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蘭文化
朴英茂(상명여대 교수)
權相浩 注
1. 高麗時代의 蘭文學
우리 나라에서 언제부터 난을 재배하여 왔는가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흔히는 ‘圃隱集’ 또는 ‘三峰集’을 예로 들어서 고려 말기인 우왕(재위 1375-1388)때 쯤으로 보는 주장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난을 시로 읊었다는 사실은 난을 재배하였다는 사실로 직결 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오도 그럴 가능성은 있는 것이며, 또한 이미 고려 중엽부터 나타난 詩句 속에 난이 재배되었으리라는 암시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서 늦어도 고려 중말엽부터는 난이 재배되지 않았는가 하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살핀 바로는 고려의 한시에 난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金富軾(1075-1151)의 ‘臨津有感’이 아닌가 한다.
秋風溺溺水洋洋 가을 바람 선들선들 강물은 치렁치렁
廻首長空思渺茫 하늘에 고개를 돌리니 생각 아득하여라.
惆悵美人隔千里 쓸쓸하다. 그리운 임 천 리를 떨어졌으니
江邊蘭芷爲誰香 강가의 난초는 누굴 위해 향기로운고?
이 시에 등장하는 난은 언뜻 근세의 난이 아닌 난초(향능골나물) 즉 고대의 난으로 보여지는데, 그러나 중국에서도 근세의 난(온대성 심비디움)이 四君子로 각광 받고 묵란화가 성행한 후대에도 문학상으로는 혼동되어 詩語로써 등장되었던 만큼 어느 난을 가리킨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또 한시의 작법에는 옛 사람의 시어나 詩句를 인용하는 관례가 있기 때문에 김부식이 난을 직접 보았는가 하는 사실 여부도 알 수 없다. 다만 난이 문학상의 꽃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
李仁老(1152-1120)의 ‘破閑集’에 다음과 같은 詩句가 있다.
君不見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石崇騎牛迅若飛 석숭이 소를 타고 달려도 빠르기가 나는 것 같고,
綠珠艶質芝蘭秀 녹주의 요염한 바탕이 지란처럼 빼어났음을.
위의 詩句는 당시 原玉이라는 재색이 빼어난 기생이 있었는데, 아명이 牛後라, 여러 문인들이 우후의 재색을 돌아가며 읊는 중에 이인로가 그녀의 두 이름에서 석숭의 소와 녹주를 끌어대고 그녀의 뛰어난 미질을 난에다 비유한 것이다.
이인로와 같은 무렵의 金克己의 ‘有感(2수 중 1)’에는 재배와는 관계가 없으나 작자의 난에 대한 강한 친화가 엿보이고 거기에 군자의 덕과 지조가 부각되어 있다. 20구로 된 五言古詩인데 후반의 10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冬寒尙未嚴 겨울 추위가 아직은 심하지 않아
野菊留淸秋 들국화 가을이라 더욱 상큼해.
纖枝倩雨先 가녀린 줄기 빗기에 씻겨 성글고
細蘂憑風揉 여린 꽃술 바람에 문드러지네.
幽蘭已枯瘁 그윽한 난초마저 시들었으니
歲晩誰與儔 세모에 누구를 더불어 짝하리.
寧隋道傍葦 어찌 길섶의 풀과 같이
踐履羊與牛 양과 소에 밟힐 것인가?
何殊不霸士 무엇이 다르랴, 구속 없는 이 선비처럼.
獨立違俗流 홀로 우뚝 세속을 벗어남이여.
瘁(췌) 병들다. 여위다. 고달프다.
霸(패) 으뜸. 우두머리. (俗)覇
金克己의 ‘有感’에 나타난 난은 아마 고대의 蘭草인 듯하다.
고려 중엽 韓留院의 부채시에
蝶舞橫霞外 나비는 비 갠 노을 밖에서 춤추고
魚跳細浪前 고기는 여울 물결 앞에서 뛰는구나.
地還淸署殿 땅은 도리어 淸署殿인데
人卽廣寒仙 사람은 곧 廣寒殿의 신선이네
蛾暮遮蘭焰 저녁에는 난초 불길을 막고
風朝護蕙烟 아침에는 혜초 연기 옹호하는도다.
