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수행(發心修行)
發心修行 도정문자연구소냉큼 마음으로 다가가자. 머리까지 올라갔다가 몸으로 돌아오면 헷갈리기 시작한다.祈禱(기도)가 그러하고 執筆(집필)이 그러하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일, 곧 發心(발심)이 중요하다.발심하면 그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따지고 들면 발심에 주름이 잡히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네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이다.그렇게 믿고 행동할 때,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하다.발심을 즉시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매순간 다시 태어난다. 발로 밟고 서 있는 그곳을 바탕으로 하여 발심해야 한다. 내가 인식하는 이 순간이 發福之時(발복지시)요내가 존재하는 이 자리가 發福之地(발복지지)이다.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먼 붓길을 떠나는 서예인은 붓이 쓰러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쓰러지는 횟수보다 다시 일어나는 횟수가 더 많으면 된다.성공은 신비도 기적도 아니다.성공은 지속적인 반복에서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만으로는 발심이 일어나지 않는다.저절로 발심이 일어난다면야 더없는 다행이지만대개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일에 대한 選擇(선택)과 集中(집중)의 의지가 요구된다.순간순간 선택한, 눈앞의 붓길, ‘이 길이 내 길이다’ 하고 熱中(열중)하면 된다. 지당한 얘기지만 알고 써야 한다.내용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한다.‘읽을 줄 안다. 뜻을 안다. 쓸 줄 안다.’ 등의 三可(삼가) 학습과정을 지켜야 한다.붓바람에 춤추고, 먹흐름에 헤엄쳐야 한다.이것이 이른바 현묘한 筆紙風流(필지풍류)이다. 반복되는 일상은 반복이 아니라 내 삶의 기록 更新(경신)이다.매 순간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글씨’란 씨를 뿌려 생각의 싹을 틔우자.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내가 미치도록 좋아할 때 남도 좋아할 수 있다.쓰고 써도 갈증으로 남는 글씨... I love Calligraphy.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천수행이 현실을 만든다.(If you do nothing, nothing happens. Practice makes reality.)---------------------------문자학 - /발/ 音 癶(등질 발; bō) 흔히 ‘필발머리’라 하는데, ‘발을 좌우로 벌린 모습’이다. ‘걷다, 가다’의 뜻이 들어있다. 癶을 발음하면 ‘出發할 때 바르르 떠는 신중한 모습’이 연상된다. 막 달려 나가는 모습과, 우주선 발사 순간의 신중한 모습이 소리로 나타난다. 步(걸음 보; ⽌-총7획; bù)는 癶과 달리 ‘발을 전후로 벌린 모습’이다. 發, 登과 달리 癸는 씨앗이 퍼지는 모습이다. 走(달릴 주; zǒu)는 ‘大+止’로 사람이 달리는 모습이다.發(쏠 발; ⽨-총12획; fā) - 出發, 發射, 百發百中, 今時發福, 一觸卽發犮(달릴 발; ⽝-총5획; bá) 에 ‘走犬貌’라 했는데 이는 拔과 무관하다. ‘손으로 개꼬리를 잡으니 개가 발끈하고 도망치는 모습’이다. 이때 개가 바르르 떤다.拔(뺄 발; ⼿-총8획; bá) 손으로 개를 가리다. 選拔(선발), 拔擢(발탁)跋(밟을 발; ⾜-총12획; bá) 발로 개를 밟다. 題跋(제발): 제사(題辭)와 발문(跋文).題辭: 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련한 내용을 적은 글로 ‘序文, 卷頭言, 머리말’ 등과 같은 뜻.跋文: 책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이나 발간 경위에 관계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髮(터럭 발; ⾽-총15획; fà,fā) 털이 발끈 서다. 斷髮令, 危機一髮, 身體髮膚潑(뿌릴 발; ⽔-총15획; pō) 물이 튀기다. 물이 솟다. 生氣潑剌 (剌: 발랄할 랄)勃(우쩍 일어날 발; ⼒-총9획; bó) 거시기를 덮어 놓았지만 힘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勃興(발흥), 勃起(발기) 발끈: 사소한 일에 걸핏하면 왈칵 성을 내는 모양.발칵: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기운을 쓰는 모양.지랄: 변덕스럽고 함부로 행동함에 대한 욕.
2021.11.08
캘리그라피의 정체성과 미래
캘리그라피의 정체성과 미래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문예평론가) 글쓰기는 참으로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글이 인류 역사상 가장 늦게 태어났다. 오감에서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일까? 보는 것이다.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어렵고, 듣는 것보다 읽는 것이 어려우며, 읽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어렵고, 말하기보다 쓰기가 어렵다. 어려운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쓰는 근육을 길러야 한다. 글쓰는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밥 먹고 30분은 산책하고 돌아와 30분은 붓글씨를 쓰겠다는 식의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작심삼일과 같은 '요요현상'은 피해야 한다. *calligraphy를 잘 하기 위한 5C 첫째, chance를 살려라. 찍고 메모하고 생각하며 쓰자. 둘째, choice를 잘해라. 스승, 글귀, 도구 등을 잘 선택하자. 셋째, challenge하라. 예술은 도전과 몰입이다. 넷째, change하라. 끝없는 변화를 도모하라. 다섯째, champion이 되라. 정상에 설 때 사방이 보인다. 1. 새로운 조형세계의 탄생 인간은 표현의 동물이다. 손으로 표현하는 일 중에 그림과 글씨가 있고,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글씨의 하나로 출발하여 디자인의 옷을 입고 그림과 더불어 미래를 향해 새 길을 펼쳐가고 있다. 흔히 슬로우 아트 전통서예에 대한 반발에서 캘리그라피가 탄생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오히려 전통서예의 모든 장점을 수용 또는 존중하면서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했다고 본다. 어쨌든 캘리그라피의 탄생은 이전의 문자 생활, 예술 활동과는 확실히 다른 새로운 조형세계를 열어주었다. 전체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변함에 따라 글씨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규정화된 서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 개인마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나는 개성적 필체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서법이란 구속을 받으며 오랜 기간의 강도 높은 수련 끝에 나오는 난해한 전통서예보다,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있고, 호흡도 비교적 짧으며, 순간순간의 감성이 묻어나는 시각 예술로 즐길 수 있는 캘리그라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더러는 컴퓨터 출현과 더불어 다양한 폰트가 나타나자 손으로 쓰는 글씨는 끝났다고 했지만, 그러한 염려는 감성 글씨 캘리그라피의 출현과 더불어 완전히 빗나갔다. 전통서예마저 캘리그라피의 확장이 새로운 자극제가 되어 현대서예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AI 시대의 도래로 인간의 노동 시간은 줄어들고 대신 재미있게 놀아야 할 시간은 늘어났다. 예술 활동도 재미있게 놀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놀이뿐만 아니라 예술 활동에도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없으면 안 된다. 게임은 물론이지만 공부조차도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없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놀이 문화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유쾌한 캘리그라피는 점잖은 전통서예보다 접근하기가 쉽다. 게다가 학습 과정도 비교적 자유롭고, 주제나 소재 선택에서도 현실적이고 즉발적인 편이어서 경계가 없다. 캘리그라피는 그림과 색깔까지도 수용함은 물론 주인공으로서의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이제 캘리그라피는 산업, 상업 분야는 물론 일상생활의 모든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실용적 시각 예술로 각인되었다. 실용 예술로서 많은 주목을 받다가 보니 순수예술과 전통서예의 질투와 홀대를 받기도 했다. 캘리그라피의 탄생 이후 전시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이전의 전통서예전에서는 전, 예, 해, 행, 초서로 쓴 액자나 족자가 대종을 이루고 병풍도 한두 틀 끼어있었다. 그러나 캘리그라피 전시회에서는 병풍과 액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패널(panel)이나 작은 족자, 또는 의상, 블라인드, 쿠션 등의 생필품이 사벽을 채우고 있다. 한편 캘리그라피의 탄생은 넓게 보면 인터넷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좁게 보면 스마트폰의 출현과 궤를 같이한다. 산업화시대를 거처 정보화시대가 오면서 기록에 의한 의사 전달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100여 년간 초서로 쓴 한문 간찰(簡札)에서 한글 편지로, 한글 편지에서 엽서(葉書)로의 변화 과정을 겪었다. 개인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자 손으로 쓴 종이 편지는 사라지고, 대신 키보드로 친 이메일(email, 전자 우편)이 등장했다. 20여 년 전 내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의 탄생으로 지금은 이메일마저 줄어들고, 대신 엄지족에 의한 키패드 문자(文字)가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음성 인식기를 통한 문자 변환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근년에는 문자와 기호, 숫자 등을 조합하여 만든 이모티콘(emoticon), 그림만으로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아이콘(icon)이 출현하고, 마침내는 육필(肉筆)과 그림을 조합해 주는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도 출현하여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상과 같은 문자 소통 방식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탄생한 예술 장르가 캘리그라피이다. 