흘림체·진흘림체) 권상호(문학박사, 칼럼니스트) ​   ​ 제1안 제2안 1) 해례본체 2) 언해본체 – 언해본체 정자 - 언해본체 흘림 - 언해본체 진흘림 3) 궁 체 - 궁체 정자 - 궁체 흘림 - 궁체 진흘림 1) 곧은체 2) 바른체 3) 흘림체 4) 진흘림체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말’과 ‘짓’밖에 없다. 인간은 말이 가지고 있는 시공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文字]’을 만들었다. 글과 관련한 ‘글(契), 긋다, 글씨, 글자(-字), 글월, 그리다, 금, 그림, 긁다, 긁적이다, 긁적거리다’ 등의 용어를 볼 때 글은 인간의 조건이자 삶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을미년 새해에 우리의 호흡과 같은 ‘한글 서체 명칭 통일을 위한 포럼’을 갖은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문화를 열어준 한글은 이른바 양반들의 삼엄한 문자권력 하에서도 훈민정음 창제(1443년), 국가 공식문자 공포(1894년), 광복에 의한 우리 말글 회복(1945년) 등을 거치면서 여성과 민중을 중심으로 급성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마침내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고(1997년)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되는(2014년) 경사를 맞이했고, 국보 70호인 을 국보 1호로 교체해야 한다는 운동마저 일어나고 있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에서 나온 한글은 언어학적 관점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제자 원리와 심오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음절 문자이다. 역설적으로 한마디로 너무 쉽고 편리해서 욕먹은 문자이다. 넓은 키보드가 키패드로 좁아져도 입력이 가장 빠른 엄지문자, 효율적인 음성인식 기능을 가진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더욱 빛나는 IT문자라는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한글의 위상은 이처럼 높아졌는데 한글서예는 그렇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하며 한글과 서예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2안, 곧 ‘형태적 특징에 따른 분류’ 시안에 대하여 몇 가지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 순우리말로 된 한글 서체 명칭이 좋다고 하지만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는 한자어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본다. 더구나 친숙한 한자어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발표자는 순우리말로 된 명칭을 주장하면서도 ‘자체(字體)’와 ‘서체(書體)’, ‘형체(形體)’와 ‘체세(體勢)’ 등과 같은 어려운 한자 문예 비평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진정으로 언어사대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차라리 ‘글자체’, ‘글씨체’, 아니면 아예 ‘글자꼴’, ‘글씨꼴’이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둘째, 우리말에서 ‘비빔밥’, ‘다람쥐’처럼 ‘-ㅁ’이 관형사형처럼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곧은체’, ‘바른체’보다는 발표자가 제시한 ‘곧음체’와 ‘바름체’라고 부르는 것이 ‘흘림체’, ‘진흘림체’와도 어울리고, 분류 명칭으로서도 낫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곧음체’, ‘바름체’라고 했을 때 두 명칭 사이에 대단한 의미 혼란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곧다’의 뜻을 풀이하면서 ‘굽거나 비뚤어지지 아니하고 바르다’처럼 ‘바르다’는 말을 사용하고, ‘바르다’의 뜻을 풀이하면서 ‘곧거나 반듯하다’처럼 ‘곧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진솔하게 말하자면 창제 당시의 ‘ㅇ’, ‘ㆁ’, ‘ㆆ’, ‘ㅎ’과 같은 글자는 곧지 않은데 어떻게 ‘곧음체’로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곧음체’라고 하면 나머지는 ‘굽음체’이고, ‘바름체’라고 하면 나머지는 ‘비뚬체’라고 할 수 있는가? 