하는 詩가 있는데, 고려 중엽에는 이미 송, 원으로부터 사군자의 문인화가 들어와서 성행하던 때요, 이시는 묵란화의 畵題인 만큼 여기서의 난은 난초가 아닌 근세의 난, 즉 온대성 신비디움을 묘사한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묵란화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고려 초엽의 명신인 李資淵(?-1086)은 명문거족으로서 자녀들이 모두 현달하였다. 그 중 정, 顗(의), 顔(안)의 세 아들은 모두 재상에 올랐고 그의 문하에서 崔奭, 金良鑑, 崔思訓, 朴寅亮을 비롯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누가 시를 지어 그를 칭송하기를
庭下芝蘭三宰相 뜰 아래 지란은 세 명의 재상이요
門前桃李十公卿 문 앞의 도리는 열명의 공경일세.
하였다는 이야기가 ‘補閑集’에 전한다. 위에 든 난은 인간의 美質 즉 善人, 英才에 비유되었다.
郭困이 中書의 벼슬인 朴中美의 변치 않는 신의를 칭송한 시가 ‘東文選’ 4권에 실려 있다.
贈朴中書中美
憶昔夢大槐 옛날 벼슬길에 있을 적엔
門多車馬賓 문전에 수레와 말탄 손이 성시를 이루었네.
揮擢之竟不去 아무리 뿌리쳐도 가지를 않고
伺候何逡巡 문안하려고 어찌 그리 머뭇거리던고
自從賦歸來 귀거래사 지은 뒤로
東閣凝素塵 동각에는 뽀얀 먼지 엎이었네.
朴侯不遣舊 박후는 옛정을 버리지 않고
至今來頻頻 지금도 자주 찾아오나니.
靑靑松栢秋 소나무 잣나무는 가을에 청청하고
馥馥芝蘭香 지초와 난초는 봄에 향기로워라.
美矣君子哉 아름답구나, 그대는 군자로세.
淸風駑俗倫 맑은 바람은 속된 무리 깨쳐주네.
세한이 된 뒤에라야 松栢의 푸르름을 안다고 한 공자의 말과, 歲寒圖의 題跋에 이 말을 인용한 秋史 金正喜의 심회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군자는 역경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군자는 시세에 따라서 부유하는 존재가 아니니 박중미같은 선비의 꼿꼿함을 난에 비유하여 무슨 손색이 있겠는가? 고려의 난시 중에서 군자의 청덕이 가장 짙게 투영된 작품이라 하겠다.
고려 중엽의 문인 중 난을 시에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은 李奎報(1168-1241)이다.
그 중 한 편만 소개한다.
新賃草屋詩韻
寧爲學稼老 차라리 농부가 될지언정
恥作出貲郞 재물 주고 사는 벼슬아치는 되지 않으려 하네.
賦食籠狙類 먹이를 나눠 주며 원숭이나 기르고
忘機入鳥行 機心을 버리니 새들과 함께 하네.
深藏玉自貴 깊이 감출수록 옥은 저절로 귀해지니
不採蘭何傷 캐지 않는다고 난초야 어떠리
獨喜童鳥輩 이 중의 기쁨은 오직 아이들이니
蹁躚繞我床 내 평상에 아장거리네.
-杜甫의 시에 화답한 ‘新賃草屋詩韻’ 중 第五首, 東國李相國集-
賃(임) 품팔이(하다). 품삯. 賃金. 賃貸↔賃借
貲(자) 재물. 貲郞(자랑);돈을 내고 된 郎官. 곧, ‘돈을 내고 벼슬한 사람’을 일컫는 말.
蹁躚(편선) 빙 돌아서 가는 모양. 너울너울 춤추는 모양. 蹁(편);비틀거리다. 躚(선);춤추다.
躚躚(선선) 높이 오르는 모양. 춤추는 모양.
위의 시의 ‘不採蘭何傷’은 당나라 韓愈가 공자의 ‘猗蘭操’에 의탁한 ‘擬猗蘭操’의 ‘蘭之猗猗 揚揚其香 不採而佩 於蘭何傷-’의 원용이며 군자가 때를 기다리는 심경을 읊은 것이다.