호흡이 긴 편지와 엽서의 관계는 전통서예와 캘리그라피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림엽서의 출현은 캘리그라피가 배경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즘은 손으로 글씨 쓰는 일이 어색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메시지도 긴 것은 읽지 않는다.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디지털화된 삶 속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손글씨를 쓰는 일은 이제 특별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디지털시대일수록 아날로그적 감성이 필요함을 깨달았나 보다. 이런 와중에 전통서예는 여전히 필묵과 법첩을 중시하면서 현대서예라는 이름으로 암중모색 중이다. 2. 캘리그라피의 개념과 명칭 ‘캘리그라피(calligraphy)’가 ‘서예(書藝)’에 대한 단순한 영어 번역으로 사용되다가, ‘새로운 예술 장르’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캘리그라피라 하면 좌우명이나 명언명구를 간단히 써서 벽에 붙이는 생활 서예이거나 행사 현장에서 시연하는 라이브서예 정도의 뜻으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순수서예가 아닌 상업 서예로 상표나 광고에 쓰는 것을 캘리그라피가 아닐까 하는 다소 막연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여 남산한옥마을에서는 참가국 32개국을 대표하여 32명의 서예가들이 모여 월드컵맞이 ‘서예한마당’(서예 퍼포먼스)을 펼치고, 예술의전당에서는 2002 동아시아 필묵정신전을 개최하였는데 말하자면 캘리그라피가 태동하는 형태의 작품들이었다. 전통서예와는 사뭇 다른 창의적인 서체에 그림을 곁들인 작품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때 디자이너 이상봉은 서예를 디자인에 활용하여 패션쇼를 펼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캘리그라피의 성장 동력은 TV 타이틀과 광고와 같은 영상매체를 통해서였고, 캘리그라피의 일상화는 스마트폰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에서의 스마트폰 바람은 2009년 11월부터 불기 시작했다.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서는 표제어를 ‘캘리그래피’로 적고, 영어로는 ‘calligraphy’, 그리스어로는 ‘κάλλος(kallos, 아름다움) + γραφή(graphẽ, 쓰기)’의 합성어로, 손으로 그린 그림 문자라는 뜻으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로 풀이하고 있다. 네이버사전에서는 ‘캘리그라피’를 표제어로 하고,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로 정의하고, 좁게는 서예(書藝), 넓게는 활자 이외의 모든 서체(書體)라고 풀이하고 있다. 다음사전에서는 한 글자가 다른 ‘캘리그래피’를 표제어로 하고, 손 글씨를 이용하여 구현하는 시각 예술로 정의하고, ‘내용을 읽을 수 있으면서 일반 글씨와 달리 상징적인 의미, 글씨의 크기ㆍ모양ㆍ색상ㆍ입체감으로 미적 가치를 높인다.’라고 상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다음사전의 정의가 가장 상세하다고 볼 수 있는데, 특징은 ‘가독성’에 있다. 국립국어원의 에는 서예 관련 단어가 가장 푸대접을 받고 있다. 캘리그라피도 아직 등재되지 않은 상태이다. 위키피디아와 비슷한 성격의 사전으로, 누구든지 참여하여 함께 만드는 의 풀이는 다음사전과 똑같다. 이상으로 본다면 캘리그라피는 ‘아름답게 쓰는 기술’로 예술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Baihu(百度)에서는 calligraphy를 书法, 书法艺术로 번역하고, Baihu百科에서는 calligraphy를 书法이나 笔迹으로 번역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캘리그라피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법을 중시하는 전통서예를 일러 서법(书法)이라 한다. 하지만 네이버중국어사전에 의하면 캘리그라피를 艺术字(体), 美术字(体)로 번역하고 있다. 예술이나 미술이란 말이 앞에 붙은 것으로 볼 때, 우리가 만약 서예(書藝)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에서 캘리그라피의 번역어로 书艺를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외래어 사용을 즐겨하는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원음을 살려서 カリグラフィー로 적고 있다. 다음은 용어의 표기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외래어 표기법상으로 보면 ‘컬리그러피’라고 표기해야 맞지만 영어 calligraphy와 차별화하려는 뜻에서인지 컬리그러피라고 사용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나 [kəˈlɪɡrəfi]란 발음이 어려워서거나, 말맛이 ‘캘리그라피’만큼 살아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원칙, 제5항에 따르면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라는 항목이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캘리그라피’는 이제 관용에 의해 굳어진 명사로 본다. 게다가 줄임말이 일반화 되어가는 추세이다 보니 대화중에서는 간단히 ‘캘리(calli)’라고 부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표제어 표기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이후에는 ‘캘리’로 줄여서 사용하고자 한다. 서예에 대한 동양 3국의 표기가 ‘書藝·书法·書道처럼 서로 달라서 공통분모인 ‘書’ 한 자로 줄여서 표현하자는 의견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한류에 따른 한국의 캘리는 ‘케이 캘리(K-calli)’라 명명하고자 한다. 구글 검색 결과(2021. 8. 25)에 의하면 '캘리그라피'는 약 10,800,000개, '캘리그래피'는 약 3,990,000개, '컬리그러피'는 아예 수정된 검색어 ‘캘리그라피’로 나온다. 이것이 캘리그래피를 표제어로 삼은 사전도 있기는 하지만 용어 사용에서 오는 혼동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캘리그라피로 사용하기를 제안한다. 한편 캘리그라피가 외래어이므로 손글씨, 손멋글씨, 손맛글씨, 멋글씨, 맛글씨, 감성글씨 등 순우리말로 바꾸자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어 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부정도 없는 게 현실이다. 사실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는 우리의 서예문화에 대한 고유한 정체성이 담겨있지 않고, 외래어 사용 규칙에도 어긋난 점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는 캘리그라피보다 캘리라는 줄임말을 더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언어 대중의 관습에 의한 캘리라는 줄임말도 이젠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언어는 언제 어디서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의 몫이다. 캘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지금부터 캘리라는 발음경제상의 줄임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캘리와 관련하여 더불어 참고해야 할 용어들이 있다. 첫째,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 삽화)’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떤 의미나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곁들이는 삽화·사진·도안 등의 총칭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캘리는 어떤 내용만을 아름답게 써서 소통하고자 하는 단순한 손글씨에서 벗어나 이제는 삽화나 사진 등을 곁들이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따라서 캘리는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공생을 위해서라도 동행해야하는 상보적 관계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캘리와 일러스트를 합친 장르 캘리일러스트(calli-illust)가 나왔다. 둘째, ‘그래픽 아트(graphic art)’이다. 그래픽 아트는 평면 위에 도형을 만드는 기술의 총칭’으로 회화·글씨·판화·인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캘리는 평면 위에 실현되기 때문에 그래픽 아트에 든다. 그렇지만 재료와 표현방법에 제한이 없는 캘리의 특성상 때로는 평면을 뛰어넘어 부조적 효과를 살리기도 한다. 그래픽 아트로서의 캘리는 조형성과 활용성 두 측면에서 끊임없는 창의적 발상이 뒤따라야 한다. 셋째,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이다. 타이포그래피는 편집 디자인에서, 활자의 서체나 글자를 새롭게 배치하고 구성하여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을 뜻한다. 타이포그래피는 상품에 대하여 소비자에게 짧은 시간에 각인시키는 주요한 디자인 요소이기도 하다. 캘리는 순간적이고 즉발적인 성격이 강하여서 글자 배치 문제를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에서는 깊은 탐색을 통하여 완성도를 높여 나간다. 넷째, ‘캘리 추상회화’이다. 캘리를 이용한 현대추상회화가 탄생하여 현대인의 시각 환경을 새롭게 해 주고 있다. 다섯째, ‘팝아트 캘리(pop art calligraphy)’이다. 엄연히 붓글씨라는 공통분모 속에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서예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줌에서 생긴 말이다. 3. 캘리그라피와 전통서예 흔히 서예라 하면 전통서예를 가리킨다. 전통서예는 오랜 기간 검증된 동양의 대표적인 예술이자 전통문화이기도 하다. 