셋째, ‘곧음체’의 소분류로 ‘원필’과 ‘방필’을 들고 있는데, 원필과 방필은 서체 용어가 아니라 필법에 해당하는 용어이므로 적당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이는 소분류로 다루기보다 필법상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넷째, 발표자는 한자서예의 오체(五體)를 인정하고 한글서예도 서예라는 공통 측면에서 이를 참고할 만하다는 전제 아래, ‘문자의 체세’를 준거로 제2안에 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한글은 한자와 달리 창제된 글자라는 점, 글자 운용에서 모아쓰기를 한다는 점, 시작부터 붓이 서사도구의 중심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한글 서체만의 독특한 분류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가? 한글은 기본자인 모음 세 글자와 자음 다섯 글자를 바탕으로 가획하고 합용하여 이루어진 간편한 글자이기 때문에 자전을 찾지 않고도 누구나 쉽게 흘림 정도를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발표자가 ‘복잡하다’고 지적한 1안의 ‘정자’, ‘흘림’, ‘진흘림’ 등의 소분류 명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섯째, 발표자는 ‘훈민정음 해례본체’를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를 세종이 직접 쓴 서문에 해설이 붙어 있는 책의 글자체’로, ‘훈민정음 언해본체’를 ‘한문을 한글로 풀이한 책의 글씨체’로 풀어 말하며, 이러한 명칭은 외국어로 설명하기 어려움을 문제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본 명칭 그대로 부르면 될 것이고, 영어문화권보다 한자문화권의 사람이 더 많음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또 ‘언문(諺文)’은 한글을 낮잡아 일컫는 말로 보는데, 사실 이 말은 최만리 반대 상소문에 나오는 말로 신하들이 지어낸 말이라기보다, 세종이 미리 일러주었을 말이라 생각한다. 문자학적으로 보면 ‘언(彦)’이 ‘선비 언, 클 언’이므로 ‘언(諺)’ 자는 ‘선비의 말, 큰 말’의 뜻이 된다. 중국에서도 ‘속담, 속어, 민간어’ 정도의 뜻으로 쓰고 있는데, 유독 우리 옥편에 ‘상말 언’으로 기록함은 사대주의 의식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 , 등의 많은 언해는 한글을 얕잡아 보고 붙인 제목일까? 여섯째, 제1안의 궁체라는 대분류를 비판하면서, 궁체라는 용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궁중 밖에서 쓴 서체는 모두 ‘민체(民體)’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민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의 ‘민(民)’은 글을 배울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민(民)이 서체를 이룬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본다. ‘민(民)’은 ‘
201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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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해인 2015. 2월호 - 심사굴

經學院(경학원) 柱聯(주련) 性情獨許得其眞(성정독허득기진) 성정은 홀로 그 진리를 얻고자 하는데果分金碗綠香淸(과분금완록향청) 과일 담은 금 그릇엔 녹향이 맑게 흐르고景物因人成勝槪(경물인인성승개) 경물 속의 수행자는 뛰어난 경개 이루었다.富貴於我如浮雲(부귀어아여부운) 부귀는 나에게 있어 뜬구름과 같은 존재風雅只今留此席(풍아지금류차석) 풍류와 아취가 지금 여기 머물고 있다.   경학원(經學院)이라면 경전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스님들의 공부방이라 할 수 있겠다. 경학원의 주련은 5구로 되어 있어 글귀의 짝이 맞지 않는 게 특징이다.1구는 경학원의 원훈(院訓)인 셈이다. 고독과 벗하며 성정(性情)을 닦고 진리(眞理)를 터득하고자 함이 경학원의 설립 이념이다. 성정이란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심성을 가리킨다.2구와 3구는 수도 도량의 분위기를 말하고 있다. 2구는 불전에 공양하는 과일과 향을, 3구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든 수행자의 진지한 모습이 엿보인다. 