난의 재배와 관계있는 기록이 李齊賢(1287-1367)에서 보인다. 비록 원나라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櫟翁稗說’에 ‘-昔嘗客干餘杭 人有種蘭盆中 以相蕙者置之几案之上 方其應對賓客 酬酌事物 未覺其有香焉 夜久靜坐 明月在牕國香觸乎鼻 觀淸遠可愛 而不可形於言也-’(예전에 여항에 나그네로 머물러 있을 때 누가 난을 화분에 심어서 그것을 선물로 주었다. 이것을 책상 위에 놓았었는데 한참 손님을 접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 그 난이 향기로운 줄을 모르겠더니, 밤이 깊어 고요히 앉았노라면 달은 창 앞에 돋아 있고 난향이 코를 찌르는 듯하여 맑고 그윽한 향기를 사랑할 만하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음을 느꼈다.) 한 기록인데 문맥으로 보아서 이제현이 말한 난은 오늘날의 온대성 심비디움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고려 말엽의 난가꾸기로 유명한 사람은 李居仁(?-1402)이다. 이거인은 호를 蘭坡, 字를 壽父라 하고 松, 竹, 梅, 蘭의 네 화분을 항상 가까이 하고 사랑했는데 그의 덕망과 더불어 그것이 유명하여 당대의 名儒들이 난파의 이 松竹梅蘭을 각각 오언율시로 읊어서 한 두루마리로 엮고 정도정이 題跋을 붙이니 이것이 이른바 蘭坡四詠軸이다.
몇 사람의 작품 중 난시만을 뽑아서 소개할까 한다.
李氏壽父園中四詠
蘭
九畹幽蘭秀 구원의 그윽한 난초
淸風送國香 맑은 바람이 국향을 풍겨오누나.
操琴知有意 거문고 곡조 속엔 뜻이 담겼으려니
紉佩謾多傷 옷에 찬 사람은 슬픔이 많구나.
馥馥餘芬遠 꽃다워 남은 향기 멀리 뻗치고
猗猗奕葉長 무성한 잎은 길기도 하다.
應將承寵命 마땅히 성총의 명을 받들어
手握入光明 손에 쥐고 명광전을 들리라.
陽村 權近 -陽村集 卷三-
紉(인) 새끼. 紉佩(인패);몸에 차서 패물로 함.
李氏園中 松竹梅蘭四詠 次陽村韻
蘭
步繞蘭坡下 난초 언덕에 돌아가니
揚揚一掬香 한 줌 향기가 흩날린다.
栽培已得所 재배하여 터득하였으니
荊棘亦何傷 형극인들 어떠하리
花自春秋異 꽃은 절로 봄가을이 다르고
薰陶知有益 향기에 젖으니 유익함을 알겠고
泰宇發天光 마음 속엔 천광이 피어나네.
陶隱 李崇仁 -陶隱集-
蘭坡四詠次陶隱陽村(盆種松竹梅蘭)
蘭
手種幽澗畹 그윽한 골짜기에 심었더니
猗猗遠有香 의의하여 향기가 아득하구나
伯鯈曾夢與 백주는 꿈으로 하여 이름을 지었고
尼父爲心傷 공자는 슬퍼서 의란조를 지었도다.
握去身方潔 따서 지니니 몸은 청결하고
紉來佩自長 실에 꿰어 차니 길게 드리우도다.
欲知淸意味 모름지기 이 맑은 멋을 알고자 하노니
露葉轉風光 이슬 맺힌 잎에는 천광이 구르네.
圃隱 鄭夢周 -圃隱集-
題蘭坡李御史壽父卷
蘭
猗蘭生有香 의의한 난초 나면서 향기였으니
故與君子配 그래서 군자의 짝이라네
操入宣父琴 곡조는 공자의 거문고에 들었고
紉爲楚臣佩 엮어서 차니 楚臣의 노리개라.
高風縱云遠 높은 풍도는 멀어졌지만
勝馥今猶在 향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夫君亦有美 선생은 역시 아름다우니
藝此勤灌漑 난초를 심어 애써 가꾸는구려.
芳根幾許深 꽃다운 뿌리는 얼마나 서렸나
綠葉尤可愛 푸른 잎은 더욱 사랑스러워라.
方期雨露濡 바야흐로 우로에 젖음을 기약하니
豈被蓬蒿碍 어찌 쑥대의 방해함을 입으랴.
時於九畹間 때맞춰 난을 백이랑이나 심고
潔己正相對 몸을 청결히 하여 서로 대한다.
榮華發容顔 영화는 얼굴에 나타나고
和順積肝肺 화순한 기운은 간폐에 쌓이네.
所居必移氣 사는 바에 따라 기개는 바뀌어도
明德應無晦 맑은 덕은 어두워짐이 없으리라.
君乎勉栴哉 그대여 부디 힘쓸지니
維以佐時乂 오직 정사를 도우라.
樵隱 李仁復 -東文選 卷4-
鯈(조,주) 피라미=鰷.
濡(유) 젖다. (난) 머리 감다.
蓬蒿(봉호)
栴(전) 단향목. 栴檀(전단) 단향목.
