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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아파트

​​ 아파트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이라고...   모두 기술art쪽에 줄을 섰다. 줄이 기니까 뭔가 있는 줄 알고.   그리고 2천4백 년이 흘렀다. 기술의 완성품이 쏟아져 나왔다. 아파트apart다.   오랫동안 전 인류가 심혈을 기울여 ‘파pa’온 작업이라 이를 기념하여 ‘아트’란 두 글자 사이에 ‘파’자를 넣었다.   ⅡⅡⅡ 아파트 세상 ⅡⅡⅡ   파?를 넣어서 그런지 삶의 맛이 매워만 간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이 한바탕 웃고 돌아갔다.     *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트(Art)이다.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Ars longa Vita brevis)”는 본래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의 뜻인데, ‘아르스’가 ‘아트’로 바뀐 뒤 ‘아트’가 가진 예술과 기술이라는 두 가지 의미 가운데 예술이 널리 쓰이다 보니 번역이 잘못되어 지금의 표현으로 굳어졌다.  
2015.10.07

시험 감독

​​ 시험 감독   시험지를 나눠주며 수험생에게 이르기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선택은 인간의 일입니다. 선택- 잘하세요.   후회를 잉태한 문제풀이...     *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만 하다가 간다.   Birth, Choice, Death... B와 D 사이에는 C만이 일을 뿐이다.   6.25 남북전쟁으로 지아비는 지어미를 잃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잃었다. 지아비와 지어미는 새로운 사랑을 선택했다.   돌이켜 보면 앞산에 가 먼지 하나 찾아내야 할 정도의 어려운 선택 끝에 한 생명이 태어났다. 오전에 병원을 찾아 안락사에 사인하고 오후에 화장터를 찾아 화장비를 예치해 두었다.   그러고 보면 출생과 죽음도 선택이군.  
2015.10.07

느티나무

​​ 느티나무   집 앞에 내 나이와 엇비슷한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별말이 없이 지내다가 늙어가면서 수다가 늘었다.   오늘은 내가 혼났다. 너는 무얼 쫓아 그리 바쁘게 쏘다니느냐고.   돈이 좋아서 명예가 좋아서...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다.   셀 수 있는 돈은 돈이 아니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명예는 명예가 아니야... 라고 하늘도 술에 취해 별빛을 잃은 밤에 나는 주(酒) 보퉁이가 된 채 흐린 눈에 꺼져가는 불을 붙인 적이 있지.   이 늦은 나이에 이제는 알 듯하다. 너는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찾아와 세상 이야기 들려주고 가지로는 하늘과 대화하고 뿌리로는 땅속 세계와 속삭임을.   오늘은 해 질 녘 가을 햇살에 내 그림자 길게 밟고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느티나무처럼.  
2015.10.07

지렁이 하늘길​​​​

​​​​​ ​ 지렁이 하늘길​​​​  지렁이는 지룡(地龍)이라던데 그 중에도 미욱한 놈이 있나 보다.   너의 야행성 탓인가 간밤의 빗기 때문인가 아니면 눈이 없어선가 이른 아침에 몇 마리 시멘트 바닥에 나와 죽었다.   땅속이 너의 세상이라면 땅 위로 올라와 죽음은 승천이렷다?   아스팔트 시멘트 대리석으로 네 질식을 재촉하고 끝내 네 하늘길을 막은 인간.   미안하다. 용서해. 내 죽어 네 밥이 될게. * 일산서구의 어느 유명한 화가의 작업실에서 친구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사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다녀왔다. ​사회를 맡는다는 자체보다 나에 대한 친구의 신뢰가 고마웠다. ​ 그 친구는 바위 같은 합리적 엄숙함과 대쪽 같은​ 예리한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 ​ 그러면서도 말하듯이 교정도 없이 시를 쓴단다. 이태백 스타일인가?​ 부럽다. ​ 나도 시험 감독을 하는 50분 동안에 두 편의 시를 머릿속으로 구상해 보았다. 바다가 파도로 말하듯이 뭍이 바람으로 말하듯이 나는 숨으로 속내를 드러내야 할 텐데...​   숨 쉬듯이 시 한 편 지을 수 있다면야 지금까지 생을 그나마 용서해 줄 수 있으련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시를 내 속에 구속하려 들기 때문이다. 시는 시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놀아야 할 것.​  
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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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야생일기 타이틀

