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인기)
도정 권상호
봄이로구나. 볼 게 많아 봄이라 하는가 보다. 보는 순간 지나가는 봄, 그래서 계절어 중에 봄만이 1음절이다. 이웃집 처녀의 보조개를 엿볼 겨를도 없이 훌쩍 지나가는 짧은 봄인지라 일본어로 봄을 가리키는 말도 이틀이 아닌 はる(하루)인가 보다. 산천에는 꽃이 피고 마음에는 사랑이 피는 봄이다. 보리밥 먹고 방귀 뀌는 봄이로구나, 봄 봄. 봄기운이 온 세상을 뒤덮으면 춘기가 발동한 마구간과 외양간의 牛馬(우마)도 코로 피리불고 뒷발질한다. 식욕이 발동하면 뭐든지 먹고 싶고, 먹고 나면 春困症(춘곤증)에 시달리게 된다.
봄을 가리키는 한자는 春(봄 춘)이다. 햇볕(日)을 받아 두꺼운 땅(三)을 뚫고 돋아나는 싹(人)의 모습이다. 봄이면 나무도 물이 오르고 사람의 다리에도 물이 오른다. 눈에 보이는 물은 내려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은 올라간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몸은 늘 겸손하게 낮추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氣(기운 기)는 올려야 한다. 그래서 氣를 양어깨에 지는 동작을 기지개라 하고, 기지개를 켜야 몸에 산소가 공급되고 기운이 솟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氣가 하늘로 올라가 뭉쳐서 눈에 보이게 된 것이 雲(구름 운)이다. 雲 자의 원형은 云(이를 운, 말할 운)이었는데 구름은 날씨를 말하므로 나중에 雨(비 우)를 云 위에 얹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는 雲을 버리고 다시 云을 쓰고 있다.
氣의 원형은 水氣(수기)가 올라가는 모습인 气(기운 기)였다. 기운이란 단어는 순우리말로 한자어 氣와 발음이 서로 통한다. 穀氣(곡기)가 있어야 기운을 차리지 곡기를 끊으면 죽게 된다. 그리하여 气 안에 곡기를 나타내는 쌀 米(미)를 넣은 것이다. 米 자는 원래는 껍질을 벗긴 모든 곡식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에서는 수천 년간 사용해 오던 氣 자를 버리고 다시 气 자를 쓰기 시작했다. 한자도 부활하는가 보다. 이 외에도 많은 옛 한자들이 부활했다.
祈禱(기도)하면 氣가 올라간다. 오메, 氣 살어! 氣를 모으면 氣合(기합)이요, 氣를 나누면 氣分(기분)이다. 화창한 봄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하늘의 기분은 氣候(기후)라고 한다. 옛날에는 15일간의 하늘 기분을 氣라 하고, 5일간의 하늘 기분을 候라고 했다. 그리하여 1년을 24氣 72候로 나누었다. 오늘날에도 24氣, 곧 24節氣(절기)는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氣가 끊기면 氣絶(기절)하고 氣가 막히면 기(氣)막힌 일이다. 이럴 때는 타고난 기운인 元氣(원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생생하고 힘찬 기운인 生氣(생기)가 돌고, 활발한 기운인 活氣(활기)를 찾으리라. 나쁜 기운인 邪氣(사기)를 물리치고, 의욕이 넘치는 기운인 士氣(사기)를 북돋워야 한다. 역시 가장 좋은 기는 人氣(인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氣, 눈에 보이는 힘은 力(힘 역{력})이다. 이 정도면 한자에 대한 氣力을 회복하리라 보는데, 쓰는 본인은 氣盡脈盡(기진맥진)이다. 오늘 너무 氣자로 氣죽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