20句나 되는 장편이지만 버릴 곳이 없어서 모두 실었다. 다만 蘭坡四詠軸卷의 전모를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면 끝으로 卷末에 붙인 鄭道傳의 題跋이 있지만 원문이 길므로 싣지 않는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에 난시를 남긴 이들은 崔滋, 李達衷, 鄭道傳, 吉再 등 많은 분들이 있다.
2. 李朝時代의 蘭記錄과 蘭詩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蘭이라는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三國遺事’의 駕洛國記이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난시는 金富軾의 臨津遺感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한국란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선초 대종 - 세조 연간에 詩書畵 三絶로 유명하던 姜希顔 선생의 ‘養花小錄’이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전문적인 원예가로서 그 지식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을 뿐 아니라 꽃이 아닌 꽃의 품격, 養花 아닌 養人의 경지에 까지 정신적 차원을 끌어올린 분으로서 그의 養花小錄은 꽃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일독하지 않고서는 부끄러움을 면치 못할 귀중한 책이다.
蘭蕙편에 언급된 내용을 살펴보면 고금의 난 기록을 뽑아 소개하였고 거기에 비평을 가하였으며 품종의 분류와 재배에 이르기까지 당시 난에 관한 원예적 지식이 전무하던 시기에 해박한 지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山林經濟’나 ‘林園十六志’ 등 후세에 간행된 원예서나 농서에 나타나는 모든 난기록들은 바로 이에서 인용된 것들이다.
다음 글귀는 ‘養花小錄’ 蘭蕙편 중 한국란에 대한 언급으로 아마도 한국 자생란의 최초의 기록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난초와 혜초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분에 옮긴 뒤에 잎이 점점 짧아지고 향기도 좋지 않아 국향의 뜻을 아주 잃고 있다. 그러므로 꽃을 보는 사람들이 심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호남 연해의 모든 산에서 난 것은 품종이 아름답다…….
이조시대에 접어들면 많은 난시들이 발견된다. 고려말의 충절인 吉再선생을 추모한 南孝溫의 ‘過金烏山’이나 張顯光의 ‘金烏遺墟竹賦’ 이외에도 成三問 柳成龍 丁若鏞 등을 비롯하여 西山大師를 위시한 승려나 許蘭雪軒 등을 위시한 여류시인들의 작품도 많이 전해진다. 또한 묵란화의 題詩도 상당수 전해지고 있다.
이 중에서 短句 및 조건을 소개할까 한다.
筆端曾有楚江心 붓끝에 초강의 마음이 있어
九畹幽香自可尋 구원의 그윽한 향기를 절로 찾았군.
肯向茆齋揮短幅 한 폭을 그려 초당에 부쳐 준다면
珍藏不啻得良琛 보배를 얻은 것보다 반갑네.
위의 시는 고려말과 조선조 초기의 대 문호인 卞季良이 여말의 묵란화의 대가인 王瑞琛(왕서침)의 詩卷에 부친 것이다. 형식은 시권에 부친 것이지만 내용을 보면 역시 묵란화의 일인자인 왕서침의 묵란을 읊은 것이다.
내용중 起句는 왕서침의 난화에 초나라 屈原의 고결한 정신이 엿보인다는 뜻이고, 承句는 묵란의 묘리를 터득했다는 뜻이며 轉句와 結句는 한 폭 얻었으면 무상의 광영이겠다는 뜻이다.
傲雪蘭
彈入宣尼操 공자가 琴曲에 넣어서 탔고
約爲大夫佩 굴원이 꿰어서 찼네.
十蕙當一蘭 열 가지 향초가 난 하나를 당하랴
所以復見愛 그래서 다시 보고 사랑하노라.
成三問
성삼문은 세상이 다 우러러 보는 만고의 충절. 어찌 난의 고고한 지조에 무관심하였으랴. 첫째구는 공자가 은곡을 지나다가 잡초 속에 고고한 향기를 뿜어 내는 난초를 보고서 제왕에게 기용되지 못한 자신을 王者의 허리에 차이지 못한 난초에 의탁하여 수레를 멈추고 거문고를 꺼내어 즉석에서 ‘猗蘭操’라는 거문고 곡조를 지어서 탔다는 고사를 말한 것이다.
入은 난초가 ‘의란조’의 소재로 들어갔음을 말하고 ‘宣尼’는 공자(공자는 사후 文宣王에 추존되었음. 名은 丘, 字는 仲尼).
