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고 푹 쉬자
도정 권상호
인간이 태어날 때의 손의 모습은 무언가 잡으려는 모습이고, 죽을 때의 손의 모습은 가졌던 모든 것을 놓는 형상이다.
한자를 통하여 인간은 손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손에 벼를 들고 있는 모습은 秉(잡을 병)이다. 이 글자 속에 禾(벼 화)가 보인다. 禾(화) 자를 뺀 나머지 부분은 又(오른손 우)의 전서 형태이다. 그리고 벼 두 포기를 동시에 잡고 있는 모습이 兼(겸할 겸) 자이다. 쇠붙이[金]로 벼를 한 움큼 잡고 베는 모습은 鎌(낫 겸) 자이고, 말[言]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한 움큼 잡는 모습의 글자는 謙(겸손할 겸) 자이다.
그리고 식물의 열매가 아닌 고기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바로 有(있을 유, 가질 유) 자인데, 여기의 月(고기 육)은 肉(고기 육)의 생략형으로 흔히 ‘육달월’이라고 칭하며 밤하늘의 月(달 월)과 구분한다. 多(많을 다)는 月(고기 육)을 잘라 놓은 모습으로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기에 ‘많다’는 뜻으로 되었다. 敎育(교육)이라고 할 때의 育(기를 육)은 자식에게 고기를 먹여 기르는 모습으로 발음도 /月(육)/이다. 育(육) 위의 글자는 子(자식 자)를 180도 돌려놓은 형상에서 왔다.
손으로 먹을 것을 잡은 다음에는 힘을 잡으려 한다. 예컨대 손에 돌도끼를 쥐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가 父(아비 부)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란 돌도끼로 식물 채취 또는 狩獵(수렵), 川獵(천렵)을 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손에 막대를 잡은 모양에서 나온 글자가 尹(다스릴 윤)이다. 조선시대 서울시장을 일컬어 漢城府判尹(한성부판윤)이라 한 적이 있는데, 이때의 尹(윤)은 대단히 큰 힘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손에 막대를 잡고 지휘를 하는 것은 물론, 입으로 호령까지 하는 모습의 글자는 君(임금 군)이다. 그는 항상 ‘群(무리 군)’과 ‘軍(군사 군)’을 다스리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이다.
인간에게는 식욕과 권력욕 외에 쓰고, 그리고 싶어 하는 자기 표현욕구도 있다.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양에서 聿(붓 율), 인간 사이에 친근할수록 붓으로 적어놓아야 하는 것이 있으니 곧, 律(법 율)이다. 붓 잡고 말 대신에 쓴 글은 書(글 서)이고, 붓 잡고 화판에 그린 그림은 畵(그림 화)이다.
요즈음은 세칭 三伏(삼복)더위 철이다. 한마디로 손으로 닭과 개를 잡아먹는 계절이다. 닭은 한자로 鷄(계)이며, 奚(어찌 해)와 鳥(새 조)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奚(해)는 다시 ‘爫(조) + 幺(요) + 大(대)’로 이루어진 글자로, 손[爫]으로 죄지은 사람[大]을 꽁꽁 묶는[幺] 모습에서 출발하였다. 죄지은 연유를 캐다가 보니 ‘어찌 奚(해)’ 자로 의미가 확장된다. 蔘鷄湯(삼계탕) 안의 다양한 보양식을 뱃속에 품고 꽁꽁 묶여 있는 닭 모습을 보면 ‘닭 鷄(계)’ 자에 왜 奚(해) 자를 붙였는지 짐작이 간다.
더러는 삼계탕 대신에 補身湯(보신탕)을 먹기도 한다. 自然(자연)이라고 할 때의 然(연) 자는 ‘月(육) + 犬(견) + 灬(화)’로 이루어진 글자로, 개[犬(견)] 고기[月(육)]를 불[灬(화)] 위에 얹어놓은 모습이다. 놀랍게도 然(연)의 윗부분인 肰(연) 자는 ‘개고기 연’이다. 나중에 然(연) 자가 ‘그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만든 글자가 불 火(화)를 덧 붙여 만든 燃(태울 연) 자이다. 불태우면 나오는 것도 같은 발음의 煙(연기 연)이다. 사실 개고기는 여느 고기에 비해 발음과 같이 ‘연’한 게 사실이다.
然(연) 자의 뿌리를 원시시대 삶에서 자연스럽게 캐내기도 한다. 원시인은 낮에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따 먹으면 되지만, 어두운 밤에 배고프면 어찌할 것인가. ‘달밤[月(월)]에는 개[犬(견)]를 구워[灬(화)] 먹는 모습이 자연스럽다’에서 ‘그럴 然(연)’이 되었다고 제법 서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月(육)을 月(월)로 풀이한 예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새를 /사이/라고 하듯이, 개는 /가이/라고 했다. 그리고 말 새끼를 망아지라고 하듯이, 가이 새끼는 강아지라고 했다. 가이라는 말은 아마 주인과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나라나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犬馬之勞(견마지로)라 한다. 보신탕을 보아하니, 개는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가 보다.
初伏(초복), 中伏(중복), 末伏(말복)을 일러 三伏(삼복)이라 하는데, 伏(엎드릴 복) 자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몸에 땀샘이 없어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개 한 마리가 주인 옆에 엎드려 ‘차라리 저를 잡아 잡수시유.’ 하는 것 같아 애처롭기 그지없다.
밤새 이 글을 쓰다가 보니 멀리서 鷄犬聲(계견성)이 들린다. 손으로 잡는 이야기만 너무 했나?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손 놓고 푹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