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그 끝없는 앎의 맛과 느낌의 멋 ‘한글 서체별 큰작품전’
아름다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씩씩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한글 서체를 서예로 볼 수 있는 ‘한글 서체별 큰작품전’이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도 열린다. (소생도 참가)
(사)한국서체연구회(이사장 허경무-서예가, 문학박사)는
한글학회(회장 권재일- 서울대 교수)와 함께,
한글 서체의 정립과 한글 세계화를 위한 특별기획전을
4월 14일(토)~4월 19일(목) 6일간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개최한다.
개막식은 첫날인 4월1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사단법인 한국서체연구회는 한글학회와 함께
아직 미진한 한글서체의 정립과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한글 서체별 큰 작품전’을
오는 ‘4월14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펼친다.
한글서체가 단순하고 나약하고
궁체일변도의 작은 글씨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다양하고 활달하며 웅혼하여 남성들도 한자 서체에 집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한글문자 예술과 한글서체의 마력에 젖을 수 있음을
체득하게 하는 중요한 전시가 될 것이다.
허경무 이사장이 직접 분류하고 명명한 한글 서체 7가지
해례본체, 언해본체 정자, 언해본체 흘림, 언해본체 진흘림,
궁체 정자, 궁체 흘림, 궁체 진흘림 등을 다양하게 표출한
큰 작품(가로 500~2,000cm, 세로 200~350cm)을 비롯
한글 서체별 서예작품 8종(7서체 7종, 국한혼합서체 1종)을
가로 70, 세로 200cm의 전지 약 80여장으로 구성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또한, 허 이사장이 대표로 있는 한예사를 통해 제작한
한글서체별 폰트 9종
해례본체 3종, 언해본체정자 2종, 언해본체 흘림1종, 궁체 정자 2종, 궁체 흘림 1종도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신미경 작가가 쓴 다양한 한글서예 작품(가로 70.세로 200cm의 대전지)과
전국대표작가들의 작품(가로 50.세로 140cm. 79점)을 통해
한글의 서체적 다양성과 특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한글서체 분류표, 국한서체비교도판, 상해서예인
한글서체 강습회 체험자료, 역사자료 등
다른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20여점의 각종 서체 관련 자료도 전시된다.
한글서체는 분류와 명칭을 비롯하여 정립이 안 돼 있어
학술적, 예술적 발전을 이루기 어렵고,
이로써 한글문화를 가꾸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
주최단체 대표 인사말씀,
국회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 축사,
예술의전당 사장 축사에 이어 현장에서
허경무 이사장이 직접 작품 및 한글 서체와 특성과 전시 방향을 설명할 예정이다.
한편 클린콘텐츠국민운동본부(회장 안종배 한세대 교수)도
다양한 한글 서체를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알릴 수 있는 이번 전시회를 기회로
인성 클린콘텐츠 운동의 일환인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확산과
한글 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참여작가:
고범도 권상호 권용완 김명자 김영란 김영삼 김정묵 김진태 김향선 노중석 류지혁 리홍재 박영진 박정규 박정식 박혁남 신동엽 양상철 윤관석 윤판기 이권일 이상민 이정호 이종훈 이주형 이현종 장정영 전도진 전명옥 정수암 정숙모 정현식 조성주 조현판 채순홍 한태상 홍우기 (이상 37명)
강명숙 강옥자 강종희 구경숙 김병호 김상빈 김순자 김영미 김용애 김은숙 김정열 김정원 김종순 김태완 문은숙 박희로 박희자 서해동 석형호 송소미 신미경 유충호 이범규 이숙련 이인자 임종일 장선자 장재경 전창수 정명애 정숙례 정우영 정종열 정천수 정현수 최재욱 최재현 최정강 허경무 허성락 허주란 (이상 41명)
한글학회 임원
회장 : 권재일(서울대 교수)
부회장 : 임지룡(경북대 교수)
이사 : 구현정(상명대 교수), 김인택(부산대 교수), 김정태(충남대 교수), 김주원(서울대 교수), 리의도(전 춘천교대 교수), 유현경(연세대 교수), 이관규(고려대 교수), 이정택(서울여대 교수), 임칠성(전남대 교수)
감사 : 김차균(충남대 명예교수), 하치근(동아대 명예교수)
예전에는 서예와 한문은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일이 분업화, 세분화되어 서예가는 한문을 모르고, 한학자는 모필로 쓴 서예를 모른다. 서예가의 맹점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까닭으로 이 글을 써 준다’라는 내용을 쓸 줄 모른다. 요즘은 흔히 낙관(落款)이라 하는 방주(旁註/傍註)를 쓸 줄 모른다. 기껏 쓴다는 게 연도와 계절, 호와 이름 정도이다. 자신의 이름도 초서로 써 놓으면 못 읽는다.