장산곶매 NLL을 날다고라니 야생을 질주하다 
201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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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야생일기 타이틀

도토리의 일생검정얼게비늘이 사는 법
201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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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순국 추모비 건립 - 용산구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2015년 9월 23일 오후 3시유관순 열사 순국 추모비가서울 용산구 부군당 역사공원에 건립되었다. 이 자리에 소생의 유관순 어록 글씨 5점이 비치되었다.   
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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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 돈돌날이 제자

제56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참가작인함경남도 북청 돈돌날이 제자를 맡았다.돈돌날이는 '동틀 날'의 의미이다.돈돌날이 보존회장 동영범님의 희생적 노력이 돋보인다. (국어사전에는 돈돌나리로 되어 있으나 문화제 등록은 '돈돌날이'로 되어 있단다.  
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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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미술제(근로자예술제) 심사 소감

일과 꿈​- 창의적인 여가활동으로 신명나는 직장생활을-   심사위원장 도정(塗丁) 권상호(權相浩)먼저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권면을 보냅니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끼듯이, 땀 흘린 만큼 보람을 느끼리라 믿습니다. ‘근로자(勤勞者)’라고 하면 부지런함과 수고로움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근로’라는 말보다 ‘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합니다. 인간은 ‘일’어나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놓’으면 ‘놀’게 마련이지요. 이처럼 일은 우리의 삶의 의미이자 신성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일 자체가 주는 쾌감도 있지만 일을 놓고 잠시 쉬는 동안의 취미생활은 꽃의 향기처럼 인간의 인품을 더해 줍니다. 취미로 붓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즐거우며, 장소와 날씨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저비용 고효율’이라고나 할까요?이번 근로자미술제가 36회라는 연륜이 말해주듯이 출품수와 작품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더러는 전업작가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기능올림픽에서도 증명되었듯이 한국인의 손은 정녕 미다스(Midas)의 손인가 봅니다.저를 포함해 셋이서 심사한 분야는 서예장르로서 한글, 한문, 문인화, 그리고 새로 추가된 캘리그래피(calligraphy)가 심사 대상이었습니다. 서예에 허락된 수상작은 총 24점이었고, 후보작으로 1점을 점지했습니다. 심사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그 많은 출품자의 노고를 생각하면 소수의 수상작만을 뽑는 작업이란 살을 깎는 아픔입니다. 전체적으로 한번 돌아보고 출품작의 평균수준을 가늠하고 난 뒤에 본선 작업에 들어갑니다. 규격을 벗어났거나 오·탈자가 있거나 먹색이 좋지 못한 작품은 우선 배제합니다. 본문은 잘 썼는데 낙관이 아니다 싶어도 역시 배제 대상입니다. 따라서 선문(選文)과 필력, 참신한 장법을 살린 작품이 수상권에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최종 결선까지 나간 금상 작품은 이상의 요소를 모두 충족함과 동시에 붓질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 강순희 씨의 묵죽이었습니다. 신광훈 씨의 예서 채근담(菜根譚) 구, 정종열 씨의 국한문 혼용의 화석정(花石亭) 시도 끝까지 경합을 벌인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캘리그래피는 활자 이외의 모든 서체를 아우르는 손글씨로 생활속의 글씨를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예심을 거쳤지만 출품수에 비해 장르에 대한 이해와 성의가 부족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폰트에 싫증이 난 현대인에게 무한한 창의력을 길러주는 캘리그래피가 앞으로는 커다란 에너지로 다가오리라 믿고, 출품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품작마다 일일이 심사평을 올려놓았습니다. 출품작 비율로 보면 한문이 절대적이고 수준 또한 높았습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수상권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한문은 예서체가 많이 출품되기도 했거니와 수준 또한 높았습니다. 해서와 전서는 기초가 탄탄했고, 행초서는 의욕에 비해 성과가 적었습니다. 한글은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지만 오자가 더러 나타나 잘 쓰고도 떨어지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문인화는 전반적으로 고른 수준이었으나 출품수가 적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일을 먹고 사는 우리들. 우리는 일이 어려워 손을 못 대는 게 아니라,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작품 창작도 일이고 출품도 일입니다. 내년에는 좀더 많은 일꾼?들이 동참하여 창의적인 여가활동이 신명나는 직장 생활로 이어지기를 갈망합니다.   2015. 9. 23. 
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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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보람 100년의 희망

