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그림과 시의 경계에서(문예평론) - 그림시인 김월수

그림과 시의 경계에서

 

권상호(문학박사, 문예평론가)

만남은 우연, 소통은 필연이다. 꼭 만나야 한다는 절실함은 없었지만, 지난봄 미술세계에서 기획한 김갑진초대전에 들렀다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신화 속의 까마귀에 대하여 김월수(金月洙) 시인과 우연히 말을 섞은 것이 필연으로 이어졌다. 이후 어쩌다 만나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그의 주도로 갤러리 투어를 하고 또 작품에 관한 뒷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부드러운 말속에는 은근한 고집이 숨어 있었다.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하여 생각의 근육을 튼실하게 기른 덕이리라. 어느 분야든 생각의 골짜기에 접어들면 시간을 잊는다. 그래서 그와 만남은 짧은듯하면서도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한마디로 그는 자연에서 언어를 찾고, 그림에서 시를 발견하는 그림시인이다. 특별한 작가의 개성적 조형 어법이나 그 속에 녹아 흐르는 창의적 발상은 여지없이 그의 새로운 창작 그물인 시망(詩網)에 걸려 글감이 되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 결과를 그림시라고 명명해 본다. 전통적으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화의(畫意)에 맞는 화제(畫題)를 본인이 직접 짓거나 찾아서 쓰는 것이 상례였다.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일러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 평한 바 있지만, 이때는 시도 그림도 모두 화가의 몫이었다. 그림을 보고 연상하여 지은 제화시(題畫詩)는 화가가 직접 그림 안에 첨록(添錄)하지만 김 시인의 시작(詩作)은 화가와는 완전한 별도의 작업이다. 그의 시상은 그림에서 출발하지만 그림 속에 기록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는 제화시인이라기보다 그림시인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김 시인은 미대를 졸업한 후에도 작품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왔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턴가 좋은 그림만 보면 심각한 의문에 빠지게 되고, 그 의문을 풀고자 인사동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그림 속으로 여행하는 습관이 붙었다. 그때마다 자신의 내면에 솟구치는 묘한 시심(詩心)을 발견하고 마침내 그림을 시로 읽기 시작했다. 훌륭한 그림만 보면 시로 짓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를테면 연화작시(緣畵作詩)의 시벽(詩癖)’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시 형태인 그림시가 탄생하였다.

그의 그림시에 대한 사랑은 애착을 지나 몰입의 상태이다. 그림을 대하는 그의 눈빛은 언제나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촉촉한 그리움에 젖어 있다. 그리고 낮은 톤의 화자의 목소리는 새벽안개처럼 아련히 다가온다. 그가 토해내는 이러한 그리움스며듦의 시격(詩格)은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염려와 허덕이는 환경에 대한 애틋한 감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뭔가 부족하면 흔히 불안으로 나타나는데, 그의 경우는 여유로 나타난다. 여기에 그의 매력이 있다. 피할 수 없는 불안을 공기처럼 마시며 살아가면 불안도 오히려 삶의 여유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역설적 믿음의 발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시속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는 삶의 질곡 속에서 다양한 색상의 옷을 걸치고 다양한 표정을 짓고 나타나지만, 마음은 항상 시공을 초월한 허허로운 음유시인이다. 그의 노래는 시대의 경고 메시지가 되기도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급할 게 없다.

그는 생래적으로 회화에 대한 사랑이 지독하다. 그러나 그 사랑 법은 야생화 향기처럼 풋풋할 뿐이다. 그가 처음 내게 소개한 것도 회화였다. 그런데 이 회화는 인사동 SK빌딩 안의 400년 된 길상목(吉祥木)인 회화나무였다. 우리는 그날부터 같은 이름의 회화를 아내로 동서가 되어 공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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