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한글 서체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2019.7.27. 부산일보에서 발표)

한글서체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

 

권상호(경희대 문학박사, 라이브서예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일제강점기를 겪고 난 후 서구식 교육제도의 도입과 정보화 시대를 맞이한 이래로 인터넷 역기능에 의하여 전통예술로서의 서예 교육과 그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선 서예 교육 측면에서 살펴보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과서 집필 기준이 되는 ‘미술 편수 지침’의 용어에서 서예에 관한 내용은 별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교과서로나마 독립되어 있던 서예가 미술 교과서 속에 포함되고, 사실상 미술수업 시간에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학교 밖의 사회교육에 의존하고 있던 서예 교육도, 교외에서의 서예학습이나 수상 내용 등은, 생활기록부에 일절 적지 못하도록 규정함에 따라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학생이 게임중독에 빠질지언정 슬로아트인 서예를 접하는 일은 시간 낭비로 인식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에서는 7차 교육과정(1997년 1월 ~ 2007년 2월)을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을 전면적 또는 일률적으로 개정하지 않고, 수시 부분적으로 개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기당 이수 과목을 최대 5과목으로 줄이는 ‘교과 집중이수제’를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예·체능 과목은 특정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특히 고등학교 미술 교사는 설자리를 잃게 되고, 필자가 쓴 고등학교 서예 교과서 1995년 9월 30일에 교육부 검정을 받고, 이듬해 출판을 시작하여 1999년 3월 1일에 마지막으로 발행한 검인정 고등학교 서예 교과서. 김양동 권상호 공저. ㈜ 두산.

도 인쇄된 뒤에 폐지 처리장에 버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실용서예의 영역은 컴퓨터 폰트에게 자리를 내주고, 모든 종이사전도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리하여 정부 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어쩔 수 없이 표준국어대사전(이하 ‘사전’) 92년 8월부터 99년 8월까지 예산 112억 원(국고 92억 원, 두산동아 20억 원)을 들이고 이름난 국어학자 500여 명을 참여 시켜 1999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초판에는 48만 어휘가 수록되었다. 그 뒤 2008년, 9년 만에 51만 어휘가 수록된 개정판을 만들었지만, 종이 사전으로는 내놓지 않고 웹 사전, 포털 사전, 전자사전으로만 내놓았다.

을 편찬 관리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표준어가 등재된 사전이라 하지만 이를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예 관련 용어가 턱없이 등재되지 않음은 물론 서체 관련 용어 풀이에도 문제가 많다. 하지만 줄곧 업데이트 되고 있는 실정이고, 사용자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사실상 대표적인 국어사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간 많은 서학자(書學者)의 노력의 결과로 일궈낸 한글서체 명칭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관련 서체 용어들을 찾아 그 의문점을 짚어보고, 나아가 한글서체의 세계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서체, 글씨체, 서사체, 필체, 서풍 등을 비슷한 의미로 보고 있다. 그런데, ‘서예(書藝)’ ‘서도(書道)’ ‘서법(書法)’의 생략형으로서 ‘서(書)’자는 표제어로 싣지 않고 있다. 서(書)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글자(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의 부호, 文字)’ ‘글씨’(쓴 글자, 筆法, 筆跡) ‘쓰다’ 등의 의미에 국한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서체(書體)’는 3가지 의미 서체(書體) ① 글씨를 써 놓은 모양. ≒글씨체, 서사체, 필체. ② 붓글씨에서, 글씨를 쓰는 일정한 격식이나 양식. 한자에서 해서·행서·초서·예서·전서, 한글에서 궁체 따위를 이른다. ≒글씨체, ③ 『매체』 자형의 양식. 명조, 송조, 청조, 고딕 따위의 글씨체를 이른다. ≒글꼴, 글씨체.

가 있지만 여기서는 ‘서예에서 글씨를 쓰는 일정한 격식이나 양식’으로서의 서체만을 다루기로 한다. 한자에서의 ‘해서·행서·초서·예서·전서’, 한글에서의 ‘해례본체·언해본체·궁체’ 따위가 바로 서체에 해당한다. 따라서 서체는 ‘필체’보다 큰 개념이고, ‘서풍’과 달리 의미영역이 분명하다고 본다.

‘필체(筆體)’란 ‘글씨를 써 놓은 모양’으로 사전에서는 ‘서체’와 같은 뜻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김생의 필체가 뛰어나다’ ‘김정희의 필체를 본뜨다’의 예에서 보듯이 필체는 서체보다 다소 협의의 개념으로 ‘손으로 쓴 개개인의 필체’라는 개념이 강하다.