전통서예라 하면, 필법(筆法)을 중시하고 임서(臨書)라는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전통서예는 수천 년을 거치며 연구 수련해 오는 과정에서 뾰족한 붓을 통하여 표현해 낼 수 있는 극한의 경우의 수를 찾으며 동양의 심미안을 길러왔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전통서예만의 고유성과 체계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의 발현은 물론 글씨에 그 사람의 인품과 성격이 베어난다고 믿고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전통서예와는 달리 캘리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다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 아름다움의 맛과 실용적인 멋을 금세 느낄 수 대중적 예술이다. 그런데 문자 디자인이란 옷을 입고 어느 순간 갑자기 탄생한 캘리를 두고 전통서예는 낯선 이방인 정도로 생각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다가 갑작스런 캘리의 그룹형성과 인기몰이에 놀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애매한 관계가 형성되었었다. 따라서 캘리와 전통서예는 한 마디로 애증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전통서예를 하다가 현대서예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암중모색을 하거나, 아예 캘리로 갈아타면서 사제 간 또는 동료 간에 약간의 반목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캘리 지망생이 많이 생기고, 경향 각지에서 캘리 작가들의 그룹이 탄생하자, 공모전 행사를 치르는 각 단체에서는 캘리분과를 추가로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지금은 전통서예와 캘리가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를 취하며 공존공영(共存共榮)을 꿈꾸고 있는 형편이다. 캘리는 전통서예보다 젊은 층에서 많이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서예는 점점 고령화하고 있어서 캘리 인구와 전통서예 인구가 역전된 상황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전통서예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현대서예가 있다. 이보다 앞서 서예로부터 분리 독립한 문인화도 현대문인화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장을 열어 오고 있었다. 현대서예 또는 현대문인화를 표방하는 작가들은 전통적인 문방사우(文房四友)의 굴레에서 벗어나 붓 대신 다양한 자연물 또는 생활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먹과 화선지에서 벗어나 물감이나 패널을 사용하기도 하며, 다양한 실험과 파격으로 창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서예는 가독성(可讀性)보다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일본의 묵영이나 전위서예처럼 이미지에 집중함으로써 순수예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캘리와 현대서예는 감성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며 서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충돌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둘 다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대서예는 읽는 서예가 아닌 ‘보는 서예’로서의 가치를, 캘리는 메시지 전달이라는 실질적 목적 때문에 ‘가독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서예든 캘리든, 현대서예든 현대문인화든, 음악에서 클래식과 재즈가 공존하듯, 오페라와 뮤지컬이 공생하듯, 모두 유기적인 맥락 속에서 시각예술의 숲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4. 캘리그라피로 맞이하는 드림 소사이어티 현대인은 빠른 경제 발전과 기술 혁신으로 물질적 풍요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보 사회 뒤에 올 미래 사회는 꿈과 이야기와 같은 감정적인 요소와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사회 곧,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도래한다고 한다.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sen)은 미래 사회는 이성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감성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접어들 것이라면서, 이러한 미래 사회를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상품 자체의 기능이나 효용은 부수적인 것이 되고, 오히려 상품에 담긴 이야기가 고객들의 감성을 사로잡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캘리가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캘리가 바로 감성적인 요소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각예술이기 때문이다. 드림 소사이어티에서는 디지털화된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나는 캘리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감성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분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아니면 훌륭한 스토리텔러를 만나 상상력을 동원한 발칙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캘리에게는 이야기가 밥이고 자양분이다. 소비자의 감성적 동인을 자극해 판매를 촉진시키는 마케팅 방식을 감성 마케팅(emotional marketing)이라 한다. 캘리의 경우 색깔, 디자인, 이미지 등을 활용하여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 감성 마케팅을 통해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캘리 형식과 내용 간에 이미지 연상이 잘 되도록 써야한다. 이를테면 통닭은 통닭처럼, 국수는 국수처럼 써야 한다는 말이다. 감성 캘리를 위해서는 표정 있는 글씨만으로는 부족하다. 캐릭터(character) 제작이나 배경 사진은 물론 웹툰과의 콜라보도 생각해야 한다. 캘리 색과 배경 색 선택도 중요하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감성 캘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이다.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로고 글씨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과 같이 캘리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이미지 글씨여야 한다. 전통서예에서 유명 작품은 단조로운 흑백의 앙상블이지만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 글을 쓴 사람의 감성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고난도의 감성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통찰이 필요하다. 브랜드(brand)는 ‘상표’를 뜻한다. 여기에는 상품의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브랜드는 상품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품의 사활과 직결되기도 한다. 브랜드 이름(brand naming)을 캘리로 표현하면 상품의 품격과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더 높일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brand image)를 살리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성분이나 효과, 기능과 기대치도 중요하지만, 캘리 브랜드 마케팅도 필요하다. 손맛이 담긴 붓질 캘리 통하여 브랜드 특징이 소비자에게 잘 전달될 때, 소비자의 선한 감성 자극을 불러올 수 있고 또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브랜드 작명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격에 맞는 로고도 중요하다. 브랜드의 심벌과 로고(simbol, logo) 제작에서 차가운 폰트보다 감성 글씨인 캘리와 함께하면 기업 이미지는 물론 소비자의 격까지 올라간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캘리의 특성을 말하자면 감성적인 시각예술, 디자인을 입은 서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캘리의 특성을 살려서 잘 쓰고 싶은데, 첩경은 없을까. 캘리그라피스트로서 수시로 작업과 더불어 염두에 둬야 할 조목을 순서 없이 적어본다. 평소 글감을 짓거나 독서 등을 통하여 모으는 습관을 기른다. (지혜와 창의력이 동시에 길러진다.) 각종 대회나 회사 등의 로고를 모아본다. (엄청난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집된 작품들이다.) 주제에 어울리는 서체를 상상한다. (다양한 서체의 활용을 꾀한다.) 내용 선정과 함께 전체적인 디자인을 해 본다. (정형화된 틀을 깬다.) 서체 구상 및 글자 표정 만들기를 해 본다. (자음과 모음을 해체해 보기도 한다.) 모필 외에 다른 도구를 고려해 본다. (붓이 아니라 브러시(brush)나 칫솔 등을 사용할 필요성이 있으면 적극 활용한다.) 내용에 잘 어울리는 배경과 색깔을 탐색한다. 잠시 눈을 감고 자연에 대한 깊은 관조를 한다. 막춤을 추거나 캘리 체조를 통하여 몸을 푼다. 일단 쓰는 사람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 가독성 정도를 염두에 두고 쓴다. 디지털 서체와 아날로그 서체(캘리)와의 조화를 생각한다. 장식성, 먹의 농담, 윤갈 등을 생각한다. 필압과 속도의 변화를 준다. 표현의 극대화를 위한 붓놀림은. (붓을 때릴 것인가, 굴릴 것인가.) 그림 또는 사진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한다. 점과 선, 자간의 조화를 생각하며 쓴다. 가로쓰기의 특징을 살핀다. 한자와 영어의 경우 전체적 어울림을 생각하고 쓴다. 최종적으로 설치될 공간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다. 문화 행사, 축제의 장, 전시장 등에서는 행사의 성격에 어울리는 필체를 구상한다. 