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내가 숨 쉬는 공기 /연신내 에세이

연신내 에세이


‘내가 숨 쉬는 공기’

김향기 참좋은이들21  발행인


♥삶을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만 살아간다고 믿는 사람은 만사가 명쾌하고 명징하게 이뤄진다고 느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20~30대 시절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40대를 훌쩍 넘어 이제 50에 접어든 나이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 자신감을 상실했다고 하는 차원과는 달리 좀 신중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삶이란 참 복잡하고 모호하고 신비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 말이다. 밤마다 갖가지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마음을 비우고 살지 못하는 까닭인가. 아니면 점점 무형세계로의 입적(入籍)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조(前兆)에서 비롯되는 현상일까. 이럴 때 최선의 방책은 그저 삶에 대해 겸허해 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이를 기시감(旣視感)이라고도 하고 영화 제목처럼 ‘데자뷰’라고도 하는데 요즘 이러한 것을 경험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뇌 기능의 이상으로 인한 일종의 병적 현상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 MIT대 신경학과의 스스무 도네가와 교수팀은 최근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보고서에서, 뇌의 해마 내에 있는 ‘치아 이랑’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데자뷰가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데자뷰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듯 초자연적인 체험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들을 구별해내는 뇌기능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는 결론이다. 과연 정말 그런 것일까. 그것이 과학적 진실이라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에 망서려지는 것은 삶의 신비성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삶의 신비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 존재가 다차원적 복합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는 듯싶다. 영과 육을 가진 인간은 무형과 유형의 세계를 넘나드는 존재이며 혈통적으로 역사적인 결과체로서 이 지구, 이 우주에서 여러 모습으로 무수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실존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를 잘 잘 설명해 주는 말이 불교의 인드라망이다.

인드라망은 제석천이 사는 도리천 세계의 하늘을 뒤덮는 그물을 지칭한 것인데, 그물코마다 걸린 보석구슬들이 서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보석이 다른 보석에게 빛을 주고 다른 보석들은 또 하나의 보석에게 빛을 준다는 뜻이다.

이는 세포 단위의 유전자가 전체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어 부분과 전체가 함께 공존하는 인간 신체는 물론 거대한 이 세계 우주 또한 인드라망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 것이 있고, 이 것이 생기므로 저 것이 생기는 삶의 묘리! 그대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그대가 있다는….

 

이러한 삶의 인드라망적인 묘리(妙理)와 비의(秘義)를 잘 보여주는 최근 영화가 바로 ‘내가 숨 쉬는 공기’다. 한국의 신인 이지호 감독이 시나리오 하나로 기적 같은 캐스팅을 이뤄냈다고 평가받는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스타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불교적, 동양적 정서가 물씬하게 풍긴다. 행복, 기쁨, 슬픔, 사랑 등 4가지 인간의 감정을 그린 4가지 에피소드가 결말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우연의 인간 관계가 필연으로 확대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골격이다.

 

필자는 5백석 규모의 서울극장에서 이 영화를 홀로 보았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날 오후 2시의 상영관이 텅 빌 수 있었을까.

그런데 또한 묘하게도 필자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듯한, 빈 자리마다 사람들이 앉아 함께 호흡하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언젠가 꼭 경험했던 것과 같은 느낌으로! 그러면서 지금 동시대 살아가는, 아니 과거 지구촌을 다녀간 모든 사람들이 내 몸 세포 어디엔가 공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을 요로, 하늘을 이불로 삼아 동거하고 있는 지구촌 식구(食口)여! 그대와 나는 지금 같은 공기로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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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화국
                          산경 김향기

이 나라의 나무는 다 나무다
난장이건 키다리건
하늘 향해 머리 들고 팔 벌린
나무는 다 나무다
그래서 산을 이루고
산은 산이다


이 나라의 풀은 다 풀이다
습지에 살든 고지에 살든
한 줄기 바람에도 몸을 떠는
풀은 다 풀이다
그래서 숲을 이루고
숲은 숲이다

이 나라의 물은 다 물이다
시궁창을 흐르든 구름되어 창공을 날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다 물이다
그래서 강이 되고
강은 강이다


이 나라의 사람은 다 시인이다
군인도 정치인도 검사도 변호사도 교사도 기자도 농사꾼도 장사꾼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다 시인이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딸도
다 시인이다
시인은 눈도 귀도 입도
온몸의 세포까지도 시다
잠꼬대도 시다
이 나라의 나무과 풀과 물이 모두 시이고 산과 숲과 강이 모두 시이듯이
이 나라의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잡지의 말과 글은
모두 알록달록 시다

존재의식(ego)을 해탈한 나무와 산, 자연의 순리에 체화된 풀과 숲, 자유의 표상을 구현한 물과 강. 이들은 말이 없고 언어가 없다. 그럼에도 존재 그 자체로서 가장 시다운 시를 형상화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잡지를 만드는 일마저 얼마나 부질없이 느껴지는지. 그래서 새삼 질문을 던지거니와 시란 무엇일까? 뉴스를 들으며 신문을 보며 잡지를 만들며 과연 시인공화국은 도래할 것인가 하는 역설적이고 어리숙한 질문을 땅의 모든 이들에게 던져본다. 말과 글이 들끓어 넘치는 이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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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4월은 팜므파탈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계절입니다.
이러한 계절에 오랜만에
향기님과의 편한한 만남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따스한 대화를 나눌 겨를도 없이
수선화만 바라보다가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주변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마음 푸근히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에는
아깝고도 짧은 봄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만은
릴렉스하게 두 다리를 뻗고
머리를 식히고 싶습니다. 
편안한 4월 보내세요.
오늘 하루도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