50년의 보람 100년의 희망-신일 50년사를 준비하며-   신일중고등학교 탄생 50주년! 2016년이면 명문 사학 신일이 세상에 태어난 지 50돌을 맞이하게 된다. 50년을 흔히 반세기라 한다. 사실 50년이라 하지만 근래 50년의 변화는 과거 천년의 변화보다도 더 빠르고 심각했다.   ‘50’이라 하면, ‘오십견’,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오십세주’까지 든다면 주당으로 낙인찍힐라. 허걱. ‘오십견’은 아픔으로 ‘오십보백보’는 뭔가 깨닫지 못하는 사람으로, ‘지천명’은 살 만큼 산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어감이 그다지 좋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순우리말 ‘쉰’도 맛이 간 늙수그레한 느낌이고, 상점의 ‘50% 할인’이라는 문구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집필이라는 큰일을 안고 보니, 신일 가족이 된 이래 가장 큰 영전?이라고나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50년사는 일단 ‘50% 보너스’를 받는 기분으로 써내려가야겠다. 올커니. 역사(歷史)는 글자 그대로 인간이 겪은 사실의 기록이다. 사(史)는 사실(事實)을 사(士)가 사(査)하여 사실적(寫實的)으로 사(絲)처럼 사(寫)해야 한다. ‘역사는 씌어진 거짓말이고, 신화는 씌어지지 않은 진실이다’라는 말은 강자의 입장에서 쓴 문자권력으로서의 역사를 질타하는 말이다. 적어도 는 만화 같은 즐거움과 잡지다운 부담 없음으로 써야겠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는 성경과 같은 존엄성을 떡에 소 박듯이 넣어야 하겠지? 잘헌다.   신일에서 근무하다가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따금 고개를 돌려 백운대(白雲臺)를 바라보게 된다. 학생들은 제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10시 방향으로 눈동자만 살짝 돌려도 북한산과 도봉산을 병풍처럼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기른다. 세월은 흘러도 백운대와 하늘빛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교가와 응원가에 공히 등장하는 백운대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비바람과 눈보라가 조각한 명품이다.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은 2013년에 지정받은 무등산국립공원보다 30년 앞선다. 백운대는 수도 서울에 있는 국립공원의 정점에 우뚝 서서 서울에서 가장 먼저 우주의 서광(瑞光)을 받아들이고 또 그 빛을 우리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 나눔의 미학이다. 북한산 줄기는 언제나 현빈(玄牝)처럼, Great Mother처럼 자유인들을 포근히 감싸주고 위로해주며 그들의 가슴에 웅지(雄志)를 심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신일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졸업생이 많이 배출된 학교로 주목받고 있으며, 기실 신일동문들은 지구촌 곳곳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활동과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산이 교회와 예식장, 아파트와 빌딩숲에 가리어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능선이나마 선별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빡빡산으로 불리던 학교 뒷산, 오패산은 50년이 지난 지금 수목이 울창한 청산으로 환골탈태하여 온갖 새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언젠가는 붕새나 봉황도 깃들겠지? 얼씨구.   돌이켜 보면 그 사이 신일 교정의 변화의 물결은 거세었다. 학교 상징물과 같았던 보일러실 굴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굴뚝보다 더 높은 서울사이버대학 빌딩이 용립하고 있다. 2000년에 문을 연 서울사대(약칭)는 단기간에 전국 최우수 사이버대학으로 발돋움하고, 2022년에는 ‘Global Top 10’을 꿈꾸고 있다. 본관 좌우에는 설립자님의 동상과 예수상이 교정을 주야로 지키고 있고, 신일 상징탑과 신일의 종은 자유인의 발길을 진리로 인도한다. 고등학교 건물 뒤에는 중학교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제1운동장 북측에는 체육동이 새로 생겨 야구부실과 자기주도적 영재학습실로 사용되고 있다. 체육동 용마루에는 6.25 참전 16개국의 국기가 주야로 전쟁의 아픔을 알리며 온몸으로 떨고 있다. 제2운동장은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제3운동장은 성신여자대학교 운정관이 문을 열었다. 