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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 천상병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맞춤법상으로는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

 

  1930∼1993. 시인·평론가. 본관은 영양(潁陽). 호는 심온(深溫). 경상남도 마산 출신.

 

2남 2녀 중 차남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姬路市)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귀국하여 마산에서 성장하였다. 

 

  1955년 마산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43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2년 목순옥(睦順玉)과 결혼하여 비로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 뒤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의 문단 활동은 마산중학교 5학년 때인 1949년 7월 ≪죽순 竹筍≫에 시

 

〈공상 空想〉 외 1편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6·25 중에는 송영택(宋永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작품 新作品≫을 발간, 여기에 시를 발표하였다. 
 

  이어 1952년 ≪문예 文藝≫지에 시 〈강물〉·〈갈매기〉 등으로 추천을 받았고,

 

1953년 같은 잡지에 평론 〈사실의 한계-허윤석론(許允碩論)〉, 1955년 ≪현대문학≫에

 

〈한국의 현역대가(現役大家)〉 등을 발표하였다. 

 

  가난과 무직, 주벽, 무절제한 생활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1971년 문우들의

 

주선으로 제1시집 ≪새≫를 뒤늦게 발간하였다. 

 

  그 뒤 제2시집 ≪주막에서≫(1979)와 제3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제4시집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제5시집 ≪요놈 요놈 요이쁜 놈≫

 

(1991)을 펴냈다.

 

  그의 시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서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순수성을 되비쳐 보여준다. 동심에 가까운 이러한 순진성은 가난과 죽음, 고독 등

 

세상사의 온갖 번거러움을 걸러내고 있으며 일상적인 쉬운 말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 명료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밖에 저서로 3인 시집 ≪도적놈 셋이서≫(1989), 시선집 ≪귀천 歸天≫(1989)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1991), 문학선 ≪구름 손짓하며는≫(1985),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1990),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1993) 등이 있다. 유고집으로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1993)와 수필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1994)가 있다.


 

천상병 시인의 시세계

 

 

  천상병은 간고(艱苦)한 생애를 살다간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거니와,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 가난과 고통이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시적으로

 

고양된 순간에 있어서는 구차함이나 원한 혹은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음에

 

있다. 오히려 두드러지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물론 그것은 부정적 상황의

 

틈에서 역설적으로 비춰지는 긍정이지만)인데 그것이 그의 시가 보여주는

 

투명하고 순수한 서정의 출발이다. 그 '투명함'과 '순수'의 서정은 인간적인

 

또는 세속적인 욕심의 흐림이 없이 삶의 어둠과 밝음을 볼 수 있음에서 온다.

 

'가난'이 그로 하여금 "비쳐오는 햇빛에 떳떳할 수 있게"한다고 말하기도

 

했거니와, 진정 그에게 있어 '간고함'은 사물에 대한 또는 일상적인 삶의 작고

 

하찮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투명한 눈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고통스러웠을 현실의 삶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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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1993년 63세의 나이로 타계한 시인 천상병의 대표작 ‘귀천(歸天)’이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생애를 소풍에 비유, 저승에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노래했을 만큼 천상병은 항상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지닌 채 ‘영원한 자유인’의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허무함·슬픔·두려움 등을 드러내지 않은 그의 맑고 담백한 시에서 무욕(無慾)과 순진무구의 극치를 느낀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생전에 한국 문단에서 ‘마지막 순수시인’ ‘마지막 기인(奇人)’ 등으로 일컬어진 배경도 마찬가지다.
1949년 시 ‘강물’이 중학교 담임교사였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청마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문예’지에 게재돼 등단한 이후의 숱한 기행도 지나칠 만큼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에 따른 것으로 비친다.

‘막걸리’라는 시를 3편이나 쓴 그가 주변에 막걸리 한 되 값을 ‘구걸’하기 일쑤였다는 일화도 그렇다.
하루에 막걸리 한 되와 담배 한 갑만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며 손을 벌리면서도 그 이상은 쥐어줘도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그 역시 맑은 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 노원구청은 그의 순수한 시 세계, 생활은 가난했으나 마음은 긍정적이고 따뜻했던 생애 등을 기리는 ‘천상병시인공원’을 수락산 등산로 초입에 내년 6월까지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가 42세에 결혼한 아내 목순옥씨와 1985년 서울 인사동에 찻집 ‘귀천’의 문을 열기 3년 전부터 1990년까지 8년 동안 거주한 노원구 상계동에서 가까운 장소에 천상병의 시비(詩碑)와 동상, 시를 낭송할 수 있는 정자인 ‘귀천정’ 등을 세워 등산객을 비롯한 시민의 휴식과 문화 향유 공간으로 꾸민다는 것이다.