번뜩이는 창작 지혜를 발휘한다. 완성된 캘리에 스토리텔링을 입힌다. 5. 캘리그라피를 통한 공유의 길 학문과 예술은 소통과 공유를 할 때 그 존재 의의가 크다. 캘리도 소통과 공유의 과정을 거칠 때 그 가치가 사뭇 높아진다. 캘리를 단순한 예술작품으로 보고, 집안에 걸어놓고 개인적 감상의 대상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SNS를 통하여 대중과 공유할 때 의의가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감성 글씨인 캘리를 공유의 대상으로 보고, 그 공유 영역으로 어떠한 곳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우선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캘리를 활용한 각종 로고(logo) 개발이다. 로고란 회사 이름, 상품 이름, 타이틀 따위의 글자를 말한다. 로고는 독특한 글자체를 이용하여 개성적으로 디자인된 글자이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몰개성적인 차가운 폰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감성과 표정이 배어나는 캘리 로고를 추천하고자 한다. 다가올 대선 및 각종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이름 및 격문 로고도 캘리의 영역이다. 문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변화의 속도는 느리다. 수동적으로 기다릴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작가 스스로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하여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협업이나 단체를 조직하여 분업을 해도 좋겠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다가올 다양한 여행 상품, 각종 공연 등의 문화행사명도 캘리에게 무한히 펼쳐진 시장이다. 이 외에도 각종 유튜브 타이틀(title), 신문 방송 광고 및 자막, TV 프로그램, 영화 타이틀, 패션(fashion) 디자인, 패키지(package, 포장) 디자인 및 글씨, 옥외 간판 글씨, 각종 포스터(poster) 타이틀, 책표지 제자, 기업 브랜드(brand) 글씨, 회사명 글씨, 지자체 홍보 이미지 글씨, 프랜차이즈체인의 브랜드 로고,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의 브랜드 네임, 이모티콘과 말풍선 글씨, 고객이나 행인들에게 나눠주는 각종 팸플릿(pamphlet, 작은 책자, brochure라고도 한다), 리플릿(leaflet, 신문에 끼워넣는 광고지, handbill이라고도 한다), 컵이나 도자기 글씨, 화장품, 장난감, 문구, 아동 의류 디자인 글씨, 각종 제품명 디자인 글씨, 술맛 나게 쓴 각종 주류 레이블(label, 라벨, 레테르, 딱지라고도 한다) 등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캘리를 상업적인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감상용 순수캘리 영역도 있다. 일상에서 순수캘리로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예는 가훈이나 좌우명, 명언이나 경구 쓰기이다. 문제는 내용이나 성격에 맞게 써야 한다. 나아가 패션쇼나 공연 타이틀은 물론 바디페인팅도 캘리의 예외일 수 없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로부터 곽광을 받고 있는 타투(tattoo)에도 캘리를 적용할 수 있다. 6. 캘리그라피가 건강에 도움을 주는가 질병은 천 개이나 건강은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취미나 직업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다. ‘서예를 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한다.’라는 명제(命題)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운필(運筆)은 운신(運身)의 변용으로,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정신 운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막상 붓을 잡고 휘두르는 과정은 다양한 몸놀림이 보여주는 육신 운동이자 호흡 수련이다. 상해의 서예가 소국선(蘇局仙, 1882~1991)이 110세, 북경의 서예가 손묵불(孫墨佛, 1884~1987)이 104세를 살았다. 이를 두고 중국에서는 남선북불(南仙北佛)이라는 말이 생기고 서예가 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증거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서예가 중에도 수전증(手顫症)을 악필(握筆)로 극복한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3)은 96세, 소지도인(昭志道人) 강창원(姜昌元, 1918~2019)은 102세로 장수했다. 영자팔법(永字八法)은 점획의 모양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을 위한 동작에 대한 설명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요즈음 인기 있는 스쾃(squat) 운동은 붓털의 굴신(屈伸)을 표방하고 있고, 두 발로 걷기는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룻배처럼 행필(行筆)의 묘를 담고 있다. 점을 잘 찍기 위해서는 때론 풀잎 끝에 맺힌 이슬처럼 가볍지만 신중해야 하고, 때론 무거운 바위를 들어 언덕 위에 올려놓듯이 급하면서도 집중해야 하는 동작 훈련이 필요하다. 선을 그을 때는 참으로 다양한 동작이 요구된다. 말을 타고 평원을 달리는 동작, 달리다가 낭떠러지를 만나 급정거하거나 허공에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는 동작, 살얼음판을 걷는 동작, 양궁이나 사격에서 정확한 목표 조준을 위하여 숨을 멈추고 활과 총을 신중히 내리는 동작, 높이뛰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선수가 뛰거나 던지는 힘을 높이기 위하여 구름판까지 도움닫기 하는 동작, 스키를 타고 슬로프(slope)를 내려오며 균형을 잡는 동작,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가되 쓰러지지 않으려는 동작, 말몰이 회초리를 딱 하고 휘두르는 갑작스러운 동작,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가가 설렘으로 몰래 껴안는 동작, 호수 위의 새가 물을 박차고 비상하는 동작, 독수리처럼 허공을 날며 관조하다가 먹이를 발견하고 내리꽂히듯 몸을 던져 착지하는 동작, 비상하는 새가 날아가는 곤충을 낚아채는 동작, 새가 모이를 쪼는 동작, 축구 야구 배구에서처럼 다가오는 공에 임팩트(impact)를 가하는 동작, 농구선수처럼 바스켓까지의 거리 조준하여 던지는 동작, 그네뛰기나 스케이트보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스윙하며 차고 오르는 동작, 날다람쥐 같은 적확한 비상 동작을 익혀야 한다. 파임과 같은 선에서는 언덕에서 돌 굴리기, 나뭇등걸 굴리기, 미끄럼틀 타기 등과 같은 동작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액티브한 캘리는 근대5종 이상의 다양한 인간 동작의 종합이자 자연의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하는 액션 아트(action art)이다. 그래서 필로(筆路)는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고 즐길 가치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건강에 좋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면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붓을 잡을 일이다. 무엇보다 전통서예든 캘리는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혼효(混淆)된 예술이다. 생각의 근육과 육신의 근육을 동시에 강인하게 해 주는 최고의 건강 예술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가끔은 명산대천을 순례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배우고 심신을 단련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다만 직업별 평균 수명에서 서예가가 가장 길다는 점은 흔감한 일이나, 단지 공모전 등을 통하여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스트레스만은 절대 사양해야 한다. 7. 캘리그라피가 다시 희망이다 캘리는 이제 우리의 일상은 물론 문화예술계에 두루 자리 잡고 있는 대중적인 예술로 성장하였다. ‘서예가 다시 희망이다’라고 할 때, 여기의 서예는 캘리를 두고 한 말이다. 늙어서 기식엄엄(氣息奄奄)하던 서예가 캘리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자 다시 인기몰이를 하며 바깥출입도 잦아졌다. 기가 죽어 있던 서예가 이제 캘리란 이름으로 환생한 샘이다. 캘리는 미래의 글씨, 희망의 글씨로 다가왔다. 만약 전통서예와 캘리를 세대 간의 대립적 관계로 본다면 전통서예는 구세대, 캘리는 신세대라 할 수 있다. 전통서예를 부모로 본다면 캘리는 자녀에 해당한다. 부모가 연만하여 기력이 떨어지자 캘리라는 자식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형국이다. 전통서예가 클래식이라면 캘리는 재즈라 할 수 있다. 클래식은 악보에 따라 악기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음색을 내야 한다. 그러나 재즈는 악보가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경쾌한 리듬의 대중음악이다. 캘리도 즉흥성이 강하고,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비유해 본 말이다. 캘리를 시작할 때, 전통서예의 기초 위에 캘리라는 집을 짓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전통서예는 어렵고 많은 세월이 요구되기 때문에 곧바로 캘리의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캘리 집도 튼실하게 지으려면 어느 정도 기초 공사를 잘 해야 한다. 그래서 기초를 배울 때는 반드시 스승을 찾아 기본 설계를 하고, 도구 사용법 정도는 익혀야 한다. 오래 전통서예를 해온 사람에게야 캘리는 세컨하우스쯤 되겠다. 캘리도 실용 목적의 상업캘리와 목적 없이 순수한 예술캘리가 있다. 디자인 개념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소비하고 응용을 꽤하는 상업캘리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선택은 늘 본인의 몫이다. 어느 쪽이든 독서로 기본 소양을 쌓고 상상력을 기르며, 시나브로 모필 연주 능력을 길러야 한다. 사랑해서 쓰는 게 아니다. 쓰다가 보면 사랑하게 된다. 캘리의 미래는 밝다.