操는 ‘의란조’를 말함. 둘째구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三閭大夫 屈原이 늘 군자의 의표로서 난초를 차고 다녔다는 ‘離騷’의 ‘約秋蘭以爲佩’에서 인용. 셋째구는 난초야말로 군자가 차는 모든 향초 중의 으뜸이라는 뜻이요, 넷째구는 작자가 난초를 각별히 사랑하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世事無端齒亦酸 세상일 끝이 없고 이 또한 신데
獨尋溪畹採幽蘭 홀로 냇가를 찾아 난초를 캐네
天風捲雨秋空闊 바람이 비 걷으니 하늘은 넓고
汀月流輝夜水寒 물가에 비친 달빛 밤물이 차거워라.
위의 시는 松雲臺詞 惟政의 禪詩이다. 난시에 ‘晼’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굴원이 蘭을 九畹 즉 백여 이랑이나 되게 많이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相看脈脈贈幽蘭 말 못하고 쳐다보며 난초를 건네 주니
此去天涯幾日還 이제 하늘가로 가면 언제나 돌아오리
莫唱咸關舊時曲 함관의 옛 노래 부르지 마오.
至今雲雨暗靑山 지금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구료.
崔慶唱
위의 시는 孤竹 초경창이 홍원 기생 洪娘(홍낭)에게 준 이별시이다. 홍낭은 고죽이 洪原의 고을을 살 때 사랑하던 기생으로 자색과 문재가 있었다. 고죽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자 홍낭은 쌍성까지 따라와 이별을 하고 함관령에 이르러 이별시 한 수를 부쳤다.
뒤에 고죽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로 발행하여 7일만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변방의 관기가 서울에 거처할 수 없으므로 고죽의 병이 나은 뒤 서울을 떠나니 고죽이 이시를 준것이다.
고죽이 죽고난 후 홍낭은 스스로 치장을 않고 파주에소 묘소를 지켰다. 임진왜란 때 고죽의 詩稿를 짊어지고 피난하여 병화를 모면하였다. 홍낭이 죽자 고죽의 무덤 아래 묻어 주었다.
起와 承은 홍낭이 홍원으로 돌아간 귀의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을 말하고 轉에서는 예전 함관령의 이별 때처럼 이별시를 보내지 말라는 뜻이요, 結은 애끊는 이별에 눈물이 앞을 가림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의 雲雨는 애정과 눈물의 중의법적인 표현이다.
다음은 묵란화의 題詩를 살펴보겠다.
紫霞 申緯는 이조 중말엽의 詩書畵 三絶로 일컬어지던 사람인 만큼 묵란도 잘 그리고 특히 樂府시에 뛰어났다. ‘紫霞詩集’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題錦城女中藝畵蘭
畵人難畵恨 사람 그리는 데 한을 그리기 어렵고
畵蘭難花香 난을 그리는데 향기는 그리기 어려워라.
畵香兼畵恨 향기를 그리고 한까지 그렸으니
應斷畵時腸 응당 그릴 때 애가 끊어졌으리.
秋史 金正喜선생은 너무 우뚝한 분이라 군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不作蘭圖라고 불리우는 偶然寫出蘭圖를 보면 그의 기발한 조형미에 어안이 벙벙하지만 그의 自題는 짧으면서도 그의 고답적 정신과 예술관을 충분히 말해 주고 있다.
不作蘭花二十年 난초를 안 그린지 스무해
偶然寫出性中天 우연히 천성에서 그려져 나왔구나.(本性 속의 天然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閉門覓覓尋尋處 문을 닫고 깊이깊이 찾아드니
此是維摩不二禪 이기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일세. (둘도 없는 禪일세.)
3. 李朝의 蘭時調
난 시조도 역시 李朝時代의 蘭文學에 포함시켜야 하겠으나 편의상 따로 세웠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고려때부터 입으로만 구전되던 옛 시가를 문자에 정착되게 하였고 우리 고유의 전통시가인 시조문학을 꽃피게 하였다. 그러니 우리의 난이 한시 외에 시조로도 읊어지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시조는 그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 특성으로 보아 반상을 초월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학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해지는 고시조가 본래 문학적 위치로 독립되어 있던 것이 아니고 시조나 가곡의 곡조에 얹혀져서 불리워지던 노래의 가사로서, 그 중 일부가 개인의 문집에 남았거나 혹은 구전으로 가객들에게 전승되어 오다가 18세기에 와서야 靑丘永言, 海東歌謠, 歌曲源流 등의 가집에 채록된 것으로 이 과정에서 많은 작품이 소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늘날 전해진다는 3천여수의 고시조 중 2천 3백여여 수의 작품을 조사하여 식물 소재를 분류하여 보았다. 여기에는 실로 다양한 식물들이 등장하였고 우리 조상들은 과연 꽃을 무척이나 사랑한 민족이구나 여겨질 만큼 빈도수도 컸다. 이 중에서 난시조 12수와 난화시조 5수를 찾아 내었다. 다른 꽃에 비해서는 아주 적은 분량이었는데 더구나 평민계층의 작품에서는 단 한 편도 보이지 않는 것이 기이하였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난은 귀족적 식물이어서 평민들과는 인연이 없었던 게 사실이겠고, 설사 양반 사대부들이라 할지라도 난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니었던 데 원인이 있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어쨌건 이 17수의 시조는 우리 난애호가들에게는 참으로 귀중한 문화적 유산이 되겠기에 몇 수 소개할까 한다.