무너미동산에는 한옥 구리당(九里堂)이 들어서 기둥마다 주련을 두르고 오패산의 격을 높이고 있다. 구리당 앞 언덕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축소판인 쌍탑이 조명을 받으며 한민족의 역사와 신일의 예술혼을 일깨워준다. 이 외에도 교훈명 비갈, 시계탑, 자유인상, 대형 지구본, BOYS BE AMBITIOUS 조형물 등 무수한 예술작품이 신일인의 프라이드와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대운동장 스텐드를 비롯하여 교정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교무실과 복도에는 기둥마다 대형 거울이 비치되어 우리의 행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곳곳에 게시된 명화(名畵)들은 눈의 피로를 씻어준다. 호텔에 잘못 왔나? 또 있다. 건물에 들어가려면 겹문을 통과해야 한다. 교외에서 자기 자리에 와 앉으려면 적어도 5개의 문은 통과해야 한다. 공기 냉·난방이 잘 유지되는 러시아식이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신일동산에는 돌과 문과 거울이 많기 때문에 나는 ‘석문경(石門鏡)학교’라는 닉네임을 붙여 본다. 오잉? 화장실은 수세식에서 비데식으로 바뀌었고, 복도에는 박물관처럼 고색창연한 고가구 위에 아름다운 도자기가 비치되어 있다. 이쯤 하면 School Gallery라고 하는 편이 나으렷다? 잘헌다. 신일 3년이면 졸업장과 함께 심미안을 보너스로 받아가는 셈이 된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교단은 없어진지 오래고, 전면 왼쪽엔 대형 모니터가 교실마다 설치되어 있다. 분필로 판서하던 칠판 시대는 끝나고 화이트보드나 무광 칠판 위에 보드마커나 물백묵을 사용한다. 교실 천정에는 냉난방기가 달려 있고, 복도쪽 벽으로는 개인 사물함이 비치되어 있다. 강화유리 덕분에 운동장에서 홈런볼이 날아오더라도 유리창이 깨지는 법은 없다. 와우.   50년의 숨 가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중요무형문화제?가 있다. 전국에서 1등으로 뽑힌 바 있는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라는 교훈과 주요한 작사 김동진 작곡의 교가가 그것이다. 물론 응원가와 졸업가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신일고등학교’라는 교패는 연전에 ‘자율형사립고 신일고등학교’로 갈아 달고 신일중흥의 기치를 올리고 있다. 일제 군복을 닮았던 교복은 일찌감치 폐지되고 자율복을 거쳐 지금은 야외복 차림의 간편 교복을 착용하고 있다. 모자와 배지는 물론 교련복도 사라지고 학교 앰블럼은 고대 그리스 문자의 첫글자를 형상화한 Alpha의 첫 글자 ‘A’ 자형으로 바꾸었다. 운동장은 좁아졌지만 사면이 대리석 스탠드로 바뀌었고, 야구볼 막이그물이 드높이 쳐져 있다. 바닥은 흙에서 인조잔디구장으로, 트랙은 우레탄으로 개선되어 비가 오더라도 금세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대학입시는 ‘예비고사+본고사’ 체제에서 ‘학력고사+내신+논술’, ‘수능+본고사+내신’, ‘수능+내신+논술’의 정시 중심 체제를 거쳐, 지금은 대학 학과에 따라 전형 방법이 다를 정도로 매우 복잡한 입시 체제로 바뀌었다. 대체적으로 수능성적을 위주로 하는 정시가 약화되고, 논술과 스펙을 중시하는 수시 일반전형이 70% 정도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개교 당시 신일고는 전·후기 중의 후기전형이었지만 고교 평준화를 거쳐 지금은 면접에 의하여 선발하는 ‘전기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바뀌었다.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이지만 주 6일에서 주 5일 수업으로 바뀌었고, 교육방법은 큰 틀에서 보면 강의에 의한 주입식 교육에서 자기주도형 학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대입시 준비는 교과서와 참고서 중심에서 지금은 EBS 천국이 되어 모든 교사는 EBS 전도사로 전락한 듯 묘한 기분이 든다. SNS 발달로 수업형태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으며, 어쩌면 가르치고 배우는 지식 전달식의 교육 방법은 곧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학교는 어디로 가지?   학생 규모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966년에 중고 각각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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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빈今年貧- 월간해인 10월호 원고