천상병시인공원을 통해 순수함과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깨달을 수 있기를. 모략을 일삼거나 계급의식과 적개심 등을 부추기는 사람이나 세력이 행세하는 사회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의 확인과 함께.

[[김종호 / 논설위원]]
권상호
[동아일보]
시 ‘귀천(歸天)’의 작가 고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추모 공원이 서울 노원구 수락산 초입에 조성된다. 또 수락산 내 2개 등산로는 천 시인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을 주제로 한 등산로로 꾸며진다.

11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수락산 등산로 종합정비계획’에 따르면 노원구는 서울 동북부 지역 주민과 경기 의정부시 남양주시 주민들이 자주 찾는 수락산을 역사와 문화가 있는 산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 시인’이자 기인(奇人)으로 불렸던 천 시인은 1982년 11월부터 1990년 6월까지 수락산에서 멀지 않은 노원구 상계동 1117-12의 단독주택에 살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노원구는 수락산 등산로 초입인 상계동 996-27 일대 197m² 공간에 7억 원을 들여 내년 6월까지 ‘천상병시인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공원에는 시 낭송 무대 등으로 쓸 수 있도록 정자인 ‘귀천정(歸天亭)’과 천 시인의 대표 시를 새긴 각종 시비(詩碑), 육필원고가 그려진 의자 등이 설치된다.

또 천 시인이 시를 쓰는 모습을 본뜬 청동 등신상(等身像)도 만들기로 했다. 노원구는 천 시인의 부인인 목순옥 여사와 한국문인협회에 조언을 구해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이 공원에서는 1993년 타계한 고인의 시세계를 기리는 시 낭송회와 백일장 음악회 등이 열린다.

노원구는 또 12억3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수락산 내 주 등산로 7개 가운데 2개를 ‘천상병 산길’과 ‘김시습 산길’로 꾸미기로 했다.

우선 수락골∼염불사∼깔딱고개∼정상(약 4km)에 이르는 제2등산로는 ‘김시습 산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노원골∼학림사∼치마바위∼정상(약 4km)으로 이어지는 제3등산로는 ‘천상병 산길’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권상호
수락산. 높이 638m, 노원구 의정부 남양주에 걸쳐 있으며 서울 동북부 경계.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많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산. 그러나 이곳이 천재시인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한국문단의 순수 천재시인 천상병과 '오세문장(五歲文章)'이라는 칭호를 받은 조선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주인공. 천상병은 생전에 수락산 어귀에 집을 마련하고 8년을 살며 수락산 바위, 언덕, 나무, 새 등을 벗 삼아 왕성한 시심(詩心)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펼쳤다. 수락산변, 귀천, 촌놈, 계곡 등 수락산 정취를 듬뿍 담은 산어(山語)의 시구를 엿볼 수 있는 작품도 20여 작에 이른다.
이와 함께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불의에 무언 항거했던 김시습은 세조가 처형한 사육신 시신을 거둔 후 전국을 유랑하다 수락산에 들어 기거하던 생육신 중 한 사람. 수락산 봉우리 중 동봉(東峰)은 바로 김시습의 또 다른 호이며 동봉 기슭 아래 폭천정사를 세우고 농사일과 시를 쓰며 울분을 달랬다. 노원의 풀잎, 수락산의 남은 노을 등 10여 점 시를 통해 수락산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두 시인과 수락산의 역사적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인근 국립공원 북한산(도봉산) 입장료 무료화로 수락산을 찾던 등산객들이 대거 몰려가자 매상이 줄어든 주변 상인과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시ㆍ구의원 등 지역 주민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경제 활로를 찾아 나서며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
이는 곧바로 노원구 정책에 반영돼 천상병 시인이 거처하던 집터에 등신상, 귀천정 정자, 타임캡슐, 시비와 시목 등이 들어서는 천상병 시인 공원을 조성하기로 하는 한편 김시습을 추모하는 시비와 시목, 정상에 매월당 정자를 세운다. 두 시인 이름을 딴 산책로도 조성한다.
자칫 묻힐 뻔했던 소중한 문화유산이 번뜩이는 주민 아이디어로 빛을 발하고 수락산 자존심을 되찾게 했다. 나아가 문화관광자원화로 이어져 두 천재 시인을 찾는 등산객들로 수락산은 더욱 북적댈 것이다.
[이노근 서울시 노원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