幽蘭이 在谷하니 自然이 듣디 됴해
白雲이 在山하니 自然이 보디 됴해
이 중에 彼美一人을 더욱 잊디 못하얘.
李滉(1501. 연산군7-1570. 선조3). 號는 退溪. 자는 景浩 性理學者. 출전:倒産十二曲.
듣기(聞);향기를 맡다.
됴해;좋으이.
彼美一人;孔子를 가리킴. ‘琴操’에 보이는 ‘猗蘭操’에 얽힌 古事를 생각한 것.
도산서원에서 수학하는 제자들에게 선경에서 학문하는 기쁨과 공자를 본받는 성정을 가르친 노래.
芝蘭을 갖고랴 하야 호미를 두러 메고
田園을 도라보니 반이나마 형극이다.
아애 이 기음 모 다 매여 해 저물까 하노라.
姜翼(1523. 중종 18-?). 호는 介菴. 학자로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후학 양성과 학문에만 힘씀. 출전;介菴集.
芝蘭은 芷蘭의 잘못된 말로 ‘孔子家語’ 在厄篇에 ‘芷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의 句가 ‘芝蘭’으로 誤記된 것을 後人이 잘못 引用한 데서 옴. 芝는 약용 버섯의 영지이므로 蘭과 짝이 될 수 없고 芷(구리때)는 蘭․蕙․江籬․芎窮(궁궁이)과 더불어 香草러서 군자가 차던 것임.
갖고랴; 가꾸려고
‘호미를 두러메고’와 종장은 당나라 白樂天의 種蘭詩와 연관된 것. 소인과 군자가 한데 섞여 있어서 소인을 제거하기가 힘들다는 뜻.
荊棘; 난은 君子에 비유되나 荊棘은 소인에 비유됨.
窓 밖에 워석 버석 님이신가 니러 보니
蕙蘭 蹊徑에 落葉은 무스 일고
어즈버, 有限한 肝腸이 다 궂을까 하노라.
申欽(1566. 명종21-1628. 인조6). 號 象村. 인조 때 영의정. 이조시대 한문학의 4대가의 한 사람. 출전; 校注海東歌謠
니러; 일어나
蕙蘭; 혜초와 난초. 즉 난초.
蹊徑; 지름길. 여기서는 오솔길이 어울릴 듯.
궂을까; 끊어질까
윗글의 묘미는 오로지 군자를 님에다 비유하고 찾아 올 길을 난이 피어 있는 지름질에다 비유한 데 있다. 군자의 벗 사귐을 蘭交라 하고 君子三樂에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君子乎’하 하지 않았던가. 어지러운 세상에서의 군자에 대한 갈망은 창자가 끊어지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비길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芳草도 밟아 보며 贊芷도 뜯어 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1)
一葉 片舟에 실은 것이 무스 것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2)
갈 제는 내뿐이오 올 제는 달이로다.
尹善道(1587. 선조20-1671. 현종12) 號 孤山.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국문학의 3대 문호. 출전; 孤山遺稿. 漁夫四時詞 40首 중 春詞의 일곱번째 작품.
1), 2)고려때부터 漁夫歌에 전통적으로 계승되는 장과 장 사이의 助興句.
무스 것고; 무엇인가
지국총; 노 젓는 소리
어사와; ‘아아’하는 감탄사
내; 안개
선비의 고시잡이는 고기를 잡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리다.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빈 배로 가서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이다.
芳蘭은 엇지하여 저다지 香氣 나며
綠竹은 엇지하여 저다지 貞節 잇노
사람도 香氣 貞節이 저와 같이 있어야
趙漢杰. 연대 미상
蘭의 香氣는 君子의 淸德이요, 竹의 곧고 푸름은 志士의 高節이다. 어찌 사람이 이 君子의 德을 蘭竹에서 배우지 않겠는가?
