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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부부의 밝은 미소
* 도로 위로 내리 꽂히는 히말리아 산중의 폭포. 이런 곳을 여러 개 통과하면 차는 자동세차가 된다.
제9일 - 7월 23일(일): 티베트에서 네팔로
定日縣(정일현, 딩르시엔, Dingri)의 끝 지점, 定日(정일, 딩르, Dingri)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비교적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고소증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무기력증이다. 의지로 버텨나가야 한다. 내가 선택한 여행지이고, 또 힘들기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인 것이다. 고소에 견디려면 잘 먹어야 한다. 억지로 밥을 뜨거운 국물에 말아 먹었다. 녹차 한잔을 들이킨 후에 저 남쪽에 얼굴을 구름에 가리고 있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8850m)을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 최고란 이유로 끝없는 정복과 기록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는 77년 고상돈의 등정으로 세계 8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나라가 되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현재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이제 얼마 안 있어 고소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제법 흥이 난다.
교명이 보이지 않는 초등학교에 들렀다. 학교 뒷산에는 흰 돌을 박아서 격문을 써 놓았다.
十年樹木(십년수목) 십년을 내다보고는 나무를 심고,
百年育人(백년육인) 백년을 내다보고는 사람을 기른다.
또한 정문 옆 시멘트벽에는 다음과 같은 붉은 페인트 글귀가 씌어 있었다.
校興我榮(교흥아영) 학교가 부흥하면 나의 영광이요,
校衰我恥(교쇠아치) 학교가 쇠퇴하면 나의 수치이다.
이 전에는 티베트어로 모든 격문이 씌어 있었을 텐데, 중국의 끝자락에도 티베트어 없이 한자로만 커다랗게 격문은 써놓은 것은 티베트 어린이들에게 한족의 문화를 가르치기 위하여 그런가 보다.
교사 벽에도 예외 없이 붉은 글씨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胸懷祖國(흉회조국) 가슴에 조국을 품고
振興中華(진흥중화) 중화민국을 진흥시키자.
放眼世界(방안세계) 세계로 시야를 넓혀
展望未來(전망미래) 미래를 전망하자.
30명 정도 되는 저학년 아이들이 운동장 가에 걸터앉아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글짓기 시간인가 보다. 한 선생님의 안내로 교무실에 들렀다. 定日縣(정일현, 딩르시엔, Tingri) 崗嘎鎭(강알진, 강가쩐, Ganggazhen)에 있으므로 학교명은 崗嘎鎭中心小學였다. 칙칙한 냄새가 나는 방의 전면에는 마오쩌뚱, 주인라이, 장쩌민, 후친타오 사진이 차례로 걸려 있었고, ‘시짱자치구 성립 40주년’을 경축하는 문구도 보이는 걸 보니, 중국은 1966년에 비로소 티베트를 완전 장악하게 되었나 보다.
교무실 한쪽 벽에는 붉은 五星旗를 중심으로 역시 붉은 교사를 위한 격문이 씌어 있었다.
敬業愛崗(경업애강) 직업을 공경하고 동산을 사랑하며
以身作則(이신작칙) 몸소 본보기를 보이자.
그 밑에도 웬 수칙들이 그리 많은지 교훈 등의 액자에 넣은 글귀가 13개나 나란히 걸려 있었다. 전교생이 조기독서와 조기체조 시간을 갖고 오전 오후 각각 3시간씩 하루 6시간의 수업을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1학년도 영어 시간이 있음은 물론 語文[중국어], 藏文[티베트어], 수학, 思品[사회], 자연,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을 공부하고 있었다. 깡 시골에도 교육열만은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직도 방학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내일부터란다.
학교를 나와 네팔을 향해 달린다. 달리는 차창 왼쪽으로 멀리 에베레스트 산의 봉우리들이 이별의 인사라도 하는 듯 구름 깃을 흔들어 준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한적한 토담집 속 살림을 보고 싶어 들렀다. 겉보기에 딸 하나를 둔 신혼 살림집이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정갈하게 차려놓고 있었다. 큰방 한 가운데에는 난로가 있고, 흙바닥의 가장자리로 차례대로 낡은 카펫 석장이 깔려 있었다. 옆방에는 놀랍게도 어릴 때 보았던 베틀이 놓여 있었다. 까만 걸 보니 야크 털로 천을 만드나 보다. 주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조금은 여유 있게 길을 나섰다.