2021.09.29
행서 실기
行書 實技 도정 권상호 무조건 붓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삐침 파임 때, 팔이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 돌과 나무가 떼굴떼굴, 졸졸, 질근질근.해서 파임은 붓을 뒤집어 나가지만 행서 파임은 끝에 가서 서기도 한다.행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점찍기 - 下(하)의 초서, 氵(수)一(일)의 8박자人(인)의 삐침과 파임(가볌고 무겁게) - 大(대), 天(천)之(지)有(유)無(무)의 필순 변화(바이두에는 순서를 바꾸었다)生(생), 由(유), 曲(곡)의 필순 변화未(미)의 비밀不(불)의 필순 변화土(토)에서 점 더하기, 甫(보)에서 점 생략하기木(목), 禾(화), 方(방) 변以(이)와 공간糸(멱), 弓(궁)千(천), 手(수), 年(년)책(착)받침 변 연습 - 遠(원)己(기)言(언) 몸과 마음과 붓이 하나 될 때 잘 쓸 수 있다.삼각법의 중요성연화발 연습기계체조 리본 연습갈고리 연결 연습붓이 꼬여서는 안 된다.먹을 찍고 이어 쓸 때는 앞 글자 끝에서 시작한다.기초 이후 글자 구성 行書(행서)도 중봉으로 - 빗자루로 마당 쓸 듯이 偏鋒(편봉)으로 쓰면 중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 /편/ : 작은 것(짓)을 여러 번 반복하다. 片(조각 편), 扁(납작할 편, 작을 편), 扁額(편액), 翩翩黃鳥(편편황조)篇(책 편) - 千篇一律(천편일률) 編(엮을 편) - 編輯(편집), 編纂(편찬), 編成(편성), 編制(편제), 編入試驗(편입시험)偏(치우칠 편) - 偏母膝下(편모슬하), 偏見(편견), 偏頗的(편파적), 偏僻(편벽):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함. 또는 그런 사람.便(인간이 편리하도록 바꿈(更))=鞭(편)遍(두루 편) - 女性遍歷(여성편력), 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普遍的(보편적)
2021.09.04
서예와 건강, 그리고 장수
서예와 건강, 그리고 장수 도정 권상호‘서예를 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한다’라는 명제(命題)는 사실인가? 영자팔법(永字八法)은 점획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점획의 표현 동작임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붓은 내 몸이다. 운필은 굴신(屈伸)의 연속이다. 발 없는 뱀이 수륙(水陸)과 초목(草木)은 물론 땅속과 모래 위도 자유롭게 다니듯 붓은 종이 위는 물론 모든 곳이 자유로워야 한다. 운필은 스쾃(squat) 운동처럼 상하 움직임과 노젓기처럼 좌우 움직임의 연속이다. 그리하여 점을 잘 찍기 위해서는 때론 풀잎 끝에 맺힌 이슬처럼 가볍지만 신중해야 하고, 때론 무거운 바위를 들어 언덕 위에 올려놓듯이 급하면서도 집중해야 하는 동작 훈련이 필요하다. 획을 그을 때는 참으로 다양한 동작이 요구된다. 말을 타고 평원을 달리는 동작, 달리다가 낭떠러지를 만나 급정거하거나 허공에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는 동작, 살얼음판을 걷는 동작, 양궁이나 사격에서 정확한 목표 조준을 위하여 숨을 멈추고 활과 총을 신중히 내리는 동작, 높이뛰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선수가 뛰거나 던지는 힘을 높이기 위하여 구름판까지 도움닫기 하는 동작, 스키를 타고 슬로프(slope)를 내려오며 균형을 잡는 동작,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가되 쓰러지지 않으려는 동작, 말몰이 회초리를 딱 하고 휘두르는 갑작스러운 동작,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가가 설렘으로 몰래 껴안는 동작, 호수 위의 새가 물을 박차고 비상하는 동작, 독수리처럼 허공을 날며 관조하다가 먹이를 발견하고 내리꽂히듯 몸을 던져 착지하는 동작, 비상하는 새가 날아가는 곤충을 낚아채는 동작, 닭이 모이를 쪼는 동작, 축구 야구 배구처럼 다가오는 공에 임팩트(impact)를 가하는 동작, 농구선수처럼 바스켓까지의 거리 조준하여 던지기, 그네뛰기 스케이트보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스윙하여 차고 오르는 동작, 날다람쥐 같은 적확한 비상 동작, 파임과 같은 획에서는 언덕에서 돌 굴리기, 나뭇등걸 굴리기, 미끄럼틀 타기 등과 같은 동작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서예는 근대5종 이상의 다양한 인간 동작의 종합이자 자연의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하는 액션 아트(action art)이다. 그래서 필로(筆路)는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고 즐길 가치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건강에 좋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면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붓을 잡을 일이다. 무엇보다 서예는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혼효(混淆)된 예술이다. 생각의 근육과 육신의 근육을 동시에 강인하게 해 주는 최고의 건강 예술이다. 옛날부터 서예를 하면 건강에 좋다거나, 장수하는 사람 중에는 붓글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인구에 회자하여 왔다. 마침, 2012년 10월 중국 CCTV 채널4 ‘문화여류(文化旅流, The Journey of Civilization)’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에 베이징대학교 왕악천(王岳川) 교수가 출연하여 서예(書藝)와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주된 내용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최고의 방편이 서법(書法, 서예)을 즐기는 일이라는 것이다.왕 교수는 중국서법가협회(中國書法家協會) 주석(主席)을 역임했던 서동(舒同) 선생과 계공(啓功) 선생이 다 같이 93세(우리식 연령 계산법으로는 94세)로 장수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서예가와 승려 및 역대 황제의 평균 연령을 비교하여 밝히고 있다.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고대 저명한 서예가의 평균 수명은 78.9세(우리식으로는 79.9세), 고대 저명한 고승(高僧)의 평균 수명은 66세, 진시황 이후 마지막 황제까지의 역대 황제 평균 수명은 39.2세였다. 그리고 서예가가 장수한다는 사실은 심리학(心理學), 의학(醫學)적으로 증명된 사실임을 밝히고, 방송 끝에 ‘서법인생(書法人生)’이라는 내용을 현장 휘호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에 필자는 한국과 중국의 서예사에 등장하는 서예가를 바탕으로 생몰 연대가 뚜렷한 서예가를 대상으로 시대별 대표적인 작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나이를 조사해 보았다. 과연 중국의 저명한 역대 서예가의 평균 수명이 80세 가까이 되는지와, 우리나라 서예가들의 평균 수명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서예가들이 장수(長壽)하는지 그 근거를 찾아보고, 나아가 점점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슬로우 아트(slow art) 서예 또는 요즈음 흔히 말하는 캘리그라피를 즐기며 활기차고 보람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권하는 데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서예가의 시대별 나이를 조사해 본 바는 다음과 같다. 나이의 수치는 만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뱃속 나이까지 치는 우리의 전통 방식을 따랐다. 그리고 서예가의 나열 순서는 출생 연도순을 따랐다. 통일신라 때의 서예가로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김생(金生, 711~791?)은 81세로 생을 마쳤다. 고려의 승려이자 서예가인 탄연(坦然, 1070~1159)은 90세,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렸으며 특히 예서와 초서에 능했던 이암(李嵒, 1297~1364)은 68세를 기록했다. 조선 전기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년~1584)은 68세, 소위 석봉체(石峰體)를 완성한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는 63세에 별세하였다.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던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은 88세, 문장과 글씨에 두루 뛰어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은 67세, 창고(蒼古)하고 힘에 넘치는 글씨를 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83세, 시·서·화에 모두 능하면서도 특히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圓嶠體)를 이룩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73세, 남종문인화가 조선 후기 화단의 주도화풍으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당시의 서화계를 계도한 서화비평가였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79세, 동기창체(董其昌體)를 따르고 조선시대에 이 서체가 유행하는 데 계도적 구실을 하였던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는 77세,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으며 특히 초서에 능하여 이른바 창암체(蒼巖體)를 이룩한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은 76세, 행서와 예서에 뛰어나 독보적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71세, 전서(篆書)와 예서(
2021.08.21
전국 대표작가 한글서예 초대전
출 품 표제15회 한글서예 한마당전국 대표작가 한글서예 초대전 출품자성 명권상호權相浩塗丁, 수월생년월일1954. 6. 14. ( 만 67세)성별남주 소우편번호( 01132 )서울 강북구 도봉로 68길 22. 현대아파트 상가 303호. 도정문자연구소연락할 곳핸드폰 : 010-9009-1999이메일 : ksh-1715@daum.net출품 서체① 해례본체 작품 명제한역 교방가요 ‘농(弄)’漢譯 敎坊歌謠 ‘弄’작품규격(통일)(가로x세로)가로 50 cm세로 160 cm 우리 둘이 죽어 다음 생에는 내가 너 되고, 너는 나 되어내가 너를 그리워하여 애끊는 마음을 너도 나를 그리하며 끊어보렴.평생 너를 그리워하여 애끊는 마음을 돌려볼까 하노라.(한역) 兩人來世又生幷(양인내세우생병) 우리 둘이 내세에도 서로 같이 태어나되君我我君相換生(군아아군상환생) 그댄 나 되고, 난 그대 되어 서로 바꿔 태어나세. 恨我平生斷腸苦(한아평생단장고) 한스럽구나, 한 평생 애간장 끊던 괴로움敎君替我戀君情(교군체아연군정) 그대 그리워하던 이 마음을 당신도 겪어보려무나.