‘자체(字體)’는 ‘자형(字形)’ ‘글자의 체’ 등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는데, 순우리말 ‘글꼴’로 순화하면 좋을 듯하다. ‘자체’는 손으로 쓴 ‘필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쇄된 글자체’ ‘글자꼴’ ‘글꼴’의 의미에서 보면, 컴퓨터나 인쇄 용어로 쓰이는 ‘폰트(font)’와 상통하는 용어다.

서체와 비슷한 의미로 ‘서풍(書風)’도 있다. 사전에서는 이를 ‘붓으로 글씨를 쓰는 방식이나 양식’으로 풀이하고, 그 예로 ‘자유분방한 서풍’을 들고 있다. 서풍(書風)의 ‘풍(風)’자에는 ‘모습, 기질, 기세’ 등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풍(風)은 ‘허목서풍(許穆書風)’ ‘이왕서풍(二王書風)’에서처럼 개인적인 모습이나 기질일 수도 있고, ‘당대서풍(唐代書風)’ ‘북위서풍(北魏書風)’에서처럼 시대적, 양식적 내용을 뜻할 수도 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실생활에서 사용되던 한글서체로는 사실 ‘언해본체’와 ‘궁체’가 전부였다. 한글서체의 명칭에서 ‘궁체(宮體)’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판본체(板本體)’와 ‘민체(民體)’ 등의 명칭은 시간이 갈수록 논란이 많아 공식적으로 사전에 등재되지도 못했다. 이의 대안으로 적실하게 제안된 명칭 둘이 있으니, 곧 한글 창제 당시의 네모난 자형을 ‘해례본체(解例本體)’, 한자 해서와 잘 어울리는 자형을 ‘언해본체(諺解本體)’ 이 두 명칭은 허경무 씨가 제시한 명칭으로, 문헌상에 나타나는 ‘해례본체’의 다른 명칭으로는 ‘반포체’ ‘창제체’ ‘정음고체’ ‘정음체’ ‘곧은체’ ‘한글전서’ ‘판본체’ 등이, ‘언해본체’의 다른 명칭은 ‘조화체’ ‘효빈체’ ‘민체’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라 명명한 것이었다. 필자는 ‘정음체(正音體), 조화체(調和體), 궁체(宮體)’ 등의 3분법으로 분류한 적이 있다. 정음체를 두고 ‘고전체(古篆體)’라 할까, ‘정음고체(正音古體)’라 할까 하고 오랫동안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15년 2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글 서체 명칭 통일을 위한 포럼’에서는 당시 최종 선택된 두 개의 안 중, 제1안이었던 ‘해례본체(解例本體), 언해본체(諺解本體), 궁체(宮體)’ 등의 3분법 안과, 제2안이었던 ‘곧은체’ ‘바른체’ ‘흘림체’ ‘진흘림체’ ‘캘리그라피체’ 등의 5분법 안과의 격론 끝에, 마침내 제1안이 절대적 호응을 받은 바 있다. 따라서 이제는 이미 입증된 한글서체명의 일반화 방법만이 문제가 된다.

돌이켜보면 창제 당시의 한글서체 명칭 문제는 당시의 글꼴(폰트, font)이라 할 수 있는 한글 ‘자체(字體)’는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의 이름으로 인출(印出) 되어 목판본(木版本) ‘목판본’ ‘판본’ 또는 ‘판각본’이라 함은 목판으로 박은 책을 뜻한다.

으로 남아있으나, 붓으로 쓴 ‘필체(筆體)’가 남아있지 않음에 있었다.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동국정운>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출된 글자라 하더라도 현대 서예가가 붓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해례본체’와 ‘언해본체’는 당연히 서체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세종 28년(1446)에 나온 초간본으로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있고, 이를 한글로 풀이한 <훈민정음언해본(訓民正音諺解本)>이 있다. 현존하는 4종의 언해본 가운데 가장 완벽한 것이 ‘서강대 소장 언해본’(1459)인데, 이것은 단행본이 아니고 <월인석보>(1459, 세조 5년) 제1권에 실린 것으로 책 이름을 <세종어제훈민정음>이라 하였다. 이 책의 한글서체는 필획의 굵기에 변화가 있고, 운필 방향도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마치 붓으로 직접 쓴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언해본>이 세조 때 간행됐다고는 하나, 앞 넉 줄은 개각(改刻)한 것이고, 원본은 이미 세종 때 판각(板刻)해 둔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언해본>은 <해례본> 반포 1년 이내지만 놀랍게도 이 둘의 서체는 서로 달라서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실용적, 과학적, 철학적으로 만든 ‘자방고전(字倣古篆)’의 해례본 서체는 단순한 글꼴이었지만 당시에 사용하던 한자체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판본체(板本體)’라는 서체는 인쇄용어로서 자체명(폰트명)일 수는 있으나 ‘서체명’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판본체’라 하면 ‘새김글꼴’과 가까운 개념으로 다가온다. ‘해례본체’라는 명칭이 한글서체의 하나로 인정받으려면 ‘<해례본>의 한글 자체를 바탕으로 한 한글서체’라는 식으로 조속히 사전에 등재되어야 한다. 

