數字(숫자) 이야기 1
도정 권상호
한자어 사이에는 원래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으나 예외로 인정하여 사이시옷을 넣는 단어가 있으니, 數字(숫자), 庫間(곳간), 貰房(셋방), 車間(찻간), 退間(툇간), 回數(횟수) 등의 6개가 그것이다.
數字(숫자), 文字(문자)라고 할 때에 공통적으로 붙어있는 字(글자 자)의 의미는 본디 한 집안[宀(집 면)]에 자손[子(자식 자)]이 불어나는 일을 가리켰다. 그런데 나중에는 文字(문자)라는 말이 생기고, 여기서의 字(자)는 文(문)과 文(문)이 합쳐져서 마치 사람의 가족이 불어나듯이 계속하여 생기는 글자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數字(숫자)든 文字(문자)든 자자하게 불어난다는 의미에서는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數(셀 수)는 手(손 수)로 헤아리기 때문에 두 글자의 발음이 똑같다. 또 손가락이 열 개이기 때문에 십진법이 기준이 된 것도 사실이다.
數字(숫자)의 시작은 一(한 일)이다. 一(일)은 글자 모양으로 볼 때 二(두 이), 三(석 삼)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一(일)의 모양은 ‘하늘’ 또는 ‘빛’의 모양을 본떴다. <老子(노자)> 42장에 ‘道生一(도생일) 一生二(일생이) 二生三(이생삼) 三生萬物(삼생만물)’이라 했다. ‘道(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라는 의미이다. 道(도)가 하나를 낳는다고 했을 때 그 하나는 주역에서 말하는 太極(태극)이다.
<說文解字(설문해자)>에는 一(한 일)을 ‘惟初太極(유초태극) 道立於一(도립어일) 造分天地(조분천지) 化成萬物(화성만물)’로 풀이하고 있다. ‘오직 처음에는 태극이요, 道(도)는 하나에서 서며, 천지로 나뉘어지고, 변화하여 만물을 이룬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太極(태극)은 道(도)와 통한다. 비유하면 一(일)은 하늘이며, 二(이)는 땅이다. 一(일)은 아버지이고 二(이)는 어머니이다. 그렇다면 三(삼)은 부모가 낳은 자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一(일)이 太極(태극)이라면, 二(이)는 음(陰)과 양(陽)으로, 三(삼)은 천(天), 지(地), 인(人)으로 풀이할 수 있다.
兀(우뚝할 올), 元(으뜸 원), 天(하늘 천), 雨(비 우̀) 등에 들어있는 一(일)자는 모두 하늘을 뜻함을 알 수 있다.
二(두 이)의 두 획은 하늘과 땅을 나타낸 글자이지만, 전체적으로는 ‘地之數也(지지수야)’ 곧, 땅의 수이다. <周易(주역)>에서는 ‘天一地二(천일지이)’라고 하여 하늘이 一(일)이라면 땅은 二(이)로 보고 있다. 亘(뻗힐 긍), 亞(버금 아), 井(우물 정), 互(서로 호), 巫(무당 무) 등에 二(이) 자가 들어있다.
一(일)은 홀수의 시작이고, 二(이)는 짝수의 시작으로 대단히 중요한 글자이다. 立(설 립), 旦(아침 단) 등의 아래 획은 의미적으로 볼 때 땅을 가리킨다.
三(석 삼)은 天地人之道也(천지인지도야)라 했다. 三(삼)의 각 획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지칭한다.
品(물건 품), 參(석 삼, 간여할 참), 森(나무 빽빽할 삼), 山(뫼 산) 등에 나타난 셋이란 의미는 무한히 불어나는 수이다.
四(넉 사)는 象四分之形(상사분지형)으로 넷으로 나뉘는 모습을 본떴다. 금문은 대개 一(일)자를 네 개를 가로로 쌓아놓은 모양이다. 四(사)를 입(口)으로 숨을 쉬는 형상으로 보기도 한다. 곧, 呬(숨쉴 희)의 본자로 보는 견해이다.
五(다섯 오)의 金文(금문) 모양은 一(일)자 다섯 개를 겹쳐 놓은 형상이었다.
六(여섯 륙)은 八(여덟 팔)에서 둘[亠(두)]을 들어낸 모습이다.
七(일곱 칠)의 十(열 십)보다 한참 낮은 수의 의미이다. 갑골문에서는 十(십)으로 쓰고 있다. ‘切(끊을 절)’ 자의 초문으로 쓰이기도 했다.
八(여덟 팔)은 둘로 나뉘어져 서로 등지고 있는 모습이다. 分(나눌 분), 半(반 반), 公(공변될 공), 谷(골 곡), 沿(따를 연), 鉛(납 연), 柬(가릴 간), 揀(가릴 간), 諫(간할 간), 蘭(난초 란) 등의 글자에는 나눔의 의미가 담겨 있다.
九(아홉 구)는 十(열 십)에서 하나를 빼내는 모양으로 究(궁구할 구) 등에 九(아홉 구)의 의미가 담겨 있다.
十(열 십)의 갑골문 모양은 ‘丨’이다. 금문에서는 중간에 둥근 점을 붙이기 시작하였고, 전서 이후에는 가로선 하나와 세로선 하나를 교차시켜 사방으로 퍼지는 의미를 살리고 있다.
모양에 있어서 재미있는 사실은 二(이), 四(사), 六(육), 八(팔), 十(십) 등의 짝수는 절묘하게도 좌우대칭이다.
수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면 三(삼)은 길한 수로, 十(십)은 완전수로 보았다. 四(사)는 死(사)와 발음이 같아서 피하였으며, 八(팔)은 發(발)과 발음이 비슷하여 환영을 받았다.
우리말에서 ‘하나’라는 말은 ‘나’자가 들어있는 것을 볼 때, 나의 것이다. 따라서 하나밖에 없는데 남에게 주면 바보다. ‘둘’은 둘이서 두리두리 공유할 수 있는 수이다. ‘셋’은 자립적으로 세울 수 있는 수이고, ‘넷’은 너의 수로서 베풂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다섯’은 모두 다 설 수 있는 안정감 넘치는 수이다.
숫자와 관련한 한자어로는 四端七情(사단칠정), 四通八達(사통팔달), 陰陽五行(음양오행), 九死一生(구사일생), 九折羊腸(구절양장), 九重宮闕(구중궁궐), 十中八九(십중팔구), 十匙一飯(십시일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