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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일 - 7월 25일(화): 포카라(Pokhara)에서 담푸스(Dhampus)에 오르다
안나푸르나 봉을 오르지는 못할지언정 좀 더 가까이서나마 보려고 길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페디(Phedi)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등산이다. 북한산 정도 오른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처음부터 깔딱 고갯길이라 미끄럽고 숨이 차올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친 예비 여의사 김송이 선생이 약사인 어머니와 함께 같은 길을 오르게 되었다. 조금씩 오르다가 쉬면서 넓어가는 전망을 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간쯤 올랐을까, 김송이양의 발에서 피가 났다. 알고 보니 풀 거머리 탓이었다. 약사인 어머니가 응급처지를 하고 또 올랐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대여섯 집이 모여 사는 마을이 나왔다. 네팔 농가는 대개 능선을 따라 소똥처럼 드문드문 널려 있었다. 산비탈은 아마 산사태의 위험 때문이라 생각된다. 모두 대문 없이 오픈된 집들이었다.
길목에 자리한 한 집에 오르자 농부 두 사람이 전판암을 깔아서 만든 마당에 앉아 대삼태기, 대걸망 등을 만들고 있었다. 옆에서 자투리 댓잎을 뜯어 먹는 염소와 함께 놀다가 기념촬영을 하고 또 다시 배낭을 메고 올랐다. 우리 일행은 돌계단을 오르지만, 바람과 구름은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을 오르고 있었다.
사람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고추잠자리를 보니 다행히 환경은 다행히 잘 보존되고 있다. 거의 모든 집에서 무소 한두 마리와 염소 몇 마리, 그리고 닭을 놓아기르고 있었다. 소는 존경의 대상이라 잡아먹지 않지만 무소는 잡아서 훈제까지 해 먹는 풍습이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 아주머니는 더러운 마구간의 두엄을 맨손으로 일일이 훑어내고 있었다. 시집갈 때쯤 되어 보이는 딸내미는 애지중지 키운 탓인지 보고만 있었다. 모두 돌을 쌓아 지은 집이라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으리라 생각된다. 안방과 부엌의 안쪽은 모두 황토로 칠해져 있으며 살림살이는 비교적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무를 적당히 깎아 만든 작은 침대에 모두 모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떤 집은 너무 작아 고개를 숙이고 드나들 정도다. 멀리서 볼 때는 다 행복동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대하니 가난한 이웃들이었다. 그래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걸 보니, 우리와는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부족 속에 정신적 풍요는 누리고 사는 것 같다.
두 시간 반 정도 오르자 해발 1650m 위에 있는 최종 목적지 담푸스(Dhampus)에 도착했다. 1130m의 페디(Phedi)에서 올라 왔으니 520m 오른 셈이다. 산장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고, 이어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중식 시간인지 남학생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여학생은 삼삼오오 모여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덩치로 볼 때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놀이 방해는 둘째 치고, 다짜고짜로 운동장의 학생들 틈새에 끼어들어 대화를 나누고자 했지만 피하는 눈치였다. 푸른 교복 차림의 여학생 몇 명이 잘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우리 팀의 의사 김송이 선생이 쉬이 해결해 주니까 신기한 듯 이방인에 대해 다정하게 다가왔다. 즉석 수학 과외로 한국 수학의 주가가 네팔의 산만큼이나 올라갔다. 이윽고 거부감 없이 교무실에 들러 선생님들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양철지붕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창고 같은 교무실이었다. 벽에 걸린 네팔 지도와 마주 붙여 놓은 8개의 교사 책상 가운데에 덩그렇게 놓인 지구본 하나가 교보재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벽에는 여지없이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고, 동방인과 무척 닮은 사람의 사진이 있어 물어본 즉, 이 학교에 기부금을 희사한 일본인 사업가 사진이란다. 한국인으로서도 뭔가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준비해간 순지와 먹물을 교장 선생님 자리 위에 펼쳐 놓고 기념 휘호를 했다. ‘한국과 네팔의 우의를 위하여’라고 정음고체(판본체)로 쓰고 정성 드려 낙관한 후에 증정했다. 한 미남형의 물리선생은 내게 바싹 다가와 한국에 유학하고 싶다고 하면서 루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교사는 자기 집이 있는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페디까지 와서 다시 담푸스까지 매일 오르내리며 출퇴근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나기 마련인 것을. 하기야 나도 중학교 시절 이십오 리나 되는 학교 길을 고추장 단지를 들고 걸어서 나르지 않았던가. 교실 수업도 잠시 참관했다. 우리의 60년대 추억의 콩나물 교실 그대로였다. 교실 뒤에는 의자와 책상이 없는 학생도 10여 명 되는데, 그래도 공부에 열중하는 걸 볼 때, 지금쯤 편안한 개별 의자에 앉아 책상에 머리 떨구고 잠자고 있을 한국 학생들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선생님의 안내로 모두들 밝게 웃는 낯으로 인사를 나누고 곧, 학교를 뒤로 하고 떠났다. 우리의 경우 이만큼 잘 살게 해준 지도자와 윗세대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 번 더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심전력으로 노력하여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서도록 노력해야겠다. 빨리 고국에 돌아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자.