근년에 상업성으로 도입되어 유행하는 글꼴로 알려진 ‘컬리그래피(calligraphy)’가 있는데, 이 역시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규범 표기 미확정’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언어생활에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이미 미술 교과서 편수용어에서는 ‘컬리그래피’로, 네이버사전에서는 ‘캘리그래피’로, 이 외에도 ‘칼리그라피’ ‘컬리그라피’ ‘캘리’라 부르는 등 중구난방이다.

 

통일된 올바른 한글서체 명칭을 이른 시일 안에 보급하기 위해서는 사전 등재와 더불어 미술교과서 내의 한글서체 용어도 수정해야 한다. 이 일은 교과서를 편집하고 수정하는 편수관의 몫이다. 그러나 서예가도 합리적 의견을 모아 건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현 미술과 편수자료는 ‘일반용어’, ‘한국전통미술 용어’, ‘작가명’ 등의 3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일반 용어 중에서 서예 관련 용어만 가려서 옮겨보기로 한다. 교과서 편수 자료(Ⅱ) -인문사회과학/체육・음악・미술 편.

 

 

갈필(渴筆), 궁체(宮體, 한글 서체의 일종. 정자, 흘림, 진흘림), 금석학(金石學, epigraphy), 그림글자(글자에 그림을 넣어 디자인한 것), 그림문자/픽토그램(pictogram, 물체의 형태를 간략하게 그린 문자), 기운생동(氣韻生動), 낙관(落成款識의 준말), 문방사우/문방사보(文房四友/文房四寶. 紙, 筆, 墨, 硯), 문인화(文人畫), 문자 디자인/레터링(lettering), 사군자(四君子. 梅, 蘭, 菊, 竹), 삼묵법(三墨法. 농묵, 중묵, 담묵) 서진/문진(書鎭/文鎭), 습작(習作, étude프), 시각예술(視覺藝術, visual arts), 시각 디자인(visual design), 심미성(審美性, aesthetic quality), 쌍구법(雙鉤法), 양각(陽刻, relief), 여백(餘白), 영자팔법(永字八法, ‘永’자를 이루는 8가지 점획을 쓰는 방법), 예서(隸書), 완법(腕法, 서예에서 집필법의 자세. 침완법, 제완법, 현완법), 용필법(用筆法), 운필법(運筆法), 음각(陰刻), 이미지(image), 이벤트(event, 연극적인 스타일의 해프닝), 인재(印材, 전각의 재료), 임서(臨書, 서예 학습에서 체본을 옮겨 쓰는 방법의 일종), 자법(字法, 印稿 작성 시 전서의 필법에 맞도록 글자를 쓰는 것), 자연미(自然美, natural beauty), 장법(章法, 서예 작품의 구성), 전각(篆刻), 전서(篆書), 제완법(提腕法), 조형미(造形美, plastic beauty), 조화(調和, harmony), 주목성(注目性), 중봉(中鋒), 집필법(執筆法, 서예에서 붓 잡는 법. 단구법, 쌍구법, 발등법), 초서(草書), 추사체(秋史體), 침완법(枕腕法, 서예 완법의 일종. 작은 글씨에 적합), 컬리그래피(calligraphy),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s), 탁본/탑본(拓本/搨本. 건탁, 습탁의 두 가지 방법이 있음), 파묵(破墨), 파필(破筆), 판본체(板本體), 퍼포먼스/행위미술(行爲美術, performance), 편봉/측봉(偏鋒/側鋒), 해서(楷書), 행서(行書), 현완법(懸腕法, 서예 완법의 일종. 큰 글씨에 적합) 

 

우선 위에 열거된 용어를 살펴보면 쉬운 우리 말글로 고쳐야 할 용어가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한문서체는 5체가 분명히 나타나 있으나, 한글 서체로는 ‘판본체’와 ‘궁체’만이 보인다. 다행히 논란이 되는 ‘민체(民體)’는 들어 있지 않으나, 그렇다고 ‘언해본체’가 아직 인정된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의견을 모아 수정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예부터 글을 아는 사람을 ‘인(人)’이라 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을 ‘민(民)’이라 했다. 따라서 문맹자가 거의 없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민체’라는 말이 성립되지만,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던 조선시대에는 민(民)이 글을 가까이하는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다. 현재는 문맹자가 1.7%밖에 안 되어 문해율(文解率)이 높은 선진국이지만, 백 년 전만 해도 99%가 문맹자였다. 1930년도 인구 21,058,305명(일본인 527,016명 / 한국인 20,438,108명) 중 가나(한글)와 국문(일본자)을 둘 다 못하는 자가  가나와 국문을 둘 다 못하는 자가 16,082,156명(일본인 107,323명 / 한국인 15,888,127명). 일본인의 문맹률 20%, 한국인의 문맹률 78%. <통계청 자료>

 그러므로 세종의 뜻과는 달리 민(民)은 끝까지 노예이자 문맹자로 남아있어야 했던 것이 당시의 실상이었다. 따라서 ‘언해본체’라는 한글서체도 양반만이 읽고 쓸 수 있었다고 본다.  

