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노원신문 13 - 비 내려 강으로 흐르다

내려 강으로 흐르다

 

도정 상호

  인류 4대 문명은 모두 물과 더불어 발생하였고, 인간사회의 작은 단위인 마을도 물이 없이는 형성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洞() 자에는 동굴 모양의 同() 자 앞에 ‘()’가 붙어 있는 것이다. 지구의 4분의 3이 물로 뒤덮여 있고, 우리 몸의 3분의 2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 신화에서 물은 창조의 원천풍요생명력 등을 상징하고, 巫俗(무속)과 民俗(민속)에서 물은 생산력, 정화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종교적으로도 물은 마음과 靈魂(영혼)을 씻어 주는 중요한 의식에 사용되고 있다.

  물은 순환한다. 순환하며 생명을 살리고 있다. 물을 뜻하는 水()의 최초 상징적인 형태는 아마도 八卦(팔괘)에서 찾을 수 있다. 태극기의 건곤리감(乾坤離坎) 중에서 坎()괘가 물에 해당한다. 감괘는 두 개의 음[--] 사이에 하나의 양[]을 가운데 끼워 놓은 형상이다. 감괘를 세워 놓으면 水() 자와 비슷하게 되는데, 가운데 긴 획은 물의 흐름이 빠르기 때문이요, 양편의 두 점은 각각 물의 흐름이 느린 것을 본뜬 것이다. 양은 가운데 하나지만 음은 양쪽에 두 개이므로 음이 강하다. 따라서 물이 음의 방향인 아래쪽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 음 사이에 양이 삽입되어 水()가 되는 이치는, 물을 창조의 원천으로 보는 데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재미있게도 물이 흘러 ‘川’이 되었을 때는 가장자리조차 물흐름이 빠름을 알 수 있다.

  五行(오행)에 水()가 나온다. 방위는 북쪽이고 계절은 겨울에 해당한다. ‘風水(풍수)’에서 ‘風()’은 하늘의 작용이므로 양에 해당하고, ‘水()’는 땅의 작용이므로 음에 해당한다. 살아서의 집인 陽宅(양택)은 산을 등지고 물을 가까이하는 지세인 背山臨水(배산임수)를 귀하게 여기고, 죽어서의 집인 陰宅(음택)은 바람을 막아주고 흘러오는 물을 바라보는 지세인 藏風得水(장풍득수)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옥편의 254부수 중에 ‘水()’부에 해당하는 글자가 가장 많아서 7% 남짓 된다. 그것은 아마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연물은 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 우) 자 안에 水(물 수) 자가 보이는가. 하늘[]의 구름 속[]에서 내려오는 물[]이 비[]이다. 농경사회에서 무당이 鈴(방울 령)을 들고 ‘비 나리기(내리기)’를 비는 주문이 ‘비나이다. 비나이다~’였고, 이 모습의 글자가 바로 靈(신령 령) 자이다. 어느 순간 주문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이 글자가 (비올 령) 자이고, 그러면 백성은 寧(편안할 령)하게 살 수 있다.

  (시내 계) 자의 奚(어찌 해)는 발음을 나타내는데, 중국 발음은 //이다. 우리말로 애 오줌 누일 때 // 하거나, 계곡에서 물이 쏟아져 내릴 때 //라고 하는 이치와 같다. 우리말 ‘시내’는 ‘// 하면서 내리는 내’에서 왔다고 하면 억측일까. 산골짜기를 뜻하는 谷(골 곡) 자는 바위 양쪽으로 물이 두 갈래져 떨어지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溪谷(계곡)이란 단어가 생긴다. 우리말 개천, 실개천도 한자어 溪川(계천)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골짜기[()]에서 물을 튀기며 목욕하는 모습이 浴(목욕할 욕) 자이다. (머리 감을 목) 자는 나무처럼 꼿꼿이 서서 머리를 감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沐浴(목욕)이란 단어가 생긴다. 또 하나, (세속 속) 자와 仙(신선 선) 자의 차이를 살펴보자. 사람이 골짜기[]에 묻혀 살면 俗人(속인)이 되고, 청정한 산에서 살면 不老長生(불로장생)의 神仙(신선)이 된다.

  溪谷(계곡)의 물이 모여 川(내 천)이 되고, ()이 모여 江()이 되는데, (강 강)의 工(장인 공) 자의 원형은 물의 깊이나 너비를 재는 기구에서 출발하여 강의 양쪽 언덕[]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모양으로 변화하였다. 강물이 범람하고 나면 땅 주인은 서로 자기 땅을 찾으려고 투쟁할 것이고, 이를 실재로 재어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 工(장인 공)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래 江河(강하)라고 할 때의 江()은 長江(장강, 양쯔 강)을 가리키고, ()는 黃河(황하, 황허 강)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예부터 군왕들은 治山治水(치산치수)를 통치의 근간으로 생각해 왔다. 治山(치산)으로 삶의 터전을 잘 닦고, 治水(치수)로 먹을거리를 충분히 공급하는 일이 통치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政治(정치)를 잘한다는 말도, 글자를 살펴보면 정답이 나온다. (정사 정) 자는 ‘正義(정의)를 위하여 치고 나간다[(칠 복)]’는 뜻이요, () 자는 물[]과 코[]와 입[]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및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작금의 정치현실은 하나뿐일 듯한 정의에 대한 해석이 당파 계파 간에 달라서 가는 길도 다른가 보다. 그 결과 백성의 머리는 헷갈리고 가랑이는 찢어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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