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공모전 뒤안 길에서

모든 제도에서 벗어났다.
무인도에서 살고 싶다.

도시 속에서도 혼자인 삶이 먹이다.

'먹은 어린아이처럼 잡고, 붓은 장군처럼 잡으라.'

이 말은 먹은 부드럽게 갈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바쁜 세상에 언제 먹 갈아 쓰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먹물도 많이 나와 있는데,
힘차게 갈아도 시간이 걸리는데
어린아이처럼, 환자처럼, 앉은뱅이처럼, 파리 뒷다리 힘으로 갈자면
세월아, 네월아 해야 하는데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언제까지나 그짓을 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은 갈아서 쓰는 게 아니라 풀어서 쓰는 것이다.'

이 말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가면서 갈라는 것이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붓골을 흘러내리는
먹물의 소리를 들어가며 글씨를 써야 한다.
이윽고 붓골짜기를 흐르던 먹물이
종이 바다에 이르러 파문을 일으키며 멀리멀리 퍼진다.

어느덧 협곡을 달리던 아픔도,
바위에 부딪히던 통증도 사라지고 만다.

붓이여, 붓이여,
장군이 창과 칼로 적을 무찌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각오.
가슴에 의기가 뭉치고, 팔에 힘이 절로 오른다.

더러는
간호사가 주사기로 엉덩이 찌르듯,
과도로 사과 껍질 깎듯, 톡! 치고 깎아 나가야 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야 한다.

먹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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