해서도 당해(唐楷)만 알고 육조해(六朝해)는 모른다.
백서(帛書)는 단점이 좀이 먹어서 형태가 아예 없어진 게 많다. 금석문은 마모되어도 모양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서(帛書)는 위조할 수 없다. 목간(木簡)은 순서를 몰라 바꿔 거는 경우가 있다. 목주련도 바꿔 거는 경우가 있다.
교재는 흔히 손과정의 서보(書譜)이다.
당대에 진자앙(陳子昂)이 지은 ‘수부록사(《率府錄事孫君墓志銘》’에 의하면, 손과정의 지위는 수부록사이다. 손과정(孫過庭) 이름은 건례(虔禮) 자는 과정(過庭)이다.
에 보면
공자 외아들 백어에게 시[詩]와 예[禮]를 가르치다,
공자의 외아들 이름은 이[鯉], 자는 백어[伯魚]다. 공자의 제자 진항[陳亢]이 어느 날 백어[伯魚]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님으로부터 남달리 가르침을 받은 것이 있나요?”
백어[伯魚]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다만 하루는 아버님이 서계신 뜰 앞을 지나갈 때 아버님께서 ‘너는 시[詩]를 배웠느냐?’고 물으시기에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아뢰자 아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시[詩]를 배우지 않고는 남과 더불어 말 할 수 없다” 하시므로 저는 물러나 시[詩]를 배웠습니다.
또 하루는 아버님이 서계신 곁을 지나갈 때 아버님께서
“너는 예[禮]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못 배웠습니다“ 하자 아버님께서는
“예[禮]를 배우지 못하면 세상에 나서서 행세할 수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러나 예[禮]를 배웠습니다.
제가 어버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은 이 두 가지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진항[陳亢]은 물러나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를 묻고 셋을 얻었다, 시[詩]와 예[禮]의 가르침을 알았고 또 군자는 자기 아들을 특별히 가까이하지 않음도 알았다”
서예학습의 3단계 : 생(生) - 숙(熟) - 다시 생(生)으로
처음 글씨를 배울 때에는 조리가 없다. 그 상태가 생(生)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아서 순진무구한 데가 있다.
그러나 서예를 배우면 익숙하게 되어 멋을 부리고, 음획과 양획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에서 숙 단계에서 일생이 끝난다.
명가가 되려면 오래 살아야 한다. 인서구로(人書俱老)라 했다. 소년 명필은 없다.
명필은 한 세기에 한두 명 정도 나온다. 대부분은 선서(善書)에 멈춘다. 여초 선생의 경우 5시간 정도 썼다. 당시 동방연서회 회원 320명에게 4자씩 체본을 써 주는데 한 사람도 허투로 쓰는 법이 없었다. 항상 법첩(法帖)에 의거했다. 지금 서예가들은 자기 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국전에 가 보면 누구의 글씨인 줄 다 보인다. ‘지 글씨 가르치지 말라’ 법첩에 의하면 선생 이상 갈 수 있지만, 선생 글씨를 배우면 선생 이상 가지 못한다. 자기 글씨 고집하면 안 된다. 그리고 잘하는 선생이 있으면 그쪽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가면 배사(背師)로 몰아세운다. 가면 죽일 사람으로 얘기를 한다.
진정 권선생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긴가. 한번은 권선생이 줄선 사람을 모두 떨어뜨렸더니, 그 다음부터는 심사에 불리지 못했다.
서예로 밥 벌어 먹지 않으려면 공모전에 내지 말라. 공명심을 따르지 말라. 그 동안에 법첩 하나 더 쓰라.
최초의 초서는 장초(章草)이다. 예서에 발전한 초서이다. 처음 문서를 만들 때 초한다고 하므로 고서(稿書)라고도 한다. 행서에서? 예서에서? 나왔을까. 지영(智永) 천자문, ‘선시표’ 등이 장초이다.
