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제를 맞이한 총림의 대중들이여! 운수납자(雲水衲子)란 떨어진 납의를 입고 걸망 하나에 지팡이 하나 짚고 구름처럼 물처럼 떠돌아다니며 오로지 화두(話頭) 하나 챙기는 수행자란 뜻이 아니겠습니까.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아무 상관없이 묵묵히 수행해가는 납자가 되어야 합니다. 옛날 선사스님께서 강조하시던 “최잔고목(摧殘枯木)”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러져 꺾인 나뭇가지 찬 숲에 의지하니
봄이 와도 요 모양 요 꼴
나무꾼도 그대로 내버려두는데
목수가 가져간들 무엇에 쓰겠는가?
“베고 버려진 고목이 또한 찬 숲을 의지하니
몇 번이나 봄을 만나도 마음 변치 않았던고.
나뭇꾼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편수(片手)가 이를 어찌 간절히 추심할까보냐.”
최잔고목은(摧殘枯木)은 가지는 꺾어지고 잎이 다 말라 겨우 서있는 고목을 말합니다. 그 고목이 차가운 숲을 의지해서 겨우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고목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에도 몇번이나 변치않는 봄을 보냈는가 하는 것입니다.
초객(樵客)은 나뭇꾼을 말하고 영인은 도편수를 말합니다. 중국 영인에는 도편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나뭇꾼도(고목)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도편수가 이 나무를 애써서 가져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목’ 처럼 묵묵히 수행해야
최잔고목은 수행자, 즉 수좌를 말합니다. 세상의 쓸모 없는 나무같이, 불러줄 리 없는 저 고목같이 묵묵히 ‘이 뭣고’를 하는 모습이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 6년동안 고행하시고 성불하신 후 49년 동안 중생을 제도하시다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석가모니 탄생은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절을 짓는 도편수는 물론 나무꾼 눈에도 들지 않은 나무가 고목이 되지요. 볼품없는 나무지만 숲에는 고목이 있어야 또 숲답습니다. 대매법상 스님은 ‘고목은 찬 숲에 기대 몇 번의 봄을 만나도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했습니다. (催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평생을 스님으로서, 수행자로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최잔고목(催殘枯木)은 가지는 꺾어지고 잎이 다 말라 겨우 서있는 오래된 나무다. 차가운 숲에 의지해 살아가는 고목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만물이 생성하는 봄을 맞이하면서도 변치 않는 나무가 바로 고목이다. 이러한 고목에 ‘동명의 마음’이 스며 있는 것은 아닐까! 해안 스님이 말씀하셨다는 ‘참마음’ 말이다.
‘마음’은 보지 못했지만 ‘동명의 마음’은 엿볼 수 있었다. 무아를 체득한 후 허공 같은 마음을 가진 스님. 누구라도 ‘동명의 고목’ 아래서 쉬어봄직 하다. 그 나무 아래서 낮잠을 한 숨 자도 좋고, 시 한 편을 써도 좋고, 그림 한 점을 그려도 좋겠다. 고목 가지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이 우리를 청량케 하기 때문이다.
마조도일의 제자인 대매법상(大梅法常)의 게송이다. 법상선사는 깊은 산속 외진 산꼭대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토굴에서 평생을 어렵고 가난하게 수행한 공부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최잔고목”이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모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수행자란 누가 알아준다고 공부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공부하지 않는 그런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말없이 이 공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마음자세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최잔고목과 같이 되어서야 참으로 공부를 지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납자들은 옳고 그름, 칭찬과 비방, 가지고 못 가짐에 상관없이 오로지 공부에 매진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원효대사도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막지 않는 천당에(無妨天堂) 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少往至者) 삼독번뇌(三毒煩惱)로 재물을 삼기 때문이며(爲自家財), 유혹이 없는 악도에(無誘惡道) 떨어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多往入者) 몸뚱이 편하게 하기 위해 오욕락으로(四蛇五欲) 마음의 보배를 삼기 때문(爲忘心寶)”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수행자의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가난은 수행자를 수행자답게 만들어주는 보약입니다.