2021.08.17
강북서화협회 정관
강북서예문인화협회 정관 - 제1장 총칙 - 제1조(명칭)본회는 강북서예문인화협회라 칭한다. 제2조(목적)본회는 역사 문화 관광의 도시 강북구를 기반으로 하여 성립하며, K-art 전통서화를 연구, 창조, 공유, 실천함으로써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구민에게 감상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고양시키고, 나아가 강북 문화를 한국은 물론 세계에 선양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제3조(사업)본회는 제2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사업을 시행한다.1. 강북서예문인화협회전 개최2. 강북역사문화 탐방 및 홍보3. 4.19기념 휘호대회 및 학술발표대회 개최4. 국내 및 국제교류전 개최5. 기타 서화 관련 문화 사업 제4조(회원 자격)본회의 회원은 강북구에 거주 또는 사업장(학원)을 가지고 있는 서화가를 원칙으로 하되, 회원으로 있다가 타지역으로 이주했더라도 강북구에 대한 애향심이 있는 서화가로서 아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자격이 주어진다.1. 1인 이상의 회원이 추천한 자로서 본회 운영위원회의에서 심의 결정된 자.2. 본회에 공로가 있는 자로서 본회 운영위원회의에서 심의 결정된 자. 제5조(회원 가입)본회에 가입하고자 하는 자는 소정의 입회 원서를 제출하고 입회비와 연회비를 납부하여야 한다. - 제2장 임원 - 제6조(임원 및 임기)1. 본회는 고문 약간명과 회장 1명, 감사 2명, 부회장 2명, 사무국장 2명(남녀), 운영위원 5명 내외를 둔다.2. 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 제7조(임원 선출)1. 회장과 감사는 총회에서 선출한다.2. 부회장, 사무국장, 운영위원은 회장의 제청(提請)으로 총회의 승인을 얻는다.3. 고문은 회장의 제청으로 총회에서 초대한다.4. 회장, 감사, 부회장, 사무국장, 고문은 당연직 운영위원이 된다. 제8조(임원의 임무)1. 회장은 본회를 대표하며 회무를 총괄한다.2.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며 회장 요구 시 그 직무를 대행한다.3. 사무국장은 회무를 처리하며 회비 출납, 회의록 및 회계 장부를 작성 보존한다.4. 운영위원은 회원 자격을 심의하고 회무에 참여한다.5. 감사는 회무 처리 사항을 감사하여 총회에 보고한다. - 제3장 회의 - 제9조(총회)1. 총회는 매년 1월 10일 전후에 개최하며 다음 사항을 의결 처리한다.1) 회칙의 개정2) 임원의 선출3) 회비 정액의 결정4) 상부상조에 관한 사항5) 사업 계획 및 결산 보고6) 기타 회장이 부의한 안건 제10조(임시 총회)임시회의는 운영위원회의 요구나 회원 과반수이상의 요구 시 소집한다. 제11조(운영위원회)운영위원회는 회장의 필요시 소집하여 운영한다.1. 회원의 가입 및 탈퇴2. 총회 의결 사항을 제외한 회무 처리 사항 제12조(의결 정족수)회의는 제적 인원 과반수의 참석으로 성립하며 참석 회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 제4장 제정 - 제13조(회비)회비는 입회비, 정기 회비(연회비), 찬조비로 구분한다.1. 입회비 5만원, 연회비 5만원은 회원의 입회 시 납부한다.2. 찬조비는 회원의 자유의사에 따라 납부한다.3. 본회의 회계 연도는 1월 1일부터 12월 31까지로 한다. - 제5장 상벌 - 제14조(시상)본회의 발전을 위하여 공헌하였을 시는 이를 시상한다.(감사패, 공로패 등) 제15조(벌칙)회원이 다음 사항을 위반할 때에는 운영위원회의 의결로 회원 자격을 정지하거나 제명할 수 있다.1. 회원의 품위를 실추시키거나 본회의 질서를 문란케 할 때.2. 정당한 사유 없이 2년 이상 연회비를 납부하지 않거나 회원 전시회에 연2회 이상 출품하지 않을 때.3. 제명이 되었을 때에는 회원의 모든 권리가 상실되며 이미 적립된 회의 기금에 대한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할 수 없다.4. 강북구 이외의 타 지역으로 전출 또는 사업장을 이전하고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때. - 제6장 기타 -제16조 본 정관에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총회에서 정한다. - 부 칙 -1. 시행일: 본 정관은 의결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2021년 8월 15일 제정.
2021.07.29
인사동 신예술시대 열다 - 인사동예술대학
14명의 작가가 뜻을 모아6월부터 2년동안(계약기간) 인사동 수도약국 맞은편 봉원필방 2층에서'인사동예술대학'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봉원필방 대표님의 도움으로 평안하게 출발하게 된 점 감사드립니다.초대 이사장님으로 모십니다.
2021.07.08
2021 노원서예협회 부채전 '바람 따라 떠나라'
한 여인(종이)의 치맛자락 속에32명의 사내(댓살)를 품고 사는 형국이부채이다. 그 농밀한 사랑 끝에 토해내는 아들딸은 청풍(淸風)이어라. 곡선과 직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부채는한 뼘 남짓 좁은 공간이지만 그 속엔 한국인의 멋과 풍류가 담겨 있다. 손끝의 부채 속엔 노래와 춤이 있고시와 로맨스가 숨어있는가 하면일사(逸士)의 여유와 철학이 담겨 있다. 부채는 한 폭의 산수를 안고도여백을 즐길 줄 안다.부채를 잡으면몰래하는 입맞춤을 배우고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쳐줌으로나눔과 포용도 깨우친다.
2021.06.27
涓穀(연곡)과 差穀(차곡)
시경 15국풍의 하나. 모두 10편.東門之枌(동문지분) : 동문의 느릅나무○ 東門之枌 疾亂也. 幽公淫荒, 風化之所行, 男女棄其舊業, 亟會於道路, 歌舞於市井爾.(동문지분 질란야. 유곡음황 풍화지소행, 남녀기기구업 극회어도로 가무어시정이)동문지분은 당시의 혼란함을 보여준 시이다. 유공이 주색에 빠지니 풍속에 변화가 생기는 바에 남녀가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을 버리고 자주 도로에 모이고 저잣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東門之枌 宛丘之栩.(동문지분 완구지허) 동문에는 흰 느릅나무, 완구에는 상수리나무,子仲之子 婆娑其下.(자중지자 파사기하) 자중의 자식이 그 아래에서 덩실덩실 춤추네.穀旦于差 南方之原.(곡단우차 남방지원) 길한 날 아침 택해 남쪽 언덕으로 향하네.不績其麻 市也婆娑.(부적기마 시야파사) 삼을 길쌈하지도 않고 시장에서 하늘하늘 춤추네.穀旦于逝 越以鬷邁.(곡단우서 월이종매) 길한 날 아침에 가는데 많이 몰려가네.視爾如荍 貽我握椒.(시이여교 이아악초) 그대 당아욱같이 아름다운데 나에게 산초가지 쥐어주네.*穀(곡식 곡, 어린아이 누; ⽲-총14획; gǔ) 곡식, 녹, 복록, 녹미. 정성. 기르다. 양육하다. 살다. 생장하다. 정성스럽다. 좋다. 길하다. 고하다. 알리다. [누]어린아이, 젖, 젖먹이다.鬷(가마솥 종; ⿀-총19획; zōng) 모이다. 한곳에 모여들다.荍(당아욱 교; ⾋-총10획; qiáo) 메밀.○賦也. 枌 白楡也. 先生葉 郤著莢 皮色白. 子仲之子 子仲氏之女也. 婆娑 舞貌.부라. 분은 흰 느릅나무니 먼저 잎사귀가 나고 틈틈이 꼬투리가 붙어서 껍질이 백색이라. 자중지자는 자중씨의 딸이라. 파사는 춤추는 모양이라.○此는 男女聚會歌舞而賦其事以相樂也이것은 남녀가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일을 부로 지어 써 서로 즐거워함이라.*郤(고을 이름 극; ⾢-총10획; xì) 틈.*著(분명할 저; ⾋-총13획; zhù,zhuó) 여기서는 ‘붙을 착’ .*莢(풀 열매 협; ⾋-총11획; jiá) 꼬투리 협.穀旦于差 南方之原.(곡단우차 남방지원) 좋은 아침을 택하니 남방의 원씨의 딸이로다.不績其麻 市也婆娑.(부적기마 시야파사) 그 삼베를 길쌈하지 않고, 저자에서 춤만 추도다.○賦也. 穀 善. 差 擇也.부라. 곡은 좋음이고, 차는 가림이라.○旣差擇善旦, 以會于南方之原, 於是 棄其業, 以舞於市而往會也.이미 좋은 아침을 가려서 남방 언덕에서 모이니, 이에 그 업을 버리고 써 시장(많은 사람 속)에서 춤추기 위해 가서 모임이라.涓穀(연곡): 혼인에 앞서 신랑측이 신부집에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택일(擇日)해 달라 것. = 涓吉(연길).여기서 涓=擇(가릴 택)의 뜻,穀=善(좋을 선) 또는 吉(길할 길)의 뜻 .差穀(차곡): 연곡에 답하여 신부 집에서 택일한 것.여기서 差=擇(가릴 택)의 뜻, 穀=善(좋을 선) 또는 吉(길할 길)의 뜻.드디어 좋은 날을 가려잡아 / 肆涓穀朝 *여기서 朝는 ‘하루’의 뜻.이제 좋은 날짜를 잘 가려 뽑아서 / 今涓穀朝이에 길한 날을 가려 / 玆涓穀朝穀旦于逝 越以鬷邁.(곡단우서 월이종매) 좋은 아침을 택하여 가니 이에 무리지어 가도다.視爾如荍 貽我握椒.(시이여교 이아악초) 너를 당아욱처럼 보니 나에게 한줌 산초를 주도다.○賦也. 逝 往. 越 於. 鬷 衆也. 邁 行也. 荍 芘芣也, 又名荊葵 紫色. 椒 芬芳之物也.부라. 서는 감이고, 월은 ‘늘 어’오 같고 종은 무리라. 매는 감이라. 교는 비부(질경이)이니 또 형규라고도 하니 붉은 빛이라. 초는 꽃답고 향기로운 물건이라.○言又以善旦而往, 於是 以其衆行而男女相與道其慕悅之詞. 曰我視爾顔色之美 如芘芣之華, 於是 遺我以一握之椒而交情好也.또 좋은 아침으로써 가서 이에 그 무리로써 가서 남녀가 서로 더불어 그 사모하고 기뻐함을 이름이라. 가로대 내가 네 안색의 아름다움을 보기를 질경이 꽃 같이 하니 이에 나에게 한줌의 호초로써 주어 사귀는 정을 좋게 한다 하니라.(東門之枌三章)