바로 초서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파(波)가 있는 장초이다.
서보는 금초(今草)이다. 장초의 파를 생략하고, 행서의 유려함을 접목시킨 것이다. 회소의 천자문, 손과정의 서보가 금초이다. 모든 척독(尺牘) 글씨는 금초이다.
이 금초를 더 활달하게 쓴 것이 광초(狂草)이다. 거침없이 술 한잔 마시고 쓴 초서이다.
황기로는 광초이고, 동춘당 선생은 금초를 잘 썼다.
초서는 획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아니라 형체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다시 말하면 체세(體勢)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봐도 잊어버리게 일쑤다. 예컨대 촌(寸)과 재(才)의 구분이 거의 가지 않는다. 글자가 변형되어 있어도 유추하여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문을 알아야 한다. 초서는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쓰는 게 낫다. 사람마다 변화가 있으므로 한문을 알아야 한다. 장욱(張旭)의 초서가 광초이다.
초결가(草訣歌) - 초서의 비결(祕訣)
왕희지의 초결가라 했지만, 왕희지가 지은 게 아니라, 왕희지의 글씨로 만든 책이다. 분판(粉板)에 연습이 용이하다.
唐代書法家、書法理論家。名虔禮,以字行。吳郡富陽(今浙江富陽)人,一作陳留(今河南開封)人。著《書譜》2卷,已佚。今存《書譜序》,分溯源流、辨書體、評名迹、述筆法、誡學者、傷知音6部分,文思缜密,言簡意深,在古代書法理論史上占有重要地位。其中許多論點,如學書三階段、創作中的五乖五合等,至今仍有意義。有墨迹《書譜》傳世。
人物生平
孫過庭,曾任右衛胄參軍、率府錄事參軍。胸懷大志,博雅好古。擅楷書、行書,尤長于草書,取法王羲之、王獻之,筆勢堅勁,直逼二王。宋米芾以爲唐草得二王法者,無出其右。然也有論者如窦巫譏其書爲千紙一類、一字萬同者。
他出身寒微,在“志學之年”,就留心翰墨,學習書法,專精極慮達二十年,終于自學成才。到了四十歲,才做了“率府錄事參軍”的小官,因操守高潔,遭人讒議丟了官。辭官歸家後他抱病潛心研究書法,撰寫書論,可惜未及完稿,孫過庭因貧病交困,暴卒于洛陽植業裏之客舍。唐初大詩人陳子昂曾爲他作《率府錄事孫君墓志銘》和《魏率府孫錄事文》,說“元常(鍾繇)既殁,墨妙不傳,君之遺翰,曠代同仙”。把孫過庭比爲三國時的大書家鍾繇,可見他在唐初就很受推重。
書法成就
孫過庭“好古博雅,工文辭,得名于翰墨間”。他擅長楷、行、草諸體,尤以草書著名。孫過庭傳世書迹有《書譜》、《千字文》、《景福殿賦》三種,都是草書墨迹,其中成就最高、影響最大的要數《書譜》。
孫過庭的《書譜》墨迹問世後不久,就有人提出批評。如唐代的窦暨在《述書賦》裏說孫氏的草書有“闾閻(凡夫俗子)之風,千紙一類,一字萬同”。這種說法受到了後世專家的反駁。宋代的王诜說:“虔禮(孫過庭)草書專學二王。郭仲微所藏《千文》,筆勢遒勁,雖覺不甚飄逸,然比之永師(智永)所作,則過庭已爲奔放矣。而窦暨謂過庭之書千紙一類,一字萬同,余固已深疑此語,既而複獲此書,研究之久,視其興合之作,當不減王家父子。至其縱任優遊之處,仍造于疏,此又非衆所能知也。”宋代的米芾雖然對前代書家頗爲苛刻,對孫過庭的草書卻心悅誠服。他在《海嶽名言》中說:“孫過庭草書《書譜》。