녹향(綠香)은 녹차의 향기 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싱그러운 향기 정도로 보고자 한다. 경물(景物)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景致)를 뜻하고, 인인(因人)은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승개(勝槪)는 뛰어난 경개(景槪), 곧 자연 산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일컫는다. 바야흐로 수행자는 계절 및 자연 경치와 하나 되어 염화미소(拈華微笑)의 묘리를 깨닫고 있다.4구와 5구는 깨달음에서 오는 법열(法悅)을 풍아(風雅)로 표현하고 있다. 원래 풍아는 풍류(風流)와 아취(雅趣)의 준말로 여기서는 세속적인 풍류가 아니라 성정에서 우러나오는 정각(正覺)의 즐거움과 멋을 노래하고 있다. 망상에서 벗어나 즉좌(卽座)에서 진리를 깨달으면 무릎을 치고 일어나 춤이라도 출 일이다.   수월 권상호
2015.02.24

중국 상해에서 부탁받은 글씨 - 沈霄 王洋 王志剛 선생 제위로부터

​​ 종남별업(終南別業) 종남산 별장에서 - 王維 中歲頗好道(중세파호도) 中年에 자못 道를 좋아하다가 晩家南山陲(만가남산수) 만년엔 남산 기슭에 집을 마련하였네. 興來每獨往(흥래매독왕) 흥이 나면 매양 홀로 오르고 勝事空自知(승사공자지) 좋은 일 있으면 부질없이 혼자 즐기네. 行到水窮處(행도수궁처) 물이 다하는 곳까지 가보기도 하고 坐看雲起時(좌간운기시) 구름 일면 앉아서 바라본다네, 偶然値林叟(우연치림수) 우연히 숲속에서 늙은이라도 만나면 談笑無還期(담소무환기) 담소하느라 돌아갈 줄도 모르네.   * 왕유: 이백과 같은 해에 태어나 60을 살고 간 당나라 자연시파의 거두다. 벼슬을 마치고 말년에는 불교에 많이 기울었다. 隱遁期에는 長安의 종남산에 별장을 짓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다 생을 마쳤다. 또한 南宗畵의 비조로 일컬어진다. 詩, 書, 畵에 모두 능했던 그를 일러 훗날, 蘇東坡는 그의 시에는 그림이 들어있고 (詩中有畵), 그의 그림에는 시가 들어있다 (畵中有詩)라고 높이 평했다.   望嶽(망악) 산을 바라보며-杜甫 岱宗夫如何(대종부여하) 산은 과연 어떠한가? 齊魯靑未了(제노청미료) 제와 노나라에 걸친 그 푸르름 끝이 없구나. 造化鍾紳秀(조화종신수) 천지간에 신령스럽고 빼어난 것 모두 모았고, 陰陽割昏曉(음양할혼효) 산의 밝음과 어두움을 밤과 새벽으로 갈라놓았다. 탕胸生曾雲(탕흉생층운) 층층이 펼쳐진 운해 가슴 후련히 씻겨 내리고, 決眥入歸鳥(결자입귀조) 눈 크게 뜨고 돌아가는 새를 바라본다. 會當凌絶頂(회당능절정)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뭇 산의 작음을 한번 에 내려 보리라.   2006년 4월29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공식 방문하여 대화하는 과정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 주최의 공식 만찬장에서 연설하며 인용한 시다. 당 시인 두보가 山東에 있는 泰山에 올라가 쓴 望嶽이라는 시이다. 정상에 올라 여서 산을 발 아래 두고 굽어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산은 그런데,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鳥鳴澗(조명간) 새 우는 산골 -王維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사람은 한가롭고 계수나무 꽃잎 사뿐히 떨어지는데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고요한 봄밤의 산은 텅 비었네.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달이 뜨자 공연히 산새만 놀라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이따금 봄 산골짜기에서 우네.   이 시는 선적인 적정의 경계를 묘사한 왕유의 선시들 중에서도 명편으로 꼽히는 시다. 대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느낌을 담고 있는 시심(詩心)은 한 폭의 수묵화를 방불케 하는 청신담아(淸新淡雅)함과 한 편의 소야곡 같은 편안하고 고요하며 그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5언 절구인 은 왕유의 산수시 중의 제1수다. 황보악은 왕유의 친구이고 운계는 황보악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현재의 강소성 단양이다. ‘인한(人閑)'은 번뇌 · 근심이 없음을 상징한다. 시인의 심경은 오직 유한(悠閑)할 뿐이다.    
