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學古齋)는 원래 송나라 주휘유의 서재 이름이라.
그림과 글씨에서 '옛것을 배운다'는 화랑의 초심에서 사용한 이름.
15년 전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고미술전문화랑 학고재 대표 우찬규 사장님.
새 건물을 올리고 마련한 중창 기념전이 '유희삼매-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이다.

우찬규 대표님 왈
"옛것에서 오늘의 답을 발견할 때 옛것의 가치는 새롭다."
"옛날 선비의 세계에 녹아든 단아한 취미를 맛보며
오늘 인사동의 정신을 되새겨보고 싶다."

흙벽에 종이창을 내고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으며
시와 음악 속에 살아가리."
(조선시대 화원이었던 단원 김홍도가 '포의풍류도'에서 그린 선비의 모습.

조선시대 5백년이 낳은 정신과 가치체계의 결집체라 할 선비는
도덕군자이면서 또한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명필로 이름난 송하옹 조윤형(1725~99)은 그 경지를
'유희삼매(遊戱三昧)'란 한마디에 담았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손꼽히는 의관 출신의 서화 수장가였던
석농 김광국(1727~97)이 남긴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들어있던
외국 전래품 세 점이 출품된 것도 이번 전시의 수확이다.
미술사가인 이동주 선생이 처음 언급해 세상에 알려진 두점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판화가 피터 솅크의 동판화 '술타니에 풍경'과
일본의 채색화인 '우키요에(浮世繪)'로,
18세기 선비들이 외국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좋은 증거다.
동판화의 작가와 제목을 확인한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당시 지식인 사회의 서양화에 대한 호기심, 곧 이국 취미를 확인하는 동시에
조선 후기 서학의 수용 범위를 알려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북학파 실학자인
초정 박제가(1750~1805)의 화첩이 처음 공개된 것도 화제다.
호암미술관이 네폭을 소장하고 있는
석창 홍세섭(1832~84)의 여덟폭 '영모 병풍'의
나머지 네폭이 발견된 것도 흥미를 던져준다.
큰 물건이 나오면 쪼개서 팔던 화상들의 풍습을 반영하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