2021.04.21
인천의품격
[인천의품격] 열혈 문화운동가 ‘동정 박세림’
10기 송암예술아카데미 ‘인천 근현대 예술인의 삶’4편 권상호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동정 박세림’ 강의 인천투데이=이형우 기자 l 인천이 배출한 절정의 서예가는 검여만 있는 게 아니다. 인천 문화 발전을 위해, 인천의 혼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람. 일필휘지, 글씨를 단숨에 써 내리는 서법으로 알려진 사람. 한국 서예계에서 검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 ‘동정 박세림’ 선생이다.권상호 동방문화대학원 교수가 송암미술관이 주관한 송암예술아카데미 ‘인천 근현대 예술인의 삶’에 출연해 인천 서예의 봉우리 동정 박세림 선생의 삶을 얘기했다. 아래는 강의 내용 일부를 정리한 글이다. ㆍ[인천의품격] 한국 박물관의 길을 연 우현 고유섭ㆍ[인천의품격]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 개관 '석남 이경성’ㆍ[인천의품격] 추사 이후 최고의 서예가 ‘검여 유희강’ 동정 박세림. (사진제공 권상호 서예-도정문자연구소 블로그)“스스로 학문과 서예를 수학하다”동정은 1925년 4월 20일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3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동정은 6살 때부터 뛰어난 서예가인 할머니에게 천자문과 한글, 동몽선습(조선시대 아동용 교재)를 배웠다. 동정의 부친은 독립운동가다. 그의 부친은은 향토사 ‘강도지’를 저술할 만큼 당대 문호로서 시문에 능했다.동정이 8살이 되던 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동정은 부친을 따라 한문과 서예 학습을 시작했다. 인천 해성중학교(인천남중학교)에서 현대적인 학문을 접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동정 나이 15살, 매정하게도 부친마저 세상을 작고했다.동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사숙(私淑, 어떤 사람의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배우고 싶은이의 작품 등을 스스로 익힘)하며 한문과 서예에 정진했다. 당나라 구양순과 안진경의 해서를 주로 연습했다.어린 나이에 이별한 할머니와 아버지의 가르침이 뿌리가 되고 스스로 배우려는 의지가 줄기가 돼 동정의 서예는 피어 올랐다.1947년 동정은 23살에 인천예술인협회 총무부장, 대동서도협회 회장, 대동서도협회 공모전 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또 문총구국대 인천지무 총부부장을 맡았고 대동서화동연회 사무국장을 7년간 역임했다.동정은 작품 활동도 적극적이였다. 대동서도협회 전람회에 8점, 제1회 대동서화동연회전에 5점, 제2회 전시회에 7점을 출품했다.동정 박세림. (사진제공 권상호 서예-도정문자연구소 블로그) “시암과 검여를 만나며 동정의 서예가 완성되요”동정은 스승 시암 배길기를 만나 큰 변화가 생긴다. 구양순 해서를 위주로 배우며 서예 실력이 빠르게 성장했다. 제2회 국전부터 출품하기 시작해 6회 국전까지 연속으로 입선했다. 7·8회 국전에서 동정은 특선도 이룬다.동정은 서예에 더 집중하기 위해 1954년 서울한의과대학을 중퇴했다.동정은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동안 매년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 과정에서 동정은 등석여와 조지겸의 글씨를 익히는 등 자신의 서예 세계를 넓혔다. 특히 검여와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검여의 영향을 받았다. 동정은 검여의 북위풍의 맛을 곁들이면서 동정만의 서체를 완성했다.국전에 8차례 출품한 후 동정은 국전 초대 출품, 대동서예협회전, 대동서화동연회전, 동정서숙전 등으로 성실하게 작가 활동을 펼쳤다.1960년 동정은 제9회 국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햤다. 출품작 작풍은 황정견과 구양순의 필의가 가미된 북위서풍 글씨이다. 당시 소전 손재형에게 첨삭지도를 받았다.그밖에도 동정은 인천시 문화상, 경기도 문화상을 수상하고 동정서숙 창설, 인천문총 대표최고위원 역임, 예총 경기지부 부지부장 역임 등 단체 활동도 끊임없이 했다.반야심경(동정, 1973).“조심스럽지만, 과로가 단명의 원인일지도 모를 일이에요”동정은 1965년 예총 경기지부 지부장을 맡으며 많은 심사와 작품 출품으로 바빠진다. 세상에 이름을 떨친 동정은 지부장을 5회 연임하고 대학, 회사, 은행, 방송국 등에 많은 강의 요청을 받았다.같은 해 동정은 서울 종로에 서실을 냈다. 또 인천시사 편찬위원과 경기연감 편찬위원을 역임하면서 제14회 국전 서예분과 심사위원과 제5회 동정서예개인전을 모두 소화했다.동정은 파월장병지원 대책위원, 5.16민족상 이사, 인천시 행정자문위원, 반공연맹 경기지부 운영위원, 인천시 감사장,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농어촌분과위원 등을 역임하며 정치 행보도 보였다.그밖에 동정서숙을 개칭한 동정한묵회 이사장, 인천문화원장, 국전 서예분과 심사위원장, 강화문화재 고문, 전국문화원연합회 이사, 기서문화 향토사연구회 회장 등을 맡았다.동정은 교육 활동도 힘썼다. 인천교육대학 강사, 인천소년교도소 재소생 서예지도위원, KBS방송국 서예반 지도 강사 등 강의에 나섰고 동정한묵회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대표적인 제자로 청람 전도진, 송암 정태희를 손꼽는다.동정은 서예 외에도 종교, 문화, 정치, 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활동을 했던 탓일까. 키 182cm와 몸무게 95kg로 호방하고 건장했던 동정은 1975년 자신의 집 안방에서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는 51세였다.동정은 해방과 분단, 전쟁 속에서 서예의 맥을 잇고 자신의 제자를 양성했다. 동정 스스로 정리 정돈 하는 깔끔한 성격이 그의 서체에 담겨 있다.이런 동정의 정신을 인천은 품지 못했다. 동정의 제자 청람 전도진이 인천에서 그의 예맥을 계승하고 있지만 인천은 무관심했다. 동정 유족이 동정의 작품과 유품을 인천에 기증하려 했지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동정의 제자가 교편을 잡고 있는 대전대학교에 동정의 작품과 유품을 기증했다.인천에 국립문자박물관과 시립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추사의 예맥을 잇고 한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서예가를 배출한 고장은 인천이다. 검여와 동정은 모두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대표 서예가다. 하지만 두 서예가의 영혼이 찾아와 쉬고, 시민들이 두 사람의 법고창신 정신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인천에는 없다.