2015.02.04

문자로 풀어보는 삶과 죽음 이야기(부분)- 법무연수원 특강 자료

문자로 풀어보는 삶과 죽음 이야기 권상호(문학박사, 서예가) 평생 공부 - ‘삶의 유혹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 1. 삶이란? / 한(목숨, 생, 생명, 生涯, 生活) - life, living 참삶(진실하고 올바른 삶). 삶의 지혜, 인간다운 사람. 삶의 의미, 삶에 대한 회의. 삶의 의욕. 새로운 삶. 삶을 돌이켜 보다. ⓵ 사전적 의미(태어나서 죽기에 이르는 동안 사는 일이 삶). ⓶ 세상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하며 지긋지긋하고 힘든 것. 이것을 빼앗는 것이 殺害(남에게 끼치는 해 중에 가장 큰 해)이며, 사람의 삶은 인생이라 한다. ⓷ 삶의 어원 - ‘숨’. ‘ㅅ’의 의미. 齒 / 동원어 - 살다. 사람. 사랑. ​ 2. 죽음이란? / 한(死亡, 永眠, 끝장, 終身, 他界, 下世(棄世), 세상을 下直하다. 絶命, 死滅(죽어 없어짐), 不歸(돌아오지 않음), 逝去(死去의 높임말), 崩御(임금이 세상을 떠남, 天子死曰崩 諸侯曰薨(훙) ), 仙馭(선어, 신선이 말을 부림), 晏駕(안가, 저물어 수레에 오르다?) 入寂(불, 涅槃- 번뇌의 끝 영원한 진리의 시작), 昇天(가), 善終(가,
201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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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준비 - 한자 교육의 필요성

​​ 한자 교육의 필요성   13억 중국의 슈퍼 파워 6억 4천의 동남아시아 파워   문자권력   고대 필수한문에서 현대 교양한문으로   文과 字   漢字는 ‘문화의 보고’   文化 : 文에 의한 인간의 변화   漢文과 漢字는 누구의 것인가? 왜 버리려 하는가?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등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버려야 하는가? 더 자극 받고 더 연구, 발전시켜야 한다. 韓文, 韓字 ​ 훈민정음 창제 배경 ​ ​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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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월호 원고 : '말맛 글맛' - '언어권력'

말맛 글멋문자권력권상호(문학박사, 서예가)문화의 의미를 사전에서는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정신적·물질적인 성과’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文化(문화)’라는 한자어를 분석하면, ‘글[文]을 통한 인간[人]의 변화[匕]’이다. 이로 보면 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 곧 ‘문자권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문자권력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우선 국회를 통한 문자특별법?이나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여 문자권력의 뿌리인 ‘말’과 ‘글’의 밑바닥부터 조사해 봐야 한다.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과 ‘짓’ 두 가지밖에 없다. 말과 짓을 대개 언행(言行)이라 하는데 언행일치를 최고 덕목으로 삼는다. 말한 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직한 말과 성실한 실천이 요구된다. 예부터 인물을 뽑을 때 제시했던 신언서판(身言書判)에도 ‘말[言]’과 ‘글[書]’이 들어 있는데, 이는 사람의 말글로도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음을 뜻한다.말과 글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말은 목구멍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음성 기호의 집합이고, 글은 말을 적는 문자 기호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말 속에 말이 있고 글 속에 글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고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니라는 뜻과 함께 말글 안에는 무궁무진한 뜻이 담겨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인간은 말을 먼저 사용하고 글은 나중에 만들어 냈다. 처음 마주하는 사물을 일컫고, 겪은 일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말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러한 말의 일회성· 소멸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글을 사용하기 이전에 일찍이 그림으로써 생각과 느낌을 표현했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자유롭고 직관적인 그림 그리기가 고도의 음성 상징 기호인 글자를 체계적으로 쓰기보다 수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인간 발명의 최고 작품은 아마 글일 것이다. 글은 불변성과 영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단 입 밖에 나오는 즉시 자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어느 때 어떻게 변질할지도 모를 말을 오래 보존하고자 만든 발명품이 바로 글이다. 