한글서체 명칭 보급을 위한 방법으로 미술교과서 등재 외에 SNS를 통한 적극적 홍보 방법도 있다. 이 일은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취약한 서예계에서 서예의 비전과 현실을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학문과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실천과 공유에 있다. 조형 예술의 한 영역인 서예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실천과 공유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사용 용어의 통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행히 오랫동안 한(恨)으로 남아있던 한글서체 정립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보고 있다. 40여 개나 될 정도로 난립했던 한글서체 명칭 통일을 위해 몇 년에 걸쳐 수차례의 학술토론과 공청회를 거치면서 마침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그런데 최종 설문용 자료를 보니 예상치 못한 두어 가지 작은 문제가 노출됨으로써, 비록 완결을 본 상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골격은 만들어졌다고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함께 예지를 모으면 곧 합리성 있는 결과물이 국민적 여망으로 도출되리라 기대한다. 

이제는 정해진 한글서체 명칭 사용의 실천과 공유를 위해 노력할 때이다. 강 건너 불 보듯 우두망찰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한글서체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비전을 갖고 우선 나부터,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다음과 같은 역량을 길러나가야 한다.

첫째, 적극적 한글서예 홍보다. 한글서예에 관한 내용을 영어,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등의 주변 언어로 능동적으로 번역하여, SNS는 물론 온라인, 오프라인 등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야 한다. 지금의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전이 전자사전으로 남아있지만, 일찍이 브리태니커사전과 같은 서구 사전을 보면, 중일(中日) 양국의 서예는 수십 쪽에 걸쳐 소개되었지만, 한국서예(Korean Calligraphy)는 한쪽도 못 채웠던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다. 문화도 즐길 때 건강하고, 소통할 때 공유할 수 있다.

둘째, 서예 장르만으로는 세계화가 어렵다. 스포츠는 물론 음악, 미술, 영화 등의 범 예술 장르와 더불어 원행이중(遠行以衆)할 때 더 큰 한류(韓流, Korean Waves)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셋째, 서예는 한자문화권에서만 존재했었다. 이제는 국제 공용예술로서 영어서예도 우리가 앞장서 연구하여 서구 문화권에 전파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전향적 지원정책과 기업의 적극적 메세나(Mecenat)가 필요하다.  

넷째,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한국 서예가라면 국한문혼용 작품 창작에도 동참해야 한다. 해외에서 한자서예만을 펼쳐 보이면 중국인으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미 간체자를 씀으로써 우리의 상용한자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오늘날 한자는 크게 3갈래로 나뉘었다. 소위 번체자(繁體字)를 사용하는 한국·대만, 간체자(簡體字)를 사용하는 중국, 그리고 일본식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으로 대별된다. 

 

다섯째, 한글서예는 반드시 컴퓨터 화면이나 프린터로 출력되는 다양한 폰트와 함께 가로쓰기서체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서체나 필체를 바탕으로 폰트가 제작되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라는 이름으로 서예 범주가 확장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도 있기는 하지만 순수 전통예술로서의 붓의 사용을 떠나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바이올린을 떠나면 이미 바이올린 연주는 아니게 된다. 서예는 시작부터 예술적 측면과 실용적 측면 사이에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궁체정자나 한자해서는 거의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흘림의 묵색이나 행초서의 자유로움은 예술적 감성 영역이기 때문에 AI도 대신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예술관광, 서예관광 상품 개발을 감연히 정부에 요구한다. 선진국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예술관광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내세울 만한 예술관광 거리가 없다. 한글문화의 전당이나 거리, 한글체험박물관 등을 곳곳에 유치해야 한다. 스포츠 중심의 지원은 후진국 형이다. GDP 1만 불을 기점으로 시작했어야 하는 문화예술 키움 정책이 3만 불을 넘어가는 현시점에서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뒤늦은 감은 있으나 전 세계에 설치된 세종학당 커리큘럼에 한글서예도 개설해야 한다. 서예진흥법 통과 자체도 중요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한글서예 지원을 통하여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2차 산업을 바탕으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정보가 중심인 3차 산업을 거치면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바로 그 정보의 중심에 한글이 있다. 한글과 한글서예를 통하여 한층 더 성숙한 문화 한국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국가와 예술가가 동행하는 준비된 원팀 정신과 감성의 기적으로 한글서예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갈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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