드디어 여행길에서 가장 높은 히말리아 산맥을 넘는다. 노중에 독일인 집시를 만나 함께 타고 갔다. 이 고개에도 어김없이 경번, 곧 타르초(tharcho)가 휘날린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평화와 행복을 바라며, 거친 바람은 부드럽게 흐린 바람은 맑게 해 주고 있다. 너무나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기 때문에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를 맛볼 수 있다.
길 계곡 앞쪽에 8012미터의 希夏邦馬峰(희하방마봉)이 멀리서 흰 머리를 쭉 내밀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기분이 좋을 만해서 聶拉木縣(섭납목현, 니엘라무시엔, Nyalam) 공안국의 검문이 또 있었다. 티베트 챙기기에 빈틈이 없다고나 할까. 내용으로 봐선 가연성 물건과 폭발물 휴대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한참을 서쪽으로 달리다가 보니 우리 차는 굼실굼실 낮은 곳을 향하여 꼬꾸라지듯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름이 가까이 드리우기 시작하고, 갑자기 나무들이 나타나 관목에서 중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회색이 순간 녹색 천지로 바뀌고 도처마다 폭포 천지이다. 이윽고 산굽이를 돌아들자 좁은 골짜기 양측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중국의 마지막 도시 樟木(장무)에 도착했다. 놀라운 일은 자신도 모르게 두통이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사라졌다. 고산증은 이제 끝이다. 우리와 닮은 중국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좀 더 내려가자 중국 해관을 만났다. 며칠을 함께한 라싸의 랜드 크루저 기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무척 피곤해 보이는 그는 오늘 저녁, 장무에서 기분 좋게 자고, 내일 출발할 거란다. 중국 국경 통과 수속 및 네팔 입국 수속을 비교적 쉽게 밟았다.
여성들의 이마의 붉은 점, 소녀들의 뚫은 코와 귀를 보니 분명 티베트와는 전혀 다른 나라 네팔에 온 것이 틀림없다. 흥정을 통하여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가는 택시를 대절하여 다시 질퍽한 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비와 구름을 뚫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운무와 폭포, 지금까지와는 너무나 다른 풍광에 눈과 귀가 믿어지지 않는다. 잠시 내려서 세차게 몰아치는 계곡 위의 출렁다리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출렁다리 한가운데는 번지점프시설이 되어 있었다.
길가의 바나나가 흔한 걸 보니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가 보다. 길가의 낯익은 옥수수와 논밭은 순간 고향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이다. 산은 경사가 매우 심하여 계곡물은 모든 걸 삼킬 듯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험난한 산골짜기에 쏟아질 듯이 매달린 집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나 다를까 산사태와 차량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로컬 버스에 떨어져 27명이 죽었단다. 한곳에는 떨어진 차를 끌어 올리느라 철삭을 감고 있었다. 멀리 산 능선을 따라 자그마한 집들이 작은 구름떨기와 같이 펼쳐져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은 인간의 거대한 조각 작품이다.
허름한 인도산 택시를 타고 히말리아 산맥 남쪽 골짜기를 4시간 남짓 달려 내려오자 비로소 넓은 평지를 만났다. 수도 카드만두(Kathmandu City)였다. 차량 매연으로 도시 전체가 뿌옇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차량은 대소에 관계없이 거의 인도산 TATA만 보이는데 기름이 나쁜 탓인지 아니면 여과장치가 잘못된 탓인지, 모든 차종이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느릿느릿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물결은 퇴근길의 복잡함을 더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도 많았다.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곳곳에 실총을 둘러맨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살벌한 도시 풍경 그 자체였다.
우리 차는 카트만두 시내를 가로질러 국립종합운동장 담을 끼고 돌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왕궁 근처에 있는 ‘빌라 에베레스트’라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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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송형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