2021.04.17
인천의품격
[인천의품격] 추사 이후 최고의 서예가 ‘검여 유희강’
10기 송암예술아카데미 ‘인천 근현대 예술인의 삶’3편 권상호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검여 유희강’ 강의 인천투데이=이형우 기자 l 인천은 역사적으로 문자와 관계가 깊은 도시다. 인천은 세계 최초 금속활자 ‘상정고금예문’과 강화도 선원사에서 두 번째로 만든 대장경인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간행·조판한 곳이다. 송암 박두성 선생이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창제한 곳이기도 하다.이런 역사 맥락에서 인천은 절정의 서예가를 배출했다. 바로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 서예가로 평가받는 ‘검여 유희강’ 선생이다.권상호 동방문화대학원 교수가 주관한 송암예술아카데미 ‘인천 근현대 예술인의 삶’에 출연해 인천 서예의 봉우리 검여 유희강 선생의 삶을 얘기했다. 아래는 강의 내용 일부를 정리한 글이다. ㆍ[인천의품격] 한국 박물관의 길을 연 우현 고유섭ㆍ[인천의품격]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 개관 '석남 이경성'검여 유희강 생가“서예와 회화를 함께 공부하며 자신의 서풍을 다듬다”검여는 1911년 5월 22일 경기도 부평군 서곶면 시천리(현재 인천시 서구 시천동) 57번지에서 태어났다. 검여가 태어난 지 28일이 되던 날, 그의 부친이 작고하는 바람에 검여는 큰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다.4살 때부터 한문을 익힌 그는 일찍이 서예의 토대를 닦았다. 검여는 1934년 명륜전문학원(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고 1938년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등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검여는 중국에서 8년동안 서화와 금석학, 서양화를 공부했다. 이 시기는 검여만의 특성을 만든 중요한 시기다. 검여만의 북위해서 서체와 회화적인 공간 구성은 이때 연구하며 만들어졌다.검여는 해방 이후 1946년 귀향해 인천에서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했다. 많은 예술단체를 조직하고 중책을 맡았다. 대표적으로 국전 초대 작가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석남 이경성의 뒤를 이어 2대 인천시립박물관 관장을 7년동안 맡았다.제1회 서도예술전에 생애 첫 서예 작품을 출품했다. 인천문총이 주최한 3회 미술전에는 양화와 서예를 동시에 출품했다. 2회 국전에는 첫 작품으로 ‘념’과 ‘고시’를 출품해 입선했다.1956년 2회 인천시문화상에 유화를 출품해 미술부문문화상을 수상했고, 6회 인천미협전에도 유화작품을 출품했다. 총 유화작품 22점을 출품했다. 검여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검여는 서예에만 몰두했다. 검여는 국전에 초대작가로 등장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대를 양성했다. 검여는 국전에 모두 초대작가로 12번, 심사위원으로 6번 참여했다. 검여 유희강“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예가”검여는 자신의 작품을 국전에 출품하며 서예가로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검여는 송나라 황정견과 소동파, 청나라 등완백과 조지겸, 조선 말기 김정희 등 여러 서예가들의 서예를 연구하고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전서와 예서, 해서와 행서 등 다양한 서체를 실험적으로 학습했다.검여는 서예가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1956년, 1957년 각각 5, 6회 문교부장관상을 연속으로 수상했다.검여는 1959년 인천 은성다방에서 1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검여의 여러 서체가 담긴 50여 점을 출품했다.검여는 국전 특선, 문교부장관상 연속 수상, 국전 추천작가, 초대 작가 심사위원 등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특히 2회 개인전에서 소위 검여체라 불리는 ‘북위해서’ 풍의 행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중후하고 질박함을 보여준 절정기를 보여준 검여는 반신불수로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제1회 검여 유희강 개인전. (사진제공 권상호 서예-도정문자연구소 블로그)“검여, 정신력으로 육신의 고통 극복하다”검여는 1968년 9월 7일 새벽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진다. 2주 만에 깨어났지만 오른쪽 반신불수와 실어증 증세로 더 이상 서예가로 활동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하지만 검여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자들의 적극 권유로 검여는 왼손으로 서예를 시작했다.한쪽에만 날이 있는 칼은 도, 양쪽에 날이 있는 칼은 검이라 부른다. 유희강의 아호 ‘검여’의 검이 칼 검이다. 아호에 담긴 운명처럼 검여는 양 손을 사용한 서예가로 부활했다.검여는 1969년 4회 한국서예가협회전에 첫 왼손 작품을 출품했다. 1970년 국전 초대작가로 왼손 작품을 출품했다. 1973년 서울화랑에서 상형문자를 위주로 한 4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1975년 5회 개인전인 ‘검여 유희강 좌수전’을 열고 ‘검여 유희강 서예집’을 출간했다.이색 '홍시자가' 검여의 좌수서.검여의 강인한 정신력도 하늘의 뜻을 이길 순 없었다. 1976년 10월 16일 절친한 화가 배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제문을 쓰다가 17일 새벽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증이 재발했다. 의식불명에 빠진 검여는 한마디 유언도 없이 18일 운명했다.검여의 사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전시회 등을 열며 검여를 기렸다. 2006년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 검여의 뜻을 잇는 후학들이 모여 ‘시계연서회’를 만들었다. 시계연서회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시계서회전을 개최해 그를 기렸다.같은 해 인천문화재단이 ‘인천 문화예술 대표인물 조명사업’ 인물로 검여를 선정하고, 검여 서거 30주년 기념 특별전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했다.검여의 유족들(유환규, 유소영, 유신규 등)은 2019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검여 유희강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작품 400점과 습작 600점,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 붓 등을 조건 없이 기증했다.검여의 작품을 검여의 출생지인 인천이 수장고가 없어 한 점도 품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검여의 생가가 있던 서구 시천동 아라뱃길 매화동산에엔 검여 선생의 생가만이 봄 햇살을 맞이하고 있을뿐이다.
2021.04.17
扇面 蛺蝶圖
선면협접도[扇面 蛺蝶圖]김홍도(1745-1806이후) 조선 (1782) 1782년 김홍도가 38세 되었을 때 그린 그림이다. 풍속화뿐만 아니라 花鳥·영모화(翎毛畵)까지도 뛰어나 모든 화목(畵目)에 다재다능했던 명성을 보여준다. 왼쪽에 나비 세 마리를 그리고, 오른쪽에 찔레꽃을 그려 넣었다. 그림 왼편에 강세황이 평한 글에서 그가 사실적인 모습을 바탕으로 나비와 꽃들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끝 부분에는 “임인년壬寅年(1782년) 가을 사능士能이 그렸다壬寅秋士能寫”고 적었다. 그려준 사람의 이름이 원래는 적혀 있었는데, 지금은 지워진 상태다. ☞협접[蛺蝶]:[동물] 나비목의 곤충 가운데 낮에 활동하는 무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은 빛깔이 매우 아름답고 가늘며 촉각은 곤봉 모양으로 끝이 부풀어 있다. 머리에 한 쌍의 촉각과 두 개의 겹눈이 있고, 가슴에 큰 잎 모양의 두 쌍의 날개가 있다. 긴 대롱처럼 생긴 입으로 꽃의 꿀을 빨아먹는다. 앉을 때에는 대부분 날개를 세우며, 낮에 활동한다. 애벌레는 대개 식물의 해충이다. 전 세계에 2만여 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250여 종이 있다.蛺나비,호랑나비(협) 蝶나비(접) (유의어)나비,접아(蝶兒),호접 (胡蝶)/ 그림이 그려진 후 제화시가 적힌 경우에 해당됨 壬寅秋士能爲□□□□ (임인추사능위□□□□)蝶之斜翻張翅 (접지사번장시) 猶可彷彿(유가방불) 而色之得於天者 (이색지득어천자) 乃能狀之(내능상지) 神在筆端(신재필단) 石樵 評(석초 평) 栩栩然漆園老夢 (허허연칠원노몽)胡爲乎幻出便面 (호위호환출편면)생동감이 넘치는구나, 장자의 꿈이여.어찌하여 기이하게 선면에 나타나 쉬고(便) 있는가.《史记》 卷六十三 《老子列传》 附 《庄周传》。一般史书上提到漆园吏时,即是指庄子。对此社会上有两种解释,一说以漆园为古地名,庄子曾在此作官;另一说为庄子曾在蒙邑中为吏,主督漆事。 蝶粉疑可粘手 (접분의가점수) 人工之足奪天造 (인공지족탈천조)乃至於是耶 (내지어시야) 披覽驚歎 (피람경탄)爲題一語 (위제일어) 豹翁評(표옹평)(그림을 너무나 잘 그려) 나비의 가루가 손에 묻을 듯하니, 사람의 일이 하늘의 조화를 빼앗으면 이 정도에 이르는구나.(부채를) 펼쳐 보고 놀라 감탄하며 화제로 말 한 마디 적는다. 표옹(표암)이 품평하다” *정안복[鄭顔復]: 이칭별칭 호號 석초(石蕉) /조선후기 남자화가 /출생 - 사망 (미상 ~ 미상) 호는 석초(石蕉). 대구에서 살았다. 출신배경과 생애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강위(姜瑋)에게 묵죽을 그린 부채를 선사하는 등의 교유가 있었다.난초와 대나무를 잘 그렸으며, 난초는 정판교(鄭板橋)의 난법을 즐겨 따랐다고 한다. 유작으로 「패교건려도(覇橋蹇驢圖)」(개인 소장)가 전하는데, 이 그림은 조선 초기적인 구도에 남종문인화적(南宗文人畫的)인 필치와 담채로 참신한 분위기를 풍겨준다.-참고문헌『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 (유복렬 편, 문교원, 1969)
2021.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