오늘이 해제라고 하지만 도를 성취하는 그날이 진정한 해제날인 것입니다. 해제했다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항상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정진하는 납자가 되어야 합니다. 화두를 타파하여 확철대오(廓撤大悟)하는 그날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음을 다잡아 애써 정진하는 참수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摧殘枯木依寒林(최잔고목의한림)
幾度逢春不變心(기도봉춘불변심)
樵客遇之猶不顧(초객우지유불고)
郢人那得苦推尋(영인나득고추심)
부러져 꺾인 나뭇가지 찬 숲에 의지하니
봄이 와도 요 모양 요 꼴
나무꾼도 그대로 내버려두는데
목수가 가져간들 무엇에 쓰겠는가?
“베고 버려진 고목이 또한 찬 숲을 의지하니
몇 번이나 봄을 만나도 마음 변치 않았던고.
나뭇꾼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편수(片手)가 이를 어찌 간절히 추심할까보냐.”
최잔고목은(摧殘枯木)은 가지는 꺾어지고 잎이 다 말라 겨우 서있는 고목을 말합니다. 그 고목이 차가운 숲을 의지해서 겨우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고목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에도 몇번이나 변치않는 봄을 보냈는가 하는 것입니다.
초객(樵客)은 나뭇꾼을 말하고 영인은 도편수를 말합니다. 중국 영인에는 도편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나뭇꾼도(고목)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도편수가 이 나무를 애써서 가져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목’ 처럼 묵묵히 수행해야
최잔고목은 수행자, 즉 수좌를 말합니다. 세상의 쓸모 없는 나무같이, 불러줄 리 없는 저 고목같이 묵묵히 ‘이 뭣고’를 하는 모습이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 6년동안 고행하시고 성불하신 후 49년 동안 중생을 제도하시다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석가모니 탄생은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절을 짓는 도편수는 물론 나무꾼 눈에도 들지 않은 나무가 고목이 되지요. 볼품없는 나무지만 숲에는 고목이 있어야 또 숲답습니다. 대매법상 스님은 ‘고목은 찬 숲에 기대 몇 번의 봄을 만나도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했습니다. (催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평생을 스님으로서, 수행자로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최잔고목(催殘枯木)은 가지는 꺾어지고 잎이 다 말라 겨우 서있는 오래된 나무다. 차가운 숲에 의지해 살아가는 고목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만물이 생성하는 봄을 맞이하면서도 변치 않는 나무가 바로 고목이다. 이러한 고목에 ‘동명의 마음’이 스며 있는 것은 아닐까! 해안 스님이 말씀하셨다는 ‘참마음’ 말이다.
‘마음’은 보지 못했지만 ‘동명의 마음’은 엿볼 수 있었다. 무아를 체득한 후 허공 같은 마음을 가진 스님. 누구라도 ‘동명의 고목’ 아래서 쉬어봄직 하다. 그 나무 아래서 낮잠을 한 숨 자도 좋고, 시 한 편을 써도 좋고, 그림 한 점을 그려도 좋겠다. 고목 가지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이 우리를 청량케 하기 때문이다.
마조도일의 제자인 대매법상(大梅法常)의 게송이다. 법상선사는 깊은 산속 외진 산꼭대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토굴에서 평생을 어렵고 가난하게 수행한 공부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최잔고목”이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모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수행자란 누가 알아준다고 공부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공부하지 않는 그런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말없이 이 공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마음자세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최잔고목과 같이 되어서야 참으로 공부를 지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납자들은 옳고 그름, 칭찬과 비방, 가지고 못 가짐에 상관없이 오로지 공부에 매진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원효대사도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막지 않는 천당에(無妨天堂) 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少往至者) 삼독번뇌(三毒煩惱)로 재물을 삼기 때문이며(爲自家財), 유혹이 없는 악도에(無誘惡道) 떨어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多往入者) 몸뚱이 편하게 하기 위해 오욕락으로(四蛇五欲) 마음의 보배를 삼기 때문(爲忘心寶)”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수행자의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가난은 수행자를 수행자답게 만들어주는 보약입니다.
오늘이 해제라고 하지만 도를 성취하는 그날이 진정한 해제날인 것입니다. 해제했다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항상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정진하는 납자가 되어야 합니다. 화두를 타파하여 확철대오(廓撤大悟)하는 그날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음을 다잡아 애써 정진하는 참수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