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간(竹簡)

도정 권상호

  2세기기 초엽에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서사재료(書寫材料).

  종이 이전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죽간을 만들려면 우선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낸 다음 마디 사이의 부분을 세로로 쪼갠다. 이렇게 해서 된 대나무패를 불에 쬐어 기름을 뺀다. 이것은 글씨를 쓰기 좋게 하고 벌레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길이는 2025cm이며, 너비는 몇 cm로 한 줄밖에 못 쓰기 때문에 여러 장을 합쳐서 가죽 또는 비단으로 된 끈으로 편철(編綴)한다. 이와 같이 몇 장의 간()을 편철한 것을 () 또는 ()이라고 불렀다.

죽간은 그 실물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중국 북서쪽 볜징[邊京]에서 유럽의 학술탐험대에 의해서 한대(漢代)의 것이 발견되었으며, 1951년 이후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등지에서는 그 이전인 전국시대의 죽간도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 죽간을 모방해서 만든 목간(木簡)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 또는 ()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북서쪽 볜징에서 발견된 것은 거의 목간이었으며, ()의 처방전(處方箋) 등이 적혀 있는 죽간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

  죽간(竹簡)은 대나무를 엮은 뒤 그 위에 글씨를 쓰는 기록수단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죽이나 비단과 더불어 사용되었으며, 무게가 무거워서 이동이 불편한 단점이 있었다. 진나라의 시황제의 문화 탄압인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 당시 유학자들과 더불어 탄압받는 비극을 당하기도 했다. 위편삼절(韋編三絶).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그러나 당장 값이 싸므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자의 3천 제자’가 죽간을 높이 들고 출연한 경이로운 공연으로, 죽간은 순식간에 세계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죽간은 전국~위진 시기에 기원되었다.

  죽간의 영향: 갑골문과 금문은 재료의 국한을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없었다. 상층사회의 전유물이었던 문화와 사상은 죽간의 출현으로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竹書와 紙書의 장정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죽서는 길이가 다른 몇 개의 댓조각을 끈으로 묶어 이루어진 것인데, 이를 ‘冊’ 혹은 ‘簡冊’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은 레이저 조각공예로 양질의 대나무 재료 위에 정교한 문자를 새겨서 팔고 있다. ‘손자병법, 36, 이경, 금강경, 출사표, 난정서, 청명상하도, 이소, 악양루기’ 등 포장이 정교하고 우아하며 문장의 의미가 심오하여 수장가치를 높이고 있다.

  죽간은 중국 역사상 사용 기간이 가장 긴 서적 형식으로서 제지술 발명 전 및 종이 보급 전에 주로 사용된 서사도구이다. 죽간으로 인하여 百家爭鳴의 문화성황이 형성되었고, 공자, 노자 등의 성인들의 사상과 문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 가로 약 1cm, 세로 약 28cm인 죽간. 한 줄 최대 28자씩 필사되어 있다. 죽간 14개가 모여 한 쪽을 이루니 한 쪽의 폭은 14.5cm, 길이는 약 28cm이다. 대학은 5쪽 분량, 중용은 11쪽 분량이다.

-------죽간은 옛날 중국에 대나무 쪽에다가 글을 써서 보관하였다. 죽간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길기 때문에 죽간에 쓰면서 한자가 세-로형으로 변천 되었다. 그 죽간 모양을 본떠 책() 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죽간은 곽점 등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2세기 초엽 사용도었다. 그 외에 비단에도 글을 써서 돌돌말아 보관하였는데 백서라고 합니다. 청년 백서(白書)할때 쓰이는 백서이다. 후대에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여 종이에 기록을 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최근에 윌리엄 맥도너가 지은 요람에서 요람으로 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물에 넣어도 물에 적셔지지 않고 손으로 찢으려 하여도 안 찢어지는 책이다. 원래 종이를 다시 사용하는 것에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의 재활용 을 선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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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木簡):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죽간(竹簡)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木片).

  목독(木牘) 또는 목첩(木牒)이라고도 하였다. 나무를 폭 약 3 cm, 길이 약 2050 cm, 두께 3 mm 정도의 긴 판자모양으로 잘라 거기에 묵서(墨書)하였다. 원래는 대를 갈라서 한장 한장 끈으로 꿰어 사용하였던 것이나, 후에 목편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종이가 발명될 때까지 계속해서 썼다. 고서(古書)에 기록으로만 보이던 것을 1899년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18651952)이 러우란 유적[樓蘭遺蹟]에서 처음 발견하였고,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 쥐옌[居延]에서 발견된 것은 쥐옌한간[居延漢簡]으로서 유명하다. 한국의 낙랑 채협총(樂浪彩塚)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이들 목간에는 《논어(論語)》의 단편도 있고, 군대의 조직 ·우편제도 ·교통 및 여러 가지 물품의 이름을 기입한 것도 있어서 그 방면의 연구는 점차 중요시되고 있다.

 

 ----만드는 방법:

죽간(竹簡)

ㆍ대나무를 불에 구운 다음 잘게 나누어서 만듬

ㆍ붓으로 쓰거나 칼로 새기고 먹을 넣어 완성

ㆍ冊이라는 글자는 여러 개의 죽간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이은 모양을 본따 만듬

 

목독(木牘)

ㆍ목간(木簡), 목편(木片) 이라고도 함

ㆍ나무를 폭 약 3 cm, 길이 약 2050 cm, 두께 3 mm 정도의 긴 판자모양으로 잘라서 묵서(墨書)

 

견백(絹帛)

ㆍ죽간이나 목독에 비하여 글씨를 쓰기가 쉬우며 열람도 편리함

ㆍ길이 또한 임의로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장점

ㆍ재료가 귀하고 값이 비싸서 특수 계층에서만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