 금년빈今年貧  去年貧未是貧(거년빈미시빈)이요今年貧始是貧(금년빈시시빈)이라去年貧無卓錐之地(거년빈무탁추지지)이더니今年貧錐也無(금년빈추야무)이로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금년 가난이 비로소 진짜 가난이네.작년 가난은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금년 가난은 송곳조차 없어졌구나.  해인총림 방장 벽산원각碧山源覺 스님께서 금년 을미년 하안거 해제 법어로 향엄香嚴 스님의 게송을 예화로 들었다.(월간 해인 9월호) 몸과 마음마저 따 떨쳐버려서 떨쳐버렸다는 생각마저 떨쳐버려서 천하의 가난뱅이가 되어야 진정한 공부인工夫人이라 하셨다.이 게송에서는 빈貧 자가 여섯 번이나 등장하여 빈貧 자만은 부자다. 가난하다는 뜻의 한자 빈貧은 分+貝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빈貧 자는 재화貝를 나눈다分는 뜻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분分 자의 팔八은 넷四에서 둘二로 둘에서 하나一로 철저하게 나누어진다. 결국 하나一만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세상에 영원히 새로운 것은 시간밖에 없다. 순간순간 내 앞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의 가난, 엄밀히 말해 지금의 가난만이 가난이다. 작년의 묵은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게송의 송곳은 가난에 대한 의식이다. 가난하다는 의식마저 떨쳐버릴 때 진정한 가난이다.자발적 가난, 선택한 가난, 맑은 가난, 가난하다는 의식마저 떨쳐버린 가난을 우레처럼 깨달을 때 진정한 공부가 시작되리라. 이번 달에는 제목을 금년빈今年貧이라 붙이고, 떨어지고 갈라진 붓으로 가난한 글씨 빈서貧書를 즐겨보았다.  수월 권상호(한자 호는 도정塗丁)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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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순국 95주년 추모 서예전

​​​​http://blog.naver.com/ksh17141715?Redirect=Write ​ 대한의 딸, 유관순 아우내 장터에서 부르짖은 함성 대한독립만세! 그리고... ​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로부터 95년이 지났다. ​ ​9월 28일이 낯설지 않은 것은 1950년 9월 28일이 UN군 서울수복일이기 때문이다. ​ 유관순은 1920년(19세)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의 주례로 장례식이 거행되어 이태원 공동묘지에 뭍혔다. ​ 19세의 꽃다운 청춘은 갔지만 그녀의 뜨거운 가슴은 해가 갈수록 열기를 더하며 파란 가을 하늘에 빨간 겨울 열매로 맺혀있다.  * 용산구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2015년 9월에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예술제를 연다.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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