玉盆에 심은 蘭草 一幹一花 기이하다
香風 거듭 이는 곳에 十里草木 無顔色을
두어라, 同心之人이니 采采百年 하리라.
李洙康. 연대 미상. 출전; 李熙昇本 靑丘永言.
蘭草 一幹一花; 春蘭. 黃山谷은 ‘一幹一花而有香者蘭也. 一幹六七花而香不足者蕙也. 蒔以沙石茂沃 以蕩茗則芳 是取同也’라 하였음(脩竹記)
十里草木 無顔色을; 십리 안 모든 초목이 무안하여 빛을 잃음.
同心之人; 군자의 벗사귐을 말함. 蘭交. 여기서는 난과의 사귐을 뜻함.
采采百年; 평생을 길이 盛多하게 삶.
나도 이럴망정 玉階 蘭草러니
秋霜에 病이 드러 落葉에 뭇쳐셰라.
어느졔 東風을 만나 다시 荀나 보려노.
작자 미상.
玉階 蘭草; 문벌 좋은 귀공자. 군자.
秋霜; 정변.
落葉; 草野.
東風; 임금의 부르심.
荀나 보려노; 벼슬에 다시 올라 볼까나.
이상 난시조 12수 중 일곱 편을 소개했다. 다음은 墨蘭時調를 들어보자.
玉露에 젖은 꽃과 淸風에 나는 잎을
老石의 造化筆노 겹 바탕에 옴겼인 제
異哉하라, 寫蘭이 豈有香가마는 暗然襲人하돗다.
安玟英. 이조 고종때의 가객. 1876년(고종 13년)에 스승 朴孝寬과 더불어 歌曲源流를 편찬. 출전; 李熙昇本靑丘永言.
老石; 늙은 石坡 대원군.
造化筆; 神筆.
겹; 비단
異哉하라; 시이하기도 하구나.
暗然襲人; 암연히 사람에게 엄습하는구나.
大院君 李昰應의 墨蘭畵가 얼마나 신품인지 난향이 풍겨오는 듯하다는 예찬시.
石坡公의 造化蘭과 秋史筆 紫霞詩는 詩書畵 三絶이요
蘇山竹 石蓮梅는 梅與竹 兩絶이라.
그 中에 本받기 어려울손 石坡蘭인가 하노라.
작자 미상. 출전; 雅樂部本 女唱類緊
石坡 李昰應의 墨蘭畵, 秋史 金正喜의 書, 紫霞申緯의 詩는 가위 이조시대의 詩書畵 三絶이라 하겠고 蘇山 宋祥來의 墨竹畵와 石蓮 李公愚의 墨梅畵는 梅竹의 兩絶이라 하겠다. 그 중에 본받기 어려운 것은 石坡의 墨蘭畵인가 여겨진다.
이상 墨蘭時調 5수 중 2수를 밝혀 보았다. 난시조 17수는 다른 꽃을 노래한 것보다 수적으로 아주 적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 先人들은 이것을 시조나 가곡의 곡조로 노래 불러 흥을 더하였다. 우리 後生들은 그렇게는 못한다 하더라도 암송하여 蘭詩와 蘭과 내가 與蘭同心이 됨으로써 세속을 조금이나마 멀리 할 수 있지 않겠는가?
4. 韓國의 墨蘭畵와 畵題
필자는 기록상 한국의 詩歌에 난이 등장하는 최초의 것은 金富軾(1075-1151)의 ‘臨津有感’이며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난은 오늘날의 난이 아닌 즉 향등골 나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따라서 오늘날의 난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말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견해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 四君子의 하나인 묵란화가 그려진 시기는 언제부터이며 대표적인 화가들은 누구인가? 許英桓씨는 ‘韓國 墨蘭畵에 관한 硏究’(文化財 12호 ’79 文化財管理局刊)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墨蘭畵에 대한 최고의 기록은 高麗末의 王瑞琛(왕서침)과 尹三山에 관한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작품으로 제일 오래된 墨蘭圖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姜世晃의 筆蘭圖(紙本水墨 21.5×28.8cm) 한 폭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遺作으로 볼 수 있는 한국의 墨蘭花史는 불과 2백여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회화사에 기록되어 있는 墨蘭畵家를 보면 고려시대의 王瑞琛. 尹三山, 조선시대의 선조대왕, 姜世晃, 林熙之, 金正喜, 趙熙之, 申櫶, 竹香, 李昰應, 方允明, 尹永基, 尹用求, 金應元, 閔泳翊, 韓末ㅣ이후의 趙東旭, 金圭鎭, 羅壽淵, 黃庸河, 裵孝源, 金容鎭 등이라 하겠다.