와, 언덕을 오르자 순간 8091m의 안나푸르나(Annapurna) 봉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감동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곧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고 다시는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겨울에 오면 자주 대할 수 있지만 여름철에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트래킹 하러 오는 사람조차 매우 드물었다. 솔직히 우리 네 사람 외에는 현지인들뿐이었던 것 같다. 무거운 곡물을 지고, 산길만큼이나 노년이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를 대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곧 파노라마 포인트라는 이름을 가진 숙소를 정하고, 시장한 배를 함께 달랬다. 다시 산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김송이씨 모녀는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그길로 급히 페디로 내려갔다.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 내 홈피에 올린 안부 글을 보니 잘 내려갔나 보다. 마을의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면 온갖 대화와 사진 촬영으로 오후 시간을 비교적 여유 있게 보냈다. 이성만 선생님은 사진에 열중하고 나는 크로키에 열중했다. 자리에 모인 이웃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그렸다. 네팔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마저 너무나 달리 쓰는 통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그리하여 네팔어로 숫자를 쓰고 읽는 법도 배웠다.
숙소에서 주인의 양해를 얻어 벽에 글씨를 썼다. 안나푸르나 봉 사진 위의 하얀 빈 벽에다가 붓으로 직접 다음과 같이 써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했다.
‘아름다운 휴식처 파노라마 포인트’
산꼭대기 마을이지만 궂은 날씨로 일찌감치 어둑어둑해졌다. 갑자기 엄습해 오는 향수를 달랠 겸, 홰에 오르는 암탉 한 마리를 보고 닭백숙을 해 먹자고 제의했다. 종교적 이유로 이웃에 가서 암탉 한 마리를 숨죽여 왔다. 물론 백숙 요리를 모르는 주인 내외인지라 우리가 직접 요리법을 가르쳐 가면서 함께 해 먹었다. 주인 내외도 대학 공부로 카트만두에 가 있는 자식 자랑에 우쭐하다가도 객지에서 고생할 자식 생각에 또한 울적한 기분도 들었는지, 준비해 둔 네팔 민속주를 내 놓으며 함께 자리했다. 우리와 한 자리에서 끝내 죽마저 맨손으로 먹는 주인 내외의 모습에 관습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했다. 낮에 맨손으로 두엄을 치우던 아주머니도 아마 그 손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겠지. 저녁 식사 중, 늦게 전기불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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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만
그 날 도정님의 제의로 닭을 잡아 순수 한국식 백숙을 네팔에 전수하면서 닭죽까지 만들어 네팔의 토속주와 함께 먹은 그맛, 아, 지금도 황홀하구나.
다재 다능한 우리 도정님의 해박한 지식과 명석한 머리, 그리고 글 재주는 가깝고 먼 당신이구나!
청림
열하룻째 날의 여행은 감동입니다
화요일이라 더 열정적이었나봐요
권상호
너울 파도와 같이 홈피에 덩실 넘어 오시고, 또 댓글까지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미니홈
작고 아담한 공간으로 그래서 서로 부딪치는 경우도 있어요 사람끼리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차차 적응이 될런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동안 심적으로 바빠서 놀러 못왔어요
자주 선생님의 덕담 과 지식 주으러 노크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권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