급기야 글로 쓰기조차 귀찮아서 녹음기와 음성 인식기까지 만들어 낸 것을 보면 인간의 창조적 본능에는 끝이 없나 보다.흔히 말하기는 쉬워도 글쓰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쉬우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고, 어려우면 피하기에 십상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아껴가며 말하고 글쓰기는 어렵지만 되도록 많이 쓰라는 말씀이다. 모든 성공한 이들은 한결같이 적는 일에 골똘했단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신(新)적자생존론?’이 여기에서 탄생한다. 옳거니. 말과 글은 공기와 물과 같다. 공기나 물은 흔하지만 오염되면 우리는 금세 죽게 된다. 살기 위해서는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셔야 하듯이, 피할 수 없는 말과 글이라면 맑고 깨끗하게 사용하자. 그리고 평생 사용할 말과 글이라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이따금 말글의 바다인 도서관에 풍덩 빠져 보는 건 어떨까. 마을 도서관은 영혼의 수영장이다.그리고 ‘말’은 ‘맛있게’ 하고, ‘글’은 ‘멋있게’ 써야 한다. 맛있는 말은 명곡과 같고, 멋있는 글은 명화와 같다. 말에 맛이 없으면 귀가 더러워지고, 글에 멋이 없으면 눈이 피곤해 진다.인간이라면 아무도 말과 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말을 못하면 벙어리로, 글을 모르면 문맹자로 취급된다. 말과 글을 모르면 서로 간에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사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미개인으로 낙인찍힌다. 미개인은 언제나 문명인의 부림을 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으로부터 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글을 익히고 책을 읽어야 한다. 한편 글은 민주주의와 상관관계가 높다. 글을 모르면 전제주의나 독제주의에 빠지게 되고, 온 국민이 글을 잘 사용하여 문맹자가 없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따지고 보면 글이 준 선물이라 할 수 있다.역사적으로 보면 소수의 권력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 말글을 악용해 왔다. 새로 권력을 잡은 자는 글을 만들어 소통불가 명목으로 이민족을 지배하거나 백성 위에 군림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문자권력’이다. 갑골문은 제사와 수렵을 맡은 제왕의 문자권력이었다. 제왕을 비롯한 소수 특권층만이 사용한 문자였다. 백성들은 배울 수도 없었고, 또 알아서도 안 되는 금기의 글이었다.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이사를 시켜 새로운 글자 소전(小篆)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르며 분서갱유로 잡음을 없앴고,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정복하고 ‘파스파 문자’를 만들어 자존심을 살렸고,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몽골문자를 개량한 만주문자를 만들어 문자권력을 휘둘렀다.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대왕은 백성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창제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문자권력의 누수를 염려한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당연한 처사였다. 다행히? 한글 아닌 한문으로 과거가 치러짐으로 그들의 권력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삼국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이두(吏讀)는 ‘벼슬아치 리(吏)’자로 볼 때 아전들의 문자권력이었다. 고려 광종 때(958년)부터 갑오개혁 때(1894년)까지 실시해 온 과거제도 시기는 한문이 절대적 권력이었다. 양반은 문자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려운 한문도 초서로 갈겨써야 했다. 일제 치하에는 일본어가, 해방 후 지금까지는 영어가 지존의 문자권력이다. 그들은 도장 글씨도 사인도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고불구불 삐뚤빼뚤하게 써야 했다. 법률, 의학, 행정 용어 등은 아직도 그들만의 문자권력으로 버젓이 남아 있다. 감히 네깟 놈이 이 신성한 병명과 약명을 감히 알려고 하다니! 전문 직업인일수록 문자권력을 심하게 부린다. 흔히 언론을 가리켜 제4의 권력이라고 하나 내가 보기엔 입법·사법·행정 권력보다 언론 권력이 더 높아 보인다. 조폭 권력도 무섭지만 결정적 흠은 문자에 약하다는 점이다.민간 신앙에서 재앙을 막고 악귀를 쫓기 위해 사용하는 부적이란 게 있다. 누구나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면 부적의 효력은 사라지고 만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부적은 힘이 있다.오늘 밤에는 부적 둘을 만들어 하나는 몸에 지니고 다른 하나는 문 위에 붙여두어야겠다. 그러면 세월호 물귀신, 의정부 불귀신이 썩 물러나고 건강과 재물이 많이 들어오겠지.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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