이 가운데서 金正喜, 李昰應, 金應元 등은 오로지 墨蘭畵만 그린 三大家이며, 金正喜는 韓國 墨蘭畵의 최고봉이다.”라고 하였다.
묵란화는 문인화의 하나로 본래부터 아마추어적인 성격을 띤 것이지만 근래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난을 치는 사람이 많고 난을 가꾸는 동호인 중에도 묵란화에 심취하는 이가 많으므로 고려시대 이래 널리 알려진 묵란화의 畵題들을 여기에 소개해 볼까 한다.
瀟瀟一葉聊寄興 깨끗한 이파리 흥취를 붙이나니
可云直與作同心 마음을 같이한다 이를 만하네.
위는 林熙之(1765-? 字는 敬夫, 號는 水月堂)가 自作 墨蘭圖(紙本水墨 22.4*37.6cm)에 붙인 화제
此是幽貞一種花 이야말로 유정한 꽃이라서
不求聞達只煙霞 이름나길 원치 않고 연하 속에 묻혔구나.
採樵或恐通來徑 나뭇군이 찾아들면 어쩌나 해서
更寫高山一片遮 일부러 산을 그려 가려 놨구려.
위의 두 편은 方允明(1827-1880 號 老泉)의 自作 墨蘭圖 畵題이다. 그의 묵란화는 오세창과 흡사하여 혼동되기도 한다.
蘭之氣淸石之體靜 난의 기품은 맑고 돌의 형체는 고요하니
淸則久靜則壽 맑으면 오래 가고 고요하면 오래 산다.
위는 小琳 趙錫晋이 石山을 그리고 小湖 金應元(1885-1921)이 그 사이사이에 蘭을 그린 10曲連屛風의 石蘭圖에 붙여진 화제. 국립박물관 소장. 한국 최대의 석란도일 듯.
墨痕香心影欹斜 먹 향기 스며들고 그림자 비꼈는데
紙上參差盡看花 종이 위에 어른어른 꽃도 많이 피었구려.
不愛仙源種桃李 도리화 심어 놓은 武陵의 仙源은 부질없고
只宜供養讀書家 다만 글 읽는 선비에게 알맞구나.(선비님네 벗해 드릴 뿐)
위는 趙東旭(1899-? 號 松齊)의 自作 石蘭圖의 화제시.
秋史 金正喜(1786-1856)의 墨蘭圖는 寫蘭 자체가 特異 超絶하여 世人의 췌사를 불허하지만 그에 부친 畵題로 하여 품격이 더욱 높아진다. 畵와 畵題의 배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造形美를 드러내어 秋史가 아니면 어찌 이런 神品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秋史의 畵題의 그 내용에 있어서도 상식을 뛰어 넘어 난의 德을 찬양한다든지 寫蘭의 흥취를 읊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그리게 된 내력이나 蘭法의 一家見을 피력한 것이 특이하다.
四君子를 치는 이들에게 널리 이해되고 있는 화제들이기 때문에 소개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나 지면을 뛰어 넘을 수 없어 몇 편 소개한다.
寫蘭 난초를 치는 것은
亦當自不欺心始. 역시 마땅히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에서 시작한다.
一撇葉一點瓣 한 줄기의 잎과 한 점의 꽃잎이
內省不疚可以示人. 내심으로 살펴 보아도 병되지 않아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
十目所視十手所指 열 눈이 보는 바요,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其嚴乎! 그만큼 엄숙하니라.(엄숙해야 하는 것이다.)
雖此小藝 비록 이것이 작은 재주(예술)이나
必自誠意正心中來 반드의 성의와 바른 마음을 갖는 가운데에서 나와야
得意下手宗旨. 손을 대는 큰 뜻을 얻을 수 있다.
위는 秋史가 1848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한 폭을 그려 보내면서 그에 부친 화제.
雖到得九千九百九十九分 비록 9999분까지 이룰 수 있다 해도
其餘一分最難 그 나머지 1분이 가장 어려우니,
圓熟九千九百九十九分庶皆可能 9999분이 원숙되기는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해도
此一分非人力可能 이 1분은 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위는 秋史가 大院君 李昰應의 ‘石坡蘭卷’에 부친 화제이다. ‘秋史集’에 들어 있다.
이 밖에 한․중 묵란화에 자주 쓰이는 화제에 다음과 같은 短句들이 있어 열거해 본다.(後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