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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서예> 2025. 5월호 논단
- 날줄과 씨줄, 그리고 글씨
날줄과 씨줄, 그리고 글씨
권상호(權相浩)
가정에서 베틀이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날줄과 씨줄을, 감염과 전염 또는 망각과 착각처럼 가끔 혼동하는 수가 있다. 날줄과 씨줄은 각각 날실과 씨실이라고도 하며, 직물이나 그물을 짜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각각 세로 방향의 실과 가로 방향의 실을 의미한다. 날줄은 이미 ‘나 있는 줄’이고, 씨줄은 날줄 사이사이에 ‘씨를 뿌리는 줄’이라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는다. 날줄 없는 씨줄은 없다. 날줄이라는 기본 구조가 없으면 씨줄을 엮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필자가 관심하는 줄은 ‘씨줄’의 ‘씨’에 있다. ‘글씨’에도 ‘씨’가 있기 때문이다. 글씨의 ‘글’에서는 ‘긋다’가 파생되고, ‘씨’에서는 ‘쓰다’가 나온다.
베틀에서 이미 나 있는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걸어 주는 기구는 ‘북’이다. 타악기에도 북이 있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두 손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밀당을 한다는 점이다.
서예 용어로는 ‘날줄’ ‘씨줄’보다, 획(劃)을 뜻하는 ‘금’ 자가 들어간 ‘날금’ ‘씨금’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지구과학 시간에 날금은 경선(經線)으로, 씨금은 위선(緯線)으로 배웠다. 나아가 경위(經緯)는 일의 진행 과정, 경위(涇渭)는 시비의 분간, 경우(境遇)는 사리나 도리를 뜻하니 주의해야 한다.
‘씨’라는 말은 식물의 종자는 물론, ‘씨가 좋은 소’라고 할 때는 동물에게, ‘성씨(姓氏)’라고 할 때는 인간에게도 여지없이 씨가 붙는다. 씨가 들어가는 말에는 ‘글씨’ 외에도 ‘마음씨’ ‘말씨’ ‘솜씨’ 등이 있다. ‘맵시’는 맵씨가 변형된 말이다. ‘씨’는 사람의 태도나 재주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그날의 기상 상태를 뜻하는 ‘날씨’도 있다.
씨에서 뿌리가 뻗고 줄기 가지가 생기며, 꽃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은 모두 씨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가장 끔찍한 재앙을 뜻하는 속담이 ‘씨가 마르다’이다. 씨는 반드시 남겨야 하고, 또 뿌려야 한다. 글씨도 마찬가지로 화선지라는 밭에 먹이라는 씨를 뿌릴 때 발아하고 먹꽃이 만발하며 묵향이 진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작가의 목소리를 영원히 대변하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남게 된다. 하지만 육신은 나날이 노화하고 끝내 흙으로 돌아가므로 믿을 게 못 된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 중에 ‘경경위사(經經緯史)’가 있다. 이 구절이 그의 묵란(墨蘭) 작품 위에는 유인(遊印)으로 찍혀 있다. ‘경학(經學)을 날줄로 삼고 사학(史學)을 씨줄로 삼겠다’라는 추사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곧, 만고 진리의 말씀인 경전(經典)을 먼저 읽어 자아가 확립한 뒤에, 시끄럽고 시비 많은 사서(史書)를 읽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선경후사(先經後史)와도 상통한다.
조선 순조 20년(1820)에 다산 정약용이 엮은 책, <이담속찬(耳談續纂)>에는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農夫餓死枕厥種子)’라는 속담이 나온다. 필자는 여기에서 ‘선비는 굶어 죽어도 글씨는 베고 죽는다(士人餓死枕其文字)’라는 말을 대구로 덧붙여 본다.
정보화시대에 넘치는 정보로 인한 정신적 어지러움을 없애고,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방법으로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의 독서와 서예를 추천한다. 날줄과 씨줄을 촘촘히 엮어 아름다운 비단을 짜듯, 날금과 씨금을 엮어 나만의 진솔한 붓글씨를 써 보자. 나아가 소통과 공유의 서예 활동을 통하여 극단으로 분열된 마음을 치료하고 화합과 행복의 장을 만들어나가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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