甚有右軍法。作字落腳,差近前而直,此過庭法。凡世稱右軍書,有此等字,皆孫筆也。凡唐草得二王法,無出其右”。明代的焦謂:“昔人評孫書,謂千字一律,如風偃草,意輕之也。余謂《書譜》雖運筆爛熟,而中藏軌法,故自森然。頃見《千文》真迹,尤可以見晉人用筆之意。禅門所稱不求法脫不爲法縛,非入三昧者,殆不能辦此。”王世貞也說:“虔禮書名,一時,獨窦暨貶曰凡草闾閻之類。《書譜》濃潤圓熟,幾在山陰(王羲之)堂室。後複縱放,有渴猊遊龍之勢。細玩之,則所謂一字萬同者,美碧之微瑕,故不能掩也。”這些分析與評價要比窦暨全面、中肯得多。
書法理论
首先,孫過庭回顧了漢晉四位大書法家(張芝、鍾繇、王羲之、王獻之)的成就及不同的書風,指出自他們以來書法發展的總體特點是“古質而今研”。二王父子的功績,就在于他們走在這條道路的最前列,是當時人們審美觀點在書法上的集中體現,所以才成爲書法大師。要學書法,就必須取法乎上,鍾、張、二王的生花妙筆,正是人們師法的最佳範本。
其次,字中點畫是組成書法藝術的基本元素,書家必須對此十分精熟,才能通過點畫體現“形質”,用揮寫來表達“性情”。盡管正、草書體有動靜之別,技巧表現也各有側重,但“形質”和“性情”總是顯示書法生命活力的基本要求。爲了更好地充實書法的活力,還必須從其它各種書體中去吸取新的營養。比如學習楷書與草書,應該“旁通二篆,俯貫八成,包括篇章,涵泳飛白”,兼收博采,有容乃大。當然,書法創作的成功與否,除了書法家的功力是否深厚外,人的情緒,工具、材料的優劣,以至天氣季節的變化,都會産生影響。書寫者應在最佳狀態時揮毫,才能使書法藝術達到理想的境界。
融諸體之長,觸類而旁通之,是書家成功的重要因素,曆代書家概莫能外。爲了闡明這個問題,孫過庭分析了篆、隸、草、章的特點和長處,他說:“篆尚宛而通,隸欲精而密,草貴流而暢,章務簡而使”,這是曆來對諸書體最爲簡明精辟的論述,其具體含義是:篆書,特別是小篆,是用首尾藏鋒、行筆中鋒、均勻壹致的圓線條寫成的。圓線條具有柔和、婉媚、抒情的性格;轉角宜圓曲,形體宜修長,這樣線條才能貫通流暢,充分體現出婉柔流通的藝術特色。所以說:“篆尚婉而通”。
隸書改篆書的圓筆爲方筆,方筆挺直有力,轉角處也改圓轉爲方折,結體必然以嚴整代替“婉而通”,變長方爲橫寬,這樣才能協調一致。所以孫過庭強調:“隸欲精而密”。隸書是以方直爲特點,易顯呆板,故隸書啬“蠶頭燕尾”,使方使嚴正的隸書顯出飛動活脫之氣。但不可多用,“燕不雙飛”,多則失去了“精而密”的特點。
草書是快速書寫的字體,要快就要刪並壹些筆畫,且須把一些筆畫連通起來壹鼓作氣寫出。其結果方白的楞角變成了彎轉的圓角,出現了許多擺動而流暢的曲線,故曰:“流而暢”。章草是隸書的草體,與今草相同處在刪簡和圓轉;不同處在字字獨立,保留了隸書的“燕尾”即捺筆。作爲隸書的草體,它不如今草那樣連綿不斷一瀉千裏,但比起隸書來卻快速簡便得多了,故曰:“簡而便”。
一個學書者,使篆之“婉能”,隸之“精密”、草之“流暢”、章之“簡便”,彙諸長于腕下,自然能成大家。
再次,孫過庭在《書譜》中談了書法創作中的核心問題--運筆(所以有人也稱《書譜》爲《運筆論》)。他告誡學者要在“執、使、轉、用”的技巧上下功夫。針對當時書壇上出現的不良書風,即把壹些裝飾性的“美術字”作爲創新的書法,孫過庭指斥他們爲“巧涉丹青,工虧翰墨”,沒有在運筆上下真功夫。
最後,孫過庭總結了書法藝術的創作規律,認爲學習書法有三個階段,即平正一險絕一平正。他說:“初學分布,但求平正;既知平正,務追險絕;既能險絕,複歸平正。初謂未及,中則過之,後乃通會,通會之際,人書俱老”。任何一位成功的書法家